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73
281화.
치이이익. 쿵.
골렘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없이 도시를 만들고 부숴왔던 골렘들이 처음으로 쉬게 되었다.
기자 피라미드. 이집트 황제의 무덤은 인간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조용해졌다.
액체 괴물의 마나석을 챙긴 뒤에도 경훈은 황제의 무덤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천장에 남겨진 벽화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달라지는 거겠지?”
벽화 초반은 경훈이 자신의 세상에서 보았던 벽화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장면 뒤로 벽화가 달라졌다.
그곳에는 환한 빛을 표현한 그림과 그 빛이 황제와 왕국을 비추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황제는 빛을 받아들이고, 왕국도 빛에 둘러싸였다.
빛을 나타내는 그림 중앙에는 마나석이 박혀 있었다. 빛은 마나를 뜻하는 게 분명했다.
‘이 차원은 정말 오래전에 마나가 등장했군.’
몇 년, 몇십 년 차이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수천 년 전에 마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림만으로는 어떻게 마나가 등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준 건지, 아니면 마나를 발견, 발명했는지, 다른 차원과 통로가 열린 것인지.
어쨌거나 마나가 등장한 뒤,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힘을 얻고, 마나와 마나진을 이용한 문명이 발전했다.
고대 문명이 마나 문명이 되어 세계로 뻗어 나간 것이다.
그 뒤는 이곳까지 오면서 본 황제의 벽화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른 원시 문명을 정복하고, 왕국이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벽화를 보던 경훈이 의문을 느꼈다.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군주는? 몬스터는 어디 있지?”
인간이 강해진 것처럼 강해진 동물을 그린 벽화도 있었지만, 원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달라진 동물을 사냥하는 그림이 한두 군데 보였지만, 벽화에는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곳은 괴물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건가?’
하지만, 그는 사막을 얼리는 괴물들이 버글거리는 것도 보았고, 액체 괴물도 조금 전에 잡았었다.
“결국, 어느 순간 잘못되었다는 걸 텐데…….”
아쉽게도 여기 벽화에는 그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벽화 마지막에 좀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거대한 탑이었다.
도시 위에 우뚝 솟은 탑.
피라미드보다 훨씬 크고, 구름을 뚫고 올라가고 있는, 신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거대한 탑이었다.
그리고, 벽화에는 그 탑이 만들어지고 있는 위치도 나와 있었다.
“이라크인가…”
지도를 꺼내 비교해보니, 페르시아만 위쪽. 이라크 남부 바빌 주에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집트 때라면 바빌론이라고 불렸으려나?”
이름이 어쨌건 이곳을 살펴본 뒤에 가볼 곳이 정해졌다.
저 정도 대역사라면 적어도 이 문명이 어떻게 망했는지는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경훈은 바닥의 문양과 벽화를 모두 카메라로 촬영한 뒤에, 난감한 얼굴로 중앙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보며 서 있었다.
홀로그램은 액체 괴물을 잡은 뒤부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경훈은 고개를 저었다.
홀로그램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훈은 움직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소리를 쳐도,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경훈이 아는 아이템 제조용 문양과 바닥에 그려진 문양은 많이 달랐다.
그리고, 많이 복잡했다. 경훈이 파악하기는 무리였다.
“이브가 없으니,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이 묘실에 잠들어있는 황제에게는 미안했지만, 경훈은 열심히 피라미드를 살펴보았다.
황제의 묘실. 통로와 왕비의 묘실, 그리고, 다른 방들과 함정들까지.
아직도 가동되는 여러 마나진과 마석들을 찾아냈지만, 무엇에 쓰는 마나진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경훈은 모든 마나진들을 촬영한 뒤에, 작은 마나진이 그려진 벽을 떼어내 아공간에 담았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춘 작은 골렘 하나를 붙잡고, 다시 돌아왔다.
“맙소사, 이게 뭡니까?”
그날, 외출에서 돌아온 안형민은 거실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조각상을 보고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경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번에는 집으로 제대로 돌아오긴 했는데, 골렘이 문제였다.
이제 슬슬, 따로 지낼 곳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
경훈이 투자한 회사 연구원들은 그가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 환호를 질렀다.
로봇 개발 회사는 골렘을 보고 입을 딱 벌렸고, 에덴AI 사의 연구원들은 사진들과 경훈이 뜯어온 마나진을 보고 경훈에게 달려들었다.
“신보다 위대한 갓투자자시여! 어디서 이런 선물을 구하셨나이까!”
대표는 넋이 나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고, 냉정해 보이던 여자 연구원도 황홀한 표정으로 사진을 핥고 있었다.
사무실이 광기에 휩싸인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걸 얻으신 거죠?”
한참 만에야 대표가 정신을 차리고 경훈에게 물었다.
“제가 꽤 등급이 높은 각성자입니다. 사냥터에서 찾은 겁니다. 이건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소문이 나면 더 구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이런 걸 더 구할 수 있다고요?”
경훈의 말에 모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피라미드 안에는 아직 홀로그램도, 문양도 남아 있었다. 거기다, 피라미드는 많았다. 필요한 자료는 충분히 가져올 수 있었다.
“절대 비밀로 하겠습니다.”
