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49)
제 349화
349화
쿵!
아인호르타하가 완전히 쓰러졌다. 신살의 힘이 그의 신성을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좀먹어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소멸하리라. 하지만 소멸을 앞둔 아인호르타하의 표정은 지극히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처럼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제론은 힘을 거두지 않았다. 직감이 대체적으로 맞아떨어진다고 하나 눈앞의 상대는 대륙의 종말을 불러온 자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포기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모른다.
“죽음이란 건 원래 이런 느낌인가?”
“나도 몰라.”
“그렇군.”
아인호르타하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아무런 색채도 드러나지 않는 회색빛의 하늘이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군.”
“뚱딴지같은 소리는 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네가 죽으면 종말도 끝나는 건가?”
“그렇다.”
“그럼 얼른 죽이는 게 좋겠네.”
제론이 검을 들자 아인호르타하가 힘겹게 손을 든다.
“지금 나를 죽이면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차원의 틈 사이에서 영원히 배회할 수도 있다.”
“……그건 조금 곤란한데? 다른 방법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내가 쇠하여 공간을 유지할 힘이 사라지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제론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그리곤 아인호르타하의 말을 해석해봤다. 뚱딴지같긴 했지만 해석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죽을 때까지 가만히 놔두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긴 하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하고 힘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지탱하는 배열에 문제가 생겨 무너져 내릴 조짐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 잠시 쉬면서 기다리면 되겠네.”
제론은 누군가 공격을 해오면 언제든 대비할 수 있게끔 긴장을 적당히 조여 놓은 채 아인호르타하의 앞에 앉았다.
“왜 그랬냐?”
“무엇을?”
“왜 종말을 불러왔냐고.”
아인호르타하가 탄생한 이유는 베헤못에게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제론이 듣고 싶은 건 그런 종류의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종말을 위해 태어났…….”
“순수한 네 의지냐?”
“……무슨 뜻이지?”
“흠. 네가 태어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륙을 멸망시키고 싶었던 거냐고. 아, 더불어서 아스트랄의 신이라던가 악마라던가 그런 놈들도 포함해서 말이지.”
“…….”
아인호르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공간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죽은 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론이 쯧, 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불쌍하네.”
“……!”
“동정받는 게 불쾌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제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불쌍하다는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태어난 목적의식에 따라 세상의 종말을 불러온 거라면, 그런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정말로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사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그의 표정을 훔쳐보았고 그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이 복잡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인호르타하의 존재감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그가 말했다.
“나는 곧 소멸…… 아니, 죽는다.”
“그래서?”
“그대의 말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
제론은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인호르타하는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이유. 그것을 위해 살아온 삶. 하지만…….”
“하지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군.”
아인호르타하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이윽고 그의 몸이 천천히 부서져 내리며 그가 만든 공간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또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친구가 되어주지.”
고맙다.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지만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무너져 내리는 공간의 구멍 사이로 신역의 공간이 보였다.
제론이 끝났나, 라고 중얼거린 그 순간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공간의 구멍으로 날아서 들어왔다.
등줄기가 찌르르- 울리는 감각과 함께 제론은 일어나 검을 들었다.
‘적이다.’
하지만 무언가는 제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인호르타하에게 날아가 그의 부서져 가는 몸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비유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뱀이 자신의 몸뚱이보다 큰 짐승을 잡아먹는 것처럼 아가리를 크게 벌려 꿀꺽 삼켰다.
제론은 뒤늦게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솔라?’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검을 휘둘렀다. 솔라를 베어내는 감각이 손끝을 통해 전달되어온다. 하지만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아인호르타하를 소화시키며 천천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제론은 재차 신살의 힘과 신성으로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들이켜는 사이 인간의 형태로 미들어스에 강림했던 솔라가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족히 수백 미터는 될 법한 크기였다.
[캬아아아아아아!]솔라가 크게 포효했다. 아인호르타하가 만들어낸 공간이 포효 속에 담긴 힘에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 광기에 물든 파충류 같은 눈동자가 제론을 지그시 응시하고선 몸을 날려 공간의 구멍으로 나갔다.
신역의 공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윽고 공간의 구멍 역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른 빠져나가지 않으면 아인호르타하가 말했던 것처럼 차원의 틈에서 영원히 배회할지도 모른다.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론은 솔라가 공간의 구멍으로 나간 것처럼 그곳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상하게도 거리가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갈 수 없었다.
“단순히 달리는 것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 이건가?”
이때 제론은 공간을 뛰어넘어 베어내는 참격을 떠올렸다.
발출한 힘이 공간을 뛰어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그가 공간을 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때의 감각을 되살리며 신법을 펼쳤다. 그러자 들어갈 수 없었던 공간의 구멍을 통해 미들어스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주변에서 여러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에르딘과 쟌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보였다.
