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02)
독무 (1)
마침내 시간이 되었나 보다.
두쿵!
열대 숲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뒤흔들렸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무성한 나뭇잎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거, 좀 오싹한데?
라는 생각이 들 찰나.
– 키아아아아아아!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괴성이 온 공간을 뒤덮었다.
온갖 원념과 한이 응어리진 끔찍하고도 흉악한 괴물의 포효!
[경고! 경고! 경고!] [중앙 지역에 ‘독무’(毒霧)가 등장합니다.] [‘독무’(毒霧)는 독의 안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독의 기운을 품고 있는 괴물입니다.] [참가자들은 지금부터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이 괴물을 피해 생존해야만 합니다.] [성공 시 테마2 진출!] [실패 시 죽음!] [참가자들의 무운을 빕니다.]“…….”
살벌한 경고 메시지에.
나는 본능적으로 근처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섰다.
그러자 보이는 짙은 녹색의 오염 덩어리.
얼마나 거대한지, 멀리서도 굉장히 크게 보였다.
“미친.”
나는 절로 욕을 뱉어냈다.
순간적으로 입안을 콱 틀어막듯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공기의 압박을 선명하게 느꼈기 때문.
주변에서 [으아악!], [씨발!] 등등 괴성과 욕설이 들어오는 거로 보아.
대다수 참가자들도 나처럼 당황한 것 같았다.
‘솔직히.’
저런 거에 들어가야 한다고?
독을 떠나서 공포스러운데?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호기로웠던 마음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
“에잉! 미쳤구나.”
몇 분 전.
소환했던 노인도 내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어떻게 저딴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냐. 여기 던전 제작한 놈, 제정신이 아닌 게냐?”
“……어르신?”
“솔직히 저런 거였다면 생전에 나라 해도 들어가기 좀 망설였을 거다. 모름지기 성장에도 단계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저건 너무 확 앞서나갔어. 그냥 다 죽으라는 게지. 쯔쯔쯧.”
아니, 이 노인.
지금껏 용기 불어넣어주더니, 이제 와서 이러면 어떡해?
“어르신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전성기 때 어르신이 들어갔어도 죽는다는 소립니까? 만독불침이시라면서요.”
“쯧,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냥, 내가 천독불침지체였을 때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었을 거란 소리지.”
“아.”
쿠르르릉!
유령처럼 응집된 독 안개가 허공을 향해 벌떡 일어선 것은 그때였다.
그러고는.
근처 가장 높은 고지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저기에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몰려 있나 본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얼마나 끔찍한 독인지.
안개가 지나는 곳에 있는 모든 나무와 돌, 지면이 시커멓게 타올라 부식되거나 녹아내렸다.
“이건…….”
나는 질린 표정을 했다.
“그냥 독 쓰나미 아닌가요? 거의 자연 재해급인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뭣하느냐, 이 녀석아. 어서 도망치지 않고. 하나 남은 만술의 희망을 이대로 잃을 순 없다.”
“도망치라고요?”
“저 봐라. 그래도 안개가 원형으로 퍼지는 식이 아니라,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쫓아 죽이는 느낌이 들지 않더냐? 우선 이쪽으로 안 오는 것만 해도 천운이니라. 역시 네놈은 운이 좋아. 그러니 하늘에 절하며 튀거라.”
“흠.”
노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던전 메이커가 설계한 것이 일주일 동안 생존하는 거라면.
그에 따르는 것도 가장 안전하게 가는 길이다.
하지만.
왜 심장은 그러라 하지 않는 걸까?
왜 저 독을 탐하고 있는 걸까?
이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과거 던전에서 노인을 향해 무모하게 들어갔던 나처럼.
태양창과 맨몸으로 맞섰던 나처럼.
거대한 시련 뒤에는 달콤한 보상이 따를 것 같은 느낌?
“어르신.”
“왜, 이놈아. 설마 네 녀석, 지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역시 어르신.
유령이시라 그런지 귀신같이 알아챈다.
“어르신이 말씀하셨잖아요. 독이 있으면 웃으면서 뛰어가라고. 그 심정이 살짝 이해가 가네요.”
나는 하체에 힘을 주었다.
