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11)
또 플로아
군대에서 수십 혹은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걸, ‘훈련의 꽃’ 혹은 ‘지옥 훈련’이라고 비유하는 자가 있다.
단언컨대, 그 사람이 이곳에 왔다면 지옥은 무슨.
지옥 할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을까?
“후욱, 후욱.”
“후우우.”
팀원들의 입가에서 더운 숨이 나왔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고, 호흡은 계속해서 거칠어졌다.
높은 등급의 헌터라고 체력이 무한한 건 아니었다.
우리도 결국 사람이고.
일정 이상의 체력을 쏟아내면 호흡이 딸린다.
특히 심판창이나 제임스처럼 직접 몸을 쓰는 능력이 아니면 더욱더.
‘게다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행군이다.
눈앞 성의 모습은 걸어도 걸어도 크기가 동일했으며, 마치 한 달을 걸어도 그 자리일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했다.
심리적인 공포였다.
“여기서 잠깐 머물죠.”
결국, 나는 오솔길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아무리 경쟁이라 할지라도 체력 안배는 중요하다.
요컨대 마라톤과 비슷하다.
괜히 초반에 무리해서 전력을 다하다가.
다른 팀에 따라잡히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심판창이 캠핑 지휘 좀 해주세요. 그늘에 터 잡으시고 각자 볼일 보실 분 보시고. 주변에 식량으로 때울 것도 좀 찾아보시고요.”
다행히 주변에 식량 거리는 즐비했다.
산짐승도 있는 것 같았고, 테마1에 봤었던 과일이나 뿌리들도 보였다.
하긴.
가방을 봉인해 놓고 먹을 것도 안 주면, 그건 시련이 아니라 고문 아닐까?
‘아, 고문 맞나?’
사실 요즘 ‘시련’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
노인의 마사지, 독 섭취, 과거 태양창의 도전 등등.
‘시련’이라 하기엔, 좀 많이 아프고 끔찍하거든.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아무리 강해지는 게 꿈이라 해도, 매번 이렇게 고통받으며 사는 삶이라…….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음…….’
잠깐 고민해 봤지만, 역시.
고민은 짧았다.
아무래도 난 변태가 맞나 보다.
괴로운 것보다 약한 게 더 싫었으니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강한 게 더 좋았다.
그게 더 행복했다.
‘내가 힘이 없었다면.’
이미 과거, 암영단(暗影斷)의 한 암살자에게 목이 썰렸거나.
국내 10대 기업인 오성 그룹의 양아치 재벌 신종오에게 괴롭혀지다가 암살이나 당했겠지.
적어도 그런 억울한 결과보다는 괴롭고 강한 게 나았다.
원래 세상은 예전부터 그랬다.
힘없는 자는 항상 거대한 힘에 굴복하고 자신의 것을 빼앗겼으며.
힘 있는 자만이 자신의 것을 오롯이 지켜냈다.
강해야 내 것도 지킬 수 있는 법.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성장할 거다.
추후, 게시판에 새겨진 1,000명의 랭커들도 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끔, 끊임없이 올라설 거다.
“스켈레톤 킹. 대충 지시는 끝냈다.”
심판창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부팀장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각자 능력에 맞게 임무를 배정했어.”
“잘했어요.”
“문제는 그대야.”
그가 날 바라봤다.
“부팀장인 내가 그대에게 임무를 배정할 순 없으니까.”
“아.”
그건 맞지.
그러니까 질문의 요지는.
다 일하고 있는데, 넌 뭐 할 거냐는 거겠지?
“저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어디 좀 다녀올 예정입니다.”
“어딜?”
나는 씩 웃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절대 쓸데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어제 못다 한.
플로아를 찾아야 하거든.
* * *
저벅, 저벅.
나는 인적 없는 오솔길을 걸었다.
하루 후, 다시 소환된 어르신과 함께.
“우선, 그 얼빠진 애 말이다. 그래도 나름 영리해진 것 같다.”
노인이 속삭이듯 말했다.
“일정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눈치채면 언제든 도주할 계획을 짜고 있어. 네 녀석이 어떤 방법으로든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게야.”
어제부터 면밀하게 계획을 짜봤는데, 도저히 각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귀신같이 눈치채고 거리를 벌렸다.
‘흠.’
