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81)
불사의 군단 (5)
후우웅!
혹한의 눈보라가 일대를 뒤덮었다.
처음엔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온도는 점차 낮아졌다.
피가 굳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느낌.
손발 끝이 퉁퉁 불어 올랐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적들의 속도 또한 늦어졌다는 점.
블리자드(Blizzard)는 피아를 구별하지 않았다.
“스켈레톤 로드!”
한창 싸우던 이선아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리치 몇 마리쯤은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안전을 보장 해드리겠단 약속, 어쩌면 지키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깔끔했던 복장은 넝마가 되어 있었으며.
기력 역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얼굴이 굉장히 피로해 보였다.
과연, 리치 11마리는…….
랭커조차 잡기 힘들 정도의 난이도였던 건가?
“분합니다. A급 던전이라 쉽게 갈 줄 알았건만…….”
그녀가 중얼거릴 때였다.
“대주님, 괜찮습니까?”
강지후가 대원들을 이끌고 이선아 옆으로 달려왔다.
그런 그들을 스윽 훑던 이선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강유정의 잘린 왼팔을 발견한 탓이었다.
“강유정 씨? 도대체 이게 무슨 일…….”
“흐읍, 제 부주의로 사고가 있었습니다…….”
강유정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혹한의 환경으로 인해,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은 겁니까? 어서 치료를 받아야…….”
“제 상황보다는 지금 우리 상황이 더 먼저인 것 같습니다, 팀장님……. 흐윽.”
“……그렇긴 합니다만.”
이선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랭커이기 이전에 한 집단의 대장이다.
대원들이 다쳤는데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실제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황 아니던가.
무거운 책임감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일단.”
이선아가 검을 잡았다.
“먼저 블리자드 필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블리자드 스킬의 기력 소모가 크다는 점. 아마 11마리 중 한 놈은 이 스킬 하나로 전투 불능 상태에 들어섰을 겁니다.”
전투 불능.
기력이 전부 소모되어, 더 싸울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부팀장님?”
“예.”
“부팀장님이 두 대원을 책임지고 이끌어주세요. 제가 스켈레톤 로드를 데리고 나서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이 구역을 벗어나세요.”
이선아가 왼손을 내 허리춤에 대며, 턱짓했다.
실례해도 되겠냐는 의미.
‘그게 맞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B급인 나보다, 랭커인 그녀의 속도가 더 빠를 테니.
괜히 오기 부리다가 늦으면, 온몸이 꽝꽝 얼어붙을 수도 있다.
‘부하들은 별수 없어.’
소환된 부하들과 주변 스켈레톤들은 어쩔 수 없다.
기력이 충만할 때, 다시 되살리는 법밖에는.
다 같이 도망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덥석!
그녀가 왼팔로 내 허리를 휘감았다.
그러고는 땅을 박찼다.
이선아의 완력은 대단했다.
성인 남성의 무게 따위.
마치 마트에서 장 본 후 비닐 봉다리 너풀거리는 것처럼 편안하게 날았다.
파바밧!
듀라한의 목과 데스나이트의 투구를 폴짝폴짝 밟으며 질주하는데, 그 속도가 엄청났다.
“괜찮으십니까, 로드?”
“네, 좀 어지러운 것 빼고는요.”
날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이 위기.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어떤 던전이든 해결책은 있다던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흑검 님.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뭡니까, 로드.”
“아까 저 스켈레톤들. 리치가 소환한 거 맞죠?”
내 물음에 이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리치 중 한 놈, 피 절반 정도 까니까 사용하더군요. 왜 그런 쓸데없는 스킬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상태 메시지에 떴으니, 확실할 겁니다.”
“으흠.”
쓸데없다라…….
맞는 말이긴 하지.
오히려 우리한테 이득이 되는 스킬이니까.
“솔직히 싸우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선아가 말을 이었다.
“스켈레톤 1,000마리라 해봐야, 저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닐 텐데…… 왜, 굳이 기력을 사용해 가면서까지 죽은 병사들을 살려내는 걸까요?”
역시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느낌이 왔다.
“기믹…… 아닐까요?”
“네?”
이선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냄새가 나잖아요. 이런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보스가 굳이 쓸데없는 스킬을 거기서 사용한다?”
주변 온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속도가 엄청나서, 어느덧 블리자드 필드의 끝부분에 다다른 것이다.
“저는 네크로맨서입니다. 정확히는 스켈레톤 로드, 시스템상 모든 스켈레톤 위에 군림하는 존재죠.”
“…….”
“근데 그런 제 앞에 굳이 스켈레톤을 꺼냈다는 건…….”
– 네크로맨서여.
– 모름지기 시련이란 그 수준에 맞게 설정되어야 하는 법. 그대가 품고 있는 잠재력은 가히 엄청나구나.
리치가 저주를 걸 당시 했던 말이다.
무언가 나를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
‘그렇다면.’
그 해답도 분명 나에게 있을 터.
“오호라.”
이선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로드의 말은…… 던전이 그 스켈레톤들을 이용해서 클리어하라고 힌트를 주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이 되고 안되는 걸 떠나서, 지금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도 맞죠.”
그녀가 동조했다.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11마리의 리치를 각개격파할 수도 없는 데다가.
기력도 다 떨어져 가고,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았으니까.
이제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좋아요.”
이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 반 피 까기. 까짓거 한번 도전해 보죠.”
스윽!
흑검이 방향을 리치가 있는 방향으로 틀었다.
어느덧.
전방에는 눈보라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추적추적 내리는 비만 있을 뿐.
“대신.”
이선아가 말했다.
“예.”
“우리 둘만 가야 합니다. 리치는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전부 커버가 불가능합니다.”