“아니, 이놈아! 저건 독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괴물!”
“게다가 사실, 어르신도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고는 나무 기둥을 박차 내달렸다.
독무가 있는 방향으로.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따라왔다.
“뭘 말이냐.”
“저 독무. 엄청 빠르잖아요? 어차피 저기 고지에 있는 사람들을 다 녹여내면 그다음은 제 차례일 거예요.”
“…….”
“정보권을 샀을 때부터 멀리 튄 게 아니라면 일주일 동안 저놈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단 말이죠?”
“그냥,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 아니더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먼저 당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미친놈. 역시 아무리 봐도 네 녀석은 미친놈이다.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야. 그 광전사인가 하는 놈이 널 왜 좋아하는지 알겠어.”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뛰었다.
뛰면서도 마음 한편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내 곁에는 1시간 동안 기로(氣路)를 봐줄 노인이 있었고.
또 따로 생각해 둔 것도 있거든.
* * *
그 시각.
독무가 달려가는 고지 방향에는.
총 13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이, 씨발! 저게 뭐야?”
“독무가 뭔데? 저딴 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갑자기 시련을 이렇게 틀어? 델라일라, 이 찢어 죽일 년!”
“그냥 다 죽으라는 거야? 심사위원! 어이, 심사위원 없어? 나 포기할래!”
술렁이는 이들은 총 열로 이루어진 팀과 셋으로 이루어진 팀.
그들은 독무라는 괴물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근처에서 고지로 올라온 케이스였다.
두 팀의 만남.
본래였다면 맞붙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 키아아아아아아!
굉장한 녀석이.
하필 이쪽 고지를 향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붙고 있었으니까.
“이, 일단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절대 도망은 못 가요! 너무 속도가 빨라!”
“그러니까 뭐라도!”
“저런 걸 상대로 뭘 하라고!”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갈피를 못 참고 있을 찰나.
열 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리더가 앞으로 나섰다.
황금빛 머리에 낡은 셔츠를 입고 있는 자의 이름은 크리스 라센.
무언가 야비하면서도 매서운 뱀눈이었지만, 그 카리스마 하나만큼은 남다른 자였다.
“일단 방어진이라도 구축해!”
그가 외쳤다.
“각자 가진 모든 스킬들을 활용해서 근처 장애물들을 긁어모아! 깊게 땅을 파고 그 주변 위로 쌓아라!”
“서, 설마. 땅 밑으로 대피하려는……?”
“시끄러워. 뒈지고 싶냐? 급하니까 질문은 나중에 하고 일단 시키는 대로 해!”
크리스 라센의 명에 따라 사람들이 의기투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확실히 나서서 말해주니, 방향성이 잡힌 거다.
쿠릉! 쿠르릉!
누군가 괴력을 써서 땅을 두들겼고.
후우웅!
누군가는 바람을 통해 나뭇가지와 돌들을 날았다.
또한 누군가는 ‘실드’ 스킬을 쓰거나 방패를 내세우는 등.
각자 최선을 다해서 방어진을 구축하려 했다.
“…….”
크리스 라센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이 부족해.’
이제 약 1분쯤이면, 독이 들이닥친다.
그렇게 되면, 이 정도 조잡한 방어진으로는 턱도 없을 터.
‘어쩔 수 없나?’
그는 천성이 살인자였다.
그가 모았던 부하들도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살인을 통해 살아남았던 이들.
‘열세 명이 들어갈 구덩이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는 과감히 움직였다.
푸욱!
곧바로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 중 하나의 등 뒤에 칼을 찔러 넣었다.
“커, 커헉?”
“고생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뒈져줘라.”
“이, 이게 무슨?”
“지금 뭐 하는 짓이오!”
나머지 둘이 종알댔지만, 그의 움직임은 과감했다.
그는 S급 헌터.
그중에서도 가장 랭커에 근접해 있는 암살자.
그의 고유 능력은 살인하는 순간 힘이 중첩되는 것!
“너희들도 우릴 위한 제물이 되거라.”
푸욱! 푸욱!
그는 칼을 이용해 남은 둘의 심장을 차례차례 앗아갔다.
방어진을 구축하느라 기력을 다 빼놓은 상대들이기도 했고.
