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9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93화
별천지 출범
“길드라…….”
질겅질겅.
플로아가 껌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느낌 좋은데? 주인이야 원체 크게 될 놈이라, 길드도 무럭무럭 성장할 테고.”
마왕군(魔王君).
옥스퍼드(Oxford).
천마신교(天魔神敎).
세 집단의 공통점은 모두 그 수장이 막강하다는 점이다.
“주인이 수장으로 있는 집단이면, 저 집단만큼의 성장은 이미 떼놓은 당상이지. 그럼 우린 초창기 멤버가 되는 건가?”
“좋은데요?”
옆에 있던 기소율도 동조했다.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만 봐도 일개 공방은 아니니까요.”
“나도 동감이야. 길드라니, 멋진걸?”
아재, 막시도 고개를 끄덕였고.
“인정한다. 사실 드미르라는 이름은 좀 약해 보이긴 했지.”
평소 점잖던 카푸마저 슬쩍 손을 올려 동조했다.
이야.
다들 이렇게 적극적이라고?
“어때요, 공방주님?”
모두의 공감에 어깨가 한껏 올라간 김진아가 날 쳐다봤다.
나머지 헌터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내가 답할 차례인가?
“으음.”
나야, 뭐.
이런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그래요, 그럼.”
쿨하게 승낙했다.
* * *
가벼운 대화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한 드미르의 구성원들은 새로 만들어진 정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가운데 놓인 고급 원목 탁자에.
휘이잉!
선선히 이는 바람.
그리고 주변을 압도하는 거친 암석들의 절경.
“자아!”
내 오른쪽에 앉은 김진아가 손뼉을 쳤다.
“이제 길드 이름을 정할 거예요. 다들 아시다시피, 길드의 이름은 쉽고 간결하면서도, 딱! 듣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와야 해요.”
새로운 길드명을 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맞다. 솔직히 드미르는 좀 별로였지.”
카푸가 중얼거렸다.
아니, 아까부터 왜?
우리 드미르가 어때서?
살짝 반발심이 일었지만, 나설 순 없었다.
헌터들이 하나둘 옳다구나 동조했으니까.
“맞네. 드미르가 뭔가. 세상 사람들 잡고 드미르가 뭐냐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 못 할걸세.”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막시와.
“하하핫! 하긴 좀 그렇긴 했어? 드미르라니, 무슨 드워프 이름도 아니고.”
“어? 드워프 이름 맞는데요? 몰랐어요, 뇌명님? 공방주님이 부리는 스켈레톤 드워프 이름이 드미르잖아요.”
뇌명과 김진아의 대화까지.
“그래? 꺄하하하! 무슨 자기 소환수 이름을 길드명으로! 여, 주인. 그렇게 지을 게 없었어?”
플로아가 배꼽을 잡고 웃기까지 한다.
빵 터져서 웃는데, 그게 그렇게 웃긴 일인가?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드미르 무시하지 마라, 플로아.”
“끄흐흡! 알겠어. 장난이야, 장난. 끄흡! 힉!”
“후.”
말을 말아야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뭐.’
다들 그렇다는데.
바꿔야지.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김진아 말마따나,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되었을 때 드미르라는 이름은 직관적이지 못한 감도 있었으니까.
드미르라는 이름에 크게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이런 부분에 고집도 크게 없는 성격이었다.
“자자, 그럼 각자 의견을 모아볼까요?”
그렇게 우리는 김진아의 주도로 의견을 모았다.
먼저 뇌명(雷鳴)의 발언.
“길드 이름은 무조건 강해야 해. 마왕군이나 천마신교처럼. ‘마’(魔)나 ‘천’(天) 같은 단어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으음……. 우린 세니까 ‘최강’(最強) 어때?”
그녀가 마음에 든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감 딱 좋지 않아? 최강! 크으으! 오지는데?”
파지지직!
흥분한 듯 몸에 전류까지 튀겼다.
“…….”
모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뭔가 웃고 싶은데 뇌명이 고랭커라 함부로 못 웃는 그런 느낌.
“푸후웁!”
그래서 내가 비웃어줬다.
아까 ‘드미르’ 보고 뭐라 해서 웃은 건 절대 아니다.
