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01)
천독불침
“으, 으음.”
상처 사이로 신음을 흘리면서도.
심판창은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위로.
[‘뼈다귀7’이 스킬, ‘중급 힐링’(Lv.1)을 사용합니다.]묵묵히 힐링을 넣으며 기다려 줬다.
“으음.”
심판창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과연, 대단해. 창술의 경지는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재미있군.”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또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저런 식으로 말한다.
‘저게 대륙이 인정하는 천재의 생각법인가?’
고작 태양이가 몇 마디 전해준 거로,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깨달음을 얻어낸다니.
일개 범재 이하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네크로맨서였다.
천재가 될 수 없으면.
천재를 길들여 부하로 두면 되는 거잖아?
그게 훨씬 편하면서도.
또 훨씬 강하다.
“…….”
그렇게 약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가부좌를 틀었던 한 창술가의 눈이 뜨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정중히 포권했다.
“스켈레톤 킹이라 했나?”
“예.”
“진심으로 고맙다. 그대 덕분에 막혀 있던 벽을 무너뜨릴 실마리를 얻었어. 복잡했던 머리가 개운해진 느낌이다.”
의외로 깔끔한 인사.
심판창이 고개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그대는 모를 거야. 무인에게 있어,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그대에게 빚을 졌고, 혹여 언젠가 그대를 도울 일이 있을 때…….”
공터에 그의 목소리가 낮게 스며들었다.
“내 온 힘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하겠다. 이는 내 스승, 창왕(槍王)의 존함을 걸고 하는 약속이다.”
심판창이 숙였던 고개를 올려, 나를 응시했다.
“다만, 이 약속은 오직 그대가 나의 기준을 어기지 않았을 때만 인정되는 것. 그 정도는 참작해 줄 수 있겠지?”
“기준이라 하면……?”
“그래, 아무리 그대가 은인이라 한들, 그대가 이유 없는 살생을 저지르고 다니는 살인마라면, 내 두 손으로 심판할 수밖에 없겠지.”
나쁘지 않았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
나 역시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라는 기준이 있는 것처럼.
심판창 역시 본인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멋있었다.
혹여.
나중에 시련이 끝나면,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사내.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뭐, 이유 없이 살인하고 다닐 놈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대 같은 사람이 악인일 리 없었어.”
“갑자기요? 언제는 요주 인물이라면서.”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악한 마음을 품었다면, 내가 혼자 깨달음을 얻고 있었을 때 충분히 죽일 수 있었지 않겠나? 날 죽였다면 막대한 ‘시련 포인트’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
사실, 그거.
그렇게 막대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는데…….
“확실히 그렇겠군. 그래,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대는 여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었어. 욕심이 없는 사람. 굳이 심판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굳이 따라다니면서 감시할 필요는 없겠지.”
“허허허……?”
뭐야.
가만히 있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그럼 내기는 제가 이긴 걸로 끝났으니, 전 이만 가도…….”
이제 가도 되겠지? 라 생각할 찰나였다.
“잠깐.”
심판창이 다시 불러 세웠다.
“또 왜요?”
“그대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가? 짐작하건대 아직 20대 중반을 넘기지 않았을진대.”
“음…… 정확하네요. 각성하고 나서 3년 반 정도 지났으니, 이제 23입니다.”
“23……?”
심판창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왜?
내 나이가 어때서?
내가 물었다.
“왜요?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여서요?”
“그럴 리가. 23살이면…… 나랑 동갑이었군?”
“…….”
응?
나는 눈을 껌뻑이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예?”
내 눈이 정확히 심판창보다 2배 더 커져 있었다.
와, 이거.
충격적인 사실일세?
뭔 23살이 저렇게 애늙은이같이 말하는 거야?
솔직히, 이 사람이 창왕의 제자라는 것보다 더 놀라웠다.
“허어, 이는…… 참, 신기한 인연이로군!”
심판창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자고로 인연이란 참으로도 묘한 것이지. 누군가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를 봐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똑같은 수의 랭커에게 추천받아 이곳에 왔고. 또 이곳에서 이렇게 창술을 논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암! 이게 인연이 아니라면, 세상에 인연이란 단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지.”
“아아, 예…….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군요.”
얘는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부담스럽게.
첫인상은 분명 과묵하고 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거기에 나이까지 같다니! 또 인연을 넘어서 운명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아, 이건 어쩔 수 없겠군. 우리, 친해질 수밖에 없겠어.”
“하하, 뭐. 친해지는 거. 좋죠. 나중에 시련 다 끝나고 다음에…….”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헌터랬나? 길드는? 나야 알다시피 창왕께서 설립하신 선인회(仙人會)에 속하고 있는데. 혹여 적을 두고 있지 않으면…….”
“아, 저는 드미르 공방이라는 곳 소속입니다.”
혹여.
가입 제의라도 할까, 나는 얼른 대답했다.
‘김진아가 말했지.’
공방을 거대 길드로 키워보겠다고.
짧은 시간에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녀와 약속한 이상, 나는 어디에 들어갈 수 없는 소속이다.
그 기소율마저 혈육의 길드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던가!
“드미르 공방? 처음 듣는 곳이로군.”
“아직 그쪽이 사는 나라까지 소문이 퍼진 건 아닐 거라……. 다만, 나중엔 분명 귀에 딱지가 날 정도로 많이 듣게 되실 겁니다.”
“하하하, 그런가?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좋다. 보아하니,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모양인데.”
“…….”
오.
그래도 눈치는 좀 있는 사람인가?
처억!
심판창이 왼손을 내민 것은 그때였다.
“악수나 하고 헤어지자고. 다음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도록 하지.”
