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난 사양이다
“바로 저 눈이다.”
“눈?”
세케르가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는 샤디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가진 것과 같은 눈이지. 황금안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끝도 없지만, 일단은 변장 따윈 소용없다는 것만 알면 된다.”
세케르의 설명에 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야기라면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샤디아 역시 세케르와 마찬가지로 금색으로 빛나는 눈을 갖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던 도율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했다. 자기 말로는 눈이 특별한 덕에 알고 있었다고 했는데.
‘같은 눈…인가.’
그렇기에 세케르 역시 변장은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건 단순한 기분 내기에 불과했다.
“가족 맞나? 보자마자 도망쳐 버리는데.”
도율의 물음에 세케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리광이다.”
“어리광?”
“받아 줄 나이는 한참 지났지.”
세케르는 그리 얼버무리고 말을 돌렸다.
“중요한 건 우리에겐 저 여자가 필요하다는 거다. 쫓자.”
도율이 잠시 고민했다.
샤디아의 뒤를 쫓는 건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세케르 혼자 보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주대현에게 세케르가 사고 치지 않게 감시하고 있겠다고 장담하기도 했고.
“그래, 가자.”
팟!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헥, 헥…….”
샤디아가 좁다란 뒷골목으로 달음박질하며 숨을 골랐다.
보자마자 한눈에 알았다. 그 인간이 자신의 친남매인 세케르라는 것을.
벌써 몇 년이나 보지 않았지만 그런 건 문제되지 않았다.
‘그 인간이 왜 여기에……?!’
이곳은 작은 나라였다. 구석진 곳에 있는 나라이기도 했고.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 세케르에게 있어, 방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곳이란 뜻이었다.
자신 하나 찾자고 이런 곳까지 걸음을 옮겼을 리는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중요한 건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드넓은 평야였다면 세케르의 날개로부터 도망칠 길이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좁은 뒷골목이 복잡하게 얽힌 도심이었다.
이곳 지리에 제법 익숙해진 샤디아에게 보다 유리한 전장.
그런 샤디아의 귓가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답지 않게 샤디아가 숨을 죽이고 발소리의 주인이 등장하는 걸 지켜봤다. 이윽고 그 얼굴을 확인했을 때, 샤디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뭐야. 자기였어?”
나타난 건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였다.
도율. 불야성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는 자였지만, 지금은 반가워할 때가 아니었다.
“미안♥ 나 지금 좀 바쁜데.”
직후 샤디아가 도율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도율이 물었다.
“그자 말로는 너와 가족이라던데.”
그 말에 샤디아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어깨를 들썩이고는 답했다.
“내가 제일 이해 안 되는 말이 그거더라구.”
“그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혈연의 끈끈함에 대한 표현.
샤디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지금은 그냥 모른 척해 주면 안 될까? 그 인간은 시간 낭비를 싫어해서 소득이 없다 싶으면 금방 돌아갈 테니까…….”
“잘 아는군.”
새로이 들려온 건 샤디아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세케르…….”
“네 말대로 나는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
목소리에 이어 세케르가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얌전히 따라왔으면 좋겠군.”
“…….”
샤디아와 세케르.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나는… 왕위 따윈 관심 없다고 했잖아.”
‘왕위?’
샤디아의 말에 세케르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오해는 무슨 얼어 죽을 오해?”
“필요한 건 너, 그 자체다.”
세케르가 오해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꺼낸 말은, 샤디아를 한층 더 경계하게 만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좋게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 말은 역효과를 낳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싸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샤디아야말로 세케르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태양의 힘은, 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하고 날개를 태울 정도였다.
“샤디아!”
그 순간.
하늘에서 굵직한 번개가 내리꽂혔다.
쿠르릉!
마른 하늘 위를 새하얀 섬광으로 가로지르며 바닥에 꽂힌 번개가 걷히고, 금발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율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토마스.”
묠니르 토마스.
이쪽도 불야성에서의 인연이 있던 남자였다.
한동안은 그쪽을 재건하느라 목공수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더니. 이런 곳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샤디아와 어울리고 지내고 있었던 걸지도.
도율의 부름에 토마스가 낮은 음색으로 물었다.
“여우. 네가 왜 흑희의 뒤를 쫓는 거지?”
토마스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의 손아귀에는 아직 전류가 잔존해 있었다.
“난 따라 나왔을 뿐이고, 저쪽이.”
도율이 가리킨 곳에는 세케르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넌 또 뭐냐?”
그리 묻는 세케르의 말에 토마스가 한 걸음 나서며 되물었다.
“그러는 넌 뭐지?”
토마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심기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모처럼 샤디아와 만날 구실을 대고 시간을 보내는 건 좋았지만, 갑자기 제멋대로 사라진다 싶더니 어느샌가 쫓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둘이 함께 있던 시간을 방해 받은 것에 대한 분노 이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니까.
‘올곧은 건 여전하군.’
그런 토마스의 태도에, 이놈은 뭐야 하고 바라보던 세케르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난 그 여자의 오라버니다.”
“…음?”
그 말을 들은 토마스가 의아하게 세케르를 뜯어 보았다.
이제 보니 제법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피부색이나 머리칼색은 물론이고, 이목구비도 잘 뜯어 보면…….
토마스가 고개를 돌려 샤디아를 바라보았다.
