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찌릿.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질문하는 실버훈의 목소리도 상당히 좋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방안에는 윈터를 비롯한 여러 명의 지휘관들이 있었는데 다들 눈빛이 살벌했다.
“나는 갇혀 있는 황후를 어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하다.”
누워있는 나는 진짜 그 마음일까 의문이 들었다.
‘회피하기 위해 꺼낸 말이군.’
게오르를 한 편이라 생각한 적도 있긴 했지만 공국을 세운 후부터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아니란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분위기가 험악하니 게오르는 별다른 일도 해보지 못하고 체르니아 왕국으로 떠났다.
‘분위기를 살피러 왔는데 자기편은 하나도 없고, 집어삼킬 능력도 없으니 떠난 거지.’
어쨌든 선을 넘는 발언은 없었기에 그대로 보내줬다.
***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지만 샤이아의 흑마법에 대비할 방안이 필요했다.
총도 샤이아를 상대할 방법이긴 하지만 문제는 샤이아는 사거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부터 마법을 쓸 거라는 점.
영악하니까!
원래 마법사라서 뒤에 있기도 하지만 아주 약아빠진 놈이라서 절대 총의 사거리 안으로 다가올 리 없었다.
‘병사들은 고기방패로 앞세우고 멀리서 마법만 쓰겠지.’
흑마법도 아닌 다른 마법.
정말 막다른 상황이 아니고선 흑마법을 쓰며 정체를 드러내진 않을 거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앞세운 병사들이 깨지면 어떻게 나오려나?’
난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샤이아가 유제프의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직접 부딪혀 싸우는 걸로 착각했다.
드레이크도 그렇게 했으니까.
나중에 말하겠지만 총사령관으로 병사를 끌고 오긴 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저 이용하기 위한 희생물이었다.
“전하! 전하! 큰일입니다!”
윈터가 급히 날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수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전염병?”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전염병이 퍼진 것보다 원인을 모른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아파서 드러눕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으니 조만간 죽는 자도 나오겠죠. 신전의 신관은 도시를 봉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시기가 너무 공교롭잖아. 내가 쓰러지고 전염병?’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거… 저주 같은데?’
그냥 저주도 아니고 도시 단위의 대저주.
이 정도 규모라면 아무리 샤이아라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숨어있던 흑마법사들이 전부 나섰구나!’
직감이 왔다.
‘그런데 흑마법사들이 전부 나선 대저주인데 죽은 자가 없어?’
원래라면 지금 죽는 자가 속출해야 했다.
‘흐음. 느낌이 오는데?’
바로 토템!
‘번영의 토템이 막아주고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토템이 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저주를 계속 중첩시킨다면 결국은 죽는 자가 나올 거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한두 명이 아니라 대량으로!
때문에 빨리 원인이 되는 흑마법사를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가 나타났다.
[도시에 저주를 거는 흑마법사 집단을 제거하라.]내용: 도시 전체에 저주가 퍼… (후략).
이럴 때는 메시지가 고마웠다.
내 짐작이 정확하게 맞다고 말해주는 것만 아니라 간략한 정보도 제공해주니까.
잠시 눈을 감고 게임에서 깼던 퀘스트를 떠올렸다.
‘대저주에서는 중요 포인트마다 흑마법사가 배치되어 있지.’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에는 한 명이 있다.
다음으로 육망성의 꼭지점 위치에 여섯 명이 있다.
마지막은 움직이는 두 개의 눈동자로 육망성 안을 쉼 없이 돌아다니는 두 명이었다.
저주를 거는 자들 중에 가장 강력한 흑마법사 두 명이 눈동자 역할을 맡는다.
‘눈동자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으니까 일단 한가운데에 위치한 놈부터 잡자.’
공국의 수도인 민주크의 한가운데에는 넓은 광장과 분수대가 있었다.
바로 이 분수대가 정중앙이라 볼 수 있었다.
외부에 알리길 나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이기에 흑의를 입고, 두건까지 착용했다.
그 후에 밤이 끝나고 막 새벽이 되려는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이때가 흑마법사들의 경계도 좀 풀어지고, 어둠이 걷히는 시간이가 흑마법의 저주가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똑같은 흑의에 흑두건을 쓴 사람이 있었다.
“이자벨? 함께 와줘서 고맙다.”
“나 밖에 없잖아.”
“맞아. 너 밖에 없어.”
나와 보조를 맞춰줄 사람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자벨 밖에 없었다.
물론 게임 속에선 이자벨이 아니라 따로 암살에 특화된 지휘관을 구해서 퀘스트를 깼다.
이 퀘스트를 할 때에 꼭 둘이 해야 한다거나, 파티를 맺어야 한다거나 하는 제약사항은 없었다.
하지만 보조해줄 자가 최하 1명은 있어야 했다.
2명이면 더 좋고, 3명이면 더 더 좋고.
4명 이상이라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이자벨 딱 하나만 데리고 왔다.
이유는 이자벨이 가장 실력이 좋고, 병과가 자객일 만큼이나 이런 일에 특화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함께 할 만한 자가 없는 게 가장 컸다.
또 여럿을 부르면 쓸데없이 시끄러워져 일을 그르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분수대 앞에 오자 밤인데도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자가 있었다.
노숙자 행세를 하는 흑마법사가 분명했다.
저자는 저주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품에 있는 마석을 통해 마력을 지속적으로 흘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할 일은 흑마법사를 잡아서 마력을 흘리지 못하게 하는 것.
“살기를 최대한 죽이고 다가간 후에 한 방에. 단 죽이면 안 되고. 알지?”
왜 죽이지 않아야 하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래. 내가 문제지.”
