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4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44화
아포피스 (6)
쿠구궁!
마계.
상급 마왕 ‘모락스’(SSS급)의 영토.
기나긴 가뭄이 있었는지, 메마르고 척박해 보이는 땅 위에.
– 키에에엑!
– 크르르르르……!
수많은 마물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진열해 있었다.
“제군들.”
모락스의 병력을 바라보며, 중급 마왕 ‘잭 스미스’가 읊조렸다.
“준비됐나?”
당연한 말이지만 분위기는 흉흉했다.
하지만 그 적개심 속에서도 잭의 병력들에게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휘하 마물.
휘하 마족.
그리고.
마족이 되기로 한 마왕군의 랭커들.
그들은 예전부터 상급 마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상급 마왕’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모든 ‘중급 마왕’의 꿈.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너희 모두 한 차례 강해질 거다. 더 강력한 마기(魔氣)를 흡수할 수 있을 테고, 더 상위 랭커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되겠지.”
쿵! 쿵!
약 100여 명의 랭커들이 발이나 무기로 땅을 두들겼다.
말 없는 대답.
그 대답에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
꼭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
승리하여, 하세라가 빼앗은 랭킹 2위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겠다는 그 의지!
‘……그것보다도.’
마왕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어젯밤.
그에게도 엘로이즈 아린의 전서구가 도착했다.
스켈레톤 엠페러, 그 친구가 다섯 집단을 꼽았다지?
“후.”
짧은 호흡이 김이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우리 마왕군이 절대 밀릴 수 없지.’
하세라도, 주동훈도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상급 마왕의 힘만 얻어낼 수 있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오직 자신 혼자.
용족, 그것도 고룡과 비슷한 힘을 낼 수 있게 될 테니까.
“마왕군이여!”
펄럭!
잭의 외침에 맞추어, 마물 중 하나가 깃발을 펄럭였다.
그 신호를 전해 받은 전방의 마물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캬아악, 캬아아아아악!”
진격 준비, 진격 준비!
모두가 시차를 두고 무기를 올렸다.
자세를 낮추고 질주할 채비를 마쳤다.
이윽고.
“돌격하라아아아아!”
투구구구구……!
땅의 진동과 함께.
마왕군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 * *
북한산.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
천마신교(天魔神敎)의 본산, 봉우리 위에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
말없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천마(天魔) 하세라가 있었고.
그녀 앞에는 넷의 노인이 정자세를 펴고 앉아 있었다.
세계 랭킹 20위.
검마(劍魔) 이학승.
세계 랭킹 22위.
도마(刀魔) 윤홍.
세계 랭킹 23위.
혈마(血魔) 독고천.
세계 랭킹 34위.
환마(幻魔) 조영대.
이들이 바로 실질적으로 천마신교를 이끌어가는 네 권력자, 사장로(四長老)였다.
놀랍게도.
이들을 키운 존재 역시 강소소였다.
제자의 세계에서도 천마신교의 부활을 간절히 발했던 그녀가 몇몇 인원을 선발해 하세라를 통해 무술을 가르쳤기 때문.
“…….”
정적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던 중.
스릉!
하세라가 말없이 칼을 뽑았다.
그런데도 그 누구 하나 동요하는 자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세라는 칼로 말하니까.
– 당신들의 무술을 교도들에게 전수해 줘.
“……!”
“예?”
“교주님……?”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무술을 배웠을 때, 하세라가 항상 강조하던 게 있었다.
절대 밖으로 누설하면 안 된다는 것.
물론, 그들에게는 땡큐였다.
원래 강한 기술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 때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데.
이제는 그 꿀통을 풀란다.
자신들의 비기를 모두에게 털어놓으란다.
“……기존 교도뿐만 아니라, 이번에 새로 가입한 교도들에게도 말입니까?”
이학승이 물었다.
원래 천마신교의 랭커들은 모두 무술 덕후들이다.
흑검(黑劍) 이선아만 봐도 그렇다.
그녀의 이명인 흑검(黑劍)보다 흑검대(黑劍袋)라는 단체가 먼저 있었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즉, 랭커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면.
그 이명이나 기술, 스킬도 그것에 맞추어 바뀐다는 말이다.
이는 고유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보통.
