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4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44화
투신 (1)
“……주인.”
읊조리는 무각의 표정이 무언가 후련해 보였다.
“과연, 그런 거였나? 방금 주인의 움직임을 보고 깨달았다.”
무진(武進).
내 새로운 비기를 보고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까?
그럴 확률이 높았다.
무각과 나는 소환수와 주인의 관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어느 정도는 연결되어 있거든.
“만류귀종이라. 그래, 주인. 어떠한 물줄기든 결국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되는 것이었어. 난 왜 여태 그것을 모르고, 주먹만을 고집했을까.”
무각의 발이 사도의 팔을 걷어찼다.
당황하는 사도의 복부를 향해.
퍼어억!
무각이 주먹을 꽂았다.
– 크흐…!
주먹은 사도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움찔, 흔들리는 사도의 몸뚱이를 무각은 놓치지 않았다.
콰아앙!
발로 안면을 가격했다.
콰아앙!
주먹으로 턱을 후렸다.
– 크허어!
사도가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회복도 잘 안 되고, 고통을 느끼는 걸 보니 제대로 공격이 먹히는 모양.
“……결국, 주먹이든 발이든. 스승님은 똑같은 방법을 가르치셨던 거야.”
무각이 나를 쳐다봤다.
그 검은 눈동자에는 감사함, 그리고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고맙다, 주인. 그런 기술을 보여줘서.”
그 순간이었다.
어어?
내 눈동자가 커졌다.
벌써?
“투신의 인정을 받아 뭐하겠나! 이미 이 두 주먹과 두 발로 투신의 인정을 받은 놈들을 묵사발 내고 있는데 말이야.”
콰가가강!
다시 한번 무각의 연격이 펼쳐졌다.
기존과는 다른 기세에, 회색 괴수들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 크륵, 강하다.
– 과연 무각인가?
무각은 원래 투신의 인정을 받았던 자다.
그것도 무려 100년 전인, 1세대에.
그런 그가 100년간 수련에 임했다.
또한, 발이 아닌 주먹까지 쓴다.
즉, 실력으로만 봐도 사도 중에서 선배격이란 말씀!
“좋아.”
내가 환하게 웃었다.
애초에 이런 그림을 원했다.
사도들을 훈련에 이용해.
뽕이란 뽕은 다 뽑아먹고 알뜰하게 마무리하는 그런 그림.
“같이 조져보자고.”
타앗!
내가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나의 무진(武進)과 무각의 무진(武進).
이제 던전을 마무리 짓고 나가서.
지구 상황이나 다시 판단해 보자 다짐할 찰나.
[주의! 주의! 주의!]새빨간 메시지가 시야를 채웠다.
“음?”
멈칫한 내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멈칫하기 전에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나와는 ‘격’(格) 자체가 다른 존재의 느낌.
그 느낌이 드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
나는 온몸이 굳는다는 경험을 체험해야 했다.
‘저건.’
한 사내였다.
마치 신선처럼 구름 위에 앉아 호리병을 들고 있는 사내.
도복 사이로 드러나는 복근과 우락부락한 팔뚝만 봐도 강해 보이는데.
‘그냥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그래.
적어도 사도라 불리는 회색 괴수들을 봤을 때는 그래도 싸워볼 만한 의지라도 생겼었다.
근데 이 존재는 뭐랄까.
눈앞에 두고도 무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미친.”
마치 용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무력감.
이빨이 떨리고, 근육이 떨렸다.
무서워서?
아니었다.
그냥.
인간이라는 종(種)이 가진 본능이었다.
보다 상위 존재를 봤을 때의 경이로움.
“……투신.”
굳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투지를 뿜어내던 회색 괴수들도 움직임을 멈췄고.
무각도 입을 꾹 다문 채, 넋 놓고 그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좌’의 본체를 처음 마주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뤄냅니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
[보상이 도착합니다!] [기력이 1,000 증가합니다!]보상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눈앞에 당장에라도 날 먼지로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는데, 보상이 무슨 소용일까.
절로 눈이 아래로 내리깔리려는 걸, 억지로 고정해 그 존재를 주시할 때였다.
“고대 마법이 말했던 존재가 너였군?”
투신이 거만한 눈길로 입을 열었다.
“구신(舊神)의 파편인가 뭔가.”
투신의 시선이 몸에 닿았다.
