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2
122화.
부아아앙.
사람을 태우지 않은 수십 대의 모터보트와 수상 오토바이가 강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관객은 둘밖에 없었다. 뒤따라가고 있던 경훈과 물 밖으로 몸을 드러내는 물고기 괴물뿐이었다.
이브가 조종하는 수상 오토바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크게 괴물 주위를 돌았다.
물고기 괴물은 어리둥절했다.
자신을 향해 덤비는 먹이들이라니.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괴물은 바로 입을 크게 벌렸다. 이런 먹이 떼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
퍼펑!
괴물이 지느러미를 회 치자, 엄청난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토바이들과 모터보트들이 공중으로 튀어오르고, 뒤집혀 버렸다.
츄악.
괴물은 물을 박찬 반동으로 쑥 솟아올랐다. 거대한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괴물은 물 밖으로 반쯤 튀어나왔다가 오토바이들 중앙에 머리를 처박았다.
콰아아앙!
괴물이 몸을 던지자, 이번에는 물결이 아니라 파도의 벽이 퍼져나갔다.
괴물의 입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은 보트와 오토바이는 산산이 부서지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지금!”
괴물이 수면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자, 뒤따라오던 경훈이 소리쳤다.
-폭탄을 터트립니다. 주의해주십시오!
이브의 말과 함께 하늘을 날던 보트와 오토바이들이 터져 나갔다.
콰과과광!
낙동강 위에서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쿠구구구궁!
폭음은 하늘에서만 들려오는 게 아니었다.
물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직한 진동이 울려왔다.
괴물에게 먹힌 보트와 오토바이가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쏟아지는 불덩어리들을 피하며 내달리던 경훈은 곧 자신의 발밑이 검게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속으로 들어갔던 괴물이 위로 솟구치고 있는 것이었다.
경훈은 다른 무기들을 집어넣고 대검을 뽑아 들었다.
푸아아아아악!
괴물이 물 밖으로 치솟아 올랐다.
경훈이 탔던 수상 오토바이도 괴물에 튕겨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에는 경훈은 보이지 않았다.
푸우욱!
경훈은 솟구치는 괴물의 등위에 검을 꽃은 채로 버티고 있었다.
괴물은 아가미와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물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입속에서 터진 화염과 연기를 뺄 때까지 수면 위에 머무를 것 같았다.
바로, 경훈이 원하던 그림이었다.
경훈이 아무리 등급과 실력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물속에서 이 물고기 괴물과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적어도,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수면 밖에 머물러줘야 했다.
그걸 위한 수상 오토바이와 모터보트였고, 그것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솔직히 오토바이와 모터보트만 던져주고 슬쩍 지나가 볼 생각도 했었지만, 어차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중랑천에서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다행히 폭발의 통증으로 등에 박힌 검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경훈은 검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대검 하나를 또 빼 들었다.
우웅.
마나석이 박힌 손잡이가 진동하더니, 대검 날이 슬쩍 빛을 흘렸다.
푸욱.
커다란 검이 괴물 등에 깊게 박혔다.
경훈은 먼저 박아넣은 검을 빼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하나하나 검을 박아가며 난동을 부리는 괴물 위를 걸어가는 경훈의 모습은 날뛰는 투우 위에 서서 묘기를 부리는 투우사 같았다. 그렇게 등 지느러미 끝까지 올라오자, 이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빅 살루러스의 마나석은 머리뼈와 척수 사이에 박혀 있습니다. 지금 서 계신 부분을 파내야 합니다.
이브의 말에 경훈은 한 손으로 괴물의 등 지느러미를 잡고, 들고 있던 대검을 모두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검을 꺼냈다.
대검처럼 마나석이 박힌 검이었지만, 다른 검처럼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검은 아니었다.
단지 양쪽 검날에 진중한 필체로 새겨진 문장이 있을 뿐이었다.
경훈은 검을 힘껏 아래로 내리꽃았다.
푸욱!
검은 칼자루만 보일 정도로 괴물의 몸에 깊이 박혔다.
쿠우?
퍼뜩거리던 괴물이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대검 때와 달리 검이 꼽힌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늦었어.”
경훈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검 손잡이에 박힌 마나석이 빛을 뿌리기 시작했고, 경훈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마나를 받아들인 삼정검이 환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괴물이 놀라 몸부림을 쳤고, 경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맙소사. 정말 잘못 쓰면 폐인이 되기 딱 좋겠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큭!”
놀란 경훈이 급하게 마나를 절단했다.
콰드득.
제대로 충전되지 못한 삼정검이었지만, 그래도 삼정검은 괴물의 몸속에 수십 개의 마나 칼날을 뿜어냈다.
중간에 마나를 끊은 덕분에, 아쉽게도 경훈이 동굴에서 본 그 검기의 태풍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푸아아아악!
하지만, 그래도 검이 박힌 주변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살점이 터져나가고, 붉은 피가 치솟았다.
쿠에에에에!
괴물이 놀라 버둥거리고, 강물이 태풍을 맞은 것처럼 출렁였다.
하지만, 난리를 피우던 괴물은 오래지 않아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직 눈동자를 굴리고,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있었지만, 척추뼈가 결딴나고 척추 신경이 끊어진 괴물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리 공중에 띄워놓은 드론이 괴물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듯했다.
각각 영역이 있어서 접근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숨이 끊어진 뒤에는 죽은 먹이에 불과했다.
“끄응.”
움푹 팬 살 속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경훈의 목소리였다.
