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00)
심판 vs 태양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인이 시비를 걸었고, 중국인이 알아서 처리했다.」
난 그저 제자리에 서서 구경만 했을 뿐.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했다.
당연히, 나야 좋았다.
귀찮을 뻔한 일을 덜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고는.
저 중국인 아저씨들이 가진 ‘시련 포인트’를 저 심판창이 냠냠했을 거라는 점?
근데 그 정도야 뭐.
충분히 가지라 할 수 있었다.
추측건대,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닐 테고.
내 손을 더럽히지 않은 대가라 하면 될 테니까.
스윽!
그래서 난 곧바로 떠나려 했다.
‘독무’(毒霧)의 출현까지 고작 2주밖에 안 남았고, 나는 아직도 독이 고팠다.
남은 기일 안에 천독불침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쉬어선 안 됐다.
하지만.
“잠깐. 기다려라.”
심판창이 창을 들어 내 길을 막아섰다.
“……왜요?”
“그대는 나와 함께 다녀야 한다.”
응?
갑자기?
“그게 갑자기 뭔 소리예요?”
“그대 역시 최근에 사람을 죽였더군.”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에 죽인 자라고는 한 명밖에 없다.
바로 오성 그룹 회장의 손자였던 신종오.
재벌로서의 선민의식 때문에 날 계속해서 공격했고, 결국엔 랭커를 시켜 암살까지 사주했던 놈.
내 기준.
그놈은 죽어도 싼 자였다.
“물론, 그대가 죽인 사유는 [정당방위]와 [복수]. 내 심판의 대상은 아니다. 하나, 사람을 죽여본 자가 또 한 번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법. 그대는 요주 인물이다.”
“……후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새끼.
딱 봐도 외골수 성향이다.
공감 능력 따위는 없고, 딱 자기가 바라보는 기준대로만 움직이는 자.
말투만 봐도 그 고집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미치겠군.’
허접 중국인 네 명이 덤비는 것도 시간 아까워 죽겠는데.
이제는 좀 고수 중국인이 튀어나와 날 방해한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솔직히 말하겠다.”
날 물끄러미 응시하던 심판창이 입을 열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아는 내용이지만, 내 고유능력은 ‘심판’. 악한 자를 심판할수록 능력치가 오르고 레벨이 오른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이 시련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심판이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가.”
“악한 자 중에 당신보다 강한 사람이 나오면 어떡해요? 그 사람도 심판하세요?”
물음의 요지는 단순했다.
너, 혹시 강약약강이냐?
“…….”
내 물음을 듣던 심판창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그대가 나보다 세다 말하고 싶은 건가?”
잉?
그게 또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뭐, 그거에 대한 답변이야 못 해줄 건 없지만.
“……전 모르겠고, 창술에 있어선 제 수하도 만만치 않아서 말이죠.”
나는 눈짓으로 옆에 있는 태양이를 가리켰다.
처억!
태양이가 당당하게 창을 바닥에 찍으며 가슴을 폈다.
누가 봐도 자신 있다는 표현.
“……웃기지 마라. 나는 세계 제일창, 진자의의 창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헌터다. 솔직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소롭더군. 지금껏 창술이랍시고 쓰레기 기술들을 펼치며, 나에게 도전했던 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호오.”
이 사람.
의외의 것에 자존심이 있다.
악한 자를 심판해야 한다는 그의 고집처럼.
‘창술’에 대한 자부심도 하늘을 치솟는 것 같았다.
뭐.
랭킹 10위 창왕의 제자라면 그럴 만도 하겠지.
‘하나.’
우리 태양이는 10위가 아니라 한 세계의 절대자였다고.
전성기의 만술 노인도 간신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할 정도의 실력자.
‘나도 궁금하긴 한데.’
태양창과 심판창.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두근.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나도 남자인가 보다.
이런 데에 호승심이 불타는 걸 보면.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까요?”
“내기?”
심판창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내기. 창술로 붙어보는 거예요. 기운이나 스킬 사용 없이, 오직 창술로만 붙어서 누가 그 경지가 높은지 판별해 보는 거. 어때요?”
