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72)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72화
빙제 냉광철 (5)
“헉헉, 뤼카 님.”
머드스키퍼스, 에롤이 힘겹게 마검사의 곁에 붙었다.
그의 뒤로 금사자와 그림 리퍼 역시 따라왔다.
거친 호흡과 피부 곳곳에 난 상처, 온몸을 적신 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힘든 터라.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로 물 한잔 들이켜고 싶었지만,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었다.
아직 빌어먹을 참가자들이 지켜보는바, 심사위원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했다.
“다들…….”
뤼카가 입을 열었다.
“잘 참아내 줬다.”
“후욱, 후욱! 뤼카 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나저나 주동훈이 여길 왜…….”
“후후.”
마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상황?
사실 그리 좋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심사위원에게는 불리한 순간이고, 주동훈이 저들을 어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왜일까, 뤼카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델라일라께서 결국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빙하신 모양이구나.”
그럴 수밖에.
주동훈.
그가 누구이던가!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도 다 같이 그의 전설을 지켜봤었다.
시련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신위로 모든 테마 수석의 자리에 올라섰던 그를.
“스켈레톤 마스터.”
“팀 드래곤 슬레이어의 수장…….”
“세계 랭킹 4위…….”
단지 시련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줘서 뿐만이 아니다.
그는 시련 이후가 더 전설이었다.
하이퍼 랭커 반입, 용 사냥, 별천지의 수장, 입이 떡 벌어지는 블랙스미스 과정 등등.
뤼카는 오히려 저 냉광철이라는 놈이 신기했다.
고작 랭킹 60위밖에 안 되는 놈이.
뭘 믿고 주동훈한테 저렇게 나대지?
정말 본인이 이 시련을 통해 그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렇다면 진짜 병인데…….
* * *
‘으음.’
그 시각.
냉광철은 겉모습과 다르게 속으로는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빙제(氷帝).
자존심 빼면 시체인 사나이.
수하들이 보고 있기도 하고, 저질러 놓은 게 있어 세게 나서긴 했는데…….
‘죽겠군.’
주동훈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아무런 기세가 없다.
여유롭게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자신을 바라볼 뿐.
문제는 그의 수하들이다.
‘무슨 놈들의 눈빛이…….’
눈빛으로 사람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누가 믿을까?
하지만, 그는 실제로 느끼고 있었다.
여기가 시련만 아니었으면.
저들이 심사위원만 아니었으면.
이미 자신은 그 눈빛만으로 죽었을 거다.
‘하지만.’
으득.
냉광철이 이를 씹었다.
‘여기는 시련이고, 저들은 심사위원이지.’
그리고 이곳은.
심사위원을 퇴출시키면 무지막지한 시련 포인트를 주는 곳.
스윽.
냉광철이 주먹을 들었다.
콰드드득!
그 행동만으로 주변 공기가 꽝꽝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저벅.
백무흔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빙제라 했나? 황당한 놈이로군.”
“뭐가 황당하다는 거지?”
냉광철이 되묻자, 백무흔이 친절히 답했다.
“인맥 빨이니, 운이니. 주군께 주둥이를 털어대는 건 좋다.”
“……주둥이?”
냉광철의 표정이 굳었다.
스켈레톤의 표현이 생각보다 적나라했기 때문.
“다만, 그것은 그만큼의 실력이 있을 때여야겠지.”
“……무슨.”
“시끄럽다.”
백무흔이 이제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다는 듯 시커먼 검을 들었다.
닿는 순간 등급 낮은 검들을 다 격파시킨다는 파괴룡의 검.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나와 대화 비스름한 것이라도 하기 위해서 적어도 자기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놈이어야 했다. 그래, 걸음마 정도는 때고 왔어야 맞는 거지. 그런데…….”
백무흔의 입에 비웃음이 내걸렸다.
“그깟 음기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는 머저리 새끼가 뭐가 잘났다고 주둥이를 터나?”
“…….”
음기?
냉광철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이 피어 올리는 빙기(氷氣)를 보고 하는 말 같은데.
그건 참기 힘든 치욕이었다.
고유 능력 빙기(氷氣)는 그의 자부심이자 자존심.
“그래서.”
빙제가 노기를 최대한 가라앉힌 후, 냉기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켈레톤 따위가 제법 입담이 세구나. 근데 내가 여기서 주둥이를 턴다 해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설마 아까 그 머저리 심사위원처럼 동귀어진이라도 할 셈인가?”
“여전히 주둥이가 시끄럽군.”
타앗!
백무흔이 가볍게 바닥을 찼다.
하지만 그 움직임만큼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
냉광철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보이지 않아.’
분명 자신을 향해 달렸는데, 그 시야에 없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며, 살기 또한 없다.
그저 정말로 사라진…….
‘헉?’
그 순간.
그의 어깨 위에 무언가가 보였다.
시커먼 흑색의 날붙이.
‘검?’
냉광철이 속으로 기겁했다.
여기까지 와서 검을 내질렀는데,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하나를 의미한다.
죽음.
만약, 이곳이 시련이 아니었다면.
이미 그의 목은 베였다.
“네놈이 참 멍청하다 생각하는 게.”
그 와중에도 폴리모프를 유지 중인 백무흔이 이를 드러냈다.
“그저 자존심 좀만 굽히고 도망갔으면 됐을 일을 계속 도발해서 이 사달까지 났다는 게 난 참 신기해. 우리 세계에도 있었지. 겁 없는 무림의 하루살이들.”
“개, 개자식이!”
냉광철이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스윽.
백무흔의 검이 다시 그가 움직이려는 방향을 막았다.
좌로 움직이려 해봐도.
우로 움직이려 해봐도.
언제나 백무흔의 검이 그의 얼굴 앞에 있었다.
