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내가 제일 싫어 하는 놈들이야
“‘부스터’라고 불러요.”
“부스터?”
탐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보라색 액체. 탐정이 설명하는 건 그 내용물이 가진 효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마시고 나면 순간적으로 마력의 총량 자체를 늘려 주거든요.”
“그렇군.”
각성자에게 마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봐도 무방했다. 바탕이 되는 신체 능력이나 다루고 있는 무기에 대한 숙련도, 그 외에도 상대하게 되는 존재에 대한 이해도 역시 중요하지만.
가장 바탕이 되는 건 마력이었다. 헌터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 역시 마력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다.
그렇기에 많은 각성자들이 가장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했다. 마력의 총량을 늘려 주는 약이 있다면 누구나 눈이 돌아갈 것이다.
‘마치 영약처럼 말이지.’
저쪽 세계에 있을 때도 무림인들은 영약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각성자들에게 마력이 중요한 것처럼, 무림인들에게 중요한 건 내공이었다. 그리고 영약은 그 내공을 증진시켜 주는 효과를 지녔다. 영험하다고 잘 알려진 영약은 물론, 뜬소문이 나도는 싸구려 잡약도 못 구해서 안달인 자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니 효과가 확실하다면 이 ‘부스터’라고 불리는 물건이 어느 정도로 수요가 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 되겠지.
문제는…….
‘수상쩍어.’
영약이 내공을 증진시켜 준다 해도 그 기운을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섭취 후에 운기조식을 통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남자가 부스터라 불리는 액체를 꺼낸 건 나와 싸우기 직전. 평안한 상태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쪽 세상 각성자들은 기운을 다스린다는 개념 자체가 잘 없었다.
그럼 그런 복잡하고 불편한 과정 없이도 마력을 증진시켜 준다는 건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영약 같은 귀찮은 물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발명품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형편 좋은 물건이 존재할 리가.
“부작용은?”
“뻔하죠.”
탐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코어가 파열한다든가, 컨트롤하지 못한 마나가 새서 머리가 맛이 간다든가, 한 번 늘어난 마력에 성장 체계가 망가져서 더는 스스로 마력을 늘릴 수 없게 된다든가.”
탐정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 외에도 많다는 말과 함께 탐정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결론은 위험한 약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서지유는 여길 왜 온 거지?”
각성자라면 더 강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온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비록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지만 각성자도 아니고, 학생에 불과한 서지유가 이런 수상쩍은 건물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탐정이 설명했다.
“부스터를 쓰면, 일반인도 각성자가 될 수 있다… 는 소문이 있어요.”
“뭐?”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들어 준다고?
현재 각성자가 되는 조건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각성은 말 그대로 우연히 일어나는 현상이었고,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해?”
“글쎄요, 실제로 성공했단 얘기는 들어 본 적 없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가능한 건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각성자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약을 일반인이 사용한다는 건. 결과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십중팔구. 아니, 십중십 죽겠지만요.”
탐정의 말대로였다.
이곳이 평범한 유흥 업소가 아니라 부스터라는 약물을 숨기기 위한 장소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지체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서두르자.”
걸음을 재촉했다.
* * *
“실망스럽네.”
“…….”
남자가 서지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내뱉은 감상이었다.
“기세 좋게 가져가더니, 허세였어?”
남자가 고개를 젓더니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말대로 서지유는 당당하게 주사기를 가져갔다. 부스터가 든 주사기였다. 구강 섭취보다 직접 주사하는 게 좀 더 효과가 좋았다. 특히 애초에 보유한 마력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 각성까지 하려면 그렇게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서지유는 끝내 스스로 주사하지 못했다. 주변에 널린 시체들만 봐도 그게 자살행위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뭐, 상관없어. 스스로 못하겠다면, 도와줄게.”
남자가 서지유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서지유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남자가 서지유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앗아 들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몸부림쳐 봐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억세게 쥔 상태였다.
“얌전히 좀 있어.”
“윽……!”
남자가 서지유의 복부를 가격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고통에 몸이 굳었다.
그사이 남자가 서지유의 왼팔에 주사기 끝을 가져다 댔다.
부스터는 일시적으로 사용자의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약물이었다. 원래는 각성자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었지만, 일반인에게도 비슷한 효과를 유발할 수 있었다.
일반인의 마력이 증폭되어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현상. 그것이 곧 각성이었다. 즉, 부스터를 사용하면 인공적으로 각성과 비슷한 현상을 유발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사실 지금까지 그러한 실험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각성을 버티지 못하고 그릇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건 엄청난 발견이었다.
인공적으로 각성자를 만들 수 있는 세계.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걸 위해 다소의 실험체가 필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다. 도의적인 문제를 생각할 처지도 아니었다. 남자는 실험을 돕는 조수에 불과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최대한 많은 인간들에게 이 약의 효과를 확인해 볼 뿐.
푹, 하고 주사기가 서지유의 팔뚝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남자가 주사기 끝을 눌러 액체를 주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철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뜯겨나갔다. 대단히 엄중한 보안 장치는 아니지만, 적어도 몸으로 들이받는 정도로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건 여우 가면을 쓴 사내였다. 의아하게도 목 아래로는 교복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학생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저런 흉흉한 분위기를 뿜어 대는 학생 따위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저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투의 달인만이 낼 수 있는 위압감이었다.