샤디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사실이긴 했으니까.
“어…….”
토마스는 엄청난 갈등을 겪은 끝에 마침내 결정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세케르에게 고개를 숙이기로.
“…뭐 하는 놈이지, 이건?”
결국 세케르가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 * *
“대규모 작전이라…….”
샤디아가 말을 곱씹었다.
도율과 세케르로부터 필요한 설명을 모두 들은 참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전력을 끌어 모아 마계로 넘어가 사도라는 존재들을 무찌를 생각이라는 것을.
‘사도니 뭐니, 크게 관심은 없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흥미가 없었기에 놀라 나자빠질 일도 아니었다.
“네가 있다면 작전이 한층 수월하겠지.”
“이 눈 때문에?”
“그래.”
세케르와 같은 황금안.
진실을 꿰뚫어 보고, 혜안을 가져다주는 눈이었다.
세케르가 가진 모든 힘이 황금안으로부터 비롯된 건 아니지만, 그것이 가진 힘을 평가절하할 순 없었다.
세케르가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눈은 고작해야 한 쌍에 불과했다. 홀로 전장을 모두 굽어 볼 수 있다고는 해도, 혼자서 져야만 하는 부담이었다.
같은 황금안을 물려받은 샤디아가 합류해 눈이 되어 준다면 세케르는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편이 보다 합리적인 활용이었다.
‘문제는…….’
도율이 샤디아의 표정을 살폈다.
‘과연 순순히 자원할까?’
샤디아는 들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본능에 충실하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인류를 위해 싸움에 참가하라고 호소한다 해도 먹힐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흥미를 끌 만한 미끼라도 있으면 모를까.
하지만 도율의 걱정과 다르게, 샤디아는 시원스레 승낙했다.
“좋아.”
“…진짜냐.”
샤디아가 활짝 웃었다.
“당연하지. 자기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특등석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라잖아? 놓칠 리가 없는걸♥”
“…….”
도율이 이마를 짚었다.
‘미끼는 나였나.’
그 대화를 지켜보던 세케르가 물었다.
“아는 사이였나?”
“조금…….”
“남이사.”
샤디아는 세케르에게 쌀쌀맞게 굴었지만, 세케르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로군.”
그 말에 샤디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세케르의 그 말에 반응하는 건 오히려 토마스 쪽이었다. 초조한 얼굴로 도율을 쏘아보고 있었다.
“…말해 두겠는데, 난 유부남이다.”
도율이 반지를 들어보였다.
하지만 세케르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첩으로 삼으면 되지 않나?”
도율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이었다.
“그쪽에선 그게 평범할지 몰라도…….”
첩이라.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조금 상상을 해 버렸다.
만약 클레어와 샤디아가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된다면…….
핏기가 싸악 가셨다.
‘제 명에 못 살겠군.’
그럴 일은 절대 없으리라 다짐했다.
어쨌거나 도움이 될 만한 인재가 합류한다니 다행이었다.
“나도 가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마스가 거들었다.
“너도?”
“그래?”
“뭐냐, 그 떨떠름한 반응들은!”
누구도 환영한다는 반응 없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토마스로선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너희들, 날 잊은 거냐?! 투기장 넘버 원 검투사, 묠니르 토마스를!!”
“잘난 척 말하긴. 너, 결국 한 방에 나가떨어졌잖아.”
“목수 이미지가 강해서…….”
모두 맞는 말들이어서 토마스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중 가장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건 샤디아의 오라버니라 했던 세케르였다.
“나는 네놈이 누군지 모른다.”
“아, 저기, 저는…….”
토마스가 허둥지둥하며 설명하는 찰나, 샤디아가 몰래 도율을 불러냈다.
‘따로 얘기 좀 해.’
뒤따라 나가자 샤디아가 곧장 말했다.
“나 조건이 있어.”
“뭐지?”
“저 녀석은 빼 줘.”
샤디아가 가리킨 건 토마스였다. 유리창 너머, 토마스는 세케르를 향해 횡설수설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말은 그렇게 했어도, 도움이 안 되진 않을 텐데.”
번개의 힘을 다루는 토마스는 상당히 강한 각성자 중 하나였다.
소속이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 뿐, 신체를 번개로 바꿔 물리적 공격을 모두 흘려 내는 뇌신화까지 가능할 정도라면.
‘사신수에게 닿을 정도…라고 봐도 되겠지.’
큰 힘이 되리란 건 분명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말하는 게 힘겹다는 듯이 샤디아가 말끝을 흐렸다.
“좋은 사람이잖아.”
샤디아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지만, 도율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지배자가 사라져 혼란에 빠진 도시에서, 그곳을 떠나거나 새로운 세력을 갖추지 않고 복구에 힘쓰던 토마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계 침략에는 응당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 당연히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토마스는 그런 곳에서 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너……. 저 녀석을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그거랑 그거는 별개. 말하지 않았던가? 난 심지가 굳은 사람은 취향이 아니라고.”
“처음 듣는데.”
반대로 말하면, 샤디아가 좋아라 하는 자신은 심지가 약하단 건가.
듣기 좋은 소린 아니었어도 당당하게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흔들리는 일이 잦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그 황금안이란 걸로 꿰뚫어 봤다 이건가.
“자기나 나나, 지옥에서 굴러도 괜찮잖아?”
샤디아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그에 도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난 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