뇌명(雷鳴) 플로아는 랭커.
그것도 랭킹 84위에 초고위 랭커다.
그녀가 방심하지 않고 버티는 이상, 현재로서 내가 그녀를 잡아낼 방법은 전무하다.
“이 녀석아. 그래서 어제부터 말했잖느냐. 아무리 만술이고 기술이 좋아도 아득한 힘의 차이를 넘길 순 없다고.”
무력한 내 모습이 뭐 그리도 기쁘신 걸까.
노인이 들뜬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렇기에 즐겁다. 이 세상은 강자가 너무도 많아. 아느냐? 그게 다 네 녀석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밑거름들이란 걸.”
‘예예, 다 좋은데…… 일단 제가 강해지려면 이번 시련도 좋은 성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 원래라면 어딜 보상 따위로 강해지려 하느냐 엄포를 놓았겠지만…… 이번엔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의외로 노인이 내 말에 인정했다.
“그만큼 저 무기가 사기니까. 쯧, 운 좋은 놈.”
‘이거…….’
나는 내 손에 지닌 지팡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이라는 신살(神殺)급 아이템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 나에게 말을 건 이후로, 아직까지 대답이 없는 녀석.
“그 안에 든 거 말이다. 우리 세계에서는 본 적도 없는 종류의 것이니라. 마치 내 경지를 아득히 넘어 끝없이 초월해 있는 거대한 무언가가 잠들어 있는 느낌이야.”
‘그 말만 몇 번째예요.’
내가 투덜거렸다.
어제도 한동안 무기 주변을 겉돌며 ‘이야!’, ‘이야?’ 하고 감탄만 하시느라.
훈련도 제대로 못 했다.
그렇다고 플로아를 잡아낼 묘수를 떠올린 것도 아니었고.
“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이 낭만 없는 녀석! 네놈은 설레지도 않느냐? 저기 비어 있는 일곱 개의 칸에 모든 영령이 다 모였을 때, 과연 어떤 힘을 낼지 말이다. 아아, 만술을 넘어선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니……! 떨리는구나! 한을 가진 채 버티고 있었던 게 이렇게 빛을 보는 것 같으니! 이 스승은 참으로 기쁘도다!”
‘예예.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려면, 지금 심사위원을 찾아야 한다니까요?’
노인이 진심진심 한 건 좋은데.
아쉽게도 오늘 하루 허용된 시간은 한 시간뿐.
시간이 없었다.
“그래, 그래서 지금 나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으냐, 이놈아. 보채지 말거라.”
노인이 턱을 잡고 눈을 감았다.
허공에서 하얀 옷을 입고 저러고 있으니 진짜 산신령을 모시는 기분인데.
“흠, 네 녀석의 실력으로 그나마 가능성을 높이려면…… 그 독무를 이용해 보는 건 어떠냐?”
‘독무요?’
나는 내 단전 옆에 똬리를 튼 녀석의 기운을 느꼈다.
지금은 잠자코 쉬고 있는 이 녀석.
이 녀석이 날 도와주려나?
“네놈의 미천한 실력으로 저 계집을 잡으라 하는 건, 칼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가르라 하는 수준일 테고. 그나마 독만큼은 극(極)의 경지에 달하지 않았더냐.”
‘문제는 이게 아직 통제가 잘 안 되는 놈이라.’
“알지, 내가 그걸 모르겠느냐. 다만, 현재로서 방법을 찾자면 그놈밖에 답이 없다는 거다. 독을 배합하는 법은 본능적으로 다 알고 있지 않으냐?”
내 몸속에 있는 독무는 무려 만독(萬毒)을 품고 있다.
그걸 다 이용할 수는 없고.
만약 녀석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녀석을 꾀어내서 필요한 독만 뽑아내야 한다.
“대충 환상 독이랑 마비 독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어떠냐, 내가 기가 막힌 조합식을 알려주랴?”
‘그런 게 있습니까?’
“끌끌, 어디 한번 그놈 꼬셔보아라. 꼬시기만 하면 알려줄 테니.”
‘음.’
노인의 말이 맞다.
마냥 혼자 궁상만 떨고 있는 것보다, 뭐라도 실험해 보는 게 낫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떠먹여 주는 건 아닐 테니까.
‘좋아요.’
