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6
96화.
시베리아 북단.
쾅! 콰광! 쾅!
벽을 두른 듯한 끝없는 침엽수림과 그 앞에 필쳐진 눈 쌓인 벌판.
바로 어제만 해도 그림엽서에 나올만한 아름다운 경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쏟아지는 폭탄과 괴물들의 괴성이 가득 찬 전쟁터일 뿐이었다.
눈 덮인 벌판에는 순록을 닮은 커다란 괴물들이 남동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작은 것은 소형차 크기에서부터 큰 것은 중형 버스 크기의 괴물들이었다.
콰광! 콰과광!
하지만, 괴물들은 제대로 진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판에 쏟아지고 있는 포격 때문이었다. 자주포 대대가 쏟아붓는 포탄은 눈 쌓인 벌판을 뒤엎었다.
푸악!
포격에 직격으로 맞은 괴물은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비켜 맞은 괴물들도 바닥에 나뒹군 상태로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먼 남쪽 언덕에서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디로프 연대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포격으로 저지를 하고 있지만, 괴물들은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괴물들은 직격이 아니면 죽지 않았다.
회복력도 장난이 아니라서 웬만한 부상은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괴물들은 인간 같은 두려움이 없었다.
저 정도 병력 손실이면 어떤 군대도 물러났을 텐데, 괴물들은 꾸역꾸역 아래로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침엽수림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보며 연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누가 괴물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면, 바로 밀렸겠어.”
카디로프는 슬찍 혀를 찼다.
무슨 망발인지. 지금도 버티기 쉽지 않은데 끔찍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직도 지원이 온다는 말이 없나?”
그의 말에 참모가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위치를 사수하라는 말이 전부입니다.”
“망할! 그토록 병력이 부족하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듣지도 않더니만. 이제는 이 병력으로 자리를 지키라고?”
“군관구에서도 이쪽으로 웨이브가 터질지는 몰랐던 거겠죠.”
“언젠간 터질 거였는데. 무사태평은.”
참모의 말에 연대장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대상이 없는 분노였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쿵! 쿠웅!
시간이 지날수록 포격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포탄이 얼마나 남았지?”
“연대가 가지고 있는 포탄 전부와 주변 탄약고를 쓸어 모아도 이틀이 전부입니다.”
참모의 말에 카디로프 연대장은 결정을 내렸다.
“위에서 뭐라 하든 간에 이틀 후에 후방으로 철수한다. 그 정도면 무르만스크 시민들은 다 철수가 가능하겠지.”
연대장의 말에 참모도 동의했다. 솔직히 그때까지 버틸지 자신이 없었다.
포격으로 시간을 벌면서 후퇴하고 있지만, 언제 전선이 무너질지 몰랐다.
하지만, 연대장 말대로 이틀은 더 시간을 벌어주어야 했다.
연대 측면에는 러시아 최북단의 도시 무르만스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40만 도시민이 철수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어야 했다.
“도대체 저 안에 얼마나 많은 괴물이 있었던 거야? 설마 기존 동물은 전부 죽어버리고 괴물들로 대체된 것은 아니겠지?”
튼튼한 몸뚱어리들 덕분에 많이 보이는 것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튀어나오는 숫자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물론 그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웨이브는 브라질 때와 달랐다.
“피난민 철수를 독려해. 도시를 빠져 나왔다고 전부가 아니야. 적어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피난을 가야 해.”
멀리 얼어붙은 강변 옆으로 보이는 도시를 보며 연대장이 지시를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참모의 대답을 들으며 연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시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망원경으로 도시를 살펴보았다.
‘연기?’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도시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불길이었다.
가스 탱크가 터졌나? 아니면 주유소?
하지만, 불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쾅! 콰앙!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연기가 계속 늘어났다. 도시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뒤쪽에서 무전병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쪽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괴물들이 도시로 난입했습니다!”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아직 도시에는 시민이 반 이상 남아있었다.
“도시로 병력을 보내!”
그의 명령에 참모가 제동을 걸었다.
“보병만으로는 시가전에서 괴물들을 상대하기 힘듭니다.”
이 평야에 전선을 구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럼 전차도 같이 보내!”
“무리입니다. 피난민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중화기를 쓰면 일반인들의 피해가 너무 커집니다!”
“그럼 되는 게 뭐야! 각성자라도 긁어모아서 피난민을 보호해!”
연대장의 말에 참모가 고개를 저었다.
“젠장!”
그도 알고 있었다. 장비가 지원되지 않은 각성자는 힘이 센 일반인일 뿐이었다.
각성자들은 얼마 전부터 전력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EV와 정부가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소리였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동안은 각성자 없이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지만, 이번 웨이브는 달랐다.
괴물들과 싸움은 전선을 만들기 어려웠다. 지금처럼 도시에 난입이라도 한다면 군대는 속수무책이었다.
불타는 도시를 보며 떨고 있는 연대장에게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왔다.
“군관구에서 명령이 왔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방어를 위해 후방으로 물러나 재집결하라는 명령입니다.”
