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드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얼렁뚱땅 . 줄여서 의 스태프들을 집 안으로 들인 이정이 그들에게 커피를 건네며 잠시 양해를 구했다.
“잠깐 대화 좀 하고 와도 될까요.”
“저희가 너무 다짜고짜 왔죠? 대화 충분히 나누고 오세요.”
마이크를 찬 채로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지만, 그래서야 카메라에 찍히지만 않을 뿐 고스란히 녹음될 게 뻔했다.
“설명.”
이정은 양해를 구해 잠깐 마이크를 끈 뒤 민혁을 방으로 끌고 갔다.
“이번 미션이 남의 집 12시간 차지하기였거든. 근데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어. 멤버들은 다 같이 살고, 아줌마, 아저씨랑 같이 사는 류지원네 갈 순 없잖아.”
“나 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몰랐는뎅.”
그 말은 즉, 이정이 집에 있지 않았다면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집을 점령했을 거란 의미였다.
“그래도 너 있으니까 분량 뽑긴 편하겠다.”
“아오….”
“악! 아파!”
태연한 민혁의 태도에 이정이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지금이라도 내쫓을까….”
“나 지금 내쫓으면 가서 생선이랑 씨름해야 하는데? 이―정. 그냥 사람 한 명 살린 셈 쳐줘 응?”
“아오, 진짜.”
회귀 전엔 이런 일이 없었던 걸 생각해보면 민혁도 나름대로 고민한 뒤 온 것 같아 더 어이가 없었다.
“별거 안 해도 돼. 그냥 너희 집 잠깐 구경시켜 주고 나랑 놀자! 그냥 평소처럼! 응?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제가 저녁 사드릴게요. 후식도 사드릴게요. 요즘 디저트 배달 잘 되잖아 종류별로 살게!”
“내가 류지원이냐? 디저트로 꼬시게?”
한숨을 푹 내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제 와서 내보내기엔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럼 전에는 그냥 원양어선 탄 건가.’
차마 이정 집에 올 생각 하지 못하고 그냥 미션 실패를 선택했을 회귀 전을 생각해보니 조금 짠해 보인 탓도 있었다.
“알았으니까 들러붙지 마.”
이정이 방을 나오자 스태프들은 부지런하게도 이미 카메라를 설치해 둔 상태였다. 이미 들여보낸 이상 그가 민혁을 내쫓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저건 또 뭐야….”
“인터뷰용 커튼! 누나 지금 인터뷰 진행하실 거예요?”
“네! 잠깐만요 바로 진행할게요!”
심지어 부엌 한구석에는 커다랗고 검은 천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두 분 여기 앉아주시고. 민혁 씨가 먼저 간단하게 친구분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검은 천과 식탁 의자로 만들어진 간이 인터뷰 자리에 앉은 민혁은 익숙하게 이정을 카메라 앞으로 끌어당기며 그를 소개했다.
“이쪽은 제 좁디좁은 인간관계에서 단둘뿐인 친구 중 한 명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 이이정입니다! 제 팬분들은 물론이고 어, 아는 얼굴인데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데뷔한 지 일 년 정도 된 배우예요.”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이이정입니다.”
“끝이야?”
“네가 다 소개했잖아.”
반면, 이정은 아직 예능 카메라가 어색했다. 그가 머쓱하게 인사하자 민혁이 장난스럽게 혀를 찼다.
“좀 더 길게 설명해 봐. 출연한 작품이라든지, 요즘 하고 있는 일이라든지.”
“어…. 올해 초에 종영한 이랑 웹드라마 에 출연했었고요. 얼마 전에 영화 촬영 끝나고 지금은 쉬고 있어요.”
“그렇지.”
매번 이정과 지원에게 멍청이라고 놀림당하기만 하던 민혁은 자신이 이정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게 퍽 신나는지 열심히 추임새를 넣었다.
“민혁 씨가 다짜고짜 와서 놀라진 않으셨어요?”
“이렇게 카메라랑 같이 온 건 처음이지만 원래 종종 말없이 와서 별로 놀라진 않았어요.”
“민혁 씨가 자주 오세요?”
“네. 전에 학교 근처 원룸 살았을 때부터 자주 왔어요.”
“그러면….”
이런 것까지 방송에 나가나 싶을 정도로 질문 많은 간이 인터뷰가 끝나고, 민혁은 약속대로 저녁을 주문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민혁 씨~”
하지만 겸사겸사 스태프들의 몫까지 주문해 다 함께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나자 정말로 할만한 게 없었다.
“맨날 똑같아서 몰랐는데 너네 집 왜 이렇게 뭐가 없어? 전보다 더 휑한 거 같아. 깨끗한 거 말곤 볼 게 없네.”
“여기 있던 기본 옵션 말고는 늘은 게 없으니까. 아, 네가 준 커피 머신이랑 컵 세트 정도? 아니다. 소파도 새거네.”
중간에 민혁이 나서서 이정의 집을 구경했지만 별로 구경할 거리가 없어서인지 금방 끝나고 말았다.
