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7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70화
파괴룡의 냄새
“마, 마탑주님……?!”
협회장 아이라가 놀라 입을 벌렸다.
이곳은 세계 정상들과 각국 협회장들, 그리고 하이 랭커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이다.
그런 곳에 저렇게 아무런 기척 없이 등장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녀도, 다른 랭커들도.
갑자기 등장한 소피아를 향해 눈을 힐끔거렸다.
세계 최강자 중 하나로 항상 꼽히는 그녀를 조금이나마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이야, 얘 웃기는 애네? 이제 와서 마탑주님이라니. 현자, 현자 거릴 때는 언제고?”
“그, 그게.”
아이라가 땀을 삐질 흘렸다.
‘보셨나?’
흥분해서 좀 과격하게 하이퍼 랭커들을 찾았던 걸 그녀가 본 듯했다.
마탑주면 세계 랭커들 중 최연장자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아이라가 아무리 세계 헌터 협회장이라 한들, 마탑주 앞에서는 보름달 앞의 반딧불.
몇 수, 아니, 몇백 수 접어줄 수밖에 없다.
아이라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자, 소피아가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후후, 농담이란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러니? 명월여신(冥月女神) 아이라, 네가 세계 헌터들의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심지어, 우리 초면도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그럼 우리, 인사는 빠르게 생략하고 현안부터 파악해 볼까? 상황이 상황이니까.”
쿠우웅!
회의실 중앙에 선 소피아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찍었다.
우우웅!
“……!”
그러자 지팡이에서 황금빛이 솟아오르더니, 대략 98인치 크기의 대형 TV 모양의 홀로그램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쿠구구구……!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괴수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찍히고 있었다.
“저, 저건……!”
“저게 이번 사태의 그 괴수입니까?”
“크기는 얼마나 되는 겁니까?”
“더 자세히 볼 수는 없는 겁니까?”
순식간에 회의실이 시끌시끌해졌다.
그럴 수밖에.
강도 높은 지진 때문에 근처에 가보기도 힘들었던 괴수의 본체를.
마탑주는 마법 하나로 스캔하고 있었으니까.
시야가 가려져 답답했던 그들의 가슴을 한 방에 뚫어준 셈이었다.
“협회 조사 기구의 정보가 맞아.”
마탑주가 입을 열었다.
“얘는 내 마법으로도 감히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힘을 품고 있어. 게다가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점점 더 잠자고 있던 기운을 일깨우고 있지.”
“그, 그 말은 지금 저 힘이 끝이 아니라는 겁니까?”
“정확한 건 나도 몰라. 정황상 이제 곧 대지 위로 모습을 드러낼 테니, 그때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
침착하고 여유롭게 대꾸하는 마탑주였지만.
부들부들.
지팡이를 잡는 그녀의 손목은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 * *
재앙과 같은 괴수의 출현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세계 전쟁급의 불안감 때문에 증시가 폭락했고, 식량과 원자잿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 유카탄 괴수발 금융 쇼크! ㄷㄷ
└ 지진도 문제지만, 물가도 문제임……. 모든 사람들이 현물을 사들이고 있음. 이러다가 괴수한테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을 수도. 당장 시장 나가도 살 식량이 없어.
└ 괴수만 잡으면 끝나는 거 아닌가?
└ 맞아, 랭커들은 뭐 하냐? 괴수 안 잡고. 여태껏 사회적으로 국빈 대우를 받았으면, 그만큼의 의무 또한 따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 그게 문제가 아님. 마탑주가 회의에서 발언했잖아. 그분조차도 감히 힘을 추정할 수 없는 급의 괴물이라고.
└ 그럼 ㄹㅇ 지구 종말임?
└ 그런 듯. 사실상 14년이면 오래 버텼지.
전 세계인들이 벌벌 떨었다.
종말론이 퍼지며 세상이 들썩였고, 각종 사이비 종교가 출범했다.
건전하고 정직하게 경력을 쌓던 젊은이들이 좌절했고.
전국의 범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 괴수를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단순한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탑주가 빡세다고 선언했는데, 그 누구를 탓하랴?
마왕이나 천마가 있었지만, 애초에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갑자기 나타난 종말급 괴수를 잡아야 할 어떠한 책무도 없으며, 그 누구도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며칠 후.
쿠과가가가!