“최강이 뭐냐?”
진짜 다른 이들을 대신해서 웃어준 거다.
남들이 못 하는 걸 먼저 솔선수범하는 것.
그게 바로 리더의 덕목 아니겠는가?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최강이 뭐냐, 최강이?”
“뭬야?!”
“차라리 무적(無敵)이나 울트라(Ultra), 슈퍼(Super) 이런 거로 하지 그래?”
“……오, 좋은데?!”
“…….”
이건…….
진짜 말을 말자.
내 작명 센스가 좋다 할 순 없지만.
플로아는 진짜 아닌 거로.
내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자.
“음, 큼큼.”
기소율이 목을 가다듬었다.
“오, 생각나는 거라도 있으세요, 암제님?”
김진아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모름지기 길드명이란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상징성.
“마왕군도 천마신교도 결국, 그 수장인 잭 스미스와 하세라를 가리키고 있죠. 제 오빠인 기파랑도 그래서 파랑으로 했구요. 백돈도 길드 이름이 백돈이죠.”
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따라서 우리 길드도 동훈 씨를 상징하는 그런 이름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요. 큼큼, 그런 의미에서 골왕(骨王)은 어때요……?”
?
잠깐.
……뭐, 뭔 왕?
“아니면, 무덤이나 묘지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뼈는 원래 그런 곳에 많으니까…….”
“…….”
아니, 날 생각하는 마음은 감사하다만.
이건 아니잖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푸하하하하! 골왕, 골왕이래. 캬하하핡! 무덤? 묘지?”
플로아가 먼저 선제 웃음을 터뜨렸다.
눈에 눈물까지 맺혀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이 상황이 너무 웃긴가 보다.
막상 대답한 기소율의 표정이 아직도 진지한 게 더 큰 웃음 포인트다.
‘하아.’
나는 이렇게 착잡한데 말이지.
그냥 드미르로 가야 하나?
“유토피아는 어떤가?”
카푸가 말했다.
“유토피아요?”
“꼭 모든 집단이 그 수장을 상징하는 이름을 가진 건 아니다. 요컨대 옥스퍼드 마탑은 그 마탑에 상징성을 두고 있지.”
“그건 또 맞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푸는 항상 굳건하니 나를 인도해 주는 랭커.
역시 든든했다.
“그래서 난 이곳 무릉도원에 그 상징을 두면 어떨까 한다. 무릉도원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유토피아니까.”
“오호? 이번 건 좀 괜찮은데?”
한참을 웃던 플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네요.”
“나쁘지 않구만.”
다른 헌터들도 이번 아이디어는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드미르와 엘드린이 합작하여 만들고 있는 도시는.
그 골조만 봐도 길드의 상징이 될 정도로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부공방주.”
카푸가 이번엔 김진아를 바라봤다.
“부공방주는 의견 없나?”
“저요?”
“그래, 평소 꿈이었으니만큼 생각해 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으음, 저는요. 사실 하나 있긴 해요.”
김진아가 정자 밖 절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도 카푸 말에 동감해요. 상징이란 게 꼭 사람한테 두지는 않아도 되는 거니까……. 사실, 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 도시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죠.”
정장을 입고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발성에는 어쩐지 울림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목소리랄까?
“바로 별천지(別天地).”
“……별천지?”
모두가 멍하니 김진아를 바라봤다.
나 역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무언가 심장이 뛰었다.
“현대에서 ‘별’은 곧 랭커를 은유하는 말이에요.”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앞으로 우리 길드가 랭커들로 가득 차게 될 거라는 의미와 이 도시의 풍경을 더하여 만든 이름, 별천지. 어때요?”
“…….”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투표할 필요도 없었다.
다들 그 이름에 묘한 이끌림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좋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천지(別天地)로 하죠. 보아하니, 더 좋은 의견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공방주님이 승인했으니, 그럼 된 거죠?”
김진아가 주변을 쓱 돌아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스.”
그녀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호흡을 내뱉었다.
“그럼 내일부터 협회에 등록하고 길드 출범을 위한 공식 절차를 밟을 예정인데,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공방주님?”
