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53)
엘드린과 드미르 (2)
거대마룡 드루건의 본신을 앞에 두고서.
까앙! 까앙!
드미르는 그저 망치를 내려쳤다.
망치에는 종족의 긍지가 담겨 있었으며.
한 영웅의 용맹함이 서려 있었다.
* * *
“제단을 만들걸세.”
전투 전, 드미르가 엘드린에게 했던 말이었다.
엘드린의 주문 의식과 자신의 연금술을 절묘하게 합쳐 축조할 하나의 단(壇).
“드루건은 강해. 절대 우리의 힘으로는 그 어마어마한 거력을 전부 봉인시킬 수 없다네.”
드미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용은 너무도 끔찍해서, 자신에게 반항하는 두 종족을 그냥 죽이지 않았다.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음에도.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을 끌었다.
고통스러웠던 용과의 백 년 전쟁.
물론, 그마저도 드루건에게는 한낱 유희일 뿐이리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당시.
엘드린은 낙담하고 있었다.
후회하고 있었다.
용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소수는 괴로울지언정, 누군가는 그래도 평범한 삶을 살다 가지 않았을까?
자유를 박탈당할지언정, 지금과 같은 고통은 없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금제를 가해야지.”
“금제요?”
“모든 힘을 봉인하자는 게 아닐세. 그저 정신적인 봉인이야. 그대의 의식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아, 설마.”
엘드린이 몸을 움찔했다.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아는 최후의 의식.
본인의 목숨을 바쳐, 상대의 손으로 무언갈 부수지 못하게 하는 평화의 술법.
그 이름하여 파괴의 금제(禁制)였다.
“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드루건이라도…….”
“힘만 세면 뭐 하나, 파괴하질 못할 텐데. 무언갈 부수려 할 때마다 부작용이 일겠지.”
용을 죽일 수 없다.
힘을 봉인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힘을 놓아두되, 쓰지 못하게만 만들면 된다.
그게 드미르가 제시한 방법이었다.
“다, 당신은 정말 천재…….”
감탄하던 엘드린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본인의 의식이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제단이 필요하고, 그 제단 역시 평범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특히나 거대마룡의 정신을 건드는 의식이니, 더욱 그렇다.
“희생……. 그것이 바로 의식의 제물이겠군요.”
엘드린은 알고 있었다.
드미르가 어떤 결심을 하고 말을 꺼낸 건지.
* * *
까앙! 까앙!
드워프는 계속해서 망치를 휘둘렀다.
엘드린이 드루건의 질주를 막는 동안에도.
“그저 만든다.”
세상이란 백지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냈다.
물렁물렁한 진흙이 단단해졌고, 그 위로 고목 뿌리가 올라섰다.
뿌리 위에는 서늘한 강철이 평평하게 만들어졌다.
– 도대체 무슨 수작들을 부리는 것이더냐!
용이 포효했지만.
엘드린은 무심하게 시위를 당겼다.
팔 근육이 찢어질 듯 저렸고.
온몸은 생채기로 가득했지만.
‘막아야 해.’
‘아파.’
‘사지가 찢기듯 아프지만 참는다.’
‘그래야 우리 종족이 사는 거야. 자유를 찾는 거야.’
버티고 버텼다.
버팀이 거듭될수록 온몸이 시뻘겋게 변했다.
몸속에 가득했던 기운이 텅텅 비었다.
“드미르!”
엘드린이 목을 찢었다.
“제 피와 뼈를 제단에 파묻겠어요!”
흐르는 그녀의 피가 뭉쳐 제단으로 향했다.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제 생명을 걸고! 아니, 숲의 생명을 걸고 약속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거대마룡이여! 당신의 사악함은 더 이상 세상을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 당신의 힘은 흐르되, 흐르지 않을 거예요.”
푸확!
그녀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쏟아졌다.
“좋군. 나 역시 바위의 긍지를 걸고 약속하지.”
드미르의 입에서도 검은 피가 흘렀다.
둘의 피가 융합되어 검은 구슬이 되었다.
“…….”
둘은 더 이상 용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만들어진 제단 위에 올라서 용을 노려볼 뿐이었다.
– 갑자기 뭐 하는 생쇼들이냐?
거대마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열심히 막으면서 혼자 자해하더니, 이제는 알 수 없는 말들을 한다.
용은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기분이 나빴다.
계속해서 불길했다.
– 장난감 주제에 사이한 짓들을 하는구나. 본래였다면 더 데리고 놀았겠지만.
어느덧 둘의 앞에 도착한 용이 앞발을 치켜들었다.
– 그냥 뒈지거라.
쐐애액!
용의 발이 내려 찍히면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엘드린과 드미르는 그 광경을 그저 올려다봤다.
물론,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서.
그때였다.
뚝.
바로 앞에서 용의 발이 멈추었다.
온몸의 근육이 움찔거렸지만 그뿐.
용의 발은 더는 내려가지 못했다.
– 무슨? 이게 뭐냐?
거대마룡이 당황했다.
힘을 주기도 해보고, 발버둥도 쳐봤지만 끄떡없었다.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이 흐르는 검은 피가 본인에게 낙인으로 남아, 무언가를 부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 이, 이 자식들! 이게 무슨 짓이냐!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용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렸다.
‘미친.’
지켜보는 내 심장이 저릿해질 정도로 엄청난 적의였다.
옆을 보니, 다그나르도 미간을 찌푸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엘드린과 드미르의 눈동자엔 변함이 없었다.
어찌 보면 숭고해 보일 수도 있는 눈빛.
마치 용을 잡는 게 그들의 사명인 마냥, 표정이 없었다.
“간악한 용이여.”
드미르의 입술이 열렸다.
“그 힘을 원활하게 쓰지 못하는 게 그대에겐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겠지?”
