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68
외전 17. 엔딩 – 루이나(2)
기다림.
처음 루이나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때.
재현은 사실 고민했다.
혹여나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한 순간에 루이나를 동정한 것은 아닐까? 자신을 잊지 않고 기다린 1만 년의 긴, 터무니없는 시간.
그것으로 인해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려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을 고민했지. 아주 오래도록…….’
루이나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재현은 되레 그녀를 선택한 뒤에도 한참이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선택이란 말조차 웃기는 일이다.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재현은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현은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 키스는 그에 대한 답으로 완벽하리라 생각했는데…….
일이 약간 뒤틀렸다.
“…야. 네가 먼저 하는 게 어디 있어?”
“그치만…… 저는 서방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는걸요. 어쩔 수 없잖아요. 말해버렸다! 까아!”
루이나가 양손으로 붉어진 뺨을 붙잡으며 작게 소리를
질렀다.
누가 봐도 적당한 연기가 섞인 것이었으나,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터.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재현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따끔따끔하게 자신의 얼굴을 찌르는 부러움이 가득한 남자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재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그러게 누가 가까이 오랬어요?”
하나, 루이나는 역시 강했다.
그녀는 되레 자신이 당당하다는 듯 가슴께를 쭉 펴며 말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면 뽀뽀 한 번쯤은 당할 거라고 생각하셨어야죠!? 그… 저도 피해자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척추반사처럼 몸이 먼저 움직인 거란 말이에요……!!”
재현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에도 어펀지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도I자, 숙연해졌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어쨌든 루이나는 자신을 사랑해서 먼저 키스한 것이다.
이는 재현도 바라마지 않던 일이다.
…물론 다가가는 와중에 갑자기 그렇게 박치기를 해올 줄은 몰랐지만.
설상가상으로 약간 부딪힌 코끝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게 내 대답이야. 나는 네가 좋고… 그래서 사귀게 된 거라고. 그러니까…….”
“네! 확실히 결제받았습니다! 그게 뭐, 아직 한참 모자라긴 하지만… 서방님이 무슨 마음이신지 확실히 알겠어요. 헤헤…… 아무래도 저 진짜 좋아하나 봐요. 재현 님을.”
“서방님이든 재현 님이든 하나만 해.”
“아핫…! 그럼 역시 서방님 쪽이 더 기쁘셨던 거군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래, 그런 거로 하자.”
재현은 한숨을 쉬었고 루이나는 기쁜 강아지 같은 순한
얼굴로 곁에 따라붙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두 사람은 최대한 딱 붙은 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재현은 기분이 좋긴 했지만, 약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약하게 퍼져나오는 루이나의 엘프 특유의 향기와 짧은 치마와 상의. 그 사이에서 아무래도 남자라면 견디기 힘든 유혹이. 아찔하게 그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재현은 몇 번이나 심호흡하면서 걷고 데이트하며 주변을 구경하길 반복했다.
루이나가 인세. 미드가르드를 좀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간단했다.
“서방님의 아내가 될 몸인데, 수십 년을 살아오신 미드가르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우리 그냥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흑흑… 저를 버리시려고 하는군요. 저도 인세에서 들은 적 있어요.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인간들이 왜 있다고…….”
“아니, 애초에 그건 반대거든? 그쪽은 여자가 남자를 차 버리는 거고…… 상황이 아예 다른 데다.”
재현은 정정하려다가, 순간 멈짓하고 말았다.
애초에 기다림에서는 루이나를 이길 자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비록 비유가 약간 잘못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루이나는 자신을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왔고. 지금 겨우 이뤄져서 함께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지금 그녀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난 시간을 보상해주는 것. 함께 하는 것뿐이었다.
“죽어도 안 버려.”
때문에 재현은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하물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덕분에 루이나는 동공을 가늘게 픈 채 충격을 받은 몰골이 되었다.
자신이 아는 재현이 이런 반응을 보일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현은 계속 덤덤히 이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같이 하겠다고 선택한 사람인데 버리겠냐?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적당히만 놀려. 알아? 나도 남자니까 자꾸 장난치면 가만히 안 둬.”
“가만히…… 안 둔다…… 죄송한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루이나가 미적거리며 이었다.
“아직 미드가르드의 관용구는 잘 몰라서 아무래도 약하거든요. 그래서 조금만 저한테 알려주시면…….”
“…그래?”
재현은 동그랄게 눈을 뜬 채, 손가락을 매만지는 루이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제 눈동자에 담기는 초식동물 같은 루이나의 모습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문득 드는 것은 가학심이었다.
‘루이나…… 내가 왜 좋아하게 됐는지 잘 알겠어. 잘 놀리다가도 저런 눈으로 바라보면 어떡하자는 거냐고.’
재현은 약간 매서운 눈으로 루이나의 손을 잡았다.
그런 뒤 말없이 앞장서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루이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재현을 봤으나, 아무래도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 * *
재현은 루이나와 조용한 데이트를 위해 드라우프니르를 꺼내 장소를 이동했다.
아무리 미드가르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도, 보는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은 재현에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애초에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들러야 했고. 뭐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재현과 루이나가 도착한 곳은 어느 계단이 길게 이어진 수풀이 우거진 한 장소였다. 마치… 과거의 알프헤임.
