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41)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41화
아포피스 (3)
옥스퍼드 마탑.
꼭대기 층, 마탑주실에서.
델라일라와 소피아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예전부터 친했던 둘은 가끔 시간을 내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만담을 즐기곤 했다.
“으음?”
두런두런.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마탑주가 고개를 들었다.
우우웅!
그녀에게 직속으로 도달한 마법 전서구, 투명한 비둘기가 그녀의 앞에서 날개를 퍼덕였기 때문.
“……이건.”
소피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는 동맹관계인 별천지(別天地)에서 보낸 것으로, 엘로이즈 아린이 직접 사용한 마법이다.
각별한 보안을 요하는 소식을 전할 때 쓰곤 하는 것.
“무슨 일이에요?”
“잠깐만.”
촤르륵!
그녀가 비둘기에 손을 대자, 종이 펼쳐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 양피지로 변했다.
그곳에 쓰여 있는 내용은…….
“허.”
빠르게 읽던 소피아는 문득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 향후 1년.
– 델라일라가 말했던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큼.
– 인류의 종말(終末)이 우려됨.
– 별천지, 마왕군, 천마신교, 마탑, 세계 협회 다섯 집단은 혹여 벌어질 사태에 대비해 전력을 다해 힘을 기를 것.
– 그 외 델라일라에게도 연락하겠음.
– 스켈레톤 엠페러, 주동훈 보냄.
‘결국.’
델라일라가 느꼈던 게 맞는 건가?
어쩌면 예상했을 수도 있고, 내심 각오했던 일임에도 충격적이었다.
소피아는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델라일라를 바라봤다.
퍼드드득!
마침, 그녀 앞에도 마법 전서구가 도달했다.
“허어어어?”
역시나.
델라일라의 입에서도 바람 빠진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종말이라……. 동훈 씨가 뭔가를 본 걸까요?”
“글쎄, 자세한 얘기는 안 쓰여 있는데.”
“그가 헛소리할 사람은 아닐 텐데요…….”
“으음.”
소피아가 신음을 흘렸다.
델라일라의 말이 맞다.
주동훈은 신뢰해도 될 인물이다.
또한 그의 곁에는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엘로이즈 아린이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이런 전서를 보낸 거겠지.
델라일라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준비하긴 해야겠어요. 마왕이랑 천마, 명월여신도 만나 봐야겠네요.”
“세계 협회장에게도 말할 생각이야?”
델라일라의 비밀은 현재 10위 안, 하이퍼 랭커들밖에 모른다.
그에 비해 명월여신(冥月女神) 아이라는 세계 랭킹 18위.
우주며, 묘인족이며 하는 내용을 그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동훈 씨가 괜히 끼워놨을 리 없잖아요. 게다가 1년밖에 안 남았으면……. 슬슬 인류에게도 알리긴 해야죠.”
“허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약 10여 년 전, 세상이 뒤바뀌었을 때의 충격을.
인류는 다시 한번 받아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다행이에요.”
델라일라가 부드럽게 웃었다.
“매일 매 순간, 언제 터질까 불안한 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차라리 이렇게 터질 시기라도 알면 얼마나 좋아요?”
“후후, 긍정적이네?”
소피아가 웃었다.
사실, 그녀는 불안했다.
앞으로 벌어질 이 변화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지난 대혼란처럼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건 아닌지.
“변화는 늘 불안과 공포를 동반하죠. 하지만, 인류는 늘 그 변화를 극복하고 발전해 왔어요. 지금까지요. 이번에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요.”
소피아는 델라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류는 수많은 역경과 변화를 이겨내고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생존했다.
그리고 이번엔.
‘꼭.’
마탑이 그 생존의 핵심 중 하나가 되어야겠지.
“…….”
“…….”
화사했던 담화 현장의 분위기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으로 묵묵히 번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 * *
“우린 어떡하죠?”
김진아가 절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권선지의 예언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
“집단을 키우라는데, 그러면 랭커를 더 받아야 할까요?”
“아뇨.”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는 받지 마세요.”
“예?”
김진아가 눈동자를 크게 키웠다.
“백날 랭커를 받아봐야, 집단의 전력이 강화되는 건 아니잖아요.”
뭐, 물량으로는 강화될 수 있겠지.
하지만 질은?
글쎄올시다이다.
막상 나만 해도 그렇다.
이전의 나 10명이 강할까?
아니면 지금의 나 1명이 강할까?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더 세다고.
즉 중요한 건, 지금 있는 멤버들을 어떻게 키우느냐지.
새로운 멤버를 늘리는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일단.’
권선지는 지구 종말급 위기가 다가온다고 강해지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렇다는 건.
‘내가 뼈일이랑 뼈십이를 빨리 각성시켜야 해.’
할 수만 있다면.
강해질 수 있을 만큼, 강해져 놓는 게 좋으니까.