“제론…… 님?”
“너 괜찮냐?”
“죽을 것… 같긴 하지만 죽지는 않을 거 같아요.”
에르딘이 힘없이 웃는다. 전신뿐만이 아니라 얼굴까지 피투성이라서 그런지 허연 이가 유독 두드러졌다. 제론이 아인호르타하와 싸우는 동안 얼마나 필사적으로 신과 악마에 맞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녀석은 어디로 갔어?”
“저기 위.”
쟌느가 에르딘 대신 대답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제론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자 하늘 위로 훨훨 날아오르고 있는 솔라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려고 하는 거지?”
쾅-!
제론이 의아해하며 중얼거린 순간 솔라가 빛으로 이루어진 브레스를 뿜어내서 신역의 공간에 구멍을 냈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신역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후우! ……멀쩡히 살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일행들과 퓨리온 공작, 그리고 슈롬벨 백작, 마지막으로 기타 등등이 보였다.
“멀쩡하다는 걸 보니 팔이나 다리가 잘린 건 아닌가 보네.”
“진이 빠져서 쓰러져 있기는 해요. 저처럼.”
에르딘이 말을 마치곤 뒤로 천천히 넘어간다. 그러자 반쯤 드러눕듯 주저앉아서 숨을 헐떡이던 로레인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에르딘을 받아낸 그녀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제…… 어떻…….”
“그만 말해도 돼. 그리고 곧 끝나니까 쉬고 있어.”
말할 힘도 없어 힘겹게 입을 여는 녀석에게 대답해주곤 제론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솔라가 어디까지 올라가려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수백 미터나 되는 큰 몸뚱이가 손가락 두어 마디 정도로 보일 만큼 작아졌다.
최소 대류권은 뚫고 올라간 것 같았다.
“어디까지 올라가려는 거지?”
솔라의 기행은 제론의 폭넓은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제론이 눈을 크게 떴다.
손가락 두어 마디 크기였던 솔라가 조금씩 커져 갔다.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서 더 커진다고?’
솔라는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몸을 계속 키워갔다.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 하지만 곧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솔라가 태양을 삼켰다.
* * *
거대한 뱀이 태양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전 대륙이 목격했다.
낮이 사라졌다.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종말을 막지 못한 것이라며 절망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범부에게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위정자를 비롯해 마법사, 사제, 기사 등 직업과 직종, 남녀노소, 나이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했다. 최후의 싸움에 참전한 이들조차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태양이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린…… 종말을 막는 데 실패한 건가?”
누군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술집에서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던 친구도 있었다. 첫사랑과의 결혼식이 코앞이라던 젊은 청년도 있었다. 집에서 귀여운 아들과 딸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던 한 가정의 가장도 있었다.
그들의 희생이 무의미해졌다.
“정말로 실패한 거냐고……!”
허탈한 목소리가 절규로 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제론에게 닿았다.
“하아.”
“제론…… 님?”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에르딘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제론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들이마신 숨을 뱉어내며 눈을 떴다. 그리곤 에르딘과 시선을 마주쳤다.
“아니죠? 혹시 제 생각이…… 지금 틀린 거죠?”
“글쎄.”
제론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꼭 해야만 해?”
이번엔 쟌느가 묻는다.
그녀도 제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응. 해야만 해.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까.”
“……알겠어.”
빠른 수긍에 제론이 살짝 당황해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응. 약속할게.”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다친 곳 없이. 그리고 돌아오면 같이 사는 거야.”
“한 가지가 아닌데?”
“씁!”
쟌느가 인상을 쓰자 제론은 움찔 떨며 몸을 움츠렸다.
눈빛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저런 것이리라.
“약속했으니까 됐어. 그럼 다녀와.”
제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 쳤다. 왠지 모를 박력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물러난 것이었다.
“아, 잠깐만.”
“왜…… 읍.”
도톰한 무언가가 입술을 뒤덮는다. 곧이어 비릿하고 시큼한 맛이 느껴진다.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충격이 제론의 온몸을 지배했다.
쟌느는 두 눈을 한껏 크게 휘고선 제론의 어깨를 밀었다.
따스하고 말랑말랑했던 감촉이 떨어져 나간다.
“이제 진짜로 다녀와.”
제론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 *
솔라는 소멸한 신과 악마의 신성을 흡수해 완전한 존재에 가까워진 아인호르타하를 집어삼켜 완벽한 존재로 거듭났다.
세상의 종말을 마무리하기 위해 태양을 집어삼켰다.
이제 세상은 어두워지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얼어붙으리라.
[권태롭구나.]아스트랄의 종말이 다음 차례였으나 권태를 느꼈다.
나 자신 외에는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완벽한 존재란 이런 것인가?]권태가 전신을 지배한다.
존재의 이유에 덧없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잠이 오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