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2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27화
아란발론 vs 거대마룡 (4)
콸콸콸!
나는 아예 양손으로 창을 잡고 몸을 지탱했다.
몸에서는 독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 저리 꺼지지 못할까? 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들! 조금만 기다리거라! 저 빌어먹을 용만 없애고 온전히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터이니! 크아아아!
거대마룡이 몸부림치며 포효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무시하며, 할 일을 했다.
‘어차피.’
저놈은 우리한테 신경 못 쓰거든.
신경 쓰는 순간, 이전 아란발론이 겪었던 고난의 절차를 그대로 밟을 거다.
빈틈을 보이게 되고, 연격을 허하겠지.
“훈!”
그런 내 옆으로 올레나가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었다.
뽀르륵!
그녀에게서 생성된 물방울들이 거대마룡의 상처로 스며들었다.
“이게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해줄 거예요!”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피부로 들어가는 거라 기체보단 액체가 좀 더 효과적이거든요. 훈이 뽑아낸 독 안개를 머금은 독물이 혈액을 타고 스며드는 거죠.”
“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도 했다.
“별말씀을요.”
윙크하는 올레나의 뒤로 또 누군가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팀장!”
다가온 사내는 바로 독일 출신의 칼을 든 중년.
이름이 막시밀리언이랬나?
“예, 막시. 무슨 일이시죠?”
“혹시, 거기 벌려 둔 용의 상처 좀 잠깐 이용해도 되겠나?”
“여길요?”
나는 주변을 바라봤다.
까앙! 까앙!
그러고 보니.
심판창도, 태양이와 엘드린도.
각자 열심히 거대마룡을 두들기고 있긴 한데.
아무도 그 질긴 피부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아무리 다쳤다 해도, 드래곤 스킨(Dragon skin)이란 건가?
오직, 신살(神殺)급 무기만이 손쉽게 뚫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한 번만 믿어보게, 팀장.”
그가 다가와 칼을 역수로 잡았다.
그다음.
푸우욱!
내가 뚫어낸 상처 옆쪽으로 칼을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살 속에 바늘을 박듯 끝까지 밀어 넣었다.
“잘 보게. 내 비록 팀원들에 비해 실력은 미천하나, 지닌 고유 능력 하나만큼은 랭커들도 부럽다 했었으니.”
중년이 눈을 감았다.
동시에 외우는 주문.
최고향검(崔高向劍).
오의(五意).
제사검(第四劍).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
중년은 틀어박은 칼의 손잡이를 그대로 놓았다.
동시에.
콰가가가가!
용의 피부 내부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손을 떠난 칼이 홀로 움직여 용의 내부 피부를 가르고 찢고 있는 게 분명했다.
콰르르!
독무가 더 원활하게 흐르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와, 진짜 이기어검술이에요? 대단하신데요?”
내가 감탄하며 물었다.
과거 이선아에게 듣기로는, 세계 랭킹 3위의 천마(天魔) 하세라조차도 최근에 겨우 익혔다고 할 만큼 초절정의 스킬이기 때문.
“그럴 리가 있나. 가짜야, 가짜.”
중년이 집중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가짜요?”
세상에.
가짜 이기어검술도 있어?
“뭐,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거지. 스킬명을 보게나. 최고향검(崔高向劍). 최고를 지향하는 검이라는 뜻인데, 내가 봤을 땐 그냥 최고를 모방하는 기형적인 검술이야. 왜 그런 줄 알아?”
“왠데요?”
“오직 다섯 개의 기술. 오의(五意) 밖에 못 쓰거든. 다른 기초적인 스킬이 아예 없어. 그 오의가 평범하면 말이라도 안 하지. 순서대로 검기성강, 검강압환, 신검합일, 이기어검술, 심검이니…….”
“미친.”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해 보이는 스킬명들이었다.
“능력이라도 대단하면 말을 안 하겠는데. 보게나. 벌써 기의 흐름이 끊겼다네.”
중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더 이상 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 고작 30초 지났나?
중년은 스킬 한 번에 자신의 검을 잃은 거다.
‘하지만.’
충분히 도움은 됐어.