“그렇게 하세요.”
내 깔끔한 대답과 동시에.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길드 마스터님!”
김진아의 호칭도 바뀌었다.
공방주에서 길드 마스터로.
* * *
[‘드미르 공방’ 기존 이름 버리고, ‘별천지’(別天地)로 탈바꿈!] [세계의 주목인 스켈레톤 킹, 새로운 길드 출범. 과연 성공할까?] [별천지(別天地)! 주간 화제성 1위 등극!] [길드 가입 조건은 A급 헌터 이상! 굉장히 까다로운 대신 대우는 업계 최고!]길드 이름 변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내가 어디 나가서 [안녕]이라고 인사만 해도 기사에 실릴 정도긴 하다.
그 홍보 효과를 김진아가 자연스럽게 노린 거다.
집중 받을 때, 무언갈 하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가 인식할 수 있으니까.
“끌끌, 거보아라. 내 뭐랬느냐.”
쿨타임이 끝나 불러낸 노인이 웃었다.
“그 처자, 상재(商才)가 있다 하지 않았느냐. 본능적으로 안 게지. 지금 집단을 내세우면, 저렴하게 전 세계적인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지금껏 참았던 김진아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친다.
[별천지(別天地)에 또 다른 국내 랭커 합류!] [그 주인공은 랭킹 896위 드루이드와 랭킹 905위 아수라!] [충격! 하룻밤 사이에 하이 랭커에서 600위 랭커가 된 쇠주먹. 그 역시 별천지 합류!]김진아는 쇠주먹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나라면 시한폭탄 같은 봉재영은 굳이 받지 않았을 텐데.
“끌끌, 그 정도쯤이야 통제할 수 있다는 거겠지. 아니면, 그 멍청한 쇳덩이 놈을 보고 또 다른 부분을 파악했을지도. 크으, 볼수록 비상한 처자로다.”
김진아의 강점은 직관력이다.
과거 E급 헌터였던 내 모습을 보고 미래를 걸었던 것 보면 답 나오지.
그녀는 봉재영에게 무엇을 보았을까?
[파랑의 명궁(名弓) “별천지 창설 축하.” 동생 소속 길드에 심심한 응원.] [무소속 장대웅. “주동훈, 멋진 길드 만들길 바라.”] [해외 랭커들도 잇따라 축사와 화환 보내.] [러, 대통령 “별천지와의 관계가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서울 오성(五星)도.
블라디미르도.
시련으로 알게 된 랭커들도.
소식을 듣고 축하의 말이나, 선물을 보내왔다.
그 외 협력 업체나, 소속 랭커들의 지인들까지…….
압구정에 있는 건물이 화환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
“과연, 네 녀석은 나와 다르구나.”
그 과정들을 일일이 지켜본 노인이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독고다이였느니라. 싸움이든, 집단이든…… 그런 것 없이 모든 것을 홀로 짊어졌었는데, 네 녀석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
“…….”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놈아. 나 역시 네 녀석을 보며 배우는 게 많아.”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혼자가 좋은 게 아니란 말이다. 나 역시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고집이 너무 셌어.”
으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노인의 목소리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가 살짝 묻어났다.
하지만 그뿐.
“다만.”
다시 평정심을 찾은 노인이 말했다.
“모름지기 한 집단의 수장이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느니라. 조금만 관심을 떼어 놓아도 부패하는 게 집단이니……. 알겠느냐?”
“예, 어르신.”
물론, 집단에 크게 관심은 없다지만.
그래도 도의적 책임이란 게 있다.
수장에 자리에 올라 놓고, 아예 나 몰라라 하는 건 책임감이 없는 것이니.
“뭐, 저번에 말했다시피 그 김진아라는 처자가 딱 재상감이라. 그럴 확률은 희소하겠다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면, 잘 꾸려봐야죠.”
“그래, 그 마음 변치 말거라. 딱 보아하니 그 처자, 네놈 밑에서 일하려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터이니.”
아니, 제가 뭐 어때서요…….
라고 말하기엔, 최근 김진아의 주량이 더욱 는 느낌이라.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내가 만든 새로운 길드.
별천지(別天地).
‘크.’
마음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