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29
“자 여기. 그런데 부인한테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
“네? 갑자기 그건 왜요?”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라 에밀리나가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덴카가 손사래 치며 말을 덧붙였다.
“별건 아니고. 부인이랑 로딘이 대화하던 게 생각나서.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무슨 대화를 했는데요?”
“어떤 약이 필요하다나? 가게 앞에서 이야기하길래 얼핏 들은 거라 나도 자세히는 몰라.”
덴카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듯 턱을 쓸었다.
조금 전. 가게 앞을 지나가던 클라인 부인은 덴카를 발견하고선 반갑게 인사해 왔다.
그리고 싱싱한 과일을 몇 개 골라 달라 부탁한 뒤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포장하러 다녀오는 사이, 부인은 로딘과 함께 나타났다.
덴카는 부인에게 포장한 과일을 건네며 로딘과도 안부를 나누었다.
만남은 거기서 끝이 나는 듯했으나 덴카가 다른 손님을 받으러 가자 두 사람은 그대로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인지 그가 손님을 돌려보내고 나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리해 있었다.
분위기는 제법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덴카는 둘 사이에 끼어들기보단 조용히 가게 앞을 지켰다.
이때 클라인 부인이 약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말을 주고받던 둘은 뻘쭘하게 서 있는 덴카를 발견하고선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부인이 대화하느라 내려놓았던 가방을 두고 가 버린 것이다.
“아가씨가 모르는 걸 보면 어디 크게 아픈 건 아닌 모양이네. 하긴, 몸이 안 좋았으면 가족인 아가씨가 제일 먼저 눈치챘겠지.”
음음. 덴카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에밀리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왜 약을 구한 거지?’
정말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나?
하지만 그런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조금 전 마주했을 때도 안색이 나빠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최근 들어 피곤한 기색을 자주 내비치긴 했지만 정말 피곤한 일이 있어 그래 보였다.
‘아니야. 지병에 대한 징조일 수 있어.’
에밀리나는 부정적인 가정을 떨쳐 내지 못했다.
오늘은 어머니답지 않은 실수까지 했으므로.
물론 사람이 언제나 완벽할 순 없지만…… 자신의 행동에 무척 엄격한 케이티 아니던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밀리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하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덴카가 말렸다.
“아가씨. 무슨 생각을 하길래 시체처럼 얼굴이 푸르죽죽해져 가. 진정 좀 해 봐.”
“아.”
상념에서 깨어난 에밀리나가 덴카를 올려다보았다.
덴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말을 한 모양이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말어.”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요.”
에밀리나가 걱정스럽게 답하자 덴카가 머쓱히 입을 열었다.
“내 말은 부인이 꼭 아프리라 보긴 어렵다는 거지. 병이 있어야만 약을 먹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어쩌면 비상약 같은 걸 달라 했을지 몰라. 부인이 멀쩡해 보였으니 하는 말이야.”
에밀리나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이 너무 과하게 생각한 걸지 몰랐다.
덴카의 말대로 그저 상비약을 구한 것일 수 있으니까.
차분히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맥트런이 가벼운 몸살을 앓기도 했다.
마침 구비해 둔 약이 떨어진 탓에 케이티는 곤란한 모습을 보였었고.
상황이 얼추 들어맞자 에밀리나는 일단 한시름 놓기로 했다.
“말해 줘서 고마워요 덴카. 또 다른 이야길 듣게 되면 알려 주세요.”
“어렵진 않지. 기억해 뒀다 아가씨한테 전해 줄게.”
“정말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덴카가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에밀리나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게를 벗어나려는데 문득 한 인물이 보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에밀리나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피터는 어디 갔어요?”
“그놈은 심부름. 올 때가 되긴 했는데. 보고 갈 거야?”
에밀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터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마냥 기다리긴 힘들었다.
‘집에 가서 확인해 볼 일도 있고.’
다음을 기약하며 에밀리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피터가 나타났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타이밍 좋게 가게에 들어오고 있었다.
