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6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64화
소피아 실버스톤
옥스포드 마탑주.
백금발 여성의 위용은 대단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털이 곤두섰고.
뇌리의 본능과 직감이 위험하다 경고했다.
‘미친.’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광전사(狂戰士)는 그렇다 치더라도.
창왕(槍王)에 이어, 현자(Sage)라니.
그야말로 초 하이퍼 랭커들의 향연 아니던가.
“탑주님께서 어떻게 직접 이런 곳까지……?!”
올레나가 감동한 표정으로 외쳤으며.
“크흠……!”
창왕이 무안한 표정으로 창을 내렸다.
“허어?”
광기가 줄줄 흐르던 장대웅도 그 기운을 갈무리하며 중얼거렸다.
“영국 할망구는 인정이지. 쩝.”
동시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여, 그래도 다행이네.”
백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뒤 안 가리는 그 미친 행동이 그래도 랭킹 4위한테까지는 안 미치나 봐?”
“미칠 수가 없겠지.”
뒤에서 기파랑이 특유의 무감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은 그때였다.
“뭐?”
“하긴……. 아직 너희한테까지는 안 느껴지려나? 이미 이곳 섬 전체가 마탑주의 수중에 놓여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전투를 멈추는 것. 만약 그녀의 의지를 어기려 했다가는…….”
“…….”
꿀꺽.
백돈이 침을 삼켰다.
“그 순간, 섬을 통제하는 마력들이 온몸을 무자비하게 찢어버리겠지. 광전사가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의미 없는 자살을 할 정도는 아니야.”
가슴이 얼음처럼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그 순간.
빙긋.
허공에 떠 있던 소피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거봐요.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요? 곧 있으면 새해인데 같은 인류끼리 사이좋게. 알죠?”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백금발 머리카락에.
마치 청색 바다를 보는 듯한 푸른 눈에는 현기가 가득했다.
‘사실.’
현재의 외형은 아리땁지만.
각성 이전의 그녀는 백발 할머니의 모습이었단다.
그것도 나이 80을 넘긴.
‘대단한 거지.’
모종의 힘으로 저런 외형을 갖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각종 매스컴에서도.
굉장히 심오한 마법을 갖추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치켜세우곤 했었다.
무공으로 치면 반로환동의 경지?
물론, 완전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르신 말이 맞았네요.’
나는 다시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소피아 실버스톤이 등장했을 때도.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었다.
왜냐.
창왕이 등장했을 때, 이미 만술 노인을 불렀었고.
–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 실로 엄청난 존재야. 저 눈앞에 머저리들을 단숨에 제압할 만큼.
어르신이 이미 마탑주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주었기 때문.
“크!”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눈동자가 생글생글-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확실히 네놈이 사는 지구라는 세계는 재미있구나! 재밌어, 아주! 지천에 강자가 자갈처럼 널려 있으니! 그래, 이래야 정복할 맛이 나지!”
‘정복하기엔 진짜 말도 안 되게 강하긴 하네요.’
솔직히 놀라웠다.
창왕도 놀라웠는데, 마탑주는 진짜 상상 이상이었다.
10위권 안은.
각 랭킹별 격차가 거의 헌터 등급 격차와 맞먹는다는 광전사의 말이 이제야 피부로 와닿는 느낌?
정복할 맛을 느끼려다, 혀가 잘려 나갈 판이었다.
“녀석아, 이제 네가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 반년이다. 이 스승이 지상 최강자가 되는 데까지 300년이 넘게 걸렸는데, 무슨 그게 말도 안 되는 욕심이더냐? 급하지 않게 천천히 등반하다 보면, 정상을 찍을 수 있는 게 바로 만술이니라.”
‘알죠, 알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부터 말했다시피 이미 제 최종 목표는 랭킹 1위입니다.’
“하긴, 네놈이라면 이제 말 안 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흐흐.”
‘아니, 근데 왜 아까부터 그렇게 실실 웃으시는 거예요?’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아까 창왕과 대화를 나눌 때부터.
흐뭇하게 웃으시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이놈아. 으하하핫! 저 창왕이란 작자의 꼴을 보니까,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더냐!”
‘예……?’
“딱 봐도 제자 농사 잘못 지어서 표정 썩은 것 같은데. 암, 고작 저런 허접한 창술로 쓸데없는 자부심을 부리고 있으니, 나름 쓸 만한 기재를 두고도 속에 악이 그득한 것이로다.”
‘그게 무슨…….’
설마 제자 자랑……?
“저 눈빛을 보거라.”
‘음.’
