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이거 한번 써 보지
“꼴 좋다.”
샤디아가 노래하듯 높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부부 행세라도 하며 자기가 제일 특별한 줄 알았어?”
샤디아가 히죽 웃으며 클레어의 폐부를 찔렀다.
마치 도율과 클레어가 계약 부부 관계인 걸 아는 듯한 말투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두 사람은 방송까지 나가는 진짜 부부여야 했다. 행세라는 말이 나와선 안 되는 거였다.
“그걸 어떻게…….”
“말했잖아, 특이 체질이라고.”
그녀가 자신의 황금색 눈동자를 가리켰다.
아티팩트의 효과를 웃돌아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것인지. 클레어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캐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샤디아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넌, 네가 그 사람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사실은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눈뜬장님이었으면서 말이야.”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도발이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들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그 어떤 말도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보고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런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특이한 걸지도 모른다.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하기엔 억울했다.
하지만 문제는 도율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점이다.
‘나 때문에 그런 일까지…….’
도율이 다른 세상에 다녀온 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사람 사는 곳이긴 했겠지. 연고도 없는 외지인이 살아남기 위해 험한 일을 겪는 것 정도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면 사선을 넘는 것 정도는 당연하다고.
결국 모두 이겨 내고 돌아왔으니 이제는 전부 해결된, 과거의 일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완전히 망가진 채로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이어 붙인 거였다고?
클레어의 잇새로 숨이 새어 나왔다. 심장이 뻐근해서, 그 저림이 손목을 타고 손가락 끝부분까지 전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 클레어를 향해 샤디아가 웃는 얼굴로 단언했다.
“넌 그 남자를 감당할 수 없어.”
클레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쪽은 가능하고?”
“그럼.”
샤디아가 고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빠져들 정도로 짙은 미소였다.
“취미거든. 그런 남자를 갖고 놀다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거지.”
“…….”
샤디아는 입술 위로 손가락을 붙였다. 그 눈동자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전의 기억을 곱씹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윽했다.
클레어가 거북하다는 듯이 짓씹었다.
“…취미라고요?”
“걸즈 토크라고 했잖아.”
“악취미로군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샤디아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데. 너도 한번 맛 들이면 못 벗어날걸?”
클레어가 인상을 썼다. 다른 사람이 가진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자신도 그런 저열한 취미를 가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도 같은 짓을 할 생각이라 이거죠.”
“정답♥”
샤디아가 숨기는 기색도 없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듯이 조언했다.
“참고로 말해 주는데, 본인한테 직접 알려 주면 역효과만 날걸?”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알지? 사람 생각이란 게 참 불편해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수록 유혹에 눈 돌아가게 되어 있거든. 이건 페어플레이하자고 내가 양보한 거야. 너무 쉬우면 또 재미없다?”
샤디아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은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든 간에, 클레어는 해야 할 말이 명확했다.
“그렇게 두진 않아요.”
결연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였다.
이미 한참도 더 전에 다짐했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샤디아가 그런 클레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참 쥐고 흔든 줄 알았더니, 결국 가장 깊은 곳에 단단한 심지가 자리 잡고 있는 걸 확인한 느낌이었다.
이내 샤디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우린 다르네.”
클레어가 인상을 찌푸리고 침묵했다. 그야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댁 같은 인간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게 실례라는 듯한.
샤디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알아서 잘해 봐.”
그러고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빨대로 모두 빨아들였다. 바닥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잘 마셨어.”
샤디아가 빈 잔을 흔들고 먼저 자리를 떴다.
* * *
“영혼 결속이다.”
“영혼 결속?”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의문을 품었다.
영혼靈魂과 결속結束.
두 단어를 각각 떼어 놓고 본다면 생소하지 않았지만, 그 두 가지가 만나 뜻하는 바를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우 가면을 쓴 도율만이 가면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혼을 합쳐 놨다고? 왜? 그게 가능해? 그보다, 그렇게 하면 결국 어떻게 되는데?”
“한 가지씩 물어보세요.”
집행부의 누군가가 수다스럽게 떠벌리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해를 위해, 제가 대표로 묻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철완?”
여성 집행부원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집행부 중에서도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와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우선 영혼이라는 게 제가 아는 의미의 단어가 맞습니까? 넋이나 정신이라 불리는, 때로는 유령이나 귀신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그것 말입니다.”
“그게 맞다.”
노인이 시원스레 인정하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영혼의 여부는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다. 마력이라고 하는, 지금까지 없었던 개념조차도 새로이 받아들이게 된 인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던 영혼이라는 불확실한 존재는 아직까지도 관념 속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회장과 철완만이 알고 있다는 전제가 그 이야기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결속이란 말은 둘 이상의 영혼이 하나로 묶였다는 의미겠군요. 대상은 누구입니까?”