– 시끄럽다! 이 빌어먹을 놈들!
“하지만 별수 없을걸세. 어떤 존재를 제물로 삼지 않는 이상, 이 금제는 풀리지 않을 테니까. 영원토록 말이지.”
– 내가! 천하의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용은 분노했다.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펄럭!
결국, 날개를 펼친 용이 날았다.
이 빌어먹을 사술을 해제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
“…….”
도망치는 용을 바라보며.
엘드린과 드미르는 말없이 웃었다.
푸스스스!
그리고 마치 세월이 다한 것처럼.
그들의 몸이 급속도로 늙기 시작했다.
살갗이 쪼그라들고 이내 부식되어 녹는다.
희생.
하지만 그 둘의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모르리라.
[스킬, ‘기억 재현’(S급)을 종료합니다.]그리고 다시 세상이 번쩍였다.
* * *
“으음.”
내가 침음을 흘렸다.
“허어…….”
다그나르도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룡의 봉인지 바닥에 설치된 제단 위에서,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그나르가 입술을 열었다.
“우리 조상이…… 이런 분이셨다니, 괜스레 가슴이 절절해지는 느낌이로군.”
“엘프들 역시 대단했어요.”
“동감일세. 저 당시만 해도 화합의 종족이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다그나르가 팔을 축 늘어뜨렸다.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기분이 개 같군. 솔직히 내 종족이라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 했네만, 위대한 드미르에 비하면 우리 의장은 속 좁은 밴댕이 소갈딱지일세.”
“…….”
“드미르께서는 종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어. 하지만 우리 의장은? 그저 엘프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네. 그 이유도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어이없어. 엘프들이 드미르의 유물을 내놓지 않아서? 참, 가당치도 않지.”
사실 그렇긴 했다.
두 종족이 전쟁을 벌이는 이유치고는 굉장히 내용이 부실했다.
“그런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음?”
“엘프들은 굳이 왜 이곳을 지키고 있을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풀고 제단 위에 올라섰다.
“다그나르에게 말은 안 했지만, 분명 하이엘프 퀸은 절 이곳으로 인도했었어요.”
“그게 정말인가?”
“그렇잖아요. 솔직히 막말로 하이엘프 퀸이 뭐가 아쉬워서 저랑 다그나르를 본인의 마을, 특히 이 봉인지 위로 들였겠어요?”
물건을 만들어 달라는 건 핑계였다.
분명 세르핀은 날 이곳에 처넣었다.
그건 확실했다.
“근데 굳이 그럴 이유가?”
다그나르가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아?”
문득, 뇌리가 번뜩였다.
찰나의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끔찍하면서도 확률 높은 가능성이.
“젠장, 뭔가 이상하다 했어요.”
“뭐?”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왜 그걸 생각 못 했을까. 어쩐지……. 말이 안 됐었는데.”
“난 자네가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군.”
다그나르가 얼굴을 구겼다.
“알아듣게 좀 설명해 보게.”
“의장이나, 하이엘프 퀸이나…… 솔직히 말이 됩니까? 그 둘 중 하나만 힘을 써도 종족 전체를 말살할 수 있다는 게?”
“그거야…… 속은 좁아도 강한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후. 보세요, 다그나르 씨.”
난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드미르랑 엘드린도 봤죠? 그 영웅들이 지금 의장이나 세르핀처럼 강합디까?”
“으음?”
다그나르가 눈을 깜빡였다.
잠깐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아니, 확실히 우리 의장이 좀 더 센 것 같네만.”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둘. 분명 호감도도 안 통했어.’
호감도는 시스템이다.
내 경험상 시스템은 이곳에서 보여주는 모든 세계관 위에 존재하는 법칙(法則).
그 호감도가 안 통한다는 것은?
의장과 하이엘프 퀸이 해당 종족이 아니면 되지 않을까?
“기억을 읽었다시피, 용은 분명 살아 있어요. 금제만 가해졌을 뿐, 여기 봉인지에 파묻힌 게 아니었어요. 500년 동안 이곳 세계에 살아 존재하고 있었단 거예요.”
“그, 그렇다는 건?”
“뭘, 그렇다는 건이에요. 결론은 하나밖에 없는데!”
“…….”
“의장은 왜 드워프들의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했을까요? 하이엘프 퀸은 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일족들에게 전쟁을 강요했을까요?”
“…….”
“그리고 그 둘은 왜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을까요?”
나는 제단 위에 검은 구슬을 들어 올렸다.
[‘금제(禁制)의 구슬’입니다.] [망자의 힘을 잠깐 각성시킵니다.]“용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해요. 그저 갈등을 조장할 뿐.”
[두 종족 중 한 종족을 도와 갈등을 해결하세요.]애초에 두 종족을 설득하라는 건 낚시였다.
이곳 스테이지.
‘숲과 바위’의 진정한 퀘스트는 바로.
거대마룡, 드루건을 잡는 것.
“이런 시벌, 그러니까 볼카누스와 세르핀. 둘의 정체가 사실은 거대마룡이었다는 그런 비극적인 말은 아니겠지?”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맞죠!”
“켁?”
“거대마룡이 이 전쟁. 그러니까 두 종족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거예요!”
“이런 미친!”
다그나르가 벌떡 일어났다.
충격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밖에.
본인의 종족이 500년 동안 한 존재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고.
“준비하세요.”
나는 중얼거렸다.
분명, 볼카누스와 세르핀은 날 의도적으로 이곳에 보냈다.
그 말은.
지금 옆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
꿀꺽.
침을 삼킨 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있을 때였다.
짝짝짝!
계단 위에서 어떤 존재의 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저벅, 저벅.
하이엘프 퀸, 세르핀의 박수.
“세외(世外)의 존재여.”
그녀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틀어져 있었다.
“생각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