천마신교의 랭커들은 고유 능력을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로 놔둔다.
– 응. 모두에게 알려줘.
“허어.”
“어찌…….”
장로들의 입에서 한탄이 새어 나왔다.
천마신교에서 교주의 명은 지엄한바.
자신들의 무술을 내어주는 게 아쉬웠지만, 토를 달 순 없었다.
하세라는 세계 랭킹 2위.
이미 탈 인간의 경지에 들어섰고, 그런 그녀의 검은 매섭고 날카롭다.
‘그, 발표 때문이구나.’
‘다섯 집단을 발표했다지?’
‘집단을 키우는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우리가……. 천마신교를 위해 노력한 게 얼만데…….’
장로들이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세라를 존경하지만, 그들도 욕심이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픽.
그런 장로들을 보며, 하세라의 입에서 공기가 짧게 흘러나왔다.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미소가 더해지자, 장로들은 문득 눈이 부심을 느꼈다.
‘크흠.’
‘으음…….’
장로들이 속으로 헛기침했다.
주책맞게도, 외적인 요소에 압도당한 탓이다.
하세라의 미모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회자될 정도이니까.
– 대신.
후우웅!
하세라가 다시 칼을 휘둘렀다.
– 당신들에겐 새로운 무술을 줄 거야.
“예, 예?”
“저, 정말입니까?”
“허업?!”
눈이 화등잔만 해진 장로들이 벌떡 일어섰다.
아아, 뺏어만 가는 게 아니었어?
또 새로 주려는 거였어?
구(舊)를 버리고 신(新)으로?
“캬.”
“역시, 하세라 님은 천사야. 살아 있는 천사가 틀림없어.”
“에라, 미친 장로 놈아. 천마(天魔)한테 천사는 욕이야.”
“마, 맞다. 그렇지?”
숙덕숙덕.
흥분한 장로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속닥일 때였다.
스스슥!
허공에 다섯 글자가 유려하게 새겨졌다.
– 파천아수라(破天阿修羅).
하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본인의 스승, 강소소의 호법들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무술.
이젠 저들도 이 무술을 받아들일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다.
– 기한은 딱 한 달이야.
“어, 한 달 말입니까……?”
“으음, 대단한 무술인 것 같긴 하나……. 익히는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정말……. 그 정도 시간으로 되는 겁니까?”
장로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기한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 한 달.
하지만.
하세라의 표정은 단호했다.
– 그 후에 잠시 어딜 다녀와야 하거든.
* * *
그 시각.
영국 옥스퍼드 주.
중앙에 하늘 높게 치솟은 마탑, 23층 훈련장에서.
우우웅!
우우우웅!
마탑주, 대장로, 장로, 교수진들이 모두 모여 원(圓)을 그리고 있었다.
“고대의 마탑주, 엘로이즈 아린이 말했다.”
소피아가 기운을 다스리며 눈을 번뜩였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기초라고.”
별천지에게 패배한 이후.
마탑주는 마탑 구성원들에게 매일 오전 모든 일정을 빼도록 지시했다.
동시에.
교수, 학생 가릴 것 없이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아린에게 배운 고전적인 방법.
마력을 사용해 염력(念力)을 컨트롤하는 것과 기초 마법의 정확성, 그리고 힘을 싣는 법 등등.
그것만으로도 마탑의 전력이 최소 3배 이상은 상승할 거란 것을.
이번 별마전을 통해 확실히 인지했다.
“앞으로 1년이다. 1년 안에 모든 기초를 닦는다. 다들 알겠니?”
소피아의 물음에.
“옙!”
“알겠습니다, 마탑주님!”
“노력할게요!”
마법사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 * *
마왕군, 천마신교, 마탑.
모두가 발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치고 나가는 집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별천지(別天地).
쿠과가가가가……!
지역, 아포피스의 무덤.
허공에 공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스릅, 스르르릅!
혀를 날름거리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그 끔찍한 괴수가.
– 키에에에엑!
두려운 눈으로 저 아래를 내려다봤다.
“크하하하핫!”
눈에 광기를 줄줄 흘리며 달려오는 장대웅.
“꺄하하핫!”
그에 동화되기라도 하듯.
전류를 쫙쫙 뿌려대며 날아드는 플로아.
그 외.