에밀리나를 발견한 피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에밀리나 아가씨 아니에요?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 오랜만이야 피터.”
“그러게요. 로지가 떠난 뒤로 처음 보는 건가? 어떻게, 잘 지냈어요?”
“나야 뭐. 그럭저럭 지냈지.”
“다른 귀족 아가씨들처럼 고상하게 파티에 다니면서 말이죠?”
“어. 아주 지겨울 정도야.”
에밀리나가 질색 가득한 어조로 말을 받자 피터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상상이 잘 안 되네요. 아가씨가 얌전 떨며 차를 마신다니.”
로지가 들으면 엄청 기겁하겠어요. 피터가 장난기 서린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로지와 친한 친구로 어릴 때부터 함께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런데 덴카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피터의 머리를 쿵 쥐어박았다.
“이 자식아. 아가씨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악! 아프잖아요!”
“사과 으깨는 정도 갖고 엄살은.”
“허, 그 정도면 흉기나 다름없거든요? 하여간 야만적이라니까.”
피터가 입술을 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덴카는 콧방귀를 뀌었다.
“얼씨구. 너는 샌님처럼 잘 삐지기나 하는 주제에. 됐고, 아가씨나 집에 데려다주고 와.”
가는 길에 저것도 좀 버리고 오고. 덴카가 어떤 상자를 검지로 가리켰다.
눈으로 그걸 좇은 피터는 질린 표정을 했다.
“저 무거운 걸 또 들고 가라는 말이에요?”
“그럼 아가씨가 들어야겠냐?”
“와- 아버지. 진짜 이건 아니죠. 하루 두 번은 너무하지 않아요? 연약한 아들한테 왜 이렇게 모질게 굴어요?”
“그러니까 시키는 거잖아. 힘 좀 기르라고.”
덴카가 단호히 일축했다.
피터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덴카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할 말을 잃었으니까.
그때 에밀리나가 말했다.
“두 사람 다 그만해요. 제가 나눠 들면 되니까.”
“그건 아니지 아가씨.”
“아가씨가 이걸 왜 도와줘요?”
덴카와 피터가 동시에 반박했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며 2차전에 들어갔다.
“네가 자꾸 꾸물거리니까 아가씨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잖아! 빨리 안 나가?”
“급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굳이 일을 시켜서 그런 거잖아요!”
“안 급하긴 뭘 안 급해? 그럼 저게 썩을 때까지 내버려 둬?”
“애초에 잘 팔리지도 않는 걸 사기꾼한테 속아서 산 게 누군데요?”
“뭐 이 자식아? 말 다 했냐?”
“다 했어요, 다 했어! 왜. 또 때리게?”
말씨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에밀리나는 한숨을 흘리곤 그들을 뒤로했다.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홀로 집에 돌아갈 심산이었다.
* * *
그러나 가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피터가 허겁지겁 쫓아왔다.
피터는 무언가 가득 담긴 상자를 안고 있었는데, 많이 무거운 모양인지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에밀리나가 물었다.
“좀 도와줄까?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됐어요. 아버지 잘못 만난 제 팔자를 탓해야죠. 무식한 덩치로 밀어붙이는데 안 버티고 배기겠나요.”
피터가 한탄하듯 그렇게 답했다.
그가 따라올 때부터 예상했지만 역시 부자 싸움의 승자는 덴카인 모양이었다.
하긴. 힘으로 밀어붙이면 피터가 어떻게 그를 이기겠나.
피터는 덴카의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깡마른 체구를 지녔으니까.
그리고 그게 콤플렉스인지 피터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네가 그렇다니 두 번은 권유하지 않을게.”
“보통 그 반대 아닌가요?”
“어차피 거절할 거 아니야?”
“이번엔 정말 힘들어서 거절하지 않을 수 있죠.”
“그렇담 네 팔이 안쓰러워 보이니 어서 주지 않을래?”
에밀리나가 말을 끝맺으며 가련히 떨고 있는 피터의 팔을 가리켰다.
눈으로 그걸 좇은 피터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실없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