“말할 것도 없지 않나? 아가씨와… 주예린이다.”
그 부분은 모두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대상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니와 내가……?”
주하린이 중얼거렸다. 각성자인 그녀는 미지의 현상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달리 특이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때 집행부원 중 누군가가 물었다.
“잠깐… 난 주예린이 쿠데타라도 기획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가 아니었어?”
“그쪽은 제발 좀 빠지십시오. 이야기가 딴 길로 새지 않습니까.”
그럴 리는 없었다. 아무리 장손녀라고 해도 각성자도 아닌 그녀가 달리 그룹 내에서 세력을 모을 방법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회장이 아직까지 그룹의 주인인 것은, 단순히 옛 공적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전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그 힘이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을 피해 가는 듯한 존재. 죽어 사라질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불멸의 지배자.
그렇기에 그의 말이 그룹 내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성 집행부원이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서, 그 영혼 결속이라는 것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좋은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만.”
“아무 효과도 없다, 지금까지는.”
노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또 뭐라 입을 열려고 하는 다른 집행부원을 제지하고, 그녀가 침착하게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면 굳이 화제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상대로, 노인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결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 이윽고 두 영혼이 완전히 섞이고 만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한 영혼이 두 개의 몸을 갖게 되지.”
“……?”
침묵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누군가 물었다.
“아니,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되는 건데?”
이번엔 집행부원 여성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키는 건지, 그녀 역시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
“두 사람이 목숨을 공유하게 된다.”
“그건…….”
그 이야기를 들은 집행부원이 손가락을 튕겼다.
“과연. 그렇게 되기 전에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거였군.”
“…….”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주하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갖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도 아닌, 살아 움직이는 약점이.
각성자인 본인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런 약점이 있어서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 주예린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불안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은 지울 수 없었다.
“온전한 결합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지.”
“…….”
집행부원들은 모두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임무의 당위성도 깨달았다. 침묵하는 건, 가능했다면 임무를 이어 수행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하는 건, 이곳에 존재하는 억제력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예상이지만 남자는 주하린의 편이었다. 주예린을 구한 것도 그것이 그녀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하린의 안위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엔 어떻게 반응할까.
“왜들 보지?”
집중되는 시선에 도율이 물었다.
평온한 말투는 아니었다. 심기가 거슬리는 점이 있는 건지 상당히 가시가 돋친 말투였다. 불쾌하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다수의 집행부원이 동시에 덤빌 때에도 성가시다는 반응만 보이던 남자의 감정적 동요에, 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대표로, 여성 집행부원이 물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이 궁금한가?”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율이 싱겁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난 의뢰인의 말에 따르자는 주의라.”
그렇게 말한 도율이 시선을 던진 건, 이 방의 중심에 앉아 있는 주하린이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당사자로서, 이야기를 듣고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잖아.”
주하린의 대답은 단호했다.
“난 언니와 함께할 거야.”
그 대답에 집행부원이 아연하며 주하린을 붙들었다.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주하린이 소리쳤다.
“항상 나만 아가씨라고 부르지. 왜 언니는 그렇게 안 부르는데? 너흰… 그룹에서는, 후계자가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본다 이거야?”
“…….”
“지키면 되잖아.”
주하린이 각오를 내비쳤다.
“내가 언니를 지킬 거야.”
“아가씨…….”
가시밭길이 예정된 선택이었다.
“…알겠습니다.”
집행부원이 순순히 인정했다.
“임무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전례 없는 일. 죽음에 이르는 한이 있더라도 실패만큼은 용납하지 않는 집행부이기에, 실패를 보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집행부를 주대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짤리겠구만.”
“짤려? 직장에서? 내가 보기엔 목이 잘리게 생겼다고. 하.”
“그럼 여기서 죽을래?”
그들이 도율을 가리켰다.
“…그것도 싫다, 야.”
각자 상황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사이.
도율이 조용하게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거기서 나온 건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를 가진 상자였다. 겉은 그을려 있었지만, 안에 들어 있는 물건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이건 얼마 전, 최강현의 의뢰로 손을 넣었다가… 다시 그에게 받은 물건이었다.
“세이렌의 눈물.”
최강현이 자네가 가지라 말했으니, 어디에 쓰느냐는 본인 마음이겠지.
목소리를 낸 도율을 향해 어느새 시선이 모여 있었다. 도율이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든 푸른 색깔의 보석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거 한번 써 보지.”
전설이 사실이 될 수 있을지 확인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