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32
외전 1. 그럼에도 세상은
……그리하여.
‘예언의 대적자’의 활약으로 세계는 종말을 피했다고 합니다.
* * *
핌불베르트.
아홉 세계 전역을 뒤덮은 3년간의 폭설은 무사히 모두 멎었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솟아오른 이그드라실은 더 이상 오딘의 마수가 뻗치지 않는, 세계수 그 자체의 싱그러운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어요.
비록 사라지지 않았으나, 이그드라실은 이제 더는 흉조로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러 인간들은 물론, 갖은 종족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침내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기로 했죠.
이는 이름과 과거를 잃어버렸던. 작은 인간으로서 신의 경지에 오른 자. ‘헤니르’이자, ‘민재현’이라는 이름을 지닌 어느 영웅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유복해 보이는 가정집.
동화책을 읽어주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조그맣게 울려 퍼진다.
2,000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대궐 같은 거대한 집.
청아하면서도, 조금은 완숙해진 여인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꽤 시간이 흘러버린 이야기.
이미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홉 세계의 교류는 이어지고 있었기에 계속 읽히는 것.
그 이야기가 담긴 정수가 바로 이 동화책이었다.
이는 헤니르.
즉, 재현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각 세계의 평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여러모로 인간으로서 격을 얻은 자가 이뤄낸 것이라 하기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튼, 우리 딸. 이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집중한다니까. 이 이야기가 그렇게 좋니?”
피식 짓는 미소.
여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무릎에 아이를 앉혀두고 책을 읽어주는 그녀의 따스한 음성은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그러자, 곧 작은 체구의 소녀가 감탄 어린 목소리를 뱉어내며 히히, 하고 작게 웃어왔다.
“당연하지…! 그도 그럴 게… 이건 아빠 이야기잖아요!”
아이의 천진한 웃음에 어머니로 추정된 여자가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준다.
아이는 자지러지며 좋아하더니, 이내 잠에 빠져들 기미를 보인다.
꾸벅꾸벅 머리가 크게 휘청이는 모습.
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린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린 탓에, 동화를 읽어주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이제 겨우 한숨을 돌릴 기회였다.
꽤 지쳐 있었던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제 남편을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사람이 왜 안 오는 거지?”
여전히 여자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부터 술을 진탕 마신 듯한 취객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또 시작이구나.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를 조심스레 소파에 눕히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존재한 어느 인간이자…….
이젠 동화로서 엮어진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된 신화가 있었다.
민재현.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헤드락을 건 채 한 새빨간 머리칼을 지닌 청년을 질질 끌고 하하, 웃으며 변명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그게… 로키 이 녀석이 가끔 이렇게 술을 먹자고 사정할 때가 있거든. 에기르가 담은 술이 그렇게 엄청나다길래 나는 아주 잠깐만 다녀오려고 했는데 글쎄…….”
에기르의 술은 아무리 신이라 해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러 의미에서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지금 앞의 두 사람.
즉 재현과 로키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조차 지니지 못했다.
적어도 이 둘이 있는 이상. 또 오딘이 사라진 이상, 그들을 견제할 세력 따윈 아예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들어와요. 일단.”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하는 여자.
로키가 재현의 목에 건 팔에 세게 조인 채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녀석은 언제 미드가르드 패치가 다 되었는지 이미 현대인에 걸맞은 복장을 하고 있다.
붉은 머리칼에 잘 어울리는 아이돌 같은 휘황찬란한 복장.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놀랍기는 했지만, 앞의 여인은 그저 차가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하하…!! 역시 너라니까…… 딸꾹! 무려 이 친구가 아홉 세계를 구한 영웅 아냐? 뭐 술 좀 마신다고 싫어할 사람도 없는데 엄청 빼길래 내가 좀 데리고 놀아 줬지……! 어때? 얼마든지 감사하다고 말해도 돼!”
로키가 당당히 뱉은 말에 여자의 얼굴이 더욱 싸늘히 굳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남편을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엉? 그게… 오늘은 여기서 자고 해장까지 하고 가려고 했는데…….”
“안녕히 돌아가세요.”
