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직접 만나 보게
“이게 뭔데?”
집행부원 중 한 명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내가 간단히 대답했다.
“세이렌의 눈물.”
“세이렌의 눈물?”
그러자 녀석이 얼굴을 떼고 대답을 곱씹었다. 그래도 짐작 가는 내용은 없다는 듯 의문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그냥 보석 아니야?”
“…….”
다른 이들도 대부분이 녀석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금 그 보석을 꺼내서 뭐가 해결이 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단순한 보석 따위가 이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세이렌의 눈물은 겉보기엔 그저 푸른 빛을 영롱하게 비출 뿐인 물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유일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자네…….”
노인.
동료들 사이에서 철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던 건장한 노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물건, 어디서 났지?”
세이렌의 눈물이란 건, 그 자체로는 그렇게까지 희귀한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인은 내가 들고 있는 보석을 달리 알아보기라도 한 듯한 눈빛이었다.
출처를 묻는 노인의 말에, 나는 노인과 처음 마주쳤던 그 장소를 입에 담았다.
“불야성.”
“……!”
잠들지 않는 밤의 도시, 불야성.
노인과 처음 만났던 장소 또한 그곳이었다.
그 후 나는 센터장 영감의 의뢰를 위해 다시 한번 그곳에 방문해 토너먼트를 우승하고, 도시의 주인이었던 여자를 쓰러뜨렸다.
이 보석은 그 전리품이었다.
원래라면 영감에게 줘야 했지만, 영감은 보석을 잠깐 확인만 했을 뿐 최종적으로는 내게 넘겼다. 전설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가. 자네가…….”
노인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 보석을 찾기 위해 그 도시에 방문했었지.”
집행부 노인이 불야성 같은 곳에 갔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나.
“하지만 아무리 도시를 들쑤시고 다녀도 ‘그림자 마녀’는 코빼기도 비치질 않더군. 그녀가 있다던 ‘심연’에도 방문해 보려 했지만……. 늘 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검은 미로에서 길을 잃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검은 미로라.
나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심연이라는 그림자 마녀의 집무실에 도착한 건, 다름 아닌 당사자의 안내를 통해서였으니까. 길을 잃지 않도록 그녀가 손수 데려온 손님이었다.
“애초에 만나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일 테지.”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작정하고 숨으면 집행부원 정도 되는 실력자조차도 힘으로 뚫고 찾아갈 수 없는 공방에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어떻게 그 경계심 강한 그림자 마녀를 만나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세이렌의 눈물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건지.
마녀란 자들이 마녀라 불리는 이유는 대개 철저하고 배배 꼬인 준비성에서 기인하곤 했다. 그림자 마녀도 미로를 통해 방문객들을 정중하게 돌려보내는 취미가 있던 걸 보면 크게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를 만나려면 평범하게 찾아가려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오히려 그녀 쪽에서 만나고 싶게끔, 안달을 내게 할 필요가 있었단 것이다.
‘운이 좋았나? 아니, 운이 아니라…….’
토너먼트 같은 번거로운 이벤트에 참가시킨 건 센터장 영감의 지시였다. 그런 성가신 짓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상대란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토너먼트라 해도, 집행부원이 참가했다면 우승했다면 그림자 마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경계심이 강한 인물이니까.
처음 보는 나라는 인물이 우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할배, 이 보석이 뭐라고 그리 애지중지 떠드는 거야? 진짜 이걸로 뭐가 돼?”
집행부원의 질문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세이렌의 눈물에는…….”
그 순간.
덜커덩!
주하린이 팔뚝으로 테이블 위를 짚으며 엎어졌다.
“아가씨!”
주하린은 부름에 응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의식의 끈만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냉정하게 상황을 묻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이건?”
“…결합이 시작된 증거다! 결합은 막대한 마력을 빨아들이지만, 다른 한쪽이 마력이 없으니……. 아가씨 쪽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거다!”
마력을 흡수당하고 있는 거라고.
마력은, 모두 마력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서 불리고 있지만. 실제로 각자 가지고 있는 마력마다 조금씩 성격이 달랐다.
괜히 헌터들이 외부의 마력에 장시간 노출되는 걸 꺼리고, 오염도라는 항목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나눠 주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마력이 아니라 내공을 다루는 나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고.
“평소의 아가씨라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그렇지 않아도 주하린은 이미 한 차례 마력을 왕창 소진하고 난 참이었다.
불타는 숲에서 언니인 주예린을 들쳐 메고 나오는 동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효율 따윈 생각도 않고 마력을 쏟아부은 모양이었으니.
그때, 집행부원 여자가 팔을 걷었다.
“수혈하겠습니다.”
“뭣……!”
그러자 다른 동료가 소리쳤다.
“아서라! 네 상태를 생각해!”
간혹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력을 나눠 줄 수 있는 특수한 체질의 각성자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집행부원들은 모두 마력이 동나 있는 상태였다. 그 잠깐 사이에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해도, 그 양은 많지 않을 터였다. 남에게 전해 준다면 훨씬 더 적어질 거고.
“1분. 아니, 1초라도 더 벌면 족합니다. 그러니까 방법을 찾으세요.”
“…젠장.”
집행부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손에는 여전히 세이렌의 눈물이 보관된 상자가 들려 있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결국 기댈 수단이라곤 이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보석, 얼마가 됐든 간에 내가 백 배 천 배로 갚겠어.”
“…….”
“그러니까… 아가씨를 위해 써 다오.”
녀석이 고개를 숙였다.
