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90
090화
“자, 의 첫 번째 사연. 오늘의 스페셜 DJ 이이정 배우님이 읽어주시겠습니다.”
“가족관계, 특히 동생과의 관계가 어려우시다는 치요 님의 사연입니다.”
장난스럽고 발랄하던 조금 전과 달리 한 톤 내려 차분해진 지수의 목소리가 잔잔한 배경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35살 여자입니다. 요즘 함께 살고 있는 동생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워서 사연을 남겨요.”
이정 역시 여러 번 소리 내 읽으며 연습했던 만큼, 조금 느리게, 하지만 정확하게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저는 대학교 새내기, 그러니까 20살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35살인 지금은 벌써 15년이나 서울에 살았으니 거의 반평생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희 부모님은 대전에 계시고요. 의도한 건 아닌데, 처음 서울로 대학 입학을 한 뒤 칼 졸업, 칼 취업까지 연달아 했고, 그 뒤로 줄곧 한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20살 이후로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요. 물론, 중간중간 오가기는 했지만 제 삶의 터전은 언제나 서울이었습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사연을 읽기 시작하자.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빠르게 올라오던 채팅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정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제게 14살이나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입학을 위해 서울로 왔을 때, 겨우 6살인 유치원생이었죠. 쪼끄마한 게 제가 대전에 내려갈 때마다 어찌나 언니, 언니 하면서 쫓아다니는지 너무 귀여워서 저도 동생을 데리고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14살 차이라니. 정말 귀엽겠어요.”
지수가 옆에서 너무 지루하지 않게 추임새를 넣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채팅도 보는 즐거움을 주는 요소였다.
― dkqorhvk90: 헐 14살 차이 진짜 아가 같겠다.
― blackP33: 부모님 금실이 좋으시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꼬맹이가 벌써 21살, 대학에 갈 나이가 됐는데, 작년에 놀랍게도 저랑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붙었더라고요. 자랑은 아니지만, 꽤 가기 어려운 학교라 너무 기뻐서 기숙사 신청을 한다는 꼬맹이를 냉큼 데리고 서울로 왔습니다. 서로 같이 살지 못했던 기간이 기니 이렇게라도 함께 살고 싶어서요.”
“좋은 언니시구나. 고3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생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지수의 말대로 마냥 귀여워 보이는 이 사연의 고난은 이제부터였다.
“그리고 이제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하고도 약 반년째. 마냥 좋을 줄 알았던 저희 사이는 요즘 서로 대화는커녕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고민 상담 코너인 걸 알면서도 14살 차이 자매의 모습에 훈훈하게 반응하고 있던 청취자들이 벌써부터 눈물바다가 되었다.
― 4545: 왜요 ㅠㅠ 애기랑 잘 살아야지
― zxcv01: ㅠㅠㅠㅠㅠㅠ그르지 마라
― 7894: 아, 근데 같이 살면 안 싸울 수가 없음;;; 특히 오래 떨어져 지냈으면 안 맞는 것도 엄청 많을 텐데… 흑흑
“아직 꼬맹이는 졸업 전이라 실감을 못 하겠지만, 저희 전공은 정말 야근도, 추가 근무도 많은 직종입니다. 동기들끼리 농담 삼아 365 근무라고 할 정도죠. 그렇다 보니 꼬맹이를 제대로 챙기기보다 용돈을 주는 걸로 대신할 때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주는 용돈도 받지 않더라고요.”
“어, 1677 님이 주는 돈 안 받는 건 둘 중 하나래요. 진짜 싫어서 그 돈도 꼴 보기 싫거나, 그래도 미안하거나.”
다들 전자만은 아닐 거라며 사연자를 위로하는 동안 이정은 계속해서 사연을 읽었다.
“그전엔 그래도 제가 주는 용돈 정도는 받았는데, 지난 생일 전날 제가 갑자기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게 되는 바람에 한 달 내내 야근하고도 모자랄 판이라 생일날 같이 외식을 못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한 적 있는데, 꼬맹이가 이를 악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그대로 나가서 그냥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너무 놀라서 바로 잡으러 따라 나갔는데 그새 어디로 사라져서 다음 날 오후에 들어왔어요.”
