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13
그저 홧김에 뱉은 말이었으니까.
딱딱한 빵이 너무 먹기 싫어 부린 투정이란 소리다.
‘뭐.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
에밀리나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응. 가난한 편이야.”
실제로 다른 귀족가에 비하면 클라인 남작가는 무척 가난했다.
당장 생활환경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에밀리나가 경제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다.
로판 빙의물 여자주인공처럼 전생의 기억을 살려 사업을 계획해 아버지한테 조언도 했다.
하지만 맥트런도 자신도. 영 재능이 없던 모양인지 그리 잘되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사업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더니.
소설 속 여자주인공들은 척척 잘만 해 나가길래 자신도 잘될 줄 알았건만.
이상향과 현실은 아주 달라, 꿈꾸던 해피엔딩은 없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귀찮아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뼈아픈 실패에 자신의 한계를 본 거 같아 외면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에밀리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히 웃는데 키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왜?”
“글쎄─”
가난에 이유가 있나? 에밀리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거지.”
“어?”
키르가 되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혼란스러워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아니 그냥. 누나가 가끔 가난해서 서럽다고 하길래…….”
“맞아. 이건 너무 서러워.”
에밀리나가 우울한 낯으로 빵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딱딱한 빵 10년은 너무했다.
지금에 만족하며 산다지만 식사만큼은 정말 참기 힘들었으므로.
“그래서 결심한 게 있어. 내가 성인이 돼서 돈을 벌면 맛있는 고기를 매일 사 먹을 거야!”
에밀리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푸른 녹안엔 불꽃이 일렁이는 착각이 들었다.
키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만약…… 내가 고기를 매일 먹게 해 줄 수 있다면 누나는 어떻게 할 거야?”
“응? 어떻게 할 거냐니?”
에밀리나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야.”
“으음. 만약이라. 그렇다면 당연히─”
에밀리나가 키르의 손을 덥석 잡아 올렸다.
“평생 같이 살아야지!”
초롱초롱한 눈빛은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좋았기 때문에.
그러자 키르는 묘한 표정으로 에밀리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딘가 고장 난 장난감처럼 천천히 말을 되뇌었다.
“평생. 같이…….”
키르의 가슴이 콩콩 뛰었다. 입 안에 울리는 어색한 단어가 제법 마음에 들었으므로.
입가에는 말간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약속한 거야.”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 돼. 키르가 속삭이듯 덧붙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라 듣지 못한 에밀리나가 되물었지만 키르는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 * *
“안 되겠어.”
식사를 끝마치고 할 일 없이 침대에서 몸을 굴리길 한참. 에밀리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는 키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장에 다녀오자, 키르. 점심에 탕수육 만들게.”
“탕수육?”
키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밀리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응. 탕수육. 너도 마음에 들 거야.”
키르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나가 무언갈 만들어 준다 하니 그저 좋았으므로.
무엇보다 에밀리나의 요리는 맛있었다.
“좋아.”
“역시 너도 성에 안 찬 거지?”
“뭐가?”
“아침 말이야.”
키르가 애매한 웃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에밀리나는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기엔 케이티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니 조심스러운 거겠지.
그러나 그건 그거. 에밀리나의 생각은 달랐다.
빵과 수프만으로 만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점심이라도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싶었다.
“됐어, 얼른 출발이나 하자!”
에밀리나가 손을 내젓고는 키르한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서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예상외로 사람이 북적거렸다.
각자의 손엔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있는 게 대부분 장을 보러 온 사람들 같았다.
누구는 점심을. 누구는 저녁 반찬 고민을. 저마다 사정을 가진 수다가 종종 들려오기도 했다.
에밀리나는 그들 틈에 끼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탕수육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재료. 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는데.’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자신보다 한참 큰 사람들한테 가려져 가게를 찾기 어려웠다.
에밀리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가게를 살피던 순간이었다.
“여어, 아가씨!”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에밀리나의 고개가 무심코 돌아갔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로지?”
“엉. 나야.”
실로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할 수 있었다.
키르의 간식을 받았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아.
반가움에 물들어 가던 에밀리나의 표정이 단번에 정색으로 바뀌었다.
이를 갈게 만든 흑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밀리나는 짧은 순간 고민했다.
지금 죽일까, 나중에 죽일까.
“응. 지금 죽이자.”
슬쩍 키르의 손을 놓은 에밀리나가 튕기듯 달려 나갔다.
그리고 중요 부위에 무릎을 꽂았다.
아니. 꽂으려 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로지가 빠른 판단으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착지한 에밀리나가 휙 고개를 들어 로지를 노려봤다.
로지가 십년감수한 얼굴로 울컥 내뱉었다.
“너, 너 방금……!”
그러나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차마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민망한 부위를 발로 차려 했냐고 따지기 어려웠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난 에밀리나가 새초롬한 얼굴로 빈정거렸다.
“방금 뭐. 할 말 있으면 해 봐.”
“하아─ 됐다. 말을 말자. 진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너? 죄 크지.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정말 없어?”
“내가 뭘?”
“그럼 기억날 때까지 맞자.”
“악!”
에밀리나는 괘씸함에 로지의 등을 후려쳤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때리기 위해 양쪽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런데 도망갈 태세를 취하던 로지 앞에 키르가 불쑥 나타났다.
키르가 에밀리나의 옷깃을 당기며 물음을 던졌다.
“누나. 저 사람은 누구야?”
아차. 키르가 있었지.
에밀리나가 언제 사나운 기세를 뿜었냐는 듯 무해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 무시무시한 표정 변화에 로지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밀리나는 한껏 다정하게 꾸민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르. 조금만 기다려 볼래? 저 멍멍이 자식 좀 혼쭐내 줘야 하거든.”
“뭐? 누가 멍멍이야!”
“그럼 닭치고 싶니?”
오늘 닭 한번 잡아 볼까? 에밀리나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고상하게 휘어 웃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말투는 살벌했다.
로지는 에밀리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곤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빠른 항복 표시로 고개를 도리질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에밀리나가 흡족한 표정으로 키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