공포라고는 하나도 없이 오직 투기(鬪氣)만으로 이루어진 별천지의 멤버들을 보며.
– 키에엑!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맛있는 냄새를 맡고 온 곳에, 뭔 이딴 놈들이 다 있단 말인가?
킁킁.
아포피스는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이 공간을 잔뜩 메우고 있는 혈향.
그것도 동족의 피 냄새라는 것을.
– 키에에에에엑!
적어도 수십은 죽어 나갔을 법한 이곳에서.
아포피스가 등을 돌렸다.
천하의 아포피스가 싸움 대신 도주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화르르륵!
등 뒤에 꽂히는 신살(神殺)급 화살!
자신의 단단한 표피가 그대로 뚫린 채, 더 나아가 심장까지 들어온다.
– 키엑, 키에에엑!
처음 느껴보는 통증.
쿠르르르르!
아포피스가 힘차게 발버둥 쳤다.
그래.
저놈.
저놈이 문제다.
화르륵, 화르륵거리며 뭔 놈의 무기를 수십 번 바꿔가며 여유롭게 상대하는 놈.
그놈이 자신의 독을 무마시켰고, 단단한 피부를 뚫어냈다.
그런 놈의 앞에는.
그의 수하로 보이는 자들이 미친놈처럼 달려든다.
“크하하하핫! 곧이구만!”
“이제 길마님의 수하 없이도 쉽게 잡히는 것 같아요!”
“우와아아아아!”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발버둥 치는 자신을 향해 눈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존재들.
그 순간 아포피스는 직감했다.
생의 마감을.
* * *
“후.”
화르륵!
활을 다시 허공에 분해시킨 내가 짧게 호흡을 뱉어냈다.
‘벌써 몇 마리 째지?’
대충 44마린가?
어느 순간부터.
전투에서 빠진 아린에게 기력의 회복만을 요구했다.
고대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력의 회복이 중요했기 때문.
‘이제 거의 한 달인가?’
하세라와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
그동안 나는 쉴새 없이 만술(萬術)을 연습했다.
그 결과.
1년 동안 돌렸던 만술을 다시 한 바퀴 돌릴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르네.’
같은 찌르기인데도, 전해지는 힘이 기존과 달랐다.
힘의 분배가 정확해졌으며, 공격도 더욱 날카롭고 정교해졌다.
이게 바로 복습의 위대함이었다.
기술이 너무 많은 만술의 단점을, 반복 학습을 통해 장기 기억으로 넘기는 것.
그것을 통해 다른 술(術)의 이해도를 더더욱 높이는 것이다.
“수고했다.”
노인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은 단순히 강해진 것으로 끝났지만, 네놈은 원래 강해져 있던 걸 한 바퀴 정리까지 끝내 버렸으니……. 끌끌.”
‘에이, 멤버들이 단순히 강해진 건 아닐걸요?’
내가 허공을 올려다봤다.
쿠과가가가가……!
서먼 아포피스.
아린이 방금 또 한 마리를 소환해 냈다.
그런 뱀을 향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멤버들.
그래, 한 달 전의 저들과 지금의 저들은 분명히 달랐다.
기세도 달랐고,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강한 존재에게 위축되지 않는 마음!
더 높은 상대에게 주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자세!
‘솔직히.’
최근 몇 마리는 그냥 대충 상대했었다.
제일 취약한 술(術)을 사용해 툭툭 쳐주는 게 다였을 정도?
그런데도 멤버들이 아포피스를 잡아냈다.
‘이 정도면.’
저들에게 맡기고 떠나도 안심일 것 같았다.
물론, 아린은 이곳에 두고 가지만.
혹여 모르는 일이다.
던전에서 위태로운 상황일 땐, 나도 아린을 소환해야 하니까.
그때 저들이 아포피스를 잡는 상황이어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거다.
즉, 이제는.
지수룡(地守龍) 같은 놈이 또 튀어나와도, 우리 별천지 멤버로만 처리할 수 있게 된 상황이라는 말이다.
“후.”
지금도 보아라.
쿠과가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잡생각만 하는데도.
저렇게 잘 싸우고 있지 않은가?
“슬슬 마무리해야겠네요.”
내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뿌듯함.
왜 노인이 맨날 이런 표정을 짓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