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12)
자존일까 자만일까
“하하핫!”
저 멀리서.
뇌명(雷鳴) 플로아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애송이!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파즈즈즉!
사방 곳곳에서 전류가 튀겼다.
땅속에서, 나무 뒤에서.
또 어떤 것은 하늘에서 벼락처럼 내리쳤다.
“찾을 수 있는 건 내 잔상뿐일 거야! 그리고 알아둬라! 네 눈으로 내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이상, 특전은 없다는 거!”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플로아, 쟤.
이제 대놓고 본인의 존재감을 풍겨대는데.
이거 심사위원이 이래도 되는 거냐?
“흐읍!”
나는 신음을 내지르며 발을 놀렸다.
불만 따위 품을 여유가 없었다.
플로아의 공격이 생각보다 거셌으니까.
전류가 지나간 자리를 스칠 때면,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의 고열이 느껴졌고.
콰드드득!
잠깐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갈라지는 건 저 바위가 아니라 내 몸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
파지직!
“으으.”
우지끈!
달릴 때마다, 내 옆 바위나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휘늘어졌다.
모래알 섞인 지면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겼다.
쾅! 쾅! 쾅!
구역 전체가 무너지듯 흔들리고 있었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가득 메워졌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눈을 번뜩였다.
이렇게 막강한 공격임에도.
무려 두 자릿수의 랭커가 행하는 공격임에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
‘플로아, 저 녀석.’
분명 나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무언가처럼 주변만을 두들겨 팰 뿐.
나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오는 건 전혀 없었다.
“저 얼빵한 것……. 아무래도 네 놈의 승률이 더 올라가겠구나.”
옆에서 따라오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저도 느끼고 있어요. 아무렴 관상은 과학이거든요.’
“관상?”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쟤 모습 기억하시죠? 일단 코가 존나게 높잖아요. 그거 알아요? 원래 콧대 높은 애들이 무시당하는 거 엄청나게 싫어하는 거.”
“그게 무슨 소리냐? 네 녀석…… 관상도 배웠느냐?”
‘게다가 눈썹도 위로 엄청 치켜 올라가 있죠? 입도 비릿하게 비틀어져 있고. 예로부터 그런 얼굴이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들었어요.”
“끌끌, 네놈처럼 말이냐?”
노인이 놀리듯 히죽 웃었다.
‘음.’
내 관상이 그랬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뭐, 확실한 건.
나 역시 지는 건 죽는 것보다 싫어한다는 것.
플로아나 나나 그런 성격은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건.
‘어르신께서도 마찬가지죠. 한 자존심 하시잖아요?’
“클클, 뭐, 네놈이나 나나. 원래 사전제전(師傳弟傳)이란 말도 있지 않으냐.”
‘……부전자전(父傳子傳) 아니었나요?’
“하여튼, 이놈아. 모름지기 강자의 자존(自尊)이란 마땅히 부릴 수 있는 마음이니, 약자가 부리는 자만(自慢)과 비교하면 안 되느니라.”
‘그럼 지금 쟤가 부리고 있는 건 뭔데요?’
“당연히 자만이지.”
‘역시 그렇죠?’
노인과 내가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결과는 네 놈이 만드는 거다. 저 얼빵이를 보거라. 굳이 도망가면 될걸. 굳이 네 도발에 넘어와 저러고 있는 것만 봐도 답이 보이지 않더냐?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얼빵한 건 얼빵한 거다. 클클, 네놈도 알지 않으냐. 내가 사람 하나는 기막히게 잘 보는 거.”
‘그랬었죠. 그래서 그때, 우리 뼈다귀들 보고 절 선택하신 거잖아요?’
파즈즉!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발을 놀리고 있었다.
이미 시야는 흙먼지로 난장판 되다시피 해서.
플로아의 형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상태.
‘흠.’
어찌해야 하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지금쯤 반응을 보일 때가 됐는데.”
