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다, 당신…”
주르르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포탈 마법진 앞에 서 있던 이자벨
“미, 미안해.”
나도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이자벨을 바라보았다.
사실 가장 먼저 이자벨부터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난 혼자도 아니고,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따라 세 제국의 평화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니 조심스러웠다.
때문에 그냥 순서대로 방문한 것.
이자벨 옆에는 하인리히, 며느리 그리고 아빠 손을 잡은 아이와 엄마 품에 자고 있는 아기 그리고 밍구를 데리고 있는 아리아가 서 있었다.
가장 먼저 결혼한 하인리히는 벌써 애가 둘이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
이자벨과 포옹하는데 레아, 아나이스와는 다른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았다.
레아, 아나이스에겐 미안하지만 이제야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젠 떨어지지 마요.”
“후우, 아직 드래곤을…”
“말려도 할 거죠?”
“안 할 수 없어. 신탁이니까. 거부하면 난 죽어.”
“그럼 나도 같이 해요. 제발…”
안 된다고 하려는데 이자벨의 눈빛을 보니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흠흠. 아버님?”
이때 다가온 건 며느리.
“아! 미안하다.”
포옹을 풀고 아들, 며느리, 딸 등과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엔 밍구도.
쓰담쓰담.
“밍구야. 잘 지냈냐?”
꾸르르르.
늙어서 태워주지 못하고 보낸 게 미안했던지 밍구가 안 하던 애교를 부리며 머리를 내 품에 댔다.
울컥.
그동안 밍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하다. 그동안 널 혹사만 시켰다.”
더 사랑해주었어야 했고, 밍구도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는데
여긴 게임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인데.
게임에서처럼 밍구를 그냥 평생 함께 하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펫으로 여기고 세심하게 돌봐주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지? 밍구는 이미 늙어버려서 이젠 짝을 찾기에 늦었는데.’
갑자기 내가 죽거나 사라진 후에 뒤에 남겨지는 세 아내가 떠올랐다.
‘아직 젊은데. 세 아내도 짝을 찾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누굴 연결해주지?
솔직히 마땅한 이가 없었다.
과부… 만일 내가 사라진다면 정확히 과부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과부라고 해서 남의 후처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다.
왜냐하면 황제의 아내였으니까.
‘몰락한 제국의 황후나 후궁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자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잖아.’
젠장.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나 사라지면… 찾지 말고 딴 남자 얻으라는 말은 해줘야지. 진심으로 남자를 찾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은 덜어줘야지.’
난 세 아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나 하나만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혼자 남지 않기를 바란다.
밍구를 한참이나 쓰다듬어준 후에 아리아에게 넘겼다.
“아리아. 잘 지냈니?”
“네.”
“혹시 만나는 남자는…”
“으음. 그게… 없어요.”
살짝 주저했지만 예상한 답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알았다.”
이후에 환영 파티가 열렸는데 내가 슬쩍 지그먼트에게 다가가 아리아에게 가서 춤을 청해보라고 했다.
“내가? 니 딸에게?”
“응. 왜? 싫어?”
“아니. 나처럼 늙은 마법사가…”
“니 타입은 아닌가보지?”
“흠흠. 미안하지만 난 마법이 여자보다 더 좋다.”
“끄응. 알았다.”
아무래도 아리아의 결혼은 힘들 듯했다.
밤에 이자벨과 잠자리를 갖는데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함께 할게. 응? 뒤에서 총으로 지원만 할게.”
보호의 토템이 있으니 위험해지면 바로 피하면 되긴 하지만 그대도 역시 위험했다.
“생각 좀 해볼게.”
“나 다신 떨어지지 않을래.”
“어쩌지? 레아와 아나이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런 게 아니잖아. 나 두고 떠나지 말라는 말이야.”
“이자벨? 나만 아니라 너까지 죽으면 하인리히랑 아리아는 어찌 될지 걱정되지 않아?”
“하인리히는 결혼까지 했어. 그리고 아리아는 이 남자, 저 남자 소개를 해줘봤지만 도통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문제야. 다 큰 자식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해.”
맞는 말이긴 했다.
다 큰 자식을 언제까지 돌볼 수도 없고.
내가 떠나기 전에 세 아들에게 제국을 쪼개서 나눠준 의미도 더 이상 돌볼 수 없을 때를 위한 거기도 했다.
아리아는… 짝을 억지로 맺을 수도 없으니.
일주일 정도 푹 쉬며 이자벨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아리아가 날 찾아왔다.
“아빠?”
“응?”
“나 따로 할 말이 있어요.”
표정을 보니 꽤 심각했다.
아리아가 이런 적이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뭐지? 도대체 뭐지?’
그래서 주변에 있던 이들을 전부 나가게 하고 방에 아리아와 둘만 있었다.
“이제 하고 싶은 말, 해라.”
“으음. 내가요….”
아리아는 평소답지 않게 몸을 꼬며 말을 못했다.
“응. 니가?”
“어,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는데…”
화들짝.
“헉! 지, 진짜? 진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세상에나!
아리아에게 남자라니!
‘너도 청춘이긴 하구나. 그랬어. 너도 아예 남자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어.’
덥썩.
“그래. 누구니? 도대체 누구야?”
“그게 신분이 좀…”
“걱정마라. 사브리나의 짝도 기사에 불과했었다. 그리고 아빠인 나도 아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평민으로 자라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진짜 신분을 찾을 수 있었다. 왕족도 아니고 남작.”
“제가 좋아하는 남자는… 천민이라.”
“으응?”
이건 좀 심한데? 그래도 노예가 아니니 그건 다행이었다.
“사육사에요. 밍구를 함께 돌보면서 친해졌어요.”
“아!”
머릿속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 둘 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가까워졌겠지.