암살에 최적화된 이자벨 앞에서 내가 뭔 아는 척인지.
애도 낳았고, 활동을 안 한지 몇 년은 되었을 거라 걱정해서 한 마디 했지만 실상 지금 하려는 건 이자벨에 특화된 일이었다.
살금살금.
이자벨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다가갔다.
나는?
나도 물론 다가갔다. 하지만 버서커나 빅자이언트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버서커는 내 몸을 흥분시켜서 적의 감각을 깨우기 때문이었다.
빅자이언트는 힘이 강해져 아무리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고 해도 평소보다 세게 땅을 밟게 되어 적에게 들키기 쉬웠다.
거리를 상당히 좁혔고, 마지막이다 싶을 때에!
후다닥~ 퍼억!
이자벨의 주먹이 상대의 급소에 꽂혔다.
상대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로 고개를 떨궜다.
죽은 건 아니고 기절.
한편 가까이 다가가긴 했지만 난 흑마법사가 아니라 다른 자를 향해 공격을 펼쳤다.
정확하겐 하나가 아니고 셋.
휙! 휙! 휙!
세 자루 단검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셋은 동시에 쓰러졌다.
셋의 입에서 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긴 했지만 크진 않았다.
단검이 이마에 아주 강하게 박혀 절명했기 때문이었다.
피지컬 SS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내가 죽인 셋은 흑마법사가 아니었다.
아니, 흑마법사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주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역할은 한가운데에 있는 흑마법사의 보호와 주변 감시 및 보조.
나와 이자벨이 하는 작업이 어려운 이유가 여러 개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거였다.
흑마법사 주위에 몇 명일지 모르지만 이런 자들이 있다는 것.
이 일은 신속하기도 해야 하지만 은밀히 행해져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죽은 셋은 끌고 와 쓰러진 흑마법사의 옆에 뉘여 길에서 함께 노숙하는 자들처럼 꾸몄다.
흑마법사는 미리 준비해서 가져온 밧줄로 꽁꽁 묶었고, 입도 재갈을 채웠다.
품에서 마석을 꺼낸 후에 아공간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 마석에서 나오던 마력은 끊어진 것.
그 후에 이불로 덮어서 밧줄이나 재갈을 숨겼다.
겉에서 보기엔 추위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쓴 노숙자였다.
“다음 사냥을 가볼까?”
“잠깐. 정말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응. 아까 설명했잖아.”
저주를 풀 때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마석을 제거하는 것.
눈동자 역할을 하는 두 명은 계속 돌아다니니 예외.
한가운데에 있는 자와 육망성의 위치를 맡은 자로부터 마석을 제거하는 게 1단계.
이때에 중요한 건 마석을 가진 흑마법사들을 죽이거나 위치를 옮기면 안 된다.
1단계로 7명의 흑마법사로부터 마석을 뺏은 후에야 육망성의 위치에 있는 자들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거한다.
다른 말로 죽인다.
한가운데에 있는 자까지 다 죽이면 2단계 끝.
이 상황이 되면 저주는 작동을 멈춘다.
하지만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고 멈췄을 뿐.
두 눈동자의 역할을 맡은 흑마법사들도 변화를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한가운데 장소로 오게 되며, 여기서 둘을 이겨서 제거하면 3단계 끝.
1단계, 2단계, 3단계를 잘 완료하면 그제야 저주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걸 설명했을 때에 이자벨은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읽은 마법책 덕분이지.”
“…믿을 게.”
“하! 진짜야.”
“그래. 믿는다고.”
표정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넘어가 주겠다는 의미였기에 더 따지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의 난이도가 높았기에 잔뜩 긴장해야 하지만 이자벨과 함께여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즐거웠다.
전에 던전에서도 같이 해봤지만 그때는 다른 이들도 있었고, 둘만 활동하는 건 이번이 처음.
두 눈만 빼고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어서 이자벨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도 마찬가지로 즐기는 거 같았다.
첫 스타트를 잘 끊은 후에 육망성 위치에 있는 6명을 하나씩 잡아나갔다.
어떤 이는 저택 안에 있었고, 어떤 이는 여관 안에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노점상으로 위장해 있었고, 어떤 이는 병사로 위장해 있었고…
나 혼자도 아니고 이자벨까지 함께 했기에 목표물을 놓치는 적은 없었다.
매번 흑마법사 주위에서 보조하던 자들을 없앴다.
한 지점마다 최하 2명에서 최대 5명이나 있었다.
아! 6명의 흑마법사를 찾아내는 일은 내가 맡았다.
감응력이 S가 되어 마력에 민감해진 게 첫째.
다음은 감각이 S가 되며 조금이라도 위화감이 있는 자를 잡아낼 수 있는 게 둘째.
마지막은 고인물인 나만 가지는 노하우였다.
물론 이게 가장 지분이 컸다.
한가운데에서 1,000걸음 떨어진 곳.
이게 바로 육망성의 꼭지점이 위치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한가운데에서 1,000걸음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리면 이 안에 육망성이 딱 맞춰져 있게 된다.
따라서 원을 따라 이동하면 6명 모두를 만나게 된다.
때문에 첫 흑마법사를 잡은 후에 1,000걸음을 걸었다.
여기에서 몸을 옆으로 틀어 큰 반경의 원을 그리며 나머지 6명을 찾아나갔다.
이자벨을 이끌고 전력으로 뛰며 움직였기에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6명을 모두 잡아 마석을 뺏을 수 있었다.
다음은 살려둔 흑마법사를 한명씩 죽이기.
당연하지만 이건 더 빠른 시간에 끝났다.
“헉헉. 숨차네.”
“헉헉. 그런데 왜 이렇게 뛰어다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