이렇게 말하는데.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꽈악!
나 역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좋아요. 다음에 또 보죠.”
이렇게.
중국 인맥 한 명이 느는 순간이었다.
* * *
나의 독행은 계속됐다.
고독(獨)하면서도 독(毒)한 여정.
나는 푸르렀던 하늘이 이젠 녹색으로 보일 만큼 독을 먹어댔다.
식도를 역류하는 게 위산인지, 독인지도 모를 만큼.
그야말로 신물 난다는 게 어떤 건지 몸으로 체득할 만큼 먹어치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또.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마.
내일 아니면 모레쯤에 ‘독무’(毒霧)라는 녀석이 중앙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정보가 맞다면 말이야.
“이 녀석아.”
노인이 허공에서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웬만한 2급 맹독은 간에 기별도 안 가지 않더냐?”
“예, 사실 이제 웬만한 독은 그냥 삼시 세끼 밥으로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으음, 이 정도면 나름 맛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친놈.”
“에이, 미친놈이라뇨. 다 어르신이 알려주신 거면서.”
“이제 곧일 게다. 천독불침지체에 달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
맞다.
사실, 시스템 창이 알려주지 않아도.
몸이 느끼고 있었다.
탈피할 것을 아는 애벌레가 이러한 기분일까?
운동을 하면 몸이 펌핑되는 게 느껴지는 것처럼.
독을 먹을수록 독핑되는 게 느껴졌다.
“네 녀석은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한 달도 안 되어서 천독불침지체라니. 가끔 네놈을 보면, 신기할 때가 한둘이 아니야.”
“으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래도 좀 걱정이 되네요. 천독불침으로 독무를 상대해 낼 수 있을까요?”
“독무 말이냐?”
“예.”
“나도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만…….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독이 모인 거라면, 거기에 포함된 1급 맹독만 상대하면 되겠지.”
그렇겠지.
딱 천독불침의 수준이 2급 맹독까지인 것 같으니까.
“만약 1급 맹독이 수백 수천 개라면…… 그리고 그게 한꺼번에 들어온다면? 으으, 그건 아무리 독이 귀하다 해도 웃을 수만은 없겠는데요?”
“그러니 빨리 움직여야지. 1급 맹독의 수량은 네 생각만큼 그렇게 많지 않을 게야. 최대한 빠르게 먹을 만큼 처먹어서 내성을 길러놔야 하지 않겠느냐?”
“오케이, 움직이죠. 그 말을 들으니까 정신이 확 드네요.”
노인의 조언에 따라.
나는 쉬지 않았다.
독 안개가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움직였으며.
대략 하루가 더 흘렀을 때에야.
[스킬, ‘백독불침’(B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킬, ‘천독불침’(A급)을 획득합니다.] [해당 스킬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습니다.]나는 비로소 천독불침에 달성할 수 있었다.
* * *
델라일라의 홀로그램실, 중앙.
“으음.”
허리춤에 검을 찬 붉은 눈의 사내.
마검사 뤼카가 손가락으로 턱을 집으며, 침음을 흘렸다.
“델라일라시여.”
“왜, 그러시나요.”
“주동훈. 저자, 말입니다.”
뤼카는 주동훈이 뇌명(雷鳴) 플로아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를 관심 있게 지켜봐왔다.
역대 ‘시련 포인트’ 최고 점수를 달성한 자.
장차 어떤 랭커가 될지 모르는 이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분명 플로아에게 정보권 두 개를 다 사 갔을 텐데…… 왜,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걸까요? 보통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면 중앙에서 최대한 벌어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설마…….”
“예.”
델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낯빛은 의외로 어두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독무를 직접 상대하려 하는 것 같네요. 어리석게도…….”
“독무를……!”
역시 그런 거였나?
하고 뤼카가 읊조렸다.
“과거, 장대웅이라는 아이도 그랬었죠.”
“장대웅이면…… 대한민국의 그 광전사 말입니까?”
뤼카는 그 당시 심사위원이 아니었기에,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뭐, 직접 상대한 건 아니었고, 나중에 반강제적으로 도망가긴 했지만 말이에요.”
“허어, 그런 일이.”
뤼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이명에 미칠 ‘광’(狂) 자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고의 회로가 평범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
“델라일라 님.”
침을 꼴깍 삼킨 뤼카가 그녀를 불렀다.
“예?”
“혹시 말입니다. 여태껏…… 독무를 제압하거나 소멸시켰던 참가자가 있었습니까?”
“아뇨, 없었습니다.”
델라일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독무는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녀석이 아닙니다. 그저 타 세계에 존재하는 독 폐기물들을 모아 응축시켜놓은 덩어리예요. 잡기는커녕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할 것이죠.”
“그렇다면…… 주동훈은……?”
“무모한 행동은 죽음만을 가져올 뿐이에요.”
“델라일라께서는 주동훈이 죽을 거라 보시는 겁니까?”
“만약, 혼자 독무를 감당하려 한다면요.”
“허어.”
뤼카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델라일라.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랭킹 4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도 인정하는 현자가 그녀 아니던가.
하지만.
무언가 기대됐다.
지금껏 주동훈의 행보를 지켜봤을 땐.
분명 자신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근데, 만약에 말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다.
“혹시라도 주동훈이 독무를 처리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그녀가 만든 던전의 보상은 그녀도 모른다.
그저 난이도에 따라.
그 난이도를 처리한 기여도에 맞게.
개연성에 맞게끔 나온다는 것만 알고 있다.
“엄청난 보상이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델라일라께서 불가능이라 할 정도의 괴물을 잡는 건데?”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어두웠던 델라일라의 표정에도.
살짝 호기심이 섞였다.
“확실히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