“상대는 아직 내 마음을 잘 몰라요.”
“모른다고?”
사귀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그쪽도 나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닐 거라 믿어요.”
하! 이걸 믿어야 해?
아리아도 눈치라는 게 있기는 하겠지만 아직 어린애였다.
특히나 동물과 교감하며 사람들과 교류가 거의 없던 아이.
밑에서 시중을 드는 이들만 가득한 황궁 생활을 해왔으니 더 걱정이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된 일이야. 만일 깊은 관계라면 돌이키지도 못하잖아?’
그래서 일단 아리아를 안심시키고 방법을 제시했다.
“밍구를 잘 돌본 걸 핑계로 그에게 상을 내리겠다.”
“어떤 상이요?”
“먼저 기사 작위를 주어서 신분을 올리고 정식으로 기사수련도 받게 해주마. 설사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도 신분은 기사로 만들어주겠다.”
“절 좋아하는 게 아니라도요?”
“그래. 상대는 친절인데 넌 오해한 것일 수 있잖아.”
“으음. 그런데 그가 기사가 되는 걸 원할까요? 기사는 생각도 안 했을 텐데.”
“그럼 신분만 올려주고 여전히 사육사로 두자고?”
“네.”
“좋다. 상대가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좋아하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떻게요?”
“아빠는 남녀 사이에 신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빠 생각이 다른 사람 생각이랑 같은 건 아니야. 우리는 엄연히 신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잖니. 사육사는 신분을 올려줘 봐야 평민이야. 그런데 넌 황제의 딸이잖아. 상대가 최소 귀족은 되어야 해. 귀족의 가장 아랫단계인 기사말이다. 그러니 네 남자는 기사수련을 견뎌내고 기사가 되어야 해.”
“기사수련이… 몇 년이나 해야 하죠?”
“속성으로 해서 1년 안에 끝내라 하겠다.”
“1년 후에는요?”
“네 호위기사로 삼으마. 그리고 사브리나의 경우도 있으니 그때 가서 결혼식을 올리는 걸로 하자. 다만!”
“다만…”
“그자가 너에게 관심이 없는 거라면 결혼은 없던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친절하니까 니가 오해를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오해 아니에요.”
“자신하니?”
“저에겐 누구나 친절해요. 저도 차이는 느낄 수 있어요.”
“그건 그렇네.”
누가 감히 아리아에게 불친절하게 하겠는가.
아리아가 좋아한다는 남자를 비밀리에 불렀다.
벌벌벌.
상대는 납작 엎드려 떨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라.”
고개를 올리는데 생긴 건 그럭저럭 괜찮게 보였다.
“이름은?”
“오브라고 합니다.”
“오브… 성은… 없겠구나.”
천민이니까.
조선시대로 치면 그냥 성도 없이 돌쇠, 막쇠 그런 거다.
“밍구를 잘 돌봤으니 그 상으로 네 신분을 올려주겠다. 아크만이란 성도 내려주겠다.”
“성은이 감사합니다!”
“한 가지 확인할 게 있다. 내 딸 아리아에 관한 것이다.”
흠칫.
상대의 몸이 실시간으로 딱딱하게 굳는 게 보였다.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지?”
만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간 죽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천민 주제에 감히 황제의 딸을 넘본 것이니까.
‘하지만 용기도 없는 자는 싫은데.’
살기 위해서 좋아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있고, 나도 이걸 이해한다.
하지만 용기도 없는 자에게 아리아를 주는 것도 싫은 게 솔직한 아비의 마음이었다.
“그, 그게…”
“…..”
원래 이 상황에서 ‘벌을 주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라’ 이렇게 해야 하는데 내 입은 꾸욱 닫힌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었으니까.
내가 벌을 안 준다고 하면 눈치가 빠른 놈은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쥬리처럼 사기치는 놈이 접근할 수 있기에 나도 조심스러웠다.
“…저는 아리아 황녀님을… 사랑합니다.”
오브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다.
피식.
‘다행이네.’
나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아리아를 불러서 오브 옆에 둔 후에 오브가 나에게 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뚝뚝.
눈물을 흘리는 아리아.
그녀를 보니 내 마음이 짠해졌다.
“오브는 수련 기사가 되어 1년 동안 수행한다. 그 후에는 아리아의 호위기사로 삼을 거다. 아리아?”
“네?”
“1년 동안 잘 사귀어봐라. 그동안 서로 마음이 바뀐다면 오브는 그냥 기사로 남을 거다. 하지만 더는 아리아 곁에 둘 수는 없다.”
“감사해요. 아빠. 그런데 아빠는 금방 떠나지 않아요?”
“떠나기 전에 내 지시사항을 하인리히에게 얘기를 해두마.”
“하지 마세요. 오빠는 반대할 게 분명해요. 차라리 엄마에게 말해주세요.”
“엄마…”
바로 대답을 못했다.
‘이자벨이랑 같이 떠날까 했었는데…’
우선 알았다고 하고서 이자벨을 만났다.
“뭐, 뭐라고? 아리아가?”
경악하는 이자벨.
나도 똑같은 마음이었기에 이자벨의 표정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천민보다 더한 문제가 뭔데?”
“으음. 그러니까…”
기사로 만들고, 호위기사로 삼는 것, 1년 후에 결혼시키는 것까지 설명한 후에 하인리히는 반대할 거란 말도 했다.
“으음. 그렇겠네. 내 아들이지만 하인리히가 은근히 고지식하거든.”
“그치. 고지식하지.”
“이렇게 하면 어때요?”
“어떻게?”
“기사수련… 한 달만 시켜요.”
“으응? 1년도 짧은데 한 달?”
“그 후에 뒤므리에와 에이츠에게로 보내죠.”
“으응?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