노인이 손목을 돌리며 물어왔다.
‘아직 얼마 안 됐어요. 하지만.’
“슬슬 가는 게냐? 클클.”
‘예, 어르신이 말씀하신 대로, 이제 점점 숨통을 조여봐야죠.’
꿈틀!
뱃속에 숨어 있던 독무가 움찔거렸다.
몇 분 전.
고맙게도 녀석은 나와 노인이 원하는 독 몇 가지를 내어줬다.
그래.
포근한 집에 무상으로 얹혀살 생각 하면 안 되지.
이거.
한 달 치 임대료로 쳐주마.
* * *
‘뭐야?’
면밀하게 공격하던 플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본래 같았으면 당황하며, 진격을 멈추어야 할 주동훈이.
‘계속해서 달라붙는다고?’
과연.
랭커 후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건가?
어떻게 이런 막강한 공격을 보고도 돌진할 수 있는 거지?
“…….”
하지만 녀석은 떡잎일 뿐.
아직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게다가 자신이 어디 보통 랭커던가?
무려 세계 랭킹 84위다.
세계 어디에 가나 VVIP 대우를 받는 최강자 중 하나.
그와 싸웠을 때 질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할 터.
‘문제는.’
이게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은 주동훈을 직접 타격하지 못하지만.
그는 언제든 본인을 타격할 수 있다.
아니, 굳이 타격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두 눈으로 ‘발견’하기만 하면 이기는 싸움일 테니.
“참…….”
웃겼다.
아무리 페널티가 있다고 한들 그렇지.
어떻게 참가자 따위가 두 자릿수 랭커인 자신과 ‘게임’이 된단 말인가!
“아하핫!”
너무 웃겨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흥분되는 감각을 느낀 게 도대체 얼마 만이지?
“야,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플로아는 전파를 이용해 목소리를 울려 퍼뜨렸다.
이런 방식으로 외치면, 위치를 들키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스승은 있고?”
너무나 궁금해서 던진 질문들.
“그 자리에서 대답해도 돼. 네가 어떻게 말하든 내 청각은 공간을 초월하니까.”
“내가 뭐 하는 놈이냐고?”
이에 대해 주동훈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곧 널 잡고 특전을 얻을 놈이다. 왜.”
“으하하하하!”
플로아가 폭소했다.
세상 어느 헌터가 자신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눈앞 사내의 패기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조금 신기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부류의 인간이라.
“네가? 네가 날 잡겠다고?”
그녀가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어이없다는 감정과 미량의 흥미가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어디 해봐. 내가 진심으로 상대했을 때, 네가 날 발견할 수 있다면 그땐 네가 내 오라방이다.”
“오라방?”
“그래, 새꺄. 근데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럴 일은 없을 거거든.”
확실히 그녀에겐 의미 없는 약속이었다.
자신이 참가자에게 질 거란 생각을 단 1%도 하지 않고 있으므로.
근데.
건방진 사내는 오히려 한술 더 뜬다.
“너같이 어수룩한 애한테 오라방 소리 듣기는 싫은데……? 차라리 노예빵은 어떠냐?”
“뭐?”
플로아가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 저게 뭐라는 거야?
“노예빵?”
“그래, 말 그대로 노예빵. 지는 사람이 바로 대가리 박고 숙이는 거야. 시키는 것도 다 해야 하고. 어때? 설마 84위의 랭커께서 쫄으신 건 아니겠지? 뭐, 싫으면 말아도 되고.”
“야야야. 너 미친놈이냐, 진짜?”
플로아가 어이없다는 듯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씨발, 아무리 내가 생각 없다는 소리 많이 들어도. 내 몸값이랑 네 몸값이 차원이 다른데. 그딴 말도 안 되는 내기를 걸어? 타산이 안 맞잖아!”
“왜.”
사내가 픽 비웃었다.
“어차피 질 자신 없는 거 아니었나? 게다가 조사해 보면, 나도 나름 한 몸값 할걸?”