대표의 확답에 이어, 여자 연구원이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누가 말하려고 하면 제가 숨통을 다 끊어 놓을게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소문이 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건네주는 자료들은 어떻게 비용을 정하는 게 좋을까요?”
그가 투자하는 회사였지만, 이런 자료를 공짜로 줄 수는 없었다.
경훈의 말에 대표가 대답했다.
“제 지분을 다 드릴까요? 그냥 회사 가지실래요?”
대표의 말에도 딴지를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지분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회사 지분이나 돈은 상관없어 보였다. AI가 가능할 것처럼 보이니 다들 몸이 달아있었다.
경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하다가는 회사를 떠맡게 될 것 같았다. 이브가 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건 경훈도 사양이었다.
“제가 알아서 재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연구원들이 회의실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모두 연구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쪽은 대충 시작은 한 셈인가? 그럼 나도 움직여야지….”
경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쉴 틈이 없었다.
*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국정원 엄 차장은 언제나처럼 귀화 각성자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귀화 각성자가 투자한 회사는 총 세 곳입니다. 현재 회사들은 자금 경색을 풀고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부하의 말에 차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투자를 한 거지? 그만큼 돈이 있었나?”
“개성 평야 사냥 때 국방부가 지급한 돈이 꽤 컸습니다. 매몰된 마나석을 찾는 대신, 현금으로 지급한 모양입니다.”
“하긴, 어쩔 수 없었겠지. A급 각성자와 약속을 틀 수도 없었을 테고…. 그럼 투자 건은 그렇다 치고, 다른 보고는?”
실제로 투자한 돈은 국방부가 지급한 돈보다 훨씬 많았지만, 이들은 실제로 투자한 금액까지 알아낼 수 없었다.
“암거래상과 거래가 있었습니다. 한국 책임자와 직접 거래를 했었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었던 거고. 그보다 정보가 샌 건가? 위쪽에서 나왔네?”
“…죄송합니다.”
엄 차장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꽤나 지난 일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보안이 유지되니 부하를 다그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됐어. 근데 전부 좀 지난 내용이잖아. 지금은 뭘 하고 있지?”
“현재, 대형 길드와 함께 고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기사급 몬스터와 강화도 몬스터가 처리되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그가 아는 내용이었다.
부하의 말에 나온 길드는 그가 귀화 각성자에게 소개한 길드였다.
그 덕분에 엄 차장도 짭짤한 부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따로 개인 집과 창고 겸 공장을 수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템 제작 때문이랍니다.”
부하의 보고가 끝났다.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안가를 나가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지금까지 행적을 보면 그냥 놔둬도 될 것 같았다.
“잘 지내고 있군. 이정도면 감시 레벨을 낮춰도 될 것 같지?”
엄 차장의 말에 부하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한데……. 행적이 밝혀지지 않는 빈 시간들이 꽤 있습니다.”
각성자는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가 엉뚱한 곳에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종적을 감춘 게 아니라 목표를 놓친 게 아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지인과 보고, 원거리 감시만 가능해서 목표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억울한 듯한 부하의 말에 엄 차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감시가 허술하게 된 이유는 엄 차장이 내린 지시 때문이었다.
추적과 감시를 하지 않겠다는 경훈과의 약속 때문에 감시를 최소화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요원들은 걱정을 던 모양입니다.”
부하의 말에 엄 차장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최근 각성자의 주변에서 실종사건이 몇 차례 발생했다.
한국에 잠입한 외국의 스파이 몇과 이름 높은 범죄자 길드원 몇이 그가 사는 근방에서 사라졌다.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난 실종사건들이었다.
엄 차장은 부하의 말투에서 그가 누굴 의심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엄 차장은 헛기침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의심만 가지고 추궁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국가와 엄 차장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각성자였다.
자신이 청와대는 물론, 정당들의 주목을 받는 지금, 그런 어설픈 의심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감시 레벨을 낮춰. 중요 각성자와 같은 급으로 해. 보고도 줄이고.”
“…알겠습니다.”
*
국정원이 귀환 각성자의 감시 레벨을 낮출 무렵. CIA 한국 지부의 요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작전명 타이거 헌팅.
위험한 작전답게 꽤나 무시무시한 작전명이 붙어 있었다.
“작전명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위에서 정한 걸 어떡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호랑이 사냥이 뭡니까? 박박 빌어도 쉽지 않은데 사냥이라니….”
CIA 요원들은 서울 근교의 한 야산의 산길에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몬스터가 등장한 뒤로 폐쇄된 산길이라 보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꽤나 한심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멋모르고 접근했다가 실종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살인이 일어난 것도,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실종은 사망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위험한 세계 최강의 각성자에게 접근해서 귀화를 권하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실종자 명단에 자신들이 포함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우울한 얼굴로 산 위를 살펴보았다. 이 산길은 각성자가 자주 산책을 하는 코스였다.
아침에 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입산이 금지된 곳이라 추적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한참 동안 각성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어떨까요.”
요원의 말에 뜻밖의 사람이 대답했다.
“늦지 않았습니다.”
“힉!”
뒤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놀란 요원들이 가슴에 손을 넣고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그가 찾던 사람이 그들 뒤에 서 있었다.
“CIA에서 오신 분들이죠? 기다렸습니다.”
경훈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요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행히 실종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