서지유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여우 가면 쪽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남자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저깟 계집아이가 아니었다.
여우 가면이 뒤따라 들어온 동글뱅이 안경을 쓴 여자에게 서지유를 넘겼다.
“데리고 있어.”
“넵!”
두 여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그러자 여우 가면이 남자를 향해 물었다.
“이거, 네가 만든 거냐?”
남자가 들고 있는 건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부스터였다.
여차할 때 쓰라고 이곳을 지키는 떨거지들에게 맡겨 놓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결국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고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나눠 준 건 대단한 품질의 부스터가 아니었으니까.
“글쎄, 내가 왜 대답해야 하는데?”
여우 가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실망스러운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따로 알아낼 자신이라도 있는 건지.
방해꾼이 들어왔지만, 오히려 좋았다. 남자는 제법 뛰어나 보이는 각성자였다. 그리고 뛰어난 실험체는 언제나 구하기 어려웠다. 좋은 소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줬으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운이 좋은걸.”
남자가 킥킥 웃었다.
여우 가면은 제법 실력이 있는 각성자로 보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지친 기색 하나 없다는 걸로 보아 확실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남자는 그런 자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격차를 줄이기 위한. 아니, 뛰어넘기 위한 물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건……!”
여우 가면이 주사기 속에 담겨 있는 부스터를 발견하고 외쳤다.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주사기를 자신의 팔에 주사했다. 안에 담겨 있던 부스터가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그러자 남자가 가진 마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스터를 사용하면 대개 폐인이 되지만, 남자는 이 연구에 참여한 일원 중 하나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적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스터의 잠재력을 끝까지 이끌어 내고, 부작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체질이라는 적성이.
그렇기에 가능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구강 섭취가 권장되는 부스터를, 직접 혈관에 주사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크……!”
남자의 몸 위로 혈관이 울긋불긋하게 두드러졌다. 피부마저 보라색으로 물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만큼 확실한 효과가 주어졌다.
폭발적인 마력의 증가. 온몸을 휩쓰는 전능감.
탈피를 마친 남자가 천천히 손가락을 접었다. 마치 몸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처럼.
그러나 이윽고 온몸을 뒤틀더니 눈을 떴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
남자는 눈앞의 상대를 확인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고마워. 도망치지 않고 기다려 줘서.”
확실히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부자연스러운 마력의 폭발. 신중한 성격이라면 일단 자리를 피하고 상황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우 가면은 그 자리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별말씀을.”
여우 가면을 쓴 사내가 대답했다.
* * *
“나가.”
“네?”
“건물 밖으로 나가서 기다려.”
그렇게 지시했지만, 탐정은 곧장 받아들이지 않고 망설이며 말을 끌었다.
“하지만…….”
남자가 팔뚝에 주사기를 꽂고 부스터를 주입한 순간. 제법 엄청난 마력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긴커녕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없었다.
힘 조절을 할 자신이.
탐정은 그렇다 쳐도, 그녀의 옆엔 서지유가 있었다, 일반인에 학생인 서지유가. 싸움의 여파로부터 몸을 지킬 수단이 없는 사람이.
내 시선을 읽은 탐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하나는 빠른 녀석이었다. 괜히 탐정 노릇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탐정이 서지유를 부축하며 도망칠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걸음을 떼기 직전, 그녀가 내게 당부했다.
“…죽이지 맙시다!”
“별걱정을 다 한다. 예선전, 잊었냐?”
“그게 아니라, 저 녀석 죽이지 말자고요.”
“뭐?”
자세히 들어 보니 탐정이 걱정하는 건 내 목숨이 아니라 상대의 목숨이었다.
“우리, 꼭 살려 두고 심문합시다! 알았죠?”
“…….”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는 내게 탐정이 주먹을 쥐어 화이팅! 하고 외친 후 사라졌다.
탐정이 사라진 후. 마력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건지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 고마워, 도망치지 않고 기다려 줘서.”
“…별말씀을.”
기이하게 변한 겉모습과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진 마력량.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정도 변화를 불러온 마력을 삼키고도 제정신을 유지하다니. 어찌 보면 재능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 약물, 누구나 너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아, 물론. 아직은 안정성에 조금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안 그래도 고생하고 있다고. 소재를 구하는 것도 영 벅차서 말이지.”
“소재?”
남자의 말에 내가 방 안을 둘러봤다.
단전이 파괴되거나 백회혈이 뚫린 채 목숨을 다한 이들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모두 그 부스터라는 약물을 주입당해 생긴 일이었다.
“소재라는 건……. 실험체를 말하는 건가?”
“그래.”
이런 짓을 벌이는 놈들은, 단순한 쾌락 살인마가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 곧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 믿는 자들. 그러니 다소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반드시 강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네가 이해하거라.
─이 모든 것이 강호를 위한 일임을…….
난 본의 아니게 가방끈이 짧아서 그게 옳은지 아닌지 판단할 줄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바로 내 기분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야.”
“응?”
“사람 몸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
주먹을 쥐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힘 조절은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