잠깐이라도 나서려 하면?
투욱!
그의 코뼈를 건드려, 앞으로 못 나아가게 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자존심이 상했다.
개 조련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코뼈를?
“나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네놈이 그 멍청한 얼굴 뼈로 공격하려던 것을 방어했을 뿐이야.”
“……뭐라고?”
“그리고 난 이제부터 여기 서서 네놈을 방어할 거다. 앞으로도 쭉.”
백무흔의 노림수는 단순했다.
그가 가려던 방향, 반 발짝 앞에 자신이 있음으로써, 그 움직임을 합법적으로 막아내는 것.
그렇게 한다면, 공격하지 않고도 참가자를 자리에 묶어둘 수 있다.
“……이게 무슨?”
“너뿐만이 아냐.”
백무흔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어?”
“자, 잠깐?”
“무슨?”
나머지 여덟 랭커 참가자 앞에도 한 마리의 스켈레톤이 붙었다.
백무흔이 하는 것과 똑같이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그 모습에 참가자들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제길, 이게 뭐야!”
“저리 비켜!”
쿠과가가!
그중 몇몇이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까아앙!
“끄아아악!”
애꿎은 그들의 손목이나 발목만 아팠다.
애초에 엄청나게 커다란 성좌급 용뼈를 압축해서 이루어진 이들이다.
용도 한 마리가 아닌 수 마리.
그런 엄청난 골밀도를 가진 이들을 고작 지구의 조잡한 랭커들이 뚫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약하다 못해, 으음. 간지럽지조차 않군. 그것밖에 못 하나?”
파괴룡의 방패를 든 카덴은 참가자 중 하나를 골라 쉴드를 펼친 채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방패가 없어도 안 뚫리는데, 방패까지 들었으니…….
“흐압, 흐아아압!”
“끄아악! 아파! 뼈가 왜 이리 단단해?”
그걸 뚫으려 하는 참가자는 죽을 맛이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두꺼운 철벽을 맨손으로 치는 느낌이랄까?
‘……이건.’
냉광철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나하나가 다 괴물이다.
그럼.
저런 것들을 수하로 부리고 있는 주동훈은 얼마나 세단 말인가?
‘빌어먹을. 이건 소문보다 더 미쳤잖아.’
솔직히.
빙제는 자신 있었다.
자신의 세계 랭킹은 60위.
아무리 랭킹이 높아 봐야 100단위로 차이 나는 게 아닌데.
상대방의 공격권을 제한하고 싸우면, 적어도 질 일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주동훈의 위력은 그런 제 생각을 사정없이 부숴 놓았다.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움직일 수가 없잖아.’
온 힘을 다 해봤다.
숨겨뒀던 비장의 스킬도 써보고.
아예 발밑에 땅을 파고 나가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퍼억!
코뼈에 닿는 백무흔의 검.
“……난 가만히 있었다? 네가 와서 부딪힌 거야.”
이런 씨발.
이제는 움직이기조차 무서웠다.
코뼈가 내려앉다 못해, 없어진 것만 같은 찡한 감각.
“저기.”
결국, 냉광철이 발악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백무흔을 쳐다봤다.
이건 아니다.
상대를 잘못 보았다.
‘이건.’
애초에 심사위원에게 덤빌 게 아니었다.
히든 루트를 찾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시련 포인트를 모았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시련이고 뭐고.
그냥 끝날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할 판 아니던가!
그럴 순 없었다.
어떻게 얻어낸 ‘기회’인데.
어떻게 얻어낸 ‘운’인데.
“아무래도.”
깐죽거렸던 냉광철의 표정이 일순간 공손해졌다.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하나.
죽어라 비는 것.
“죄송합니다!”
결국, 냉광철이 무릎을 꿇었다.
“저, 저도!”
“저도 죄송합니다!”
“빙제, 아니……. 저 빙신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나머지 랭커들도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 * *
‘호오.’
내가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은 아홉의 랭커들과 그들 앞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수하들.
‘제법 신선한 방식이네.’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방법.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강하기에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강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저들이 너무 약한 것일 뿐.
근데 웃기긴 했다.
깐죽거릴 땐 언제고, 저렇게 쉽게 무릎을 내어주다니.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만술 노인부터 수많은 용, 성좌들을 만나오면서 지면 졌지, 포기하진 않았다.
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놈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다.
진짜 운이란 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거거든.
‘실망이네.’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자.
빙제.
그 역시 강자 앞에서 쉽게 꺾이는 평범한 인간 군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하이퍼 랭커를 몰라뵙고……! 개겼습니다! 깝쳤습니다!”
“정당하게 시련에 참여할 테니, 제발 움직일 수 있게만 좀 해주십시오!”
파리라도 된 듯 두 손을 싹싹 비비는 참가자들.
뤼카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저게 그때 그놈들이 맞나?]라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황당하게 쳐다봤고.
나는 그저 그런 뤼카를 바라봤다.
사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거든.
“뤼카 님.”
“예, 옙! 선임 심사위원님.”
뤼카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때는 나를 심사했던 자.
이제는 내가 그의 존경을 받고 있다.
“혹시, 제가 저들의 시련 포인트를 받는 방법은 없는 거죠?”
“……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뤼카가 [아아] 하며 웃었다.
“그게……. 심사위원이 포인트를 직접 얻을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말이 안 되죠.”
“그쵸?”
저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했어요.
다만.
“그럼, 저들이 산 아이템은요?”
“예?”
“쟤들이 상점에서 산 아이템……. 혹시 제가 얻을 수도 있는 건가요?”
그것도 그냥 아이템 말고.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같은 거.
‘고대 마법’(SSS급)의 서약으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선물해 주는 신비한 녀석.
시련에 참여한 김에, 나는 저걸 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