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45
외전 8. 이미르(1)
어둑한 게이트 너머로 몸을 던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역시 압도적인 마력이다. 오딘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야.’
이게 고작해야 파편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 그 증거로 제 곁의 헬라 역시 꽤 괴로운 듯 보였다.
이처럼 농축된 마나는 아무리 반신인 그녀라 해도 쉽게 버텨내기 어려운 것이다.
“괜찮습니까? 헬라.”
“걱정하지 말고 주변을 경계하세요…… 거대한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당신이라면 아시겠지만…….”
그르르르릉!
파피가 허락도 없이 거대화를 사용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재현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주처럼 광활한.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한 줄기 섬광처럼 도드라지는 냉기.
이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다.
[이곳에. 그대가 직접 방문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네가 이미르, 아니 그의 파편인가?”
재현이 물었다.
그러자, 어느덧 어둠이 환히 밝아지며 새하얀 얼음 궁전이 이들의 앞에 드러나 투명한 빛을 뿜는다.
마치 샹들리에처럼 새하얀 빛이 머리위로 쏟아진다.
사방의 빛을 반사하는 얼음 조각.
재현은 그것조차 모두 마력으로 형상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기겁했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태초의 격을 지닌 존재.
이미르의 진짜 모습은 이보다 몇 배는 더 강할 터.
재현은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누르며 말했다.
“굳이 싸우고 싶진 않다. 그러니 네가 가진 결정을 내게 넘겨줬으면 좋겠는데.”
[불가하다. 그것은 나의 것. 또한, 나를 구성하는 마지막 파편이니.]“구성하는 마지막 파편이라…….”
[그렇다. 그것이 없어진다면 나의 죽음과 함께, 이 세계의 ‘규율’이 사라진다.]“그게 중요한가? 너는 이미 오딘의 손에게 죽었고, 반쪽짜리 규율 따윈 남아 있어 봐야 이제 쓸모도 없어.”
[그래. 그대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무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있으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니. 허나, 내게서 이 파편을 가져가고 싶다면. 그대 역시 이곳에서 증명해야 한다.]얼음 궁전, 새하얗게 얼어붙은 옥좌가 드러난다.
그 위에 앉아 있던. 채 성별을 알아볼 수 없는 거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하지만 저조차도 아주 작게 축소된 최소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힘을 잃고 영락한 과거의 패자는 자고로 저런 모습이 된다.
등이 굽고, 옛 기세를 잃으며.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제 자취를 감추는 것.
그것이 패자의 말로였다.
하나, 그럼에도 그는 강했다.
세계의 시작이라 불리는 존재다운 위용이었다.
재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침내, 검을 뽑아 들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의 전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는 파편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재현은 느꼈다.
이미르의 파편이,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태엽이 슬슬 종말로 치닫고 있음을.
아마 그 역시 힘들 것이다.
지쳐있는 두 동공과 핏발이 선 흰자위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안식을 취할 수 있게끔 도와주지.”
[바라던 바다.]이미르는 그렇게 말했다.
재현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런 뒤, 자신이 가진 모든 신격을 단번에 해방했다.
츠츠츠츠츠……!!
―사용자가 신격을 극한까지 해방합니다!
재현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청량한 시스템 음, 노른 세 자매의 작품이 빛을 발한다.
가볍게 숨을 고르고, 한 걸음.
콰앙!
어느새 날아든 거인의 주먹을 피해낸다.
재현이 가볍게 호흡하며 검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쉬이 볼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
이는 오딘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바로, 이미르의 검이자. 태초의 검이라 불리는 모든 것의 정수였다.
* * *
김유정과 서이나, 안호연과 니드호그.
이들은 다시 이둔이 기다리는 안개 정원으로 되돌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선 재현이 마수를 처치했다고는 해도 인근의 마수의 수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는 것.
또 더럽게 강했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아무리 재현의 동료들이 강해졌다 해도, 이들을 모두 상대하며 재현을 기다린다?
이는 불가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재현을 신뢰하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기로.
그렇게 하면 재현은 또다시 언제나처럼 자신들의 곁에 돌아올 것이다.
“그나저나 한 가지 의문이 있어.”
“……네?”
이둔이 불시에 물어왔다.
참고로 니드호그는 현재 화단을 열심히 관리하느라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재현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이 ‘니드호구’가 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밀이었다.
“너희 지금 몇 명이서 경쟁하고 있었더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이나에 이어 이번에는 김유정이 약간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저도 모르게 음 이탈이 난 것으로 보아, 무슨 뜻인지는 잘 아는 것 같은데.
이둔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봄처럼 새하얀 미소.
태양 볕처럼 아름다운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걸린다.
“유정, 이나, 루이나…… 그런데 너희 그거 아니? 경쟁자가 그거뿐만이 아니란 거?”
“……네에!?”
