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80
80화 괴물 놈이었군
무슨 일을 당한 거지?
주혁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둠이 깊게 드리운 하늘에 하얀 별빛이 촘촘이 빛나고 있었다. 시선이 그곳에 꽂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훌륭한 경치였지만, 고작 구경이나 하려고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아닐 터였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주혁의 귓가에 도달했다.
“일어나.”
생소한 목소리. 그러나 주혁은 목소리의 주인이 어떤 남자인지 곧바로 떠올렸다.
여우 가면을 쓴 남자. 아크투러스 토너먼트의 결승전 상대로 등장한 참가자였다.
그러자 직전에 있었던 일도 떠올랐다. 자신은 분명히 여우 가면의 상반신을 베어 내기 위해 손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 보니 이와 같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목과 발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등을 통채 전해진 충격이 아직까지도 선명했으니까.
주혁은 저자에 의해 바닥에 메다꽂힌 것이었다.
어려운 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하… 하핫.”
주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주혁은 개의치 않고 이마에 손을 얹고 웃었다. 머리를 잘못 부딪치기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은 광소狂笑.
긴 웃음을 그치고 난 후 주혁이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단숨에 튀어올랐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야…….”
아무리 상대가 반격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 방심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게 손기술을 펼치는 자.
그런 게 가능한 실력자를 드디어 만났다는 생각에 주혁이 크게 들떴다.
“나타나 준 거냐!”
그가 자세를 낮추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까와 같이 무방비하게 다가갈 생각은 더는 없었다. 최고의 상대에게 최고의 예의를 갖춰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최고의 재미를 즐기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부딪칠 생각이었다.
* * *
그의 아버지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이었다.
인류가 각성자 사회에 접어들고 마력을 통한 싸움이 당연한 개념이 되었을 무렵에도, 맨몸으로 익히는 무술과 대련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빈말로도 장사가 잘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코흘리개 아이들도 각성자가 아닌 관장이 운영하는 곳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몸져 누웠을 때,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지하 격투장의 선수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체격도 좋았고 나름대로 무술도 익혔다. 충분히 활약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첫 경기에서 바로 꺾이고 말았다.
상대는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였다. 격투장보다는 병원이 더 어울려 보였다. 그러나 남자가 마력을 담은 손바닥으로 따귀를 날리자 피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었다.
“뭐야, 이 허접은?”
충격이었다. 고작해야 저런, 운동은커녕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남자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니.
그 이유가 모두 마력 때문이었다.
각성자라고 하지만 미약한 마력밖에 지니지 않은 그로서는 풍부한 마력을 두른 괴물들을 상대하기 역부족이었다. 제아무리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가 이겨 나가기 위해선 그가 가진 살상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도장은 접읍시다, 아버지. 동네 꼬마들도 떠들고 다닙니다. 각성자도 아닌 약해 빠진 관장한테 배우면 바보라고.
언젠가 그가 그렇게 제안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이 녀석아, 무술은 사람 때리려고 배우는 게 아니야. 각성자가 아니면 뭐 어떠냐?
그 아버지의 아들은 지금,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악화되어 세상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싸움을 찾아 전전했다. 더 많은 각성자들을 꺾으며 피에 물들었다. 하잘것없는 인간의 몸으로 괴물을 거꾸러뜨리는 사냥꾼이 되어.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주혁이 상대를 천천히 관찰했다. 새하얀 바탕에 붉은 무늬가 새겨진 여우 가면을 쓴 사내였다.
손목까지 내려오는 긴 소매를 가진 검은 상의에 몸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실루엣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실전에 실전을 거듭해 쌓아 올린 신체라는 것을.
자신이 가진 마력을 사용한 공격이 무력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자세를 잡고 저항할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비스듬하게 선 자세. 대단히 긴장한 것도 아니었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간다.’
주혁이 손을 뻗었다.
도율이 주혁의 손을 쳐 냈다. 주혁의 손은 쳐 내려는 팔 역시 먹잇감으로 보고 휘감겼다.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 반대쪽 손이 움직였다. 도율이 곧게 편 검지와 중지를 뻗었다. 총알과도 같은 관통력을 가진 손가락이었다.
그 위력을 지레 눈치챈 주혁이 몸을 젖혀 피했다. 몸이 멀어져 팔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공격을 이어 갈 순 있었지만 그랬다간 중심이 불안정해졌다. 고작 상대의 손가락이나 팔 하나를 가져가는 대가로 완전히 무방비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주혁이 몸과 함께 팔을 거뒀다.
도율이 손바닥을 뻗었다. 장법을 통해 내공을 방출할 순 없지만 직접 타격을 줄 수는 있었다. 엄지 근처의 굴곡, 어제魚際 부위가 주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주혁이 도율의 손목을 비스듬히 밀어냈다. 경로를 틀어 버리려 했으나 도율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퍽!
“큭……!”
직전에 몸을 피해 옆구리에 스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위력이었다.
주혁이 양손으로 도율의 손목을 붙잡아 힘껏 비틀었다. 그러나 도율은 그 회전에 거스르지 않고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주혁의 손아귀 힘에 더해 스스로의 각력까지 더해 허공을 돌며 도율이 발차기를 날렸다.
쾅-!
주혁의 몸이 떠밀려 날아갔다. 양팔로 막았지만 충격을 이겨 낼 수 없었다.
발끝을 세워 지면 위로 길게 미끄러진 주혁을 향해 도율이 달려들었다. 주혁 역시 자세를 웅크려 무게 중심을 낮추고 도율을 기다렸다.
후웅!
안면을 향해 쏘아진 섬권을 피한 후 주혁과 도율이 공방을 나눴다.
수차례 북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재빠른 공방이었다. 손가락과 주먹이 얽히고 팔꿈치와 무릎이 부딪쳤다.