창왕의 서늘한 눈빛.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어서, 본인이 가지지 못한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는 게지. 쯧쯧,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무술을 익혔을꼬. 저런 걸 우리 세계에서는 주화입마(走火入魔)라 한다. 말 그대로 속에 마(魔)가 그득히 차 있다는 뜻이지. 아직 초기인 것 같긴 한데, 조만간 큰일 내겠어.”
“…….”
나는 진자의의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마주했다.
세계 랭킹 10위?
‘그게 뭐.’
이미 이 지구라는 세상 자체가 먼지조차 안 될 만큼 미약하다는 걸 알았으며, 우주의 무한함을 경험한 나다.
또한 미래의 세계 랭킹 1위가 될 사람인데.
고작 저런 거에 쫄까?
광전사와 비슷한 마인드다.
비록, 실력은 안 될지언정.
비록, 아직 애송이라 할지언정.
마음으로부터 지고 들어가진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스슷!
“어허? 또 그러신다들?”
그 모습을 인지한 마탑주가 허공의 몸을 이동시켰다.
창왕과 나의 사이. 딱 정중앙에.
“좋아요, 좋아. 싸우는 것. 다 좋은데.”
그녀는 창왕을 힐긋 바라봤다.
“창왕.”
“…….”
“여긴 우리 마탑의 아이도 있고, 또 제가 저 아이한테 잠깐 볼일이 있거든요? 그래도 계속 그러고 있으실 건가요?”
목소리는 굉장히 정중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주변 기운이 내포하는 의지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말로 할 때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피를 볼 것이다.
“크흠.”
창왕이 헛기침했다.
“거, 애송이.”
애송이.
창왕이 나를 칭하는 말.
“무례하게 느꼈다면 사과하지. 그저 제자가 말한 이화창의 정수를 잠깐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상황이 격해져 실수했다. 이해해라.”
그 말에서 의도를 느꼈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그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뭐, 상관없지.’
그 마음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우선은 반복된 시련으로 심신이 피로한 상태였다.
빨리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음. 뭐, 알겠습니다. 제자가 성품이 좋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물론, 그렇다고.
나 역시.
성의 없는 사과에 정중하게 받아칠 정도로 성격이 온순하진 않았다.
“넘어간다? 제법 담력이 크군.”
“뭐, 담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많이 겪은지라?”
“하하하, 그런가? 그래, 그 여유…… 기억하고 있겠다.”
스윽!
창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픽- 웃더니 등을 돌렸다.
“장웨이, 가자꾸나.”
그러고는 심판창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심판창은.
“친우여, 내가 미안하다. 사과는 나중에…….”
“어서, 가자고 하지 않았느냐!”
버럭!
호통치는 창왕과 별수 없이 끌려가는 장웨이.
“창왕이 원래 저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쯧.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에 벌써 노망이 난 건가.”
소피아 실버스톤이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나저나, 그거 말이야.”
빙긋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내 주머니 한쪽을 가리키며.
“예?”
“그 돌. 받았네?”
“돌이라면…… 아.”
던전 아티팩트.
테마 6에서 델라일라가 나에게 준 선물.
“와, 설마 했는데. 저걸 준 거야?”
이내, 마탑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델라일라 고것이……! 내가 바꿔달라 할 때는 진땀을 흘리며 꼭꼭 숨기더니! 아주 그냥 최상등품을 헤벌쭉 가져다 바쳤네? 내 것보다 두 단계는 좋아 보이잖아?”
“…….”
“에휴. 뭐, 어쨌든. 그냥, 델라일라가 그렇게 칭찬하길래 한번 구경차 와봤어. 우리 수석 마법사도 데리러 올 겸?”
“그런가요……?”
나는 살짝 진땀을 흘렸다.
상대를 랭킹 4위의 거물.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선망하던 TV 속 연예인이 갑자기 나한테 아는 체를 하는 느낌이라.
마탑주의 눈길이 스윽 내 몸을 훑었다.
후웅!
부드러운 기운과 향기가 나선 모양으로 선회(旋回)했다.
“뭐, 그럭저럭. 고것 말대로. 기대는 되는구나.”
‘와오.’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마탑주가 나보고 기대된대.’
무례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창왕과는 다르게.
눈빛만 봐도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더 보고 싶긴 한데.”
그녀가 허공에 턱을 괴고 해맑게 웃었다.
“나도 이만 가봐야 해서 말이지. 마탑도 새해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지라.”
“새해 행사면…….”
“주동훈이라 했지?”
마탑주가 내 눈을 다시 응시했다.