유카탄반도 정중앙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갈라진다는 표현보다는 찢어진다는 게 맞겠다.
위성 레이더를 통해 보인 바닥은 말 그대로 종이가 찢어진 듯 아작나 있었으니까.
동시에.
“위성에 잡혔습니다!”
회의실 해양 전문가가 외쳤다.
“바닥을 뚫고 나오는 괴수는…… 어어, 도마뱀? 아, 아니…… 저건 날개 달린 저것은……!”
상황실에 비추는 화면을 본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 크롸라라라라!
막대한 포효와 함께 날개를 펄럭이는 그것은 도마뱀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대했으며 웅장했으니까.
“저, 저건.”
모두의 낯빛이 회색으로 변했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용?”
“드래곤?”
“저, 저건 여태껏 던전에서도 한 번 등장한 적 없다는…… 전설 속의 용 아닙니까?!”
그렇다.
저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용(龍).
대중 매체나 만화, 소설 등에서 등장하던 용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크기부터가 말이 안 됐다.
보통 용의 크기라고 하면 아무리 커봐야 동네 뒷산 정도? 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야 그 정도였을 텐데.
“무, 무슨 용이 위성에서 보일 정도란 말인가!”
“저 정도면 거의 도시만 한 크기 아니오?”
“저런 게 땅에서 꿈틀댔으니 지진이 날 법도 하지!”
“저딴 걸 어떻게 상대해!”
모두가 알았다.
모두가 피부로 느꼈다.
저 용은 강하다.
그냥 강한 게 아니라, 정말 지구 종말급으로 강하다.
“……이런.”
마탑주, 소피아 실버스톤도 당황했다.
‘용이라고?’
세계 랭킹 4위인 그녀도 용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델라일라를 통해 그 존재만을 들어봤을 뿐.
‘이 지구에도 용이 있었단 말이야?’
파즛!
“끄흣!”
마력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소피아가 신음을 내질렀다.
용의 등장과 함께 탐색 마법이 끊겼기 때문.
‘미쳤어.’
다른 사람들도 떨고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공포는 그 이상이었다.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저 힘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기가 질린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장로.”
그러고는 옆에 따라온 장로에게 말했다.
“현 시간부로 전 마탑의 인원을 소집한다! 이건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따질 문제가 아니야. 말 그대로 지구의 종말이 걸려 있을 수도 있는 문제다!”
콰가가가가!
용이 허공으로 날아오름과 동시에 지진은 멈췄다.
진동의 여파가 남아 있긴 했지만, 이전처럼 땅이 흔들리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 크롸라라라라!
잠에서 깨어난 용의 포효는 근방 생존자들에게 죽음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들였다.
* * *
쿠구구……!
오래간만에 느끼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 크르르르……!
짙은 갈색빛의 용이 울부짖었다.
용의 정체는 바로 지수룡(地守龍) 브리아스.
허공에 뜬 브리아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서늘할 만큼 살벌한 눈빛으로 대지를 오시했다.
– 오랜만이군. 얼마나 잠에 빠졌던 거지?
후웅, 후우웅!
잠든 세포를 깨우기 위해 계속 날갯짓을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대충 시간의 흐름이 6,600만 년 정도 흘렀다는 것을.
– 으음.
용족이라 할지라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기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마지막 용족대전(龍族大戰) 이후, 자신의 모든 힘이 봉인되었음이니…….
그 덕에 육체의 노화가 더디게 일어난 것이었다.
피식.
용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과연, 결국…… 그렇게 된 것이었나?
이곳에 살아남아 숨 쉬고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는 것은 딱 하나를 의미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용족이 죽었다는 뜻.
지수룡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용족은 어쩔 수 없는 존재다.
용의 영역은 끝이 없을 정도로 거대하여, 세상을 모두 담아도 만족할 수 없기에.
한 세상에는 꼭 하나의 용만 존재해야 하기에.
둘 이상이 존재하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족속인 것이다.
– 하지만.
쿠구구구.
지수룡의 미간이 좁아졌다.
– 이 세계에 아직 용족의 잔재가 남아 있군?
동시에 깨달았다.
왜 잠들어 있던 자신이 깨어났는지.
편안했던 동면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일어섰는지.
– 용의 냄새.
이는 생존 본능이었다.
– 그것도…… 파괴룡의 냄새.
아아.
브리아스는 전율했다.
파괴룡이 무엇이던가!