그는 검이 터트린 괴물의 살 속에 처박힌 채로 끙끙거리고 있었다.
“크윽, 이거 실전에서 쓰기는 너무 위험해. 폐인이 되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데, 한번 쓰면 움직이기도 힘들어.”
-연습 때 하고는 다르군요. 저도 충분히 주의하겠습니다.
포션을 마신 뒤, 경훈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마나 고갈이 얼마나 심한지 포션을 마셨는데도 어질어질했다.
푹 패인 살 양쪽으로 흘러나온 뇌 조각과 끊어진 척추뼈가 보였다.
그리고, 끊어진 척추 아래로 반짝이는 돌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마나석이었다.
경훈은 마나석을 뽑아낸 뒤에, 패인 살을 빠져나왔다.
포션을 먹은 덕분에 마나가 계속 쌓이고 있었고, 죽은 괴물에게서 마나가 몰려들었지만, 움직이기가 만만치 않았다.
한 번에 살 구덩이를 빠져나오기도 힘들었다. 경훈은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괴물은 점점 옆으로 눕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물보라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동족을 먹어 치우려는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대로 준비를 안 했으면, 또 위험했겠네.”
경훈이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혀를 찼다. 지금 몸 상태로는 헤엄을 쳐서 저 괴물이 다가오는 것보다 빨리 강변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만 충분하면 많은 작전은 계획대로 끝낼 수 있습니다.
이브가 작전이 틀어질 때마다 늘어놓는 경훈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부우웅.
그녀의 말과 함께 수상 오토바이가 괴물 옆에 멈춰 섰다.
탈출용으로 따로 준비했던 수상 오토바이였다.
싸움이 끝나자 이브의 조종으로 출발한 오토바이는 다른 오토바이와 달리 큰 상처 없이 죽은 괴물 옆에 도착한 것이었다.
경훈이 오토바이 위에 올라탔고, 전기 모터가 달린 오토바이는 불타는 잔해를 피해가며 강변으로 나아갔다.
잠시 뒤, 죽은 괴물 옆에 도착한 물고기 괴물은 바로 괴물의 목에 머리를 박고 살점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괴물은 곧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쿠앙!
파도가 강변을 때리고, 세워놓은 수상 오토바이를 박살 냈다.
강둑에 올라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경훈은 손에 쥔 마나석을 확인했다.
-기사와 대장급 사이 정도의 마나석입니다. 여태 구한 마나석 중 마나 농도가 높습니다.
이브가 한껏 칭찬했지만, 경훈은 조금 아쉬웠다.
적어도, 대전 정부 청사에 둥지를 튼 괴물과 동급이었으면 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듯했다.
거기다, 청계천에서 나온 그 거대한 지룡은 그보다 한 단계 위급인 군주급.
아직도 그 괴물과의 격차는 엄청났다.
-우선은 힘을 더 키워야 합니다. 괜히 덤볐다가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알고 있어.”
경훈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계천을 터트린 이후로 이쪽 세상에서 움직이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계속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승부를 봐야 했다.
“뭐, 다음 기회에.”
경훈은 마나석을 배낭에 집어넣고 강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낙동강 너머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폐허가 된 대구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경훈은 강둑 위에 세워진 팻말을 보게 되었다.
[대구 신기술 연구소 2km]방향 표시가 달린 평범한 낡은 팻말이었다.
하지만, 경훈은 팻말을 뚫어지라 노려보고 있었다.
팻말 위에 글이 적혀 있었다.
[생존자는 연구소로 오십시오.] [아직 기다립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기다리는 중.] [1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무사합니다.] […]한 사람이 쓴 낙서가 팻말 위에 쭉 적혀 있었다.
-먼지가 쌓인 양으로 봐서 적혀 있는 시간과 같습니다.
“도플갱어?”
이미 인간을 닮은 괴물을 두 번이나 만났었다.
인간이 쓴 것 같은 글이었지만, 바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럼, 무시할까요?
이브의 말에 경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야 없지. 도플갱어라고 해도 확인은 해봐야지.”
경훈은 검을 빼 들고, 화살표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경훈은 이동하면서 충분히 회복할 생각이었다.
부우웅.
걸어가는 경훈 앞으로 드론이 날아갔다.
저소음 모드로 세팅된 드론은 옆에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
낙동강에서 2km 떨어진 숲속.
나무가 울창한 숲 가운데 반쯤 부서진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앞 부서진 정문에는 낡은 팻말이 매달려 있었다.
[대구 신기술 연구소]무척이나 낡은 팻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다 부서진 기둥에 아직도 잘 매달려 있었다.
오랜 시간 무척이나 조용하던 곳이었다. 무슨 이유에선가 괴물들도 오랜 시간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적막이 드디어 깨질 모양이었다.
쾅! 콰과쾅!
쾅!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오랜 시간 듣지 못했던 폭음이었다.
거기다 몬스터들이 싸울 때 내는 소리와 분명히 다른 소리였다.
낡은 건물 안.
벽에 기댄 채로 멍하니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듣는 폭약의 폭발음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는 몸이 그가 움직이는 것을 방해했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확인해 봐야겠지?”
역시나 실망할 게 뻔했지만, 그래도 가봐야 했다.
그것이 그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남은 무기가 많지 않았다.
그는 그나마 멀쩡한 중기관총 하나를 짊어지고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낡은 망토가 땅을 끌었고, 먼지가 풀썩였다.
그는 기둥에 걸린 낡은 팻말을 확인하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산 아래로 향했다.
오랜 시간 실망했던 그였지만, 그는 이번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