“지금은 그냥 가지만, 나중에 한번 마탑으로 놀러 오렴.”
“마탑에요?”
“응. 델라일라가 도움을 줬던 만큼, 나도 어떤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
마탑주의 초대라.
그거 엄청난 영광이긴 한데.
갑자기 이렇게 잘해준다고?
살짝 얼떨떨했다.
“사실 델라일라가 미리 줄 서 놓으라고 당부했던 건 안 비밀이고.”
마탑주가 웃었다.
“그건 기억해 줘야 한다? 창왕 늙은이 내가 쫓아 보낸 거? 설마, 기억력 안 좋은 편은 아니지?”
아.
설마.
그녀는 내 현재를 보는 게 아니라, 내 미래를 보고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
씩 웃었다.
‘인정이지.’
내 포부는 이미 저 하늘 꼭대기에 있으니까.
“물론입니다. 마탑주님의 호의는 제 가슴속에 꼭 담아두도록 할게요.”
“으하하핫! 시원시원해서 좋네!”
소피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이내.
후웅!
품속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일 것 같은 최고급 지팡이였다.
“올레나?”
“예, 마탑주님!”
“이리 오렴. 이만 탑으로 돌아가자꾸나. 네 이야기는 탑에서 많이 나눌 수 있으니, 잠깐 소홀했던 점 이해해 주겠니?”
“아, 무, 무, 물론이죠!”
당차게 대답하는 올레나.
그녀는 나와 잠깐 눈인사를 한 후, 마탑주의 옆에 붙었다.
그러고는.
스슷!
공간을 장악하던 기운이 단박에 없어짐과 동시에.
두 신형이 마치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렸다.
블라디미르가 울고 갈 공간술…….
“후아!”
유상돈이 호흡을 터뜨렸다.
“숨 막혀 뒈지는 줄 알았네.”
“크하하! 동생 안 데리러 왔으면 어쩔 뻔했나? 꼬챙이 노친네에 영국 할망구까지! 동생 덕에 좋은 구경 했어?”
“좋은 구경은 개뿔. 황천길 잠깐 구경하다 왔지.”
“으하하하! 만날 이승만 구경하면 재미없지 않나! 황천길 경관도 잠깐씩 구경해 줘야 인생이 입체적이지!”
“……미친놈.”
“칭찬, 고맙다!”
투덕거리는 광전사와 명궁.
“킹! 오랜만이네요. 역시, 당신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요.”
차올랐던 분노를 식힌 듯, 다시 활발한 웃음을 찾은 이선아.
“살아 돌아오셨네요. 그것도…… 이젠 저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 것 같은걸요? 기운이 제법이에요.”
나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는 기소율까지.
아아.
그래,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 진짜 복귀했구나.
내 인생에 한차례 큰 물결이 끝났구나.
“약속. 지켰네요.”
나는 서울 오성(五星)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추천’이라는 호의를 베풀고.
또한, 막강한 상대와 목숨 걸고 싸워주기까지 하는 그들.
나의 은인들.
“여러분들 덕에 많은 걸 배웠고, 경험했고, 발전했습니다.”
제대로 된 감사 인사는.
살아 돌아와서 하겠다 약속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그 시각.
“하, 진짜 안 온다고?”
드미르 공방 3층에 TV를 켜고 앉아 있는 김진아가 불평을 내뱉었다.
“곧 새해인데도 얼굴을 안 비춰? 진짜 어디 해외 오지에서 뒈져 있는 거 아냐?”
간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제집처럼 편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는 그녀의 뒤에는…….
맥주캔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하, 휴가도 못 가고. 쉬지도 못하고. 저 스켈레톤 때문에 퇴근도 못 하는데.”
으드득!
그녀의 이가 갈렸다.
“적어도 연말에 휴가는 보내줘야 할 거 아냐! 으아아, 스트레스받아!”
공허한 외침.
책임감 있는 김진아는 공방주가 사라진 이후로 단 한 번도 쉬지 못했다.
그뿐이랴?
퇴근도 못 하고 공방에 거주했다.
아직 확실히 통제된다고 말할 수 없는 스켈레톤들이 사고 치면, 그걸 수습하는 게 더 골치 아프다 생각했기 때문.
펑! 퍼퍼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해는 지고 있고.
바깥은 축제 분위기인데, 자신만 우울한 기분이었다.
이게 맞는 거야?
정말?
“씨이바아알.”
그녀는 시원하게 욕을 내뱉은 후, 따악! 맥주 한 캔을 더 깠다.
뭐 어쩌랴.
스트레스받는 만큼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