― mknj987: 아, 이건 서운할 만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ㅠㅠ
― 8798: 그치만… 벌지 않으면 외식도 못 하는걸!
“그 뒤로는 지금처럼 말은커녕 얼굴 보기도 힘듭니다. 꼬맹이가 지수 언니를 좋아해요. 제가 가디스 때 지수 언니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종종 을 듣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언니 마음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 두 분 다 서로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즐겁게 지내고 싶어서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막상 둘이 살아보니까 생각보다 얼굴 볼 시간도 없고, 언니는 나한테 신경도 안 쓰고, 언니는 너무 바빠서 마음과는 달리 동생 챙길 시간이 없고…. 악순환이네요.”
지수가 다소 긴 사연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정 씨 의견은요? 두 분이 어떻게 해야 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뻔한 말이지만 우선, 작정하고 쉬러 본가에 내려간 것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함께 지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바쁘다고 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정에게는 딱히 해당되는 가족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 친구도 바쁠 땐 아예 한 달씩 연락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극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뭐 사이가 나빠졌다거나, 서로가 싫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거든요.”
오히려 이정에게 보편적인 가족애를 느끼게 해 준 것은 민혁과 지원이었다. 앞으로도 쭉.
“이정 씨는 형제, 자매 있어요?”
“아뇨. 저는 외동아들이에요.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 둘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살아요.”
“아아.”
자신은 위로 언니가 둘이라 말한 지수는 자신도 이정과 마찬가지로 한참 아이돌 활동을 하며 가족과 연락을 하지 못할 때 가족이 잠시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기다리는 것이 답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말하고 보니 너무 뻔한 내용인데 서로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그런 거니까 조금 더 배려하거나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치요 씨도, 꼬맹이 씨도 두 분 다 성인이니까요.”
“맞네요. 둘이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봐요. 혹시 또 모르잖아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사연을 보낸 치요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약속했다.
“그리고 꼬맹이 씨, 종종 듣는다고 말했는데, 오늘도 듣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무쪼록 두 분 잘 화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은 그 뒤로도 두 사연을 더 읽었다. 그가 읽은 세 가지 사연 중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가족에 관련된 고민 상담이었고, 두 번째는 연인에 대한 고민 상담이었다.
세 가지 사연을 전부 읽은 뒤 지수가 이정에게 질문했다.
“이정 씨는 아까 형제자매 없이 친구들이랑 가족처럼 지낸다고 했는데, 그럼 부모님이랑은 어때요?”
라디오 코너의 주제가 고민인 만큼 가족과의 고민, 특히 불화에 대한 사연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저는. 사실 사이가 썩 좋지 않아요.”
평소라면 가족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미리 요청했을 일이지만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나온 만큼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이고,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되나요?”
오히려 지수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가족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충분히 할 능력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반대했거든요.”
“어, 그게 혹시 배우 일이에요?”
“아뇨. 고등학생 때 얘기에요.”
― rkskekfkak: 고딩 때 문제면 대학전공/취업 둘 중 하나의 문제겠넹
― 4562: 이이정 배우 설마 생긴 거랑 다르게 공부 엄청 못했다거나?!
― newgope: ㄴㄴ 공부 되게 잘함…… 한국대 한의학과임!
― 7776: 한국대 한의학과면 웬만한 이과계열보다 커트 높은데 뭐가 문제??
청취자들 중 이미 이정의 대학교와 전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한국대를 갔음에도 뭐가 문제냐며 이정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거든요.”
“어, 그런데 지금 채팅을 보니 한국대 한의학과라는데, 그래도 가족 반대가 심했어요?”
“네. 좀 심했어요.”
“아니 왜……?”
지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그 이후의 상황을 물었다.
“일단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어요? 해결이 됐나?”
“제 방식대로 해결하긴 했어요. 결국, 제가 원하는 대로 했거든요. 우선, 제 방법이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것만은 꼭 기억해주세요.”
“뭔 데 그래요?”
잠시 뜸을 들린 이정이 생긋 웃으며 가감 없이 말했다.
“집을 나왔습니다. 연을 끊었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