“보통 집 구경으로 분량을 좀 뽑아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오죽하면 스태프도 생각보다 분량이 없다며 걱정할 정도였다.
“음… 이정 씨 혹시 연기 연습 같은 건 힘들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대본들이 다 방영 전 미공개 대본들이라서요.”
“어쩔 수 없죠. 우리 프로그램 분위기에 안 맞긴 하지만 취중 진담 컨셉으로 갑시다.”
조금이라도 분량을 더 채울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스태프가 그들에게 상표가 가려진 맥주를 건넸다.
“네?”
“그냥 두 분 어렸을 때 얘기나 그런 것 좀 해 주시면 돼요. 다른 멤버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민혁 씨 분량이 좀 있어야 해서.”
“분량 채우시려면 얘 술 먹이면 안 되는….”
“오, 좋죠.”
당황한 이정과 달리 민혁은 좋다며 맥주를 받아들었다.
“너 술도 못 마시잖아.”
“한두 캔만 마시면 되지.”
“퍽이나.”
민혁의 술버릇을 알고 있는 이정은 한두 캔만 마신다는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민혁은 설마 방송에서까지 그렇겠냐며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나는 류지원도 아니고 네가 연기를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내가 연기하게 될 줄은 몰랐지.”
민혁이 먹다 남은 저녁을 안주 삼아 거실에 술자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 회사에서 나 예술 고등학교로 전학 가라는 거 내가 죽어도 싫다고 버텼던 거 기억나?”
“아. 기억나지. 너 때문에 우리 학교 교칙 바꿨잖아.”
대부분 이정을 비롯한 세 사람의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던 민혁이 술이 들어갈수록 혼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아! 나는! 네가! 연기해서! 느므… 조타고….”
“그래…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그걸 예상하던 이정의 한숨은 저절로 깊어졌다.
“형들이 맨날 친구들이랑 방송 출연 같이할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데….”
“알았으니까 입 좀 다물어.”
이정은 꾸벅꾸벅 졸다가 엎어진 민혁의 옆에서 가만히 술을 홀짝였다.
“하하… 세 시간 만에 잠드실 줄을 몰랐는데.”
“그래도 오늘은 오래 버틴 거예요. 얘 원래 한 시간이면 자요.”
“망했네요….”
분량을 뽑으려고 했던 것과 달리 완전히 잠들어버린 민혁의 모습에 스태프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12시간 버티기 종료! 인데 민혁 씨는 여전히 주무시네요….”
결국, 한번 잠든 민혁은 깨지 않았고, 그렇게 그는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쭉 잠들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정 씨 저희는 이만 철수해야 할 것 같은데… 민혁 씨는 어쩌죠?”
분량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스태프가 한숨을 푹푹 쉬며 이정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두고 가세요. 조금 이따가 깨워서 집에 보낼게요.”
이정이 거실에 널브러진 채로 잠든 민혁을 발로 밀며 스태프에게 대답했다.
“어후, 죄송해서 어쩌죠. 민혁 씨가 이렇게 많이 드실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오면 자고 가는 게 보통이라.”
“그럼 정리라도 대충.”
“아니에요. 별로 정리할 것도 없어서 혼자 하는 게 편해요.”
스태프를 보낸 이정은 기지개를 켠 뒤 거실을 정리했다. 밤을 꼬박 새워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촬영을 하며 밤샘이 익숙해진 탓인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이 새끼는 그냥 여기 둬도 되겠지?”
다 마신 캔부터 접시, 컵까지 하나둘 정리하고 나자 거실은 금세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거실에 뻗어있는 민혁은 예외였다.
들어서 손님방에 던져놓는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힘쓰고 싶지 않았던 이정은 그냥 손님방에서 이불을 들고 와 민혁의 얼굴 위에 던졌다.
“으어…?”
민혁은 잠결에 숨이 막힌 건지 꿈틀거리다 겨우 이불을 움직여 제대로 덮었다.
* * *
며칠 뒤, 민혁이 출연했던 의 방송 날.
― 박민혁: 이정
― 박민혁: 이정
― 박민혁: 이정
― 박민혁: 이정
― 박민혁: 이이이이이이정!
본방송 시간에 한참 운동 중이던 이정에게 민혁의 메시지가 정신없이 쏟아졌다.
― 왜
― 류지원: 야, 너네 둘이 나 빼고 예능 나갔었냐?
게다가 삐진 듯한 지원의 메시지까지. 영문 모를 둘의 행동에 민혁이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메시지를 보냈다.
― 아 빡민이 갑자기 쳐들어온 거야. 왜?
“저기 혹시….”
읽기만 하고 답이 없는 둘에 이정이 전화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이정이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질문에 고개를 들자 방금 말을 건 남자뿐만 아니라 헬스장에 있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아올패 나오는 이이정 씨 맞으세요?”
그리고 그는 금세 그 시선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헬스장에서 심심하지 말라고 달아 두는 개인 TV에서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있는 탓이었다.
― 박민혁: (사진)
― 박민혁: 실검 터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