막시가 상처를 더욱 벌어준 것과 올레나의 마법이 더해져.
독무가 더욱 쉽고 깊게 침투할 수 있었기 때문.
– 이 날파리 같은 놈들이!
거대마룡이 돌연히 크게 몸을 떨었다.
그 순간 기운이 바뀌었다.
아란발론에게 향하던 용의 기세가 우리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 아무래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구나!
위험했다.
“흡!”
숨이 턱 막혔고, 뇌에서는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신살 창을 힘껏 거머쥐었다.
– 내 타격을 입더라도, 너희만큼은 꼭 곤죽으로 만들어야겠노라!
다음 순간.
콧김을 푹 내뿜은 거대마룡의 노란 눈동자가 빛을 번뜩였다.
– 죽거라!
동시에 하늘에 검은 문양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아란발론을 상대할 때 쓰던 중력 마법진.
– 무게에 짓눌려 터져 버려라!
그 순간.
꾸우우욱!
사방에서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끄윽!”
“수, 숨 막혀요!”
“크으읏?”
탐원들 역시 마찬가지.
올레나는 바닥으로 엎어져 비늘을 부여잡았고, 균형 감각이 뛰어난 엘드린마저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흐읍!”
나 역시 숨 막힐 듯한 압박에 무릎을 꿇었고.
위이잉!
귀에서는 계속 이명이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라. 이놈아!”
머리가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노인이 일갈했다.
“날파리처럼 여기던 놈이 굳이 노선을 틀어서 공격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네가 뿌린 독이 그만큼 통하고 있다는 것이니. 믿어도 좋다! 네놈이 지닌 독무는 진짜 끔찍한 놈이야! 버티기만 하면 승산은 네놈에게 있어!”
“……그게. 알……고는 있는데. 크윽!”
“어차피 놈도 너희에게 그렇게 오래 신경 쓰진 못해!”
그 순간!
콰아아앙!
폭음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떠올랐다.
– 크아아아!
거대마룡의 비명 섞인 포효도 함께 들리는 것 보니.
아란발론이 타격을 시작한 것 같았다.
“크읏!”
물론 그것만으로도 우린 죽을 맛이었지만.
꽈악!
나는 꽂아 넣은 무기를 더욱 힘주어 잡았다.
– 크아아아, 이런 비겁한!
– 아직도 그 내로남불적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나? 네가 하는 건 합리적이고 남이 하는 건 비겁하다니.
– 시끄럽다!
잠깐, 우리를 위기로 몰았던 거대마룡이 다시 아란발론과 맞붙었다.
‘새우.’
그 순간 왜 새우가 떠오르는 걸까?
두 고래의 부딪힘에 등이 터져 나가는 불쌍한 새우.
“이놈아! 이런 상황에 잡생각이냐?”
노인이 꾸중했다.
젠장.
딴생각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역시 귀신인가?
“집중해라. 아무래도 직접 들어가는 게 낫겠다.”
“예?”
나는 어리둥절 눈을 크게 떴다.
“들어가라니, 어딜요?”
“어디긴, 저 상처 속 용가리의 몸뚱어리지.”
“……?”
내가 이해 안 간다는 듯 얼타고 있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저 용가리 놈. 기운이 심장에 몰려 있다. 어차피 놈의 등 뒤에서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그냥 가서 찔러 죽이는 게 더 쉽지 않겠냐?”
아뇨.
더 어려워 보이는데요?
“어차피 몸 안에 들어가면 충격도 덜 받을까 아니야! 원래 같았으면 가까이 가는 것도 무리였겠지만, 지금은 브레스인가 뭔가를 써서 접근해 볼 만하다고!”
“으음.”
나는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사실, 노인의 말은 불가능에 가깝다.
저 거대한 용의 몸속으로 들어가 심장을 찾아내 찌르라고?
말이 쉽지.
튼튼한 골격은 어떻게 뚫을 것이며, 달라붙는 진득한 피는 어째야 할까.
또한 내부에는 빛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뿐이랴?
산소도 없다.
숨도 못 쉰다.