다만, 분명 권선지는 ‘집단’을 키울 것을 강조했다.
그 말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뜻.
“지금 있는 멤버들을 더 성장시켜야겠어요.”
“그렇다고 아예 받지 말라고요?”
“당연히 예외는 있죠.”
“예?”
“천재.”
“……?”
“진짜 얘는 천재다! 싶은 애는 받아도 좋아요.”
“……천재?”
김진아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의 천재요?”
으음, 정도라.
그 순간, 내가 피식 웃었다.
이제는 모르겠다.
그 천재라는 기준이 어떤 건지.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도 이제 그 천재의 반열에 들어선 것 같다는 거다.
어르신의 태청공재만성대법(太淸工材萬成大法)도 이제 그 기준치를 넘어선 것 같거든.
“적어도……. 저 정도?”
암.
그 정도면 받을 가치가 있지.
다만, 김진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허, 참……. 뭐, 그냥 받지 말라는 소린데요, 그건?”
“에이, 세상일은 모르는 겁니다?”
“에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걱정되겠지.
집단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인력 관리하는 부길마한테 더 이상 멤버를 받지 말라 했으니.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길마의 명령은 지엄하다.
그 명령 내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바로 부길마가 할 일 아니겠는가?
“그래도 위안이 되네요. 우리 멤버들 다들 잘해주고 있거든요. 광전사랑 뇌명도 맨날 치고받고 싸우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 같고, 용기사도 무사히 초룡을 길들였다고 하고, 또 도하랑과 에밀리도 아린 님의 직속 제자로 들어가 기초를 튼튼하게 닦고 있죠.”
“그래요?”
다들 잘하고 있네.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내 머릿속에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사실, 묘안이 하나 있습니다.”
“……묘안이요?”
“예, 우리 멤버들의 랭킹을 급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묘안이요.”
모든 랭커들은 시련을 바란다.
무작정 던전 탐험을 하는 것도 ‘기연’을 얻기 위해서이며.
강자와의 대결을 목도하려 노력하는 것도 다 강해지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시련을 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 내게는 엄청난 시련을 불러낼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서먼 아포피스라고.
“래, 랭킹을 올린다고요? 그것도 급속도로? 그런 방법이 있어요?”
암, 있지.
있고말고.
그 과정은 무진장 빡세겠지만.
“뱀을 잡으면 돼요.”
“……갑자기 뱀이요? 그 길쭉한 파충류, 뱀?”
김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빙긋 웃었다.
“일단, 다들 모이라 해봐요.”
* * *
휘이잉!
언제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훈련장.
“읏차!”
“흐아아압!”
그곳에는 각종 기합 소리가 가득했다.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훈련하는 별천지 멤버들의 모습이었다.
“크하핫!”
광전사, 장대웅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반대쪽에는 전류를 튀기고 있는 플로아가 보였다.
“많이 늘었구만! 이젠 제법 몸을 쓸 맛이 나!”
“젠장할, 힘의 70%만 쓰기로 한 거 아녔어?”
“60%만 썼다. 크하하핫!”
“아, 그래? 이 재수 없는 웃음광.”
세계 랭킹 41위, 뇌명(雷鳴) 플로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놈의 무식한 주먹을 상대하느라, 매일매일 골이 쑤시는 상황이었다.
후, 하고 옅은 호흡을 내뱉은 플로아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근데, 오늘은 무각이는 어디 갔어?”
“무각? 글쎄.”
장대웅이 고개를 살짝 꺾었다.
“어젯밤인가? 동생이 부른다며 가던데?”
“동생이면……. 그 주인 놈?”
플로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처음엔 내기 때문에 노예를 자처했지만, 이제는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는 자.
그의 노력을 곁에서 보고 있노라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좀 아쉬운 건.
“근데 그 주인 놈 말이야.”
“응?”
장대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좀 그렇지 않냐?”
플로아의 말에 장대웅이 눈을 좁혔다.
“갑자기? 뒷담화를 까자는 건가?”
“아니, 아니, 들어 봐. 솔직히 맨날 자기만 세지고. 발전하고. 우리가 따라가기가 힘들잖아, 따라가기가.”
“……그건 맞지.”
장대웅, 플로아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느끼는 사실이었다.
백날 훈련해 봐야 멀어져 가는 격차가 느껴졌으니까.
“특히 저번에 그거 봤지?”
“어제까지 무기 만들었던 거? 크하핫! 정말……. 위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
불과 하루 전.
모든 멤버들이 지켜봤다.
주동훈의 말도 안 되는 행사를.
땅을 흔들고, 불을 피우며, 온갖 마법과 스킬을 쏟아내는 광경은 마치…….
신(神)이 있다면 그 정도 파워를 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훈련장에 기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도, 그에 대한 충격 때문일 거다.