용족의 재앙이자, 태어나는 순간 그 주변 용족을 다 잡아먹는 포식자.
– 큰일 날 뻔했군.
같은 용족임에도 용족의 천적이라 불리는 존재.
다행인 건, 그 파괴룡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 그렇다면 초룡이라는 건데…….
그러면 해볼 만했다.
자신은 고룡 중 고룡.
그것도 용족대전(龍族大戰)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정도로 강력한 용이다.
파괴룡이 성룡까지만 가도 힘겹겠지만, 초룡이라면.
다른 말로 해츨링이라면, 상당히 쉬워진다.
아무리 강력한 포식자라 할지라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새끼는 약한 법이기에.
– 키롸라라라라!
잠에서 깬 용이 흉포하게 포효했다.
* * *
그 시각.
– 크롸라라라!
귀엽게 포효한 비나사가 날카로운 이빨로 오우거의 머리를 뜯었다.
푸확!
피가 터지고 뇌수가 흘렀다.
그런데도 녀석은 신난다는 듯 살육을 일삼았다.
내가 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잘했어.”
녀석이 파괴한 만큼, 빠른 속도로 성룡이 될 수 있다면.
웬만하면 녀석이 경험치를 먹는 게 낫다.
“후.”
저벅, 저벅.
중앙에 느껴지는 보스의 기운 주변 곳곳을 거닌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던전 크기가 예상보다 더욱 컸다.
곳곳에 있는 트랩도 제법 성가셨으며, 동굴 미로도 복잡스러웠다.
“이놈아.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 머물 작정이더냐?”
일주일 동안 노인도 파괴룡의 힘을 체감했다.
초룡의 육체는 오우거 발톱 따위로는 찢기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드래곤 피어는 과연 용이 왜 용인지를 보여줄 만큼 위대한 광역 군중 제어기(CC기)였다.
또한 초룡언은 어떤가?
내가 주술에 들이는 노력이 무색할 만큼 다채롭고 화려한 마법을 선보였다.
왜 용이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아린이도 비나사의 마법을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했다.
“이제 볼 만큼 봤으니 나가도 되지 않더냐? 이 징그러운 육수 덩치들의 내장만 보고 있자니, 속이 다 역해지는 느낌이니라.”
“저도 나가고 싶기야 한데…….”
아쉽게도 나갈 방도가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던전 입구 자체가 막혔기 때문.
그 말은.
“보스가 빨리 잡혀야 나가든가 말든가 하거든요.”
던전 임무 자체를 클리어해야, 입구가 생긴다는 말.
바다 길드 멤버들의 행보는 속이 답답할 만큼 느렸다.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 그냥 네놈이 잡아버리면 안 되는 게냐?”
“에이, 어떻게 그래요.”
나는 약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S급 던전 입찰권을 따기 위해 얼마나 힘든 노력을 했을지 아는데.
내가 강하단 이유로 보스를 휙 잡아버리고 나간다?
거의 애들 세뱃돈을 뺏는 느낌이지 않던가.
“아직 곳곳에 먹을 놈들이 많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요.”
태청심법으로 느끼길.
이제 저들도 곧 보스 방에 근접한다.
꽤 쉽지 않은 던전이었을 텐데, 꾸역꾸역 협동하여 보상을 눈앞에 둔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 준 것도 있었다.
아예 가망조차 보이지 않았으면, 그냥 나서서 정리해 버렸을 텐데.
– 키엑, 키에엑!
벌써 구석에 있는 오우거 군단을 다 정리하고 온 비나사가 키엑거리며 울었다.
빨리.
더 맛있는 걸 내놓으라는 울음.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두 머리 석상’을 건듭니다!] [특수 조건을 달성합니다!] [던전 내부에 보스, ‘트윈 헤드 오우거’(SS급)가 등장합니다!]“엉?”
내가 놀랐다.
SS급이라고?
‘SS급이면, 성좌의 파편 급이니…….’
바다 길드 멤버들로는 턱도 없을 텐데?
문득.
“끼약!”
“으허억!”
“마, 말도 안 돼!”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내 귓가로, 헌터들의 비명이 들렸다.
‘허어.’
이거.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구먼?
스윽.
답답해서 벗어둔 가면을 다시 고쳐 쓴 내가 방향을 틀었다.
– 끼루루루루!
비나사가 신나는 듯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