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8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85화
탐욕룡들 (1)
[‘고대 파이톤 제국’의 가장 깊은 곳.] [이곳에는 세상을 호령했던 수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습니다.]“…….”
배지민이 눈을 떴다.
배경은 엄청나게 커다란 궁 내부였다.
아득히 먼 곳에 천장이 있고, 너무 거대해 벽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
“후.”
그녀가 긴장감 어린 호흡을 내뱉었다.
귓가에는 조금 전, 주동훈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배지민.
– 앞으로의 시련은 네 몫이야.
– 아, 마지막에 사둔 엘릭서는 먹고 들어가라. 회복은 해야지. 거기 안. 상당히 빡셀 수 있거든.
상점에서 구했던 달콤한 엘릭서.
그 덕에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찢어진 근육이 더 질기게 회복되었으며, 기력도 다시 팔팔하게 차올랐다.
우우웅!
그녀가 기운을 끌어올려 주변을 파악했다.
[보물을 탐하세요.] [보물을 획득하세요.] [수많은 보물 사이에서 ‘국보’를 찾으세요.]사방에 황금빛 보물들이 즐비했지만, 건들지 않았다.
던전에서 섣불리 행동하는 것은 곧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우선.’
굉장히 강력한 기운이 주변에 즐비했다.
긴장한 배지민이 본능적으로 주변 석상들을 찾았다.
사나운 고대 병사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
‘……저건.’
순간, 배지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피부에 털이 곤두섰고, 다리가 저렸다.
‘포식자…….’
엄청나게 거대한 포식자의 눈동자가 멀찍이서 자신을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며, 주변을 계속해서 탐색하고 있을 찰나.
쿠구구구……!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띠링!] [오류 발생!] [‘기구한 운명’이 델라일라의 ‘던전 메이크’(SS급) 스킬을 변형시킵니다.] [탐험가들이여! 조심하세요!] [열 개의 세계가 뒤틀린 시공간을 넘어 합쳐집니다.]‘이게 무슨……?’
배지민에게도 감이라는 게 있다.
델라일라의 스킬이 변형되었다는 말에서, 무언가 본래의 시련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끄윽!”
그녀가 양손으로 고막을 부여잡았다.
순간적으로 두개골이 갈라지는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흐으윽…….”
버티고 버티다, 속을 게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스슷, 스스슷!
“끄아악!”
“뭐, 뭐야?!”
“어지러워! 우욱! 우으윽……!”
그녀의 앞에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자세를 낮춘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엎드린 채 구토를 하고 있었다.
‘뭐야?’
혼란스러운 배지민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어떻게 된 거죠? 기구한 운명이라니?”
“당신들은 뭐야?”
“……어? 다른 참가자들?”
동시에.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나 때문에 던전이 합쳐진 건 아니겠지?
* * *
그 시각.
델라일라의 홀에 비상이 걸렸다.
“이걸 어찌합니까?”
뤼카를 비롯한 심사위원들.
머드스키퍼스와 금사자, 그리고 그림 리퍼.
“당장 시련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델라일라 님.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저희 힘으로는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랭커라지만……. 상대는 용이잖아요.”
네 심사위원이 발을 동동 굴렀다.
“…….”
델라일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시련 중단은 불가능해요.”
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이미 스킬, ‘던전 메이크’(SS급)의 통제권이 빼앗겨진 상태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직접 가는 것뿐이지.’
저기도 결국 우주 한복판에 뭉쳐진 세계.
‘월드 링크’(SSS급)를 사용하면 어떻게든 갈 수는 있다.
다만.
‘가서 뭘?’
간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려 용이다.
성좌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자리한다는 용.
그 10마리가 모였는데, 그녀가 어찌 통제하랴?
“다른 걸로 용을 설득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뤼카가 물어왔지만.
“그것도 소용없을 거예요. 저기 봐요.”
델라일라가 가리킨 커다란 홀로그램 속.
– 크롸라라라라라!
– 크롸라라! 크롸라라라라!
– 이 빌어먹을 년이 날 속였구나!
각각 용의 본체를 찍고 있는 화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하며 포효하는 탐욕룡들.
“이미……. 흥분한 상태예요.”
“……그럼.”
뤼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는 거다.
저 참가자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이걸……. 어떡해야.”
의도치 않았지만, 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미안한 감정이 몰아쳤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델라일라가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방법이 있긴 한데, 더 부탁하기엔 너무나 염치없고 죄송스러워서.
“주동훈……. 말입니까?”
뤼카가 고개를 저었다.
“델라일라 님. 아무리 그라 해도 용이 열 마립니다. 지수룡 사건 때 용의 위엄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것 10마리가 충돌하는 곳에 그를 보내자고요?”
주동훈은 지구의 보물이다.
종말이 예고된 이후에도, 내심 안도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게 바로 주동훈의 존재 아니던가.
“잠재력 높은 참가자들의 생명도 소중하고 안타깝습니다만……. 주동훈만큼은 안 됩니다.”
“사실. 부탁한다고 해서 갈지도 모르는 일이죠.”
후우.
델라일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리됐단 말인가.
지금껏 오류 한 번 없었던 시련이었다.
스킬이 변형된다?
단언컨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내가 오만했었나?’
그냥 이전처럼, 소수의 인원으로 시련을 열어야 했는데.
괜히 감당도 못 할 용들을 구해다가 일을 저지른 느낌이었다.
‘괜히 나 때문에 저들이…….’
델라일라가 두 눈을 꾹 감을 때였다.
스슷!
그녀의 앞에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델라일라 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등장한 자의 정체는 바로 주동훈.