핏!
도율의 뺨 근처에 주혁의 손가락이 스치며 짧은 자상을 만들었다. 동시에 도율의 손날이 주혁의 갈비뼈 사이를 찔렀다.
“커헉……!”
주혁이 피가 섞인 숨을 토해 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방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혁의 몸엔 대미지가 축적되어 갔다. 승부가 난 건 아니었으나 그 결과가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가능한 건 조금이라도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자신이 갈고 닦은 것, 그 너머에 있는 상대. 닿지 않는 경지를 엿보는 벅차오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 즐거운 시간도 이젠 끝이었다.
“여기까진가…….”
“……?”
주혁의 주위, 그의 몸 주위를 흐르던 마력의 흐름이 끊어졌다.
각성자이긴 하지만, 주혁은 본래 마력에 있어서 큰 성취가 없었다. 파경대계 같은 기술은 꼼수와 벼락치기로 간신히 익힌 것에 불과했다. 덕분에 그 크기도 형편없이 작은 데다가 오래 유지할 수도 없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을 모두 소준해 더 이상 대계를 유지할 수 없어졌다.
여우 가면은 원거리에서 불꽃을 피워 올리는 기술도 사용할 수 있었다. 주혁은 지금 지쳐 있어서 그걸 피할 수 없었다.
지치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계가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당했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상태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자, 끝장을 내라.”
주혁이 양팔을 벌렸다.
“…….”
그러나 도율은 불꽃을 피워 올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세를 잡고 있었다.
“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핫……. 하하.”
주혁이 마주 자세를 다잡았다.
순수한 맨몸 싸움. 대계 ‘공수래공수거’를 펼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도율의 일방적인 고념이었지만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승부가 나는 순간은 짧았다. 그것은 단 한 합에 결정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서 있는 건 단 한 사람.
도율이었다.
* * *
재미없는 경기가 될 것이라는 도율의 예상과는 달리, 경기가 종료된 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처음엔 뭐 하는 건지 싶었는데…….”
“보다 보니까 점점…….”
여느 때와 같은 커다란 함성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누구도 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도율이 지금까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주지 않았기에 기대를 모으진 못했지만, 오늘 보여 준 것은 그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다름 아닌 주혁. 단순한 강함만 따지자면 헌터 중에서도 비견할 자가 거의 없으리라 여겨지는 ‘묠니르’ 토마스조차 그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혁을 상대로 다른 전략을 펼친 것도 아니고, 정직하게 손이 닿는 거리에서 맞붙어 난투전을 벌여 승리를 거머쥔 것은. 그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부, 결과에 불응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 씨. 토마스만 아니었어도 주혁이 이긴 거라니까? 걔가 대진 어기고 시비 털지만 않았어도 풀 컨디션으로…….”
“헛소리하지 마, 인마. 그냥 압살한 거 안 보이냐? 반대로 여우가 토마스랑 싸웠어도 결과 똑같았을걸?”
“솔직히 토마스가 주혁 능력 보여 줘서 이긴 거 아니야? 원거리 공격 안 통하는 거 알았으니…….”
“어, 근거리 전투는 토마스도 밥 먹듯이 하던 거다. 오버로드 쓰면 주먹이 번개처럼 나간다니까? 솔직히 순서 반대였으면 토마스도 이길 수 있었음.”
대화 내용을 엿듣던 어두운 피부의 여인이 옆에 앉아 있는 금발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는데. 저런 거 할 수 있어?”
“아니.”
토마스가 대답했다.
그는 목에 두꺼운 깁스를 차고 있어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무시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위장 아티팩트를 가지고 온 덕분에 다른 관중들이 알아보고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경기 내용이 궁금해서 직접 행차하긴 했지만, 아직은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저놈과 저 거리에서 대등하게… 아니, 대등한 것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오버로드를 사용하면 반응 속도와 운동 속도가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주혁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고 만다. 직접 당해 봤으니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여우 가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말 순수하게 육체의 싸움을 겨뤘다는 뜻.
‘나도 다시 싸우면 지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처음 주혁의 능력, 다른 자들의 능력을 지우는 그 능력을 봤을 땐 당황해 미처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순간에 거리를 내어 주고 당하고 말았다.
지금은 알고 있으니 대책을 세우기도 해 봤다. 원거리에서 거리를 주지 않으며 본체가 아닌 이동을 견제하는 것. 그렇게 주혁의 마력이 다할 때까지의 장기적인 소모전을 유도할 계획이었다.
주혁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맨손 격투를 받아 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는 게 패배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렇게 정면 돌파를 하는 인간이 나타날 줄이야.
‘…괴물 놈이었군.’
토마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주혁처럼 맨손 대결에 특화된 것도 아니었다. 경기 시작 시에 보여 줬던 검은 불꽃 역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흉악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싸우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좀 늦지 않아?”
샤디아의 말대로였다.
슬슬 우승자 소감 발표와 함께 우승 상품 시상이 진행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승자도, 우승 상품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승 상품은 도난의 위험이 있어 경기장에 직접 가져오는 게 아니라 증여권을 건네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하긴 했지만…….
관중들이 의아하게 도율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도중, 단상 위에 등 떠밀려 오른 직원 한 명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어……. 이런 말씀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하지만, 참가자분 개인 사정으로 소감 발표를 비롯한 이후 일정은 모두 무산되었음을 알립니다…….]발표를 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내용인 걸 아는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관중들의 반응은 화끈하기 그지없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들아!”
“대회 운영이 뭐 이렇게 개판이야!?”
“아니, 우승자 어디 갔냐고!”
뜨거운 반응을 뒤로하고 토마스와 샤디아가 시선을 마주했다. 뭐라도 아냐는 듯한 눈빛. 하지만 두 사람 다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 내에 야유 소리가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