김유정이 차마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새 니드호그가 괭이질을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드래곤인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연애사 듣는 걸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나는 타인의 선명한 감정은 잘 읽어내는 편이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너희 조금 위험한 것 같아. 강적이 새로 생겼거든!”
이둔의 말에 서이나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내심 이를 알고 있던 안호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자칫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자신이 피곤해질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고 있던 것인데, 이렇게 이둔의 입에서 오픈될 줄은 몰랐다.
그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얘들 한동안 걱정 엄청 하겠네. 거기다… 재현이가 돌아오면 걔도 아마 죽기 직전까지 갈굼당할지도 몰라.’
안호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주변에서는 온통 한기가 머물러 있었다.
김유정이 잠시 고민하다 한마디를 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민재현 진짜 너무하잖아…. 또 어디서 누구를 홀리고 다닌 거야!”
“…맞아.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서이나도 설상가상으로 맞장구를 쳤다.
이거야 원.
개판이 따로 없었다.
니드호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다 어느새, 화단은 내팽개치고 이둔의 옆자리까지 슬그머니 다가왔다.
김유정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란 게 대체 누구예요?!”
“음… 너희와 오래 함께 있었고, 가장 우리 대적자. 재현의 깊은 내면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
“……강적이야.”
서이나도 충격을 받았는지 찻잔을 부르르 떨었다.
당연한 일이다.
무려 재현과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깊디깊은 내면을 공감할 수 있는 자라고?
그렇지 않아도 서이나는 김유정과 재현의 함께 보낸 오랜 시간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면 미운 정도 그 나름의 정이 된다고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생각은 또 달랐다.
“서, 설마… 예, 예뻐요?!”
“응. 엄청 이쁘지…… 너희와는 다른 느낌으로.”
“안 돼!”
김유정은 그렇지 않아도 서이나의 아름다운 외모 탓에, 자신이 밀리고 있다고 생각 중이던 참이다.
내심 아무런 말이 재현에게서 나오지 않기에 이러다 자신이 밀려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득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예쁜 데다, 자신의 강점인 소꿉친구 포지션까지 위협이 된다고?
만약 그렇다면…….
‘위험해!’
두 사람이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안호연은 이를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도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고…?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사실 눈치 없는 것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안호연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랑 앞에 빠진, 두 눈이 가려진 소녀들의 그것만 하진 않았다.
그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이둔의 눈치를 살폈다.
니드호그는 어느새 이둔의 곁에 앉아 있었다.
덩치와 흉악한 외형과는 다르게 기척을 죽이는 기술 하나는 기가 막혔다.
“아직도 모르겠니? 참고로 하나 힌트를 주자면… 너희와 같은 인간은 아니야. 루이나와 같은 엘프도 아니고…….”
이둔이 다시금 화사하게 웃는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이야기해줄게! 헬라야! 그녀도 재현을 엄청 엄청 좋아하고 있어. 이건 내가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오오오오! 푸헷취!]마침내 원하던 이야기를 들은 니드호그가 탄성을 내뱉다,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다시금 뿜어진 독 연기.
이는 당연하게도 다시 화단에 직격했다.
이둔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니드호그…. 언제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망친 화단을 다시 되돌려 달라고 이야기했을 텐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아무래도 말로 해선 안 될 것 같네. 그치?”
이둔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농기구가 쌓인 창고로 들어갔다.
니드호그가 경악하며 세 사람에게 물었다.
[어, 어떡하지. 도와다오! 이대로 가다가는 드래곤의 위신이!]“명복은 빌어줄게요.”
가장 먼저 안호연이 그렇게 말했고, 두 여자는 무시할 뿐이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 생각뿐이었다.
“헬라까지… 경쟁자라고……?”
“확실히 예쁘고…… 우리가 재현이의 사명을 모를 때도, 옆에서 재현이를 도와줬어.”
위기감이 단번에 이들의 경종을 울렸다.
이것은 도저히 아니다.
위험하다.
전신의 온 신경이 곤두서며, 두 여자는 새로운 경쟁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튀기는 전쟁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로를 잠시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동맹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니드호그~ 오래 기다렸지?!”
그때. 이둔이 밖으로 나오며 농기구. 그것도 거대한 쇠스랑을 가져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이둔이 가볍게 한 손으로 쥐고 있다는 것이고, 화단을 망친 죄로 이둔에게 대들지 않겠다고 과거 자신이 그녀와 마나에 걸고 맹세를 나눴다는 거다.
이대로면 이번엔 소처럼 밭을 갈게 될지도 모른다!
니드호그는 전력으로 도망쳤고, 이둔은 재빨리 이를 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찌 된 영문인지 날개 달린 니드호그가 이둔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두꺼운 꼬리를 잡아끌고 있는 모습.
화사한 황금사과를 키우는 청춘의 여신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호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간이 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안호연의 경우 차를 마시며 한 번 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얘들을 말리는 것보다 재현이를 여러 명으로 만드는 게 빠르겠어.’
나름 효율적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