“부탁이다.”
* * *
“이쪽도 상태가 좋진 않군.”
세이렌의 눈물을 사용하기 위해 주하린을 부축해 주예린이 있는 의료실까지 이동했다.
주예린 역시 결합으로부터 모종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건지 가쁜 숨을 내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에서 열이 오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마력 과다다. 각성자에겐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마력이라도, 일반인에겐 독이 될 수 있지.”
냉정하게 현상을 분석한 후 노인이 주예린을 내려다보았다.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미안하다.
주예린을 찾아가 말을 전했을 때, 그녀는 입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초연하게 대답했다.
-할아범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다 회장님이 결정한 걸 텐데.
-…….
노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 주예린이 당돌하게 요구했다.
-시간 좀 주죠.
-시간이라니?
-이대로 죽기엔 억울해서.
주예린의 말에 노인의 심정이 더더욱 가라앉았다.
-이왕 죽을 거라면, 죽어도 싼 천하의 썅년이 되어 보려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인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쌓아 온 그녀의 모든 평판과 관계를 바닥까지 처박기 위한 것이라고.
한순간에 떨어지지 않고 천천히 하강해, 누구 하나 마음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그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잘한 일이었나, 아니었나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일은 주예린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주하린은 아직도 자매를 저버리지 못했으며, 지금 두 사람 모두 큰 고비에 처한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무엇 하나 건지지 못한 채로 끝이 나 버린다.
‘남은 건…….’
세이렌의 눈물.
시중에 돌아다니는 겉모습만 그럴싸한 모조품이 아니라, 전설을 간직한 진품이 필요했다.
집행부 역시 그것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어떻게든 구해 보려 했지만. 유일하게 알고 있는 출처인 그림자 마녀를 찾아내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 아이템은 여우 가면을 쓴 사내의 손에 들려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럼 간다.”
주예린과 주하린이 맞잡은 손 사이에 도율이 세이렌의 눈물을 집어넣었다.
화악!
보석이 빛을 발했다. 외부의 빛을 반사하는 보석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진 무언가를 태우며 발하는 빛이었다.
“설마 진짜로…….”
보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두 사람을 감싸는 광경을 지켜보던 집행부원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노인의 눈엔 아직 근심이 어려 있었다.
‘세이렌의 눈물을 구해 온다 하더라도, 회장님께선 당신께서 계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중요한 이유라도 있었던 거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모두 초조함을 느꼈다.
“이거, 뭔가 되고 있는 거 맞아……?”
빛이 발생하는 것까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 냈지만. 그 이후엔 일렁이기만 할 뿐. 두 사람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섣불리 손대지 못하고 입술을 씹거나 발을 구를 뿐이었다.
그들 중 유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건 도율이었다.
‘…나만 보이는 건가, 이건?’
도율이 눈을 찌푸렸다. 그에게도 확실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투명한 무언가가 움직일 때 주위의 풍경과 정확히 맞물리지 않아 왜곡이 일어난 것처럼, 어렴풋이 존재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투명한 무언가가 보석에서 나오는 빛을 틀어막고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도율이 조용히 손끝을 그었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
그러자 옅은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소멸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도율이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제거한 이후엔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됐다!”
주예린의 호흡이 고르게 돌아왔고, 주하린 역시 더 이상 마력을 빼앗기지 않는지 한층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마력이 바닥 난 건 어쩔 수 없는지, 주하린과 그녀를 보조하던 여성 집행부원이 정신을 잃었다.
“아가씨!”
“어이!”
당황하는 다른 집행부원들과 달리, 노인이 침착하게 고개를 저으며 검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았다. 안정을 취할 수 있게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쓰러진 이들을 침대 위에 눕히고 남은 인원들은 일단 대현의 구급 차량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할배.”
“나도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남은 건 회장님께 보여 드리는 수밖에.”
확신은 없는 대답이었으나, 그래도 당장의 고비를 넘긴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집행부원이 숨을 몰아쉬고 도율에게 말했다.
“고맙다.”
그가 덧붙였다.
“잊지 말고 달아 둬. 천 배, 반드시 갚을 테니까.”
“…….”
도율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세이렌의 눈물은 도율도 거저 받은 물건이었다. 그러니 공짜에 천 배를 한다 해도 공짜가 될 뿐이었다. 당장 생색을 내려고 해도 생각나는 건 없었다.
달아 두라는 말대로, 나중에 요긴하게 보답받을 수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봐.”
도율이 부른 건 집행부원 노인이었다.
“왜 그러지?”
“질문 하나 하지.”
그러자 노인이 굳은 표정으로 약속했다.
“묻게. 뭐든지 대답하지.”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집행부원이라는 입장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도율은 대현 그룹의 후계자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니까.
“이번 일, 영혼이니 뭐니 하는 거. 내가 보기엔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데.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할 수 있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었다면, 분명히 전례가 있었을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도율이 봤던 희끄무레한 무언가의 정체. 그 존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알아야만 하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도율의 질문에 노인이 침음을 삼켰다.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군.”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그럴 것 같았다고 예상하면서도 도율이 핀잔을 줬다. 하지만 노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해하지 말게. 대답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니까.”
“그럼?”
노인이 엄숙히 눈을 감았다.
“대답할 수 있는 분을 소개해 드리지.”
“대답할 수 있는 분…….”
그게 누굴 말하는 것인지 도율도 알 수 있었다.
집행부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대답해 줄 사람. 그런 집행부의 위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직접 만나 보게.”
그것이 노인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