두 번이나 반복된 말에 심각성을 느낀 로키가 크흠, 하며 능청스럽게 말해왔다.
“아, 맞다. 재현, 네게 말하지 않았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겠군. 그럼 이만.”
“야, 야! 로키! 잠깐만, 너 도망가면 나 죽어…!”
하나, 애석하게도 재현의 공허한 외침은 닿는 법이 없었다.
어느새 로키가 공간 도약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저렇게 가버리고 나면 아무도 그를 잡거나 찾을 수 없었다.
재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후아…….’
재현은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열린 문 내부로 발을 들이밀었다.
느껴지는 한기를 애써 무시하며.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로키가 있었다면 좀 덜 혼났을 텐데…….
하물며 딸이 깨어 있기라도 했다면…….
“그럼 이야기를 해 볼까요?”
서늘한 말투에, 재현은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게 말하며, 재현은 이 착한 여자가 자신과 결혼하며 언제 이렇게 돼 버렸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꼬박 7년 전, 졸업을 앞두고 있던 재현의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꽤 길었다.
덧붙이자면, 그의 연애담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7년 전, 재현은 새로운 길드를 만들었다.
이름은 처음 서클을 창설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인’.
북유럽 신화에서 9라는 숫자를 신성시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었는데, 이게 세계적으로 이미 꽤 유명해져 버려 귀찮아 붙인 이름이었다.
이제 와서 이름을 새삼스럽게 바꾸는 것도 사실 번거롭긴 했다.
사람들의 뇌리에 재현이 세운 길드 이름이 제대로 박히려면 이처럼 머릿속에 때려 박을 필요가 있다.
익숙한 게 뭐든 최고였다.
참고로, 길드의 멤버는 다음과 같았다.
재현, 김유정, 서이나, 안호연, 이재상, 권소율, 이재상, 서아현……
그 외 잡다한 이모저모 신들.
모두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하며 세계 각지의 평형을 이루는 일을 했기에, 모든 이들이 제 역할을 하는 나름 건실한 길드였다.
어차피 돈에 구애받을 이유도 없는 데다, 다른 레이더 역시 함부로 할 수 없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처치 불가능한 던전의 공략에서 주로 활약하거나 할 뿐.
다른 역할이라곤 빈둥거리는 것 빼곤 크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현에게 한 의뢰가 들어오면서 또다시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는 최종장을 넘어 다시 시작된다.
그 첫발자국은 바로 갑작스레 찾아온 발키리의 수장.
프레이야로부터였다.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와서 미안하게 됐군. 헤니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은 민재현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이젠 그 이름이 더 편하기도 하니. 뭐.”
“그래. 그렇게 하지.”
프레이야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이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프레이야에게 예를 갖췄다.
아무리 재현으로서 현재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거 헤니르 시절 대면한 적이 있던 그녀가 아닌가.
한때 발키리의 수장이었던 그녀에게 예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이야기를 대충 전해 들으니 전투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발키리는 더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미 군대도 해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였다.
프레이야를 따르던 무수한 수의 발키리에게는 자유가 생겼다.
그녀들에게 제약이 모두 사라졌고 더 이상 고민할 거리 역시 없어졌다.
모든 군대는 해산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활동하게끔 그녀가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야와 프레이의 고향이기도 한 바나헤임이라는 땅도 있는 만큼, 앞으로 삶에도 탄탄대로가 펼쳐진 셈.
다만, 여기서 되레 문제가 생길 줄은 그녀 역시 몰랐다고 한다.
“바나헤임… 우리의 고향은 과거 첫 번째 전쟁 당시 수르트의 불꽃에 의해 모두 타 버렸다. 이를 수복하기 위해 여러모로 꽤 노력하긴 했지만,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지. 이 불꽃을 끄기 위해서는…….”
“불꽃의 거인 수르트를 설득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시군요.”
재현은 금세 납득했다.
하기야, 일반적인 방법으로 끌 수 없는 수르트의 불꽃이 아닌가.
무려 니플헤임의 얼음을 녹여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첫 번째 라그나로크를 종식에 가깝게 끌고 간 거인의 힘이 깃든 불꽃이었다.
덧붙이자면, 재현의 신화의 장검에 들어있는 조각.
