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77)
불사의 군단 (1)
촤르륵!
3층, 회의실로 올라온 이선아가 탁자에 자료들을 펼쳤다.
“자! 이건 이번에 인천 검단 쪽에서 발견된 A급 던전입니다. 스켈레톤 로드. 우리나라에는 최초, 세계에는 3번째 등장하는 유형의 던전이죠.”
동시에 자료 중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불사의 군단을 상대하여 도시의 함락을 저지하는 유형의 던전인데.”
툭툭.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강조하듯 두어 번 두들겼다.
“사실, 이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요?”
나는 그녀가 펼쳐놓은 자료들을 눈으로 쓱 훑으며 물었다.
천마신교에서 제공해 준 자료인 것 같은데.
‘과연 대형 길드는 대형 길드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저기 빼곡히 나열된 정보들.
헌터 게시판이나 인터넷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겠지?
“던전 도중 나타나는 기믹 중 하나에 인원 제한이랑 고유 능력 제한이 걸려 있다는 거죠. 때문에, 참가 인원은 최대 다섯! 거기에 네크로맨서 하나가 추가되어야만 합니다.”
“아, 그래서.”
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A급 던전이면, 각 길드에서도 소중히 관리한다.
굳이 외부인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다.
고등급의 던전은 고등급의 보상을 가져다주니까.
처음 기소율이 내 보상에 관심 가졌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근데 그런 곳에 굳이 나를 추천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아무렴 이제 막 B급이시라, A급 던전은 무리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뭐. 제가 원래 어려운 던전을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S급 이상 던전도 몇 번 가봤습니다.”
나는 쿨하게 받았다.
던전 내용이 뭐든.
랭커와 함께 할 수 있는 던전행은 아직까지 나에게 ‘기연’과도 같다.
이선아도 세계 랭킹 509위의 랭커인 만큼 배울 게 무궁무진하게 많겠지.
‘게다가.’
노인도 말했다.
– 허허, 이곳 세계에 있는 A급 헌터라는 작자들 말이냐?
– 어찌 네놈의 실력을 그딴 쓰레기들의 실력과 비교하느냐? 만술의 제자로서 자부심도 없느냐?
– 시스템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확신할 수 있노라.
– 네 녀석의 전력은 이미 A급을 한참 넘어섰어.
내게 필요한 것은 딱 하나.
‘각성’을 할 수 있을 만한 명분이었다.
시스템에게 [나 A급으로 올려줘!]라고 말할 명분.
그리고.
그 명분을 찾는 데, 고등급의 던전만큼 좋은 게 없다.
“S급 이상 말입니까? 아하핫! 농담할 여유까지 있으신 것 보니, 제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이선아가 허리춤에 달린 흑검을 치며 웃었다.
내 진담을 재밌는 농담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이거 씁쓸한데?
실제로 ‘판정 불가’ 등급이면, S급보다 더 높은 난이도라고.
태양창과 거대마룡의 난이도.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빡세다.
똑같이 하라고 해도 못 해낼 만큼.
“하여튼! 자신감은 마음에 듭니다! 그럼 승인하셨으니, 오늘 바로 출발할까요?”
“오늘요?”
“시간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예, 그러시죠.”
잠은 충분히 잤다.
조금 빠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원래 그런 것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 않던가?
“저도 바라는 바였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신도시 중앙에 위치한 토당산 중부 능선에.
채비를 갖춘 다섯의 헌터가 모였다.
“들어가기 전. 각자 가볍게 자기소개나 할까요?”
리더, 이선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멤버들과 초면인 나를 위한 배려.
“저는 흑검대 팀장 이선아라고 합니다. 검을 쓰는 검사예요.”
스릉!
그녀가 허리에서 본인의 상징, 흑검을 꺼내 들었다.
마치 공기를 가르는 것과 같은 깔끔한 소리와.
날카롭게 벼려진 예기가 그녀의 높은 수준을 알려주는 듯했다.
“어차피 흑검대 소속 대원들은 다 검사지 않습니까? 하하!”
다음에 나선 것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그가 뿜어내는 기운 역시 보통이 아니다.
“저는 흑검대의 부대주…… 아니, 부팀장. 강지훕니다. S급이죠. 취미라고는 음…… 무협지를 좀 읽습니다. 칼은 뭐, 팀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쓰고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 강지후.
표정과 말투만 봐도 대충 성격을 유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뒤에서 두 남녀가 고개를 숙였다.
“A급 흑검대원, 김진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A급 흑검대원, 강유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깔끔하고 절도 있는 모습!
나 역시 고개를 마주 숙였다.
“저는 B급 네크로맨서로, 이선아 씨 추천받아 왔습니다.”
비록 전부 나보다 높은 등급이지만, 쫄 필요 없었다.
저들의 필요에 온 것은 둘째치고.
‘나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
확실히 느꼈다.
이제 기세는 적어도 A급 대원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어차피 등급이란 알파벳에 불과할 뿐.
그런 내 모습에 부팀장이 껄껄 웃었다.
“으하핫! 굉장한 기세로군요! 과연 대주께서 흥미를 느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잘 부탁드려요.”
“아무렴, 부담 갖지 마십쇼. 우리 흑검대의 던전 성공률은 100%를 자랑하니까.”
부팀장이 한 번 더 정비상태를 점검한 후,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나와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표정을 지은 채, 따라 섰다.
마지막으로.
이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할까요?”
* * *
[던전에 입장합니다.]눈을 떴다.
여느 때와 같은 알싸한 감각과 함께, 주변 풍경이 뒤바뀌어져 있다.
추운 날씨.
타닥타닥 타는 횃불과 함께, 누군가가 흐느꼈다.
“젠장, 우린 이제 끝났어. 고작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불사의 군단을 막아. 어떻게 죽지 않는 자들을 상대하냐고.”
낮은 온도로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콧물을 훌쩍이는 남자.
그는 이곳.
정체 모를 도시의 병사였다.
“이제 곧 다 죽겠지. 아이도, 마누라도, 나도……. 젠장,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으음.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마치 이건…….’
그래.
내 매개체 던전과 같은.
새로운 세계의 존재들이었다.
“신기하죠? 이런 모습의 던전은.”
옆으로 이선아가 다가왔다.
온갖 세상을 경험해 본 나에겐 그렇게 신기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원래 고등급의 던전일수록, 임무가 복잡하고. 그 안에 있는 존재들 또한 생동감이 넘치게 구성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래서 저는 그냥 NPC라고 생각한답니다. 게임에 나오는 그 NPC요.”
“NPC…….”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 세상은 아직 미지의 영역 속에 있다.
그 누구도 밝히지 못했다.
고유 능력이 왜 생기는 건지.
던전이 왜 생기고, 던전 속에 구성된 세상이 어떤 건지.
‘모를 땐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는 게 편한 법이지.’
물론.
나는 알았다.
태양창의 감정과 드미르, 엘드린, 그리고 어르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껴봤기에 확실히 알았다.
‘저들은 그저 NPC가 아냐.’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진짜 살아 있는 자들이다.
생각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아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흠, 임무가 곧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옆에서 이선아가 중얼거릴 때였다.
[스테이지 ‘불사의 군단’이 도착했습니다.]“오, 이제 왔나 보군요!”
임무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스테이지 : 불사의 군단] [북쪽 냉혹의 지대에서 출범한 ‘불사의 군단’이 도시를 침공하고 있습니다.] [가여운 도시의 병사들을 지켜내고, ‘불사의 군단’을 저지하세요.] [이곳의 병사들은 그대들을 같은 병사로 인식합니다.]웅성웅성.
그 순간.
주변 병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를 봐라!”
성벽 위 병사들이 외벽 바깥을 가리키며 외쳤다.
“언데드 군단이다! 마침내 언데드 군단이 도착했어!”
“으아, 으아아.”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신음을 토했다.
흥분, 걱정, 두려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성벽 내부를 잠식하고 있었다.
“가보죠.”
나는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성벽에 올라섰다.
그놈의 불사 군단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
우중충한 하늘.
투두둑!
조금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읏차!”
높은 성벽에 올라선 나는 곧바로 성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게 펼쳐진 광야(廣野).
그 지평선 근처로 수많은 점들이 꿈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구울 군단을 목격합니다.]“그어어! 그어!”
썩은 살을 뚝뚝 떨어뜨리며 다가오는 좀비 같은 괴물과.
[스펙터 군단을 목격합니다.]“키이이이!”
시커멓게 뭉쳐 있는 유령들까지.
“전력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이거 A급 맞죠?”
위용만 봐서는 거의 S급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데?
골이 아파왔다.
하지만, 이선아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일단 길드 측에서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저건 일부에 불과하답니다.”
“……네?”
“아직 저급 언데드밖에 안 나타났잖아요? 곧 있으면 데스나이트랑 리치랑 이런 놈들도 나타날 텐데요.”
하아.
그래, 랭커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거겠지?
‘좋다.’
나는 꺼내놓은 지팡이를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팀에 랭커가 존재하는데 뭐가 걱정이랴?
S급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랭커에게.
어차피 A급 던전이란 놀이터와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뭔가 불안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
네크로맨서가 필요하다는 조건 때문에 그런가?
왠지 내 책임이 막중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찰나.
“오, 온다!”
“불사의 군단이 밀려온다! 전투를 준비하라! 성벽을 닫고 기름과 불을 올려라!”
뿌우우우! 뿌우!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가 울렸다.
“스켈레톤 로드.”
이선아가 나를 불렀다.
“예?”
“여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드가 나셔야 할 상황은 추후 리치가 등장했을 때이니까요.”
“리치요?”
“네, 그때 기믹이 발동하거든요. 일종의 저주죠. 네크로맨서가 없거나 인원이 여섯 이상일 시, 그 인원을 다섯으로 맞추는?”
아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확실히 이래서 대형 길드가 편하다.
이는 정보의 이점이었다.
많은 유형의 던전들을 깨면서 얻었던 정보들을 대형 길드끼리 주고받거나.
사고팔면서 정보를 축적하는 것.
천마신교 정도면 대부분 유명한 던전의 임무나 팁 정도는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적들이 성벽 앞까지 도달했다!”
“쏴라!”
“막아라! 저지하라!”
마침내, 전투가 시작됐다.
밀려 들어오는 구울과 스펙터를 향해 고지의 이점을 점한 병사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활을 쏘는 자들도 있었고, 장애물을 던지는 자들도 있었으며.
화르륵!
심지어는 마법을 쓰는 자들도 있었다.
“이 악마들! 너희들 뜻대로 당할 줄 아느냐!”
“싸워라! 쫄지 마라! 우린 이길 수 있다!”
“어이, 거기 너! 구석에 웅크려 벌벌 떨지 말아라! 네가 지켜야 하는 건 네 몸뚱어리뿐만이 아닌 네 가족이다!”
곳곳에 배치된 장수들이 윽박질렀다.
공포로 인한 사기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위협과 격려를 하는 거다.
“자, 그럼 저도 움직여 볼까요?”
스릉!
흑검(黑劍) 이선아가 검을 뽑았다.
“오오, 팀장님이 직접 움직이시는 겁니까? 이 정도 병력이면 저 혼자 해도 되는데.”
부팀장이 여유롭게 웃었다.
S급 헌터인 그에게도 스펙터나 구울 정도는 식후 간식거리에 불과한가 보다.
“네, 스켈레톤 로드께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저벅.
성벽 끝으로 올라선 그녀가 전방의 몬스터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팀원들은 칼도 뽑지 않고 있었다.
“흑검의 위력을 말이에요.”
랭킹 509위.
흑검(黑劍) 이선아.
그녀가 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