휘리릭!
내 대답이 끝나는 즉시.
태양이가 창을 유려하게 휘둘러 허리에 감았다.
“주군,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양창의 진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으음.”
심판창이 턱을 잡고 고민했다.
자신이 세운 ‘기준’과 창술에 대한 ‘자존심’ 사이에 충돌이 있는 것 같았다.
“지는 사람이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예요. 당신이 지면 남자답게 날 가만히 내버려 두고, 당신이 이기면 제 옆에 따라다녀도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어떻습니까?”
쿠르릉!
나는 기운을 끌어올려 스켈레톤들을 원형으로 둘렀다.
원형 투기장을 만든 것이다.
“설마, 위대한 창왕의 제자라는 분이 도전을 마다하시는 건 아니겠죠?”
나는 그의 살살 자존심을 긁었다.
“저는 스켈레톤 킹. 세상 모든 스켈레톤 위에 군림하는 자. 제 부하 중 하나조차 못 이기면 창왕의 명성도 별거 없는 거 아닐까요?”
“……!”
어느덧 공기가 적막에 휩싸였다.
심판창의 분위기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아무리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해도, 그 역시 무인(武人)이었다.
자신의 전부와 다름없는 창술과 스승을 건드는데, 가만히 참고만 있을 수는 없을 터.
후우웅!
그가 창을 고쳐잡았다.
“스켈레톤 킹이라 했나?”
“예, 맞습니다. 심판창, 장웨이.”
이 세계 최강의 창술을 가진 자가 태양이를 노려보았다.
“좋다, 도전을 받아들이지.”
저벅, 저벅.
그러고는 내가 조성해 놓은 투기장 한쪽에 섰다.
태양이도 걸어가 그 반대편에 섰다.
두 창술가의 대치.
“도전하는 자의 창술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먼저.
심판창이 입을 열었다.
“……주군을 모시는 내 창의 이름은 태양창.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 피어오른 창술이다.”
“그런가?”
의외로 예를 갖추는 태양이의 모습에 심판창이 흡족하게 웃었다.
“내 창술의 이름은 이화. 마치 배꽃 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변화무쌍한 창이지.”
“기대되는군. 그게 이 세계의 하늘인가?”
둘 다.
점잖게 대화하는 것 같지만.
그 주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1급 맹독을 먹은 것처럼, 독기가 피어올랐고.
진득한 기운들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둘 중 어느 쪽도 기운을 사용한 게 아님에도, 그만큼 살벌한 공기였다.
“그럼 먼저 가겠다.”
“아무렴,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차앗!
타앗!
태양창과 심판창이 튀어 나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이화의 창은 총 여섯 가지 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심판창의 창이 태양창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걸 모두 막아낼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대를 하나의 창술가로 인정하겠다!”
타다닷!
심판창의 발이 신묘하게 움직였다.
과연, 변화무쌍을 테마로 하고 있는 창이라 그런 걸까?
스텝이 굉장히 화려했다.
이화창(梨花槍).
제일식(第一式).
독룡출동(毒龍出洞).
“조잡한 속임수로 시야를 현란하게 속여놓고, 실상은 심장을 찌르는 기술인가?”
번쩍!
태양이의 창이 하얀빛으로 피어올랐다.
“흐압!”
콰아앙!
날아오르는 독룡의 출세를 태양열로 불태웠다.
동시에 허리를 돌려 반대쪽 창대로 심판창의 얼굴을 노렸다.
“흐읍?”
움직임이 의외였는지.
아니면, 방심한 건지.
눈을 부릅뜬 심판창이 서둘러 뒷걸음질 쳤다.
“허.”
이내 허탈하다는 듯 숨을 뱉어냈다.
“좋군.”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마, 내가 한참 얕본 모양이군. 이제부터 진심으로 상대하겠다.”
다음은 태양이의 선공이었다.
후웅!
과거.
자신이 증오했던 모든 인간들의 심장을 뚫어냈던.
초식 따위 없는 야만(野灣)의, 날 것의 투지가 기세가 되어 심판창의 목을 노렸다.
“실로 악귀와 같은 기세로군.”