또한 눈치챈 부하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
“흐흐흐, 형님. 그 능력을 쓰실 작정입니까?”
“그래야지.”
크리스 라센은 눈을 감았다.
총 셋을 죽인 만큼 기력이 증폭되었으니.
“하압!”
그가 기합을 내질렀다.
[스킬, ‘앱솔루트 실드’(S급)를 사용합니다.]쿠르르릉!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둘러싼 투명의 원형 실드.
[스킬, ‘앱솔루트 실드’(S급)를 사용합니다.] [스킬, ‘앱솔루트 실드’(S급)를 사용합니다.] [스킬, ‘앱솔루트 실드’(S급)를 사용합니다.]그는 실드를 여러 번 중첩했다.
“많이 버티진 못할 거야. 최대한 빨리 구덩이를 파. 최대한 깊이. 아예 이 고지를 뚫을 생각으로!”
“아, 알겠습니다! 형님!”
“움직여! 움직여라!”
부하들이 움직였다.
“…….”
크리스 라센은 그런 부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실, 그는 약 2주 전.
정보권 하나를 주웠었다.
[‘테마2 정보권’(S급)을 개봉합니다.] [아직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정보가 일부만 드러납니다.]바로 테마2의 정보권.
상형문자로 가려져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가려지지 않는 내용만 확인했을 땐.
‘분명, 팀을 이루는 거였어.’
테마2가 시작되는 순간.
팀 나누기가 시작되고, 각 팀장은 팀을 각자 10명씩 차출한다.
그 팀이 서로 협동하여 숨겨진 ‘국보’를 찾는 것이 다음 시련의 규칙.
그렇기에 살인 본능을 감추고 저들을 이끌었다.
지금도.
굳이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이유이기도 했다.
쿠르르릉!
“오는가?”
크리스 라센이 자세를 낮췄다.
눈앞에는 끔찍한 독무가 벌써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세상을 뒤덮을 것만 같은 엄청난 크기의 독무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꿀꺽.
그가 침을 삼켰다.
수많은 살인을 해온 그라도.
오줌을 지릴 만큼 두려운 광경이었다.
잠깐 후각으로 느껴지는 독만으로도 구역질이 나고 온몸이 마비될 것만 같다.
그런데 저 속에 들어간다면?
아마 10초도 안 돼서 녹아내리지 않을까?
‘이미.’
독무가 지나온 길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아.’
그 순간, 크리스 라센은 깨달았다.
구덩이를 파는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겠구나.
이 실드가 부서지는 순간.
고지 자체가 녹아 흐를 텐데, 구덩이가 무슨 소용이랴.
“젠장.”
허무했다.
랭커의 벽은 이렇게 높고도 험한 건가?
델라일라 년은 저런 걸 어떻게 극복하라고 시련을 내놓은 걸까?
“혀, 형님?”
“뭐 하십니까! 피하셔야 합니다! 빨리 구덩이 속으로 들어오십쇼!”
부하들이 뒤에서 외쳤다.
하지만, 크리스 라센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어마어마한 독 안개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찰나.
“후욱, 후욱! 야, 독 덩어리들아. 날 두고 어디 가냐?”
웬 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크리스 라센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실드 밖.
독무 바로 앞에.
사람이 저렇게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그게 말이 돼?
‘아?’
그러고 보니.
달려오던 독이 아까부터 멈춰 있던 이유가 있었다.
저 독무 또한, 괴한을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이 시키야! 이리 와! 저기 맛없는 놈들 먹지 말고 날 먹어라.”
“……!”
크리스 라센은 경악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독무를 향해 뛰어들었고.
– 키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소리와 함께 독무가 우뚝 멈춰 섰기 때문.
‘이게 뭐야.’
저게 참가자라고?
아, 참가자가 아닌가?
너무 난이도가 말도 안 되니까, 랭커인 심사위원이 개입이라도 한 건가?
‘어쨌든.’
살았다.
방금 저 괴한 덕에 살았다.
그러니.
“다들! 나와!”
실드를 거둔 크리스 라센이 일갈했다.
“당장 튀어!”
동시에 내린 도주 명령.
과연,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