그러니까 재현과 루이나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과거 전쟁으로 파괴된 곳을 수복해 봤어. 알프헤임이고,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될 거야.”
지금 시점은 아직 루이나가 알프헤임을 다 수복하지 못해, 겨우 왕궁만이 들어선 때였다.
옛 명성 따윈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라스와 왕가, 어머니가 건재하던 과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재현은 과거 알프헤임의 향취가 느껴지다 못해, 그와 완벽히 일치하는 장소를 루이나에게 보여주었다.
“선물이다. 여자친구한테 주는 첫 선물.”
그것도 자신에게 선물이라고 말하면서.
루이나는 절석(折石)을 사용한 돌계단. 아래로 죽 깔린 흙먼지와 새파랗게 얼기설기 얽힌 주변의 넝쿨을 바라봤다.
바닥에 미끈거리는 이끼도, 햇볕이 채 다 들지 않아 서늘한 공기도.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드러나는 과거의 왕성에서나 볼 수 있었던 큰 연무장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과거 잃은 것 그대로였다.
물론 인간들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혹은 원하며 서로가 바라마지 않던 물건을 선물로 나누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런 선물을 불쑥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심장이 시큰거리며 아파왔다.
“서방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미안하다.”
재현은 자신의 말을 자르며 그렇게 말해왔다.
그리고 어딘가 물기가 어린 눈으로 자신의 표정을 살핀 뒤, 위로 고개를 들며 과거 있었던 어떤 비극과 한 남자를 떠올렸다.
“라스를 구하고 싶었어. 네 어머니도. 알프헤임의 모든 엘프도. 하지만 내 능력이 부족했고, 결국 실패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곤 했어도 미안해.”
“……아니에요.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저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는데…… 제가 원망할 거라 생각했어요?”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재현은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며 과거률 떠올렸다.
라스.
자신의 일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 한계를 부수고, 계속해 나아가다. 결국 대신 희생했던 그를 기억했다.
서이나에게 알프헤임의 직계 힘을 전해주었던 왕비도.
끝내 자신을 환대해 주었던 모든 엘프들의 이야기도 노랫말처럼 귓가에 아직 선명히 울려 퍼졌다.
자장가가 들려오던 세계의 한 어귀에서 우거진 수풀이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며, 무수한 철검에 의해 난도질되었을 때 자신은 어떻게 했던가?
구할 수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루이나와 연애를 결정한 뒤, 재현은 생각했다.
이 문제는 언제고 자신이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며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그녀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부터가, 재현은 연애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때문에 이야기를 꺼냈고, 마법으로. 또 드워프들의 힘을 빌려서.
이 황폐해진 곳에 고성을 지었다.
과거의 향취를 듬뿍 담은 장소를 설계하며 루이나에게
선언한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날… 믿어달라고.
재현의 이야기에 루이나의 눈가를 탄 눈물이 뺨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미약한 홍조가 떠오른 새하얀 피부가 물에 적셔졌다.
이어 그녀의 입에서 물기 어린 목소리가 눈물과 함께 떨어졌다.
“그리웠어요. 서방님만큼이나 너무 오래도록 저는 혼자였어요.”
“응.”
“혼자… 계속 다른 엘프들과 함께 알프헤임을 재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되뇌며 견뎠지만, 어려웠어요. 계속 무너질 것 같았고… 아팠어요.”
“응.”
“그래서… 그래서… 더 사무치게 서방님이 그리웠어요. 조금이라도 제 부담을 덜고 싶었던 이기적인 욕심도 있었는지 몰라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내시고 저를 낫게 해주셨던 분이니까. 그래서 더 믿고 싶었어요. 꼭 당신이 저를 선택해 주시기를. 너무 오랫동안 간절하게…….”
“그게 현실이 된 거잖아.”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놓지 않은 루이나의 손을 쥔 채,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이번에는 나란히 발걸음을 맞춰서.
이어 어둠이 걷히고, 이끼가 깔린 바닥이 아닌 새하얀 빛이 조각나 이들을 반겨주는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장식이 많은 문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루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가 어딘지. 루이나 너도 알지?”
재현은 그곳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네. 하지만 저흰 아직…….”
“시끄러. 따라오기나 해. 이미 결정한 거니까. 여기서 도망치면 다시 안 볼 줄 알아.”
끼이익.
재현은 그렇게 말한 뒤, 문을 가차 없이 젖혔고.
이내 내부에 드러난 것은 성스러운 분위기의 거대한 교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였다.
엘프들이 서로 영원을 맹세할 때. 즉 결혼하기 위해 준비하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하객으로 도착해 있었다.
김유정, 서이나, 헬라…….
그리고 이외의 다른 모두가 이미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질질 끄는 거 싫어하지? 길어도 너무 긴 시간 기다렸으니까.”
“……네.”
“그럼 이제 시간 좀 아끼자.”
재현이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번엔 코도 부딪히지 않고 매끄럽게.
“나랑 결혼해. 지금 당장.”
“네!”
루이나의 시야가 번졌고, 떨어지는 눈물 사이에서 그녀의 선명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재현은 알았다.
아무리 자신이 눈치가 없다 해도, 이것은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