“……스켈레톤 마스터. 오셨나요?”
스슷, 스스스슷!
동사에 그의 뒤로 아홉의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일당백의 심사위원 역할을 무사히 수행한 자들.
모든 임무를 마치고 이제야 복귀한 거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언가.
제발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듯 물어보는 주동훈의 모습에.
“……사실.”
델라일라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 *
– 크롸라라라라라!
탐욕룡, 파이톤.
그 거대한 존재가 분노에 가득 차 포효했다.
– 이게 무슨 짓이냐!
어느 날, 자신의 세계로 찾아온 이계의 존재.
그녀가 당돌하게 제안했었다.
깨끗한 영혼을 보내드릴 테니, 성문을 열어달라고.
그들을 시험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라고.
파이톤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탐욕룡은 그 어떠한 것이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니까.
그런데.
– 과연, 사특한 년. 애초에 이걸 노린 것이더냐!
깨끗한 영혼이라더니.
왠 자신과 비슷한 용 아홉 마리가 떡하니 등장하지 않던가.
게다가 모두가 탐욕룡이다.
– 썩 꺼지지 못할까! 이건 내 보물이다!
–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내 구역에 들어와서 보물을 탐하는 건 너다.
– 다들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순간 공격하겠다!
파이톤은 황당했다.
탐욕룡이 제일 싫어하는 존재가 누군질 아는가?
놀랍게도 같은 탐욕룡이다.
그래서 본래 탐욕룡끼리는 꽤 많은 거리를 두고 둥지를 트는 편인데.
웬걸.
열 탐욕룡을 한곳에 몰아놓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것은 재앙이다.
싸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재앙.
– 크롸라라라라라라!
우선.
영혼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잡생각 할 때가 아니었다.
정신 차리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
탐욕룡이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머지 아홉을 다 잡으면 모든 보물을 나 혼자 독식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을 게 뻔할 터!
쿠과가가가……!
파이톤이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 * *
총 열 마리의 고래.
그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들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참가자들이었다.
“끄악!”
“사, 살려줘!”
“무, 무슨 용이 열 마리야……! 랭커들도 못 잡는 용을 던져주면 어쩌라는 거냐!”
“압박이 너무 거세요!”
“우우웁……! 꾸웨엑!”
대리석 바닥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스프링이라도 되듯 하늘 높이 솟구쳤으며, 날카로운 돌파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건, 이건 사기야!”
“델라일라, 이 미친년아! 우릴 다시 돌려보내 줘!”
“뭉쳐! 일단 다들 뭉쳐서 실드랑 힐링 떡칠 좀 해봐요! 투덜거리지 말고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녜요!”
“엘릭서! 엘릭서 남은 사람!”
시련 중에 영문도 모른 채, 열 마리의 용 한가운데로 떨어졌으니…….
사실 욕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
그 와중에도 배지민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참을 만해.’
독연(毒煙)을 흡수하면서, 주동훈과 아린의 힘을 잠깐이나마 엿본 그녀다.
용과 주동훈.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길마님이 더 우세한데?’
순간, 배지민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걸 느꼈다.
세상에.
센 줄 알았지만, 용보다 더 우세할 정도였어?
‘과연.’
배지민이 히죽 웃었다.
압력에 숨이 막히고, 돌파편에 피부가 찢기는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내가 목표로 삼은 자다워.’
그리고 그의 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 또한 비슷하게 성장할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독을 보면 웃으며 뛰어들라 하셨지?’
길마님의 어록.
아마 길마님이라면…….
‘저 용들을 보고도 웃으면서 뛰어들 거야.’
휘익!
배지민이 오른손의 철검을 한 바퀴 휙 돌렸다.
그러고는 힘차게 땅을 박찼다.
‘다행인 건.’
용이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
그들을 사방에 휘날리는 보물들을 쓸어 담고 주변 용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쿠과가가가!
그녀의 바로 위, 용 한 마리가 침을 주룩 흘리며 발톱을 휘둘렀다.
그런 용의 뒤에는 이미 다른 용의 발톱이 박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후.’
그야말로 난장판.
퉁! 투웅!
그녀의 발에서 기파가 쏘아지면서 허공을 날았다.
능공허도(凌空虛道).
생전 처음 해보는 경공이었지만 쉽게 펼쳐졌다.
“흐아압!”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본능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직감이 요구하는 데로 스킬이 튀어나온다.
일반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
서걱!
배지민이 휘두른 검에 근처 커다란 용의 표피가 손쉽게 썰려 나갔다.
올 마스터의 영령.
용의 뼈마저 부수는 은하군(群)급의 무기의 위력이었다.
“좋아!”
촤르륵!
또 생전 처음 써보는 보호막으로 몸을 두른 배지민이 용의 내부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명 열망이 가득했다.
‘용을 잡는다.’
옛 길마님의 팀명이 ‘드래곤 슬레이어’랬지?
그 말은 길마님 또한 용을 잡았다는 말.
‘길마님이 한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만 해!’
콰르르르르!
용혈(龍血)이 얼굴을 포함한 몸 전체를 휩쓰는데도.
후웅! 훙!
배지민은 칼을 휘두르면서 전진했다.
방향은 중심부.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
“…….”
배지민은 독했다.
눈에 피가 들어가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혹여 모를 공격을 보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흐읏……!”
용이 이토록 컸었나?
아니, 큰 건 크더라도, 장애물인 뼈와 살이 너무도 단단해서 중심부로 가는 데만 한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제발, 한 마리만.
한 마리만 잡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