이 역시 수르트의 티끌이고 말이다.
그러한 위력을 가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를 소화하고 대지의 온도를 낮춘 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수르트를 직접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불꽃을 꺼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수락하게 만드는 것.
하나, 무스펠헤임. 즉 수르트의 땅은 아직 재현이 한 번도 제대로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여러모로 무스펠헤임이란 땅.
즉 미지(未知)란 어떠한 위험 요소도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재현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수르트를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어차피 한 번쯤은 만나야 한다 생각하기도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재현은 그렇게 말한 뒤, 과거 수르트와 자신이 얽혔던 일을 떠올렸다.
고작해야 작은 파편과 싸웠던 BIG 5라 불리는 놀이공원 테마 던전 공략 당시, 그는 수르트의 티끌과 싸우며 겨우 승리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 그 본체를 만나러 가는 건가. 제대로 된 싸움이 벌어지겠군. 워낙에 호전적이고 더럽게 뜨거운 거인이라고들 하니.’
한 이야기가 끝났기에,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이야기는 무릇 갑작스레 시작된다는 것을 재현은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처럼 모든 이야기가 종막에 치달았다 여겼을 때.
다시금 신화는 자신을 호명하고 있었으니까.
재현은 고민했다.
자신의 길드원 중에서 누구를 데리고 가야 잘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날 것인지.
부려먹기 좋은 이들이 웬만하면 좋았다.
서로 다투지 않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다.
잠시 고민한 뒤, 길드 사무실의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이들 중.
재현은 여행에 동행할 두 명의 인원을 선택했다.
그 인원은 다음과 같았다.
권소율, 그리고 루이나.
이들은 길을 찾거나, 차원을 이동할 때 도움이 될 존재들이었다.
여러모로 전투력이 부족하긴 하나, 이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수르트를 설득하다 안 되면 패버리면 되니까.’
이미 오딘까지 쓰러뜨린 마당에, 재현이 가릴 것은 없었다.
운명을 바꾸는 힘.
마지막에 베르단디가 자신에게 전해온 힘으로 그는 결국 오딘마저 쓰러뜨리며 운명을 바꾸었다.
모두의 노력과 함께, 마침내 그가 이루어낸 일이었다.
그런 재현에게 수르트가 위협이 될까?
물론 재현은 오랜 시간 레이더로서 활동해 온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았지만, 수르트가 자신을 압도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죠.”
“……너는 길 찾을 때마다 나를 데려가더라. 내가 무슨 내비게이션이냐?”
권소율이 평소와 같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재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부정 못 하겠네요… 그리고 솔직히 그 능력 그거 아니었으면, 그 연봉 받으면서 저희 길드에 못 있어요. 선배.”
“……너무하네. 이제 갑 됐다고 선배 무시하는 거냐?”
그녀의 핀잔에도, 재현은 가볍게 무시했다.
이제 그녀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언제나 선배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함께 가자고 ‘부탁’도 드리는 거고요.”
“말이나 못 하면. 어차피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든 힘으로 끌고 갈 거잖아. 안 그래?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제가 또 언제 때렸다고…….”
“훈련이란 명목으로 애들 다 패고 다니는 거 모를 줄 알아?!”
크흠, 재현은 헛기침을 했다.
루이나는 재현의 제안이 마음에 든 듯 배시시 웃어왔다.
“저는 서방님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함께 가다 보면 혹시 알아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는 건 찰나의 순간! 저는 아직 서이나, 김유정 양에게 전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구요!”
“……헛소리는 적당히 하고 가자. 그리 시간도 많지 않아. 바나헤임이 불타고 있다잖아. 1만 년 탔으면 이제 남는 것도 없겠다. 다들 준비해요.”
“하아… 알았다고.”
“네~!”
그렇게.
예언의 대적자, 헤니르, 민재현.
세 개의 이름으로 불리던 한 인간이자 격을 얻은 신화적 존재의 모험담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주 잠깐에 불과한. 찰나일지 모르나, 이 이야기가 부디 재미있게 읽히길 바라며.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쓴 어느 작가는 한 세계의 끝을 조금 더 유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