그것만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피부에 있는 모든 털이 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딴 것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나의 사도들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지녔으니……. 어떠하냐?”
스윽.
말을 하던 투신이 호리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벌컥, 벌컥!
목구멍을 통해 그 안에 들어있던 액체가 들어갔고.
그 순간 알코올 향이 코끝에 확 풍겼다.
“내 사도가 되겠느냐?”
사도?
그 말은 나 또한 투신의 인정을 받았다는 말일까?
‘으음.’
내가 이를 오도독오도독 갈고 있을 때도.
시야 한쪽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화(火)의 정수가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구깁니다.] [고대 마법, 그 빌어먹을 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게 분명하다 합니다.] [목(木)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기억할 성좌라고는 아카식 레코드뿐이니…….] [수(水)의 정수가 차라리 잘 되었다 합니다. 어차피 벌레 인생. 성좌의 발닦개라도 될 수 있으면, 그게 성공 아니겠느냐며 비웃습니다.] [화(火)의 정수가 제발 그 아가리 여물라 합니다.] [목(木)의 정수가 진정하라 말합니다.] [목(木)의 정수가 빨리 선택하라 합니다.] [더 이상 늦었다간 계약이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금(金)의 정수가 어차피 예비 계약자는 우주에 수없이 널려 있으니, 괜찮다고 합니다.]‘계약?’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화(火)의 정수가 고민합니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화(火)의 정수가 찬성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코웃음 칩니다.] [목(木)의 정수가 그럼 2:2 동률이라 합니다.] [목(木)의 정수가 당신을 바라봅니다.]스화아앗!
그 순간 역했던 알코올 향이 사라지고, 상큼한 숲 향이 공간을 지배했다.
떨렸던 몸이 가라앉고, 긴장했던 심신이 안정되는 피톤치드의 느낌.
“후우.”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투표는 동률. 목(木)의 정수가 선택은 그대의 몫이라 말합니다.]선택은.
나의 몫?
[화(火)의 정수가 미소 짓습니다.]동시에.
화(火)의 정수의 의지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성좌를 이길 수 없다.
– 우리의 원칙에 따라.
– 널 도울지 말지는 네 선택에 달려 있으니.
– 선택하거라.
– 도움을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
그 의지에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자애가 담겨 있었다.
– 단.
– 도움을 받을 경우엔 각오해야 한다.
– 저번에 겪었다시피, 엄청난 고통을 동반할 수 있으며.
– 또한, 진기를 깨뜨릴 수 있다.
‘진기……라면?’
선천진기(先天眞氣).
누구나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생명의 기운을 말하는 건가?
– 네 ‘격’은 우리에 비해 한참이나 낮다.
– 낮다 못해, 수(水)가 말하는 것처럼 먼지 그 이하도 아닌 수준이지.
– 그런 네가 우리의 기운을 받다가는 자칫하여 소멸하거나 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어서일까?
– 그렇기에 신중히 선택하여라.
선택.
“으음.”
상황이 배수진이긴 한데.
또 배수진이라 할 수는 없다.
등지고 있는 물에도 살길이 있는 느낌?
“왜 대답하지 않고 있느냐?”
눈앞의 투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 사도가 되겠느냐고 묻지 않느냐?”
그냥 투신의 사도가 되면 끝나는 거잖아?
무각의 말에 따르면 사도가 꼭 이곳 세상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내가 물었다.
“투신님.”
“오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사도가 되면 저 역시 저 회색 괴물들처럼 변하는 겁니까?”
“……음?”
예상치 못했다는 듯, 투신이 중얼거렸다.
“……신기한 놈이로군? 싸움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놈이라니.”
아.
하긴.
저 싸움귀들이 외형 생각하고 사도를 마다했을 리 없지.
당장 무각만 하더라도, 최종 목표는 투신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으니.
이내.
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싸움에 가장 최적화된 육체를 선사 받는 게지. 그 몸으로는 우주를 거닐 수도 있으며, 네 연약한 몸뚱이와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할 게다.”
아아.
사도가 되는 순간, 영혼의 형태가 변한다는 말이구나.
징그러운 회색 괴수로.
그럼 결정됐네.
“싫습니다.”
“……뭐라?”
투신이 잘 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싫다고요.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요. 아무렴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지키고 싶어요.”
동시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火)의 정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제스처.
