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그게 당신의 시야예요. 제가 아는 것만이 진짜고 진리라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제 시야는 당신보다 넓거든요.”
요이델은 자신의 이마에만 치유 마법을 걸었다.
“근위병!”
단호한 목소리로 외치자 근방의 근위병들이 모두 바쁘게 달려왔다.
“요이델 신관님! 부르셨습니까?”
“귀빈께서 길을 잃으신 것 같으니 안내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여긴 브리칼트가 아니라 대신전이었다. 요이델의 영역인.
근위병이 손을 대자 남자는 어이없는 얼굴로 웃으며 요이델을 훑어봤다.
“앞으로 볼 기회는 많으니, 다음번을 기약하지.”
그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민 그때.
탁! 차가운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내쳐졌다.
“우리 신관님께 볼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귀빈님.”
“다음 말씀은 저희와 하시죠.”
어느새 나타난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의 안색이 살벌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북관으로 가는 언덕의 길목이라 요이델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과연 그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점점 모여들었다.
“어쩔 수 없군. 또 보자고, 공자.”
“저건 끝까지 공자래. 델, 저거 알아?”
“휘스, 라이. 부탁이 있어.”
“응, 뭐? 쟤 없애 버리자고? 난 찬성.”
“아니! 그게 아니라…….”
주위를 살핀 요이델은 둘에게 귓속말했다.
“혹시 이 마법 약제를 취급하는 곳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알아봐 줘.”
“아, 그걸 찾아봐 달라고? 알았어, 델.”
싸움을 즐기진 않지만, 시비를 건다면 받아쳐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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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아침부터 비가 유독 많이 내렸다. 오늘은 세례 마법 실습을 치러야 하는데.
로사리움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그렇게 무섭진 않았지만, 호통을 치는듯한 천둥을 들으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세례 마법은 축복 마법을 쓰다가 살짝 마나의 흐름을 바꿔서 이렇게…….’
다시금 순서를 되새기던 요이델이 시험장에 가기 위해 몇 번 우산을 접었다 피던 그때,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성하?”
그는 팔짱을 낀 채 새초롬한 얼굴로 요이델을 내려다봤다.
“왜 여기 계세요?”
“비가 내리니 혼자 있기 무섭더군요.”
“네?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적당히 반년쯤 됐습니다.”
“……거짓말이죠?”
“알면 한 번쯤 눈감아 주는 아량을 베푸셔도 될 텐데.”
그는 요이델과 함께 다시 로사리움으로 들어가 응접실에 자리했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워서 꼭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머무는 듯했다. 율리시스는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로 멀찍이 앉아 있는 요이델을 보며 설핏 웃었다.
“필기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셨다 들었습니다.”
“아…… 헤헷.”
요이델은 오랜만에 듣는 그의 칭찬에 쑥스러워 손을 꼼지락거렸다.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보다 이쪽이 효과가 좋군.’
율리시스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내심 서운한 한편,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했다. 들이대는 것보다 칭찬.
“아시겠지만 통과 즉시 세례 신관으로서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해당 시험은 감독관인 신관에게 직접 세례 마법을 거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율리시스는 상냥한 미소를 덧그리며 요이델을 바라봤다.
“제가 그 감독관입니다.”
소규모 시험을 성황이 주도한다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율리시스는 건국 이후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의식을 행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 일정을 강행할 가치는 충분했다. 그는 그녀가 처음 부여하는 축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요이델은 몰랐다.
요이델은 그저 그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상냥하게 대하는 모습이 어색하고 신기했다.
그림 같은 집에 그림 같은 성하라니.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짝거렸다.
“예전에는 성하께서 창피하니까 낮에 집무실도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먼저 와 주셔서 신기해요…… 우와.”
“어떤 미친놈이 그대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했을까요.”
과거를 떠올린 어떤 미친놈이 더욱 짙게 미소 지으며 모른 척했다.
사실 오늘따라 비가 많이 내려서 요이델이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정식 시험장인 예배당 대신 그가 이곳으로 와 편의를 봐준 면도 있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티 내지 않았다.
저 성격에 그럼 예배당으로 가자면서 불편해할 게 뻔했으므로.
점점 규율보다 요이델이 중요해졌다. 예외가 없던 그에게 자꾸만 낯선 예외가 생겨나는 건 나쁜 징조인지 좋은 징조인지.
그도 요즘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성하께 해도 되는 건가요?”
축복 마법은 다른 사람의 이마에 손끝을 대는 접촉이 필요했다.
“원래 세례는 이렇게 합니다.”
“하지만 성하께서는 성하신데 어떻게 그냥 신관인 제가 마법을 써요?”
“세례는 상대의 신분과 출신을 막론하고 축복을 전달하는 의식입니다. 필기는 훌륭히 통과하신 분이, 실제 상대는 가리시나 봅니다.”
“……사실은 조금 걱정돼요. 성하께 제 미미한 축복이 먹힐까요?”
그에게는 티끌만 한 힘일 수도 있는데,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의 결이 다름을 깨달은 율리시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곰도 몸에 파리가 앉으면 알아채는 법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 그럼 해 볼게요.”
근데 혹시 파리로 비유당한 건가?
애매한 기분을 느끼는 사이, 율리시스가 그녀의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었다. 요이델은 정신을 다잡고 그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그런데 미친 듯이 덜덜 떨렸다.
그가 뭘 가르칠 때 절대 봐주지 않는다는 걸 지난 신수 시험 때의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죄송해요. 집중을 못 했어요.”
“신관님.”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강직했다.
“세례를 내릴 때도 실수하실 겁니까? 그때도 잠깐 놀랐다며 변명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단호하게 신관으로서의 태도를 짚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사과하실 겁니까. 이미 당신의 미숙함을 느낀 교인에게?”
“…….”
“당신은 성국의 신관입니다.”
“죄송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집중하십시오.”
후, 하아―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고 크게 호흡했다.
손끝에서부터 나온 눈부신 빛이 성국의 문양을 만들더니 그의 이마로 스며들어 갔다. 율리시스는 가만히 있다가 편안히 미소 지었다.
“세례 마법도 완벽하게 터득하셨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의 말에 요이델이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순간, 율리시스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자잘한 실수는 없으셔야 합니다.”
“네, 명심할게요.”
“이번엔 제가 요이델 신관님께 축복을 드릴 차례군요.”
“저도 숙여야 할까요?”
“아니요, 어차피 요이델 님은 키를 높이셔도 저보다 작습니다.”
어쩐지 사람을 발끈하게 만든다.
율리시스는 표정을 못 감추는 요이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럴 때는 요보힐데 일가가 썩 멍청한 선택만 하고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요?”
“당신이 세례를 받지 않아서.”
“안 받은 게 좋은 일인가요?”
“요이델 님의 생애 첫 축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저라서.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듭니다.”
다정한 하늘색 눈동