“네가?”
플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추후 한 자릿수 랭커가 된다고 가정하면, 굉장한 몸값이긴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아니다.
한 자릿수 랭커가 어디 뉘 집 개 이름도 아니지 않던가.
“어. 나, 나름 돈 많아. S급 아이템도 만들 수 있고. 헌터 밥 먹었으면 최근 드미르 공방 얘기는 들어봤겠지?”
“……드미르 공방?”
드미르? 드미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뭐였더라.
“아?”
플로아의 동공이 커졌다.
“드미르면, 그 S급 무기 만드는 공방 말하는 거야? 그 요즘 대한민국에서 화제인?”
S급 무기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렇기에, 드미르 공방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바 있었다.
그녀 역시 상위권 랭커로서 무기에 한창 관심이 많았기에, 들어본 적 있었다.
광전사가 그쪽에서 무기를 받았댔지.
“허, 그 드미르 공방의 주인이 네크로맨서였던 것 같은데…… 그게 설마?”
“그래, 그게 바로 나다.”
“호오.”
플로아의 동그란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순진무구해 보일 법한 그런 반응.
“그건 또 재밌겠네.”
무언가 수지타산이 맞았다.
일단, 자신이 질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
그럼 돈이랑 아이템이 공짜로 들어오게 되는 셈.
‘게다가 내 전용 아이템도 계속 만들어달라고 굴릴 수도 있잖아?’
이거 완전 개꿀인데!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리고 짧은 시간 만에 내린 결정.
“오케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덤벼라! 한없이 오만한 네게 세상이 넓다는 걸 보여줄…… 음?”
킁킁!
그때였다.
플로아의 후각에 묘한 냄새가 걸렸다.
굉장히 지독하면서도 끔찍한 향.
“으읍? 뭐야, 씨발?”
이내, 플로아가 두 눈을 부릅뜬 채 굳어버렸다.
“독?”
그것도 그냥 독이 아니었다.
1급 맹독 수십 개가 서로 상호보완하며 들어오는 초강력 신경독의 느낌.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과 주동훈의 거리는 못해도 500m다.
하지만, 이 정도의 독이라면 적어도 5분 전부터 하독(下毒) 해야만…….
“서, 설마? 이 새끼!”
저 녀석.
여태 말장난으로 말을 끌었던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가?
플로아의 반응에 사내가 히죽 웃었다.
“분명 오케이라고 한 거다? 랭커쯤 되는 애가 쫀심도 없게 약속을 어길 린 없을 테고. 나 믿고 잡는다?”
그 순간.
주동훈의 신형이 폭발적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
플로아가 헛웃음을 쳤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이없어도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표정을 짓던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함정이었던 거냐?”
“함정보다는 나름 내 능력을 활용했다고 해주면 안 되냐?”
“이 더럽고 치사한 새끼.”
“응, 칭찬 고마워.”
“제기랄.”
플로아가 신속히 바닥을 찼다.
일단 가까이 오는 만큼 거리를 다시 벌려놓기 위해서.
하지만.
‘몸이 무거워지고 있어.’
점점 신경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얼마나 강한 독을 쓴 건지 랭커인 자신에게까지 통하는 걸까?
더군다나 시야도 어지러웠다.
‘세상에, 환상독까지 풀었어?’
원래 하나였던 길이 두 개로 보이고.
하늘이 땅으로 땅이 하늘로 뒤바뀌어 보이고.
속이 울렁거리듯 답답해졌다.
파즉! 파즈즛!
그녀는 계속해서 몸에 전류를 흐르게 했다.
내부에 침투한, 그리고 주변에 머문 독들을 태워내는 과정.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독은 독.’
그뿐이다.
자신은 참가자에게 절대 져서는 안 될 위치.
‘조금 당황했을 뿐, 고작 독 따위에 잡힐 내가 아니지.’
그게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