[화(火)의 정수가 그대의 선택을 받아들입니다.] [목(木)의 정수가 그대의 선택을 받아들입니다.]나는.
그냥 투신과의 싸움을 선택했다.
* * *
“흐으응.”
지하 소굴.
배경에 맞지 않는 호화로운 의자에 한 여성이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칼리페나.
세계 랭킹 12위의 하이 랭커로, 바다의 여신(Doris)이라 불리는 여자.
“신생, 별천지(別天地)를 쳐서 제가 얻는 이득이 뭐죠?”
스릅!
그녀가 우아하게 와인을 넘기며 물었다.
“아무리 그곳 길드장이 행방불명이라지만, 아직 세계 랭킹 게시판에도 건재하고 있고. 또한 그곳은 마탑주 소피아가 찍은 곳이에요. 저보고 그런 곳을 치라고요? 뭐, 광전사나 뇌명. 이런 애들은 내 밥이긴 하지만.”
존대하고 있지만, 그 물음은 날카롭다.
맞은편의 닉 자칸은 그 목소리에서 차가운 냉기를 느꼈다.
하지만.
이 정도에 물러날 거면, 수소문해서 지하 소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매력 있는 것이죠.”
“……흐응?”
그녀가 손에서 와인잔을 계속 굴렸다.
계속 설명해 보라는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칸이 말을 이었다.
“칼리페나께선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주동훈이 왜 그렇게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마탑주, 델라일라를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이 그를 따르고 있는지?”
자칸은 그녀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했다.
“제 생각엔 별천지에 그 해답이 있어 보입니다.”
“증거는요?”
“없습니다.”
자칸은 당당하게 말했다.
“다만, 심증은 충분합니다. 여기 기록을 보시면, 마탑주가 매주 서고의 책을 별천지에 가져다 바친다는 찌라시가 있습니다. 무려 하이퍼 랭커인 그녀가 굳이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흐음.”
“게다가 원래 10%의 심증만으로도 움직일 가치가 있는 게 ‘기연’이지 않습니까? 또 그것과 별개로 별천지에는 부수물도 많습니다. 공방 사업도 잘돼서 돈도 무진장 많다고 알려져 있고요.”
“그건 맞죠.”
칼리페나는 길드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천마신교나 마탑, 마왕군 같은 빅3는 건들지 못하겠지만.
신생이든, 명문이든 하나를 찍으면 칼같이 작업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악당 of 악당.
“기연이 궁금하긴 하단 말이죠? 어떻게 1,000위 밖에서 바로 하이 랭커가 되었을까. 소피아나 델라일라가 감싸고 도는 것도 수상하고.”
스릅.
칼리페나가 혀로 입술을 할짝였다.
“뭐, 요즘 딱히 건드릴 곳 없긴 했는데. 흥미가 생기는데요?”
씨익.
그녀가 웃었다.
‘별천지라.’
돈, 기연.
게다가 길드 마스터가 없는 지금.
악랄한 그녀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방법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능력 있는 부길드장도 있고 말이죠?”
“아아?”
자칸이 고개를 들었다.
“설마……?”
그러고는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인질 납치?”
별천지를 일구다시피 한 부 길드 마스터 김진아의 위상은 유명하다.
특히 대외적인 일은 주동훈이 아닌 김진아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기에.
거의 랭커급으로 유명한 게 바로 김진아다.
그런 김진아를 인질로 잡으면?
“후후,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투욱.
칼리페나가 와인잔을 내려두었다.
“본래 작업이란,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둬야 하는 거거든요. 주동훈이 복귀했을 때나, 마탑이 개입했을 때도 생각해 둬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기연이란 게, 주동훈 없는 별천지를 친다고 나오겠어요? 차라리 능력 있는 애 하나 잡아뒀다가 협상하는 게 낫지.”
“……과연, 한 수 배웁니다.”
“뭐, 그쪽 길마가 정 없는 성격이라면 통하진 않겠지만, 저야 못 먹어도 지르는 스타일이라. 후후.”
탁자에 흐물흐물 기댄 칼리페나가 매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우아하게 손짓했다.
“어디 한 번 더 자세히 얘기 좀 나눠볼까요? 마음에 들면 콩고물 정도는 약속할 수 있으니.”
“환영하는 바입니다.”
지하 소굴에서 본격적인 밀담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