나는 노인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고갯짓을 한 바로 그 순간에 휭! 바람이 스쳤다.
그래.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그 시각.
우물우물.
굵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독일 소녀가 육포를 씹고 있었다.
심사위원에게만 제공되는 간이용 육포.
“…….”
허공에 형성되어 있는 전자기파 속에 몸을 숨긴 그녀는 눈앞 자연환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1㎞가량 떨어진 주동훈의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웬만한 헌터들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안력을 가진 그는 다름 아닌 뇌명(雷鳴) 플로아.
“저 새끼, 아무래도 눈치 깐 거 같은데.”
어제부터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가끔 고개를 두리번거리거나.
제자리에 멈추어 서서 누군가랑 떠드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흐흐, 그래도 여기서 보고 있는 줄은 모를걸?”
사실, 이번 테마에는 굳이 주동훈을 따라나서지 않으려 했다.
저번에 들킨 페널티로 테마1의 보상을 다 날려 먹었으니까.
“빌어먹을 놈.”
그녀가 툴툴거렸다.
델라일라의 시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랭커들은.
각 테마가 끝나면 일한 만큼의 보상을 얻는다.
능력치 하나하나가 소중한 랭커들이 굳이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이유였다.
근데 그게.
저 주동훈 때문에 다 날아갔다.
그런 실수를 다시 한번 저지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궁금하잖아?’
호기심이 이성을 이겨버렸다.
그녀의 판단 하, 주동훈은 차후 한 자릿수 랭커에 충분히 입성할 수 있을 만큼의 포텐을 지녔다.
그런 자의 시련이라니?
‘그건 못 참지.’
돈 주고도 구경하지 못할 광경 아니던가.
“음?”
육포를 씹던 플로아가 벌떡 일어선 것은 그때였다.
주동훈.
그의 눈이 분명 0.1초 동안 이곳을 향했다.
1㎞나 되는 거리의 각도 오차를 생각해 보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여기 있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이번엔 절대 들켜선 안 된다.
시련 보상을 떠나,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네가 강자가 될 거란 건 인정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번에도 날 찾아낼 거라 생각하지 마라.”
피식 웃은 그녀가 곧바로 나뭇가지를 박찼다.
그녀는 잠시 동안 일정 거리를 더 벗어나 있을 예정이었다.
* * *
“음?”
거리를 벌린 플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네.’
그녀의 표정에 놀랍다는 감정이 엿보였다.
솔직히 처음에 발견했던 것도 우연인 줄 알았다.
자신이 방심해서.
너무 가까이 붙는 바람에, 운 좋게 공격에 성공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동훈은 거리가 붙는 대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예상외의 엄청난 속도로.
이런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그는 지금 자신을 잡아내려 하고 있었다.
테마1 때처럼 말이다.
‘하,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아무리 독무를 처리한 괴물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도전하니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두 자릿수의 랭커로서의 자존심이 불끈거리는 느낌?
‘하긴, 명색이 역대급 성적을 내는 놈인데. 자기만의 방법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너무 방심하면 안 되겠어.’
물론, 이대로 도주하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도주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무슨 방법을 쓰는지 몰라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붙고 있었으니까.
“미안하지만, 네가 날 발견하려면 공격에 성공해야 할 거야. 애송이.”
그녀가 히죽 웃었다.
플로아는 다른 심사위원과 다르다.
주변에 일렁이는 전기와 한 몸이 될 수 있기에, 발견되지 않고도 접근을 방해할 수 있다.
파즈즈즛!
그녀의 몸 주변에 뇌전이 튀겼다.
푸르른 전기 속에 눈 깜짝할 사이에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후웅!
주동훈이 접근하는 방향을 향해 손을 뿌리쳤다.
자신을 알림과 동시에, 또한 가까이 붙지 말라는 경고.
파즉! 파즈즈즉!
노란 전기가 벼락이 되어 주동훈을 향해 쇄도했다.
아니.
정확히는 주동훈이 달리는 궤도 앞으로 향했다.
델라일라께서는 심사위원의 과한 관여를 아주 싫어한다.
그렇기에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공격하는 순간, 무조건 퇴출.
또한 엄청난 페널티를 먹는다.
‘뭐, 직접 공격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래도 전력의 반 이상은 쓴 터라. 이 정도면 충분히 겁먹을 터.
플로아의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