노인의 말은 아무런 장비도 없이 심해에 들어가 크라켄의 눈알을 찌르라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웃겼다.
촤아악!
그런 노인의 말을 듣고도 창을 뽑고 있는 내가 웃겼고.
왠지 그 방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오른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사실.’
노인이 지금껏 나에게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잖아?
“블라디미르!”
창을 뽑은 내가 로디긴을 찾았다.
“어어, 불렀어, 팀장?”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저 멀리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악을 질렀다.
나 역시 외쳤다.
“혹시, 저를 용의 심장으로 공간이동 시켜줄 순 없나요?”
내가 외치면서도 웃기는 말.
“…….”
블라디미르도 잠깐 그 뜻을 해석하는 것 같더니.
“뭐? 용한테 죽을 바에 그냥 같이 자살하자고?!”
“아뇨, 진지해요!”
“미친 거야, 팀장?”
“말했잖아요. 미친 건 예전부터 미쳐 있었다고!”
“이런 씨발!”
그가 욕하며 다가왔다.
다른 팀원들도 대화를 들었는지, 질린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봤다.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설마 중앙으로 가서 용의 심장이나 급소를 타격해 보겠다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오, 정확해요. 따로 설명 안 해도 돼서 좋네요.”
“야 이……!”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그 순간, 광전사(狂戰士) 장대웅의 기분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대웅이 형.
이런 느낌이었구나!
미친놈이 칭찬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
뽀르르륵!
그 순간.
청량한 물줄기가 내 몸을 감쌌다.
올레나의 수(水) 속성 마법.
“보호막이에요! 피가 다가오는 걸 막아줄 거고, 산소도 공급해 줄 거예요! H2O를 분해하면 O2가 나오거든요!”
과연 올레나.
나를 인정해 주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블라디미르가 입을 떡 벌렸다.
“이런, 다들 진짜 미쳐버린 거야?”
“훈이 이런 거, 한둘이에요? 저는 용 잡으러 온다고 할 때부터 이미 놨어요. 어쩌겠어요.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니, 적응해야죠.”
“그, 그야 그렇긴 한데…….”
블라디미르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 좋은데.”
그가 용의 중심부 방향을 응시했다.
“공간술은 그렇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기술이 아냐. 공간이동 하는 곳에 물체가 있거나 고체 등 물질이 있기라도 한다면, 둘이 결합하거나 신체가 절단될 수도 있다고. 요컨대 지금은 용의 뼈가 되겠지.”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켜보던 카푸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천리안의 시선은 장애물을 무시하거든. 내 스킬에 따르면, 정확히 중심부 좌측 아래에 직경 10m짜리 빈 공간이 있다.”
오오.
길잡이, 카푸!
개 멋있잖아?
중요할 때마다 한 건씩 해주는 게, 굉장히 믿음직스럽다.
“그, 그래?”
블라디미르도 눈을 껌뻑였다.
그에게도 의외의 정보였기 때문.
“용이 거대해서 그런 것 같다. 보기보다 몸 구석구석에 공간이 많더군.”
“하, 젠장. 좋아.”
결국, 블라디미르가 두 손을 들었다.
“해보자고, 씨발! 지금 바로 보내주면 돼?”
“예, 준비는 끝났습니다. 뭐,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할까요?”
나는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노인이 히죽 웃었다.
“좋은 동료들이로구나. 모름지기 착한 동료가 좋은 게 아니라, 쓸모 있는 동료가 좋은 동료인 법이지.”
인정한다.
저들은 좋은 동료들이자.
좋은 동기들.
중얼중얼.
블라디미르가 지팡이를 펼치며 술식을 외기 시작했다.
나 역시 무기를 부여잡고 침을 삼켰다.
쾅! 콰아앙!
아직도 두 용은 서로 타격하느라 정신없는 상태.
하늘에 떠 있는 검은 마법진 역시 우리를 계속해서 압박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어이, 팀장.”
블라디미르가 눈을 떴다.
“예, 준비됐나요?”
“꼭, 살아 돌아와라.”
후웅!
그러고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신묘한 힘이 내 몸을 감싸 안았고.
그 순간.
번쩍!
시야에 빛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