“솔직히 나 같은 경우는 말이야. 조국까지 포기하고 여기에 와, 상주하는 거거든? 그러면 좀 봐주기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만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훌쩍 세져서 나타나고. 그냥 아주, 우린 없는 사람 취급이야.”
“크하핫! 동생이 좀 바쁘긴 하지. 그래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 말아라. 우린 무각이 봐주잖냐.”
훈련을 멈추고 하는 둘의 대화에.
다른 랭커들도 힐끗거리더니, 동작을 멈추고 모이기 시작했다.
기소율부터, 도하랑과 에밀리.
쇠주먹과 투호.
봄사도, 쌍도, 컴투사, 절대무쌍, 영비 등등.
사실 그들은 무릉도원에서의 훈련으로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불이 바람을 만나면 더욱 활활 불타는 것처럼.
강해질 요건이 충족되자, 더욱 욕심이 났다.
‘우리도 길마님처럼 되고 싶어.’
‘빠르게 랭킹을 올리고 싶어.’
‘나도 어제의 그 엄청난 광경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다.’
랭커에게 있어서, 강해지는 것 이상의 즐거움은 없다.
아무리 지옥 같은 시련이 와도, 몸이 고돼도.
[강해진다]라는 일념 하나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 버틸 수 있다.그것이 바로 랭커인 것이다.
그러하니, 그들의 머릿속에 일종의 마구니가 끼기 시작했다.
‘사실, 뇌명님 말에 틀린 게 하나 없긴 해.’
‘앞서 나가고 있는 랭킹 선두로서 조금 도와줄 수 있는 거잖아?’
‘스켈레톤 말고, 진짜 랭커의 관점도 궁금하다고.’
강함에 대한 순수한 욕구가.
그들의 욕망을 불 지폈다.
“오늘은 뭔가 의욕이 안 나는데요?”
“그쵸. 가르치던 스켈레톤들도 없고.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건 아닐까요?”
“전 플로아 님 말에 동의해요. 길마님을 존경하지만, 서운한 건 서운한 거잖아요!”
그렇게 술렁임이 심해졌을 때.
스슷!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기, 길마님?”
영비(影秘) 니노마에 노아가 깜짝 놀라 딸꾹질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찌 이렇게 절묘한 순간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뿐이 아니었다.
스슷, 스스스슷!
그의 뒤로 등장하는 주동훈의 수하들.
‘설마 들은 건 아니겠지?’
‘제길, 여태 잘하다가 한 번 불만을 가진 것뿐인데?’
‘사실 난 불만 없긴 해. 다른 랭커들에 비하면 별천지가 꿀이긴 하지. 복지도 좋고, 연봉도 세고.’
뒷담화의 대상을 보자.
모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마구니가 사라지고, 눈빛에서 탐욕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랭커.
현실을 아는 거다.
고마움을 아는 거다.
“크, 크흠.”
얼굴이 시뻘게진 플로아가 멋쩍게 목을 가다듬을 때였다.
“여러분.”
길마가 입을 열었다.
“…….”
“들려드릴 소식이 있어요.”
“소식?”
플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크하핫! 동생 무슨 소식인데?”
장대웅도 궁금한 듯, 관심을 표했다.
“들려주기 전에, 요새 제가 여러분들에게 통 관심이 없었죠? 미안해요. 그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빠서 소홀했어요.”
“아, 아니.”
“소홀하긴 무슨. 우린 괜찮아요.”
“하하하, 농담도 참. 길마님이 소홀하긴 뭘 소홀해요.”
별천지의 멤버들이 앞다투어 소리쳤지만.
이미 그들의 속마음은 썩고 있었다.
‘젠장, 들었구나.’
‘씨부럴.’
‘어떡하지?’
‘아린 님한테 듣기로는 길마님이 뒤끝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이는 좀 색다른 두려움이었다.
진짜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존경하는 사람인데.
잠깐의 말 때문에 오해할까 생기는 두려움.
“여러분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치 못할 심정이나, 사실 맞는 말이거든요. 제가 요즘 많이 바쁘긴 했으니까요.”
“아, 아니라니까! 야야야! 주인 놈아! 좀생이처럼 왜 이래! 내가 잘못했어!”
“허허, 동생 오해야, 오해!”
“길마님! 진짜 오해예요!”
분위기가 묘하게 변해갔다.
‘좆됐다.’
플로아가 속으로 후회하며, 식은땀을 흘릴 찰나.
길마가 선언했다.
“그러하니, 이 길마는 여러분들에게 시련을 하나 던져줄 생각이에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참여는 자유. 단, 개인적인 사유로 참여하지 못할 경우……. 그냥 별천지를 나가주시면 됩니다, 하하.”
그런 그의 화사한 모습을 보며.
엘로이즈 아린의 제자, 도하랑과 에밀리는 생각했다.
‘진짜 아린 님 말이 맞았네.’
‘뒤끝 킹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