이화창(梨花槍).
제이식(第二式).
회마창(回馬槍).
심판창이 신속히 허리를 돌렸다.
기세 좋게 날아오는 공격에 카운터를 가하는 기술, 회마창!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기에, 상대가 강할수록 더 치명적인 초식이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창에 태양이는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주먹으로 심판창의 디딤발을 가격했다.
“이, 이런?”
창술이 아닌 갑작스러운 격투술에 심판창이 당황했다.
“왜 당황하나? 아까 싸우는 거 보아하니, 이런 방법들도 좋아하는 것 같던데?”
태양이의 비아냥에 심판창이 발끈했다.
“당황한 것으로 보였나?”
“주군께 선사 받은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말이지.”
“섣불리 말하지 마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발등의 통증을 무시한 심판창 역시 발을 사용했다.
그렇게 시작한 막싸움.
고귀해 보이는 싸움이 아닌, 그야말로 사나이들의 격투가 시작됐다.
“흐아아아압!”
심판창이 화려하게 창을 움직여도.
“변화무쌍에만 신경 쓰니, 창이 가는 진로(眞路)가 뻔히 보이질 않나.”
본래 시야 없이 싸워왔던 태양이는.
그 화려한 눈속임에 속지 않았다.
“그 창술의 진정한 힘은.”
촤악!
태양이가 휘두른 창끝이 심판창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터졌다.
“모든 변화가 전부 진짜일 때 비로소 나타날 터.”
태양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후웅! 후우웅!
그러고는 창격과 함께 심판창이 있던 자리를 뚫고, 그의 등 뒤로 가 멈춰 섰다.
그렇게 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일 초.
태양이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아직, 그 창술로 태양창을 상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애송이.”
“…….”
심판창이 입을 앙다물었다.
그의 커진 동공은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해하라고.’
나는 속으로 심판창을 응원했다.
‘쟤, 나랑 창술로 붙어도 내가 못 이기거든.’
태양이는 다른 세계의 절대자에 있었던 녀석이다.
아마 창왕 정도 되어야, 태양이랑은 이야기가 좀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붙으면, 태양이가 개발리겠지만.
놀랍게도 태양이의 힘은 본래 능력의 10%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온전한 태양창으로 돌아오려면.
내가 랭커가 되고도, 계속 수련하고 갈고닦아야겠지.
“……놀랍군.”
푸화하핫!
이내 심판창의 몸 구석구석에 상처가 터졌다.
“인정한다. 아직 보여줄 초식이 많이 남긴 했지만…… 굳이 싸우지 않아도 답이 보이는 상황이군. 믿을 수 없는 실력이야.”
그는 깨달은 듯했다.
태양이가 상대하면서, 많이 봐줬다는 걸.
태양이가 제대로 했다면, 그 초식이 펼쳐지기도 전에 목이 뚫리고 관절이 베어졌겠지.
‘미쳤네.’
솔직히 싸우기 전까지는 몰랐다.
비슷하거나, 태양이가 좀 더 우세할 줄은 알았는데.
‘이토록 압도적이라고?’
태양이 이 녀석.
다시 한번 대단한 놈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가. 모든 변화가 진짜로 보여야 하는 것이었나. 아아, 그런 것이었군……. 그래, 막혔던 게 그거였어……!”
털썩!
그때였다.
심판창이 그대로 주저앉아 기운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흐르는 벌건 상처들은 내버려 둔 채.
지혈도 하지 않은 채,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 봐라?’
저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물아일체에 빠지는 것인데.
나도 드미르랑 함께 망치를 휘두르다 보면, 가끔 겪었던 것이기도 했다.
‘근데.’
저걸 내 앞에서 한다고?
뭔가에 몰입하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된다.
즉, 만약 내가 심판창을 죽이려 했다면?
끝인 목숨인 거다.
“…….”
쩝.
근데 나는 그런 나쁜 놈이 아니니까.
게다가 혹여 저 녀석을 내가 죽였단 소문이라도 나봐라.
평생 랭킹 10위인 창왕에게 쫓기고 살 수는 없었다.
“운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외골수 씨…….”
심판창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