“후퇴하라는 거야?”
“네. 최우선 명령입니다. 방어선이 뚫린 곳이 이곳만이 아닌듯합니다. 후방에서 재정비해서 처리할 모양입니다.”
연대장은 쓰고 있던 헬멧을 집어던졌다.
퍽!
“도시에 남은 시민들은! 중간에 있는 마을은! 다 포기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연대장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연대장도 알고 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방어선이 뚫렸다면 후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상대는 전략과 전술을 알지 못하는 괴물들이었다.
병력을 모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입을 민간인들의 피해였다.
“병신같은 모스크바. 각성자들만 썼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잖아!”
연대장의 공허한 외침이 지휘 막사 밖으로 흘러나갔다.
쿵! 쿵! ……
포격이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멈추었다.
그날 전군 연합군 5연대는 무르만스카야에서 철수했고, 무르만스크시는 괴물들의 손에 떨어졌다.
*
방송에는 남하하는 괴물들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곳 알래스카 북부는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으로 여겨지던 괴물들을 향해 미군이 포탄을 쏟아붓고 있습니다.]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기자가 군함 위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자가 서 있는 군함에서는 계속 육지를 향해 포를 쏘고 있었고, 군함 위로는 폭격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북유럽 각국과 캐나다, 러시아에 이르는 고위도 국가들 모두가 이번 웨이브에 휘말렸습니다. 각국은 필사적으로 괴물들의 남하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파괴되는 마을은 늘고 있습니다.]하늘에서 촬영한 파괴된 마을 모습이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피해를 본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요청했고, 국제 연합(UN)과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그리고,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EV의 지원을 승낙했습니다.]
화면을 보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정말, 갈 생각이니?”
“응, 갈 거야.”
소냐가 고개를 고덕였다. 그녀의 확답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네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은 많아.”
“아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이미 결심이 굳어 보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한 번 더 말해보았다.
“몸 걱정을 해야지. 우리나라도 아니고 괜한 남의 나라 가서 싸우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어머니의 걱정에 소냐가 미소를 지었다.
“이미, 남의 나라에 와서 우리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배달부를 떠올렸다.
목숨을 걸고 괴물들에 포위된 도시로 찾아온 각성자. 도시에 남아서 수많은 사람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아쉽게도 마르셀로처럼 그 각성자를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케이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EV의 공지가 있고 난 뒤, EV 홈페이지 게시판은 공지에 관한 이야기로 끝없이 글이 이어졌었다.
회의적인 생각과 의심, 보수에 관한 이야기와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들이 마구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한 나라의 각성자들이 올린 글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
┗제가 옆에서 봤어요. 그는….
┗장비들을 지고 밀림을 통과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니까요.
┗..
브라질 각성자들의 증언이 이어진 뒤, 협력 하겠다는 각성자 협회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
흐름이 바뀌었다. 게시판 글들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글들로 뒤덮였다.
처음 글을 쓴 브라질 각성자가 바로 소냐였다.
게시판을 떠올렸던 소냐가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사히 돌아올 거에요. 러시아에 가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녀는 가족에게 인사를 한 뒤,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 시간, 공항에는 캐나다로 떠나려는 각성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 각성자들이 웨이브를 막기 위해 공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핀란드 동부.
러시아 국경에 핀란드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평상시처럼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파나얘르비 국립공원에서 몰려오는 괴물들과 러시아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한 병력이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돌연변이 괴물들은 인간들의 국경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알래스카에서 내려온 괴물들이 캐나다로 넘어가기도 했고, 러시아에서 내려온 괴물들은 핀란드로 향하기도 했다.
지금도 국경에 맞닿은 러시아 국립공원과 북쪽의 괴물들이 핀란드로 밀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 숫자는 평상시보다 적어 보였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괴물들 숫자가 상당합니다. 병력의 반은 북쪽에 재배치되고 있습니다.”
잘생긴 젊은 장교가 한국에서 온 각성자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 각성자 협회에서 온 10여 명의 각성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TV에서 본 각성자들도 있었다.
“괜찮을까?”
“군대하고 같이 사냥한다니까 떨리는데.”
몇몇 각성자가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훈련은 많이 받았지만, 일반 각성자들은 임원들과 달리 괴물들을 잡은 적이 많지 않았다.
설명해 주는 핀란드 장교도 각성자였던 모양이었다.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대기하셨다가 전선을 뚫고 들어온 괴물들을 추격해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하기야 전면전 상황에서 각성자들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각성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 사냥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여러분이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각성자 수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후방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말을 하던 장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다시 한번 인원수를 세더니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숫자가 안 맞습니다. 한 명이 적은데요….”
장교의 말에 진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정찰을 나갔습니다. 금방 돌아올겁니다.”
“네? 곧 괴물들이 몰려올 겁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오라고 하십시오.”
놀란 표정으로 장교가 다그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국경 너머 침엽수림에서 새 떼가 솟아올랐다.
꺄아아악!
괴물들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