팀원들을 놓고 가자는 것.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게릴라는 원래 소수로 하는 거거든.
* * *
우리는 리치가 있는 곳을 향해 급속도로 접근했다.
이선아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생존과 전투.
두 단어로 가득했으니까.
이선아도 마찬가지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로드, 기력 얼마 남으셨습니까?”
“부하들 다섯 명 한 사이클 돌릴 정도는 됩니다!”
“좋아요. 로드도 저도. 지금부터 모든 기력을 짜내는 겁니다.”
“예.”
지금부터 앞뒤 사정 따지지 않는다.
추후를 대비하지도 않는다.
그저 전력을 다해 부딪힐 뿐!
스윽!
나는 남은 기력 50을 짜냈다.
동시에 뼈일이부터 뼈오까지.
전투형 뼈다귀들을 전부 소환해 냈다.
“주군!”
“이런, 이번엔 허공이로군요, 주인님.”
태양이와 엘드린이 허공에 날았고.
뼈일, 뼈사, 뼈오 역시.
고작 몇 미터 아래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리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뼈다귀5’가 스킬, ‘에어 실드’(Lv.Max)를 사용합니다.] [‘뼈다귀5’가 스킬, ‘헤이스트’(Lv.4)를 사용합니다.]나 역시 실드와 버프를 받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저도 갑니다, 로드!”
나를 던진 이선아가 그대로 검을 고쳐잡았다.
그러고는 온 기력을 검에 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시커먼 검신을 타고 흐르는 전류!
흑검비공(黑劍飛功).
광역술(廣域術).
제삼식(第三式).
진폭뢰(眞爆雷).
콰르르릉!
그녀가 다시 한번 천둥을 불러내었다.
폭발적인 힘이 리치들을 향해 폭사했다.
흑검비공의 단점이라 하면.
단일기가 취약해 일대일 대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드! 아직 제겐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으니까요!”
검이 움직였다.
“주군, 합공하겠습니다!”
창도 움직였다.
비록 본래 태양창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이었지만.
후웅! 후웅!
그 창술의 기세는 엄청났다.
누런 모래와 말라가는 초목을 연상케 하는 메마른 사막의 창술.
한 세계의 절대자였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러한 기세!
– 키이이이!
리치가 괴성을 지르며, 안광을 내뿜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이 태양이를 튕겨내고, 엘드린의 발을 묶었지만.
그들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달라붙었다.
쿠웅! 쿠웅!
고통 따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방패만 들고 돌진하는 뼈사.
이선아의 검격에 지기 싫다는 듯 칼을 휘두르는 뼈일이.
그리고 뒤에서 열심히 버프와 실드를 충당하는 뼈오.
“역시, 로드의 잠재력은 대단합니다. 이런 스켈레톤들을 다루시다니.”
콰아앙!
이선아의 검이 리치의 목을 때렸다.
“그래서 솔직히 미안합니다. 될성부른 나무를 괜히 위험한 던전에 끌어들여서……!”
어느덧 그녀의 신체가 리치의 후방부로 가 있다.
콰앙! 콰앙!
검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빛과 같은 속도였다.
“그렇기에,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도록 싸울 겁니다!”
흑검비공(黑劍飛功).
광역술(廣域術).
제사식(第四式).
멸천(滅天).
“쿨럭!”
이선아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쏟아졌다.
“흑검 님?”
나는 놀랐다.
태청심법을 운용하고 있기에, 그녀가 사용한 스킬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선천지기(先天之氣).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진기로.
일반적인 기운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순하지만, 사용하는 만큼 생명력을 대가로 내어놓아야 하는 것.
아까 말했던 비장의 무기가…….
저 멸천(滅天)이라는 기술이었나?
“괜찮은 겁니까?”
“예, 뭐. 쓸 때마다 랭킹 떨어져서 잘 쓰지 않는 기술이긴 하지만……. 일단 랭킹도 살아야 의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흑검 님.”
아아.
랭커가 자신의 순위를 버리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B등급 헌터인 내가 C등급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사실, 그것만이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본인 목숨의 일부를 내놓았다.
쿠르르릉!
하늘이 시커멓게 변했다.
흑검(黑劍)이라는 이명처럼.
세상에, 검의 비가 내린다.
“로드.”
“예, 흑검 님.”
“저들을 모두 처리할 순 없지만, 약속했던 대로 절반의 피는 앗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콰가가강!
무수히 많은 검은 바늘이 11마리의 리치를 향해 달려들어 폭사했다.
[리치의 Hp가 절반입니다!] [리치가 스킬, ‘망자 소생’(S급)을 사용합니다.] [리치의 Hp가 절반입니다!] [리치가 스킬, ‘망자 소생’(S급)을 사용합니다.] [리치의 Hp가 절반입니다!] [리치가 스킬, ‘망자 소생’(S급)을 사용합니다.]…….
“예측이…….”
맞았다.
예상했던 대로, 리치의 기운이 광야를 뒤덮기 시작했다.
대상은 불사 군단에 의해 쓰러졌던 병사들의 시체.
후두두둑!
하나둘.
새하얀 뼈다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삐걱! 삐그덕!
대략 9,000의 병사가 일제히 무기를 들고 솟아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
나는 입을 열었다.
“저한테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흑검 님.”
삐걱!
스켈레톤들이 무기를 리치에게 겨눴다.
“이곳, 던전에 들어온 것은 온전히 제 선택. 지켜보세요. 놈들이 어떤 시련을 내리든…… 다 이겨내고 더 성장해 낼 테니까요.”
동시에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조건을 달성합니다!] [‘고유능력 : 저주받은 네크로맨서’ 전용 히든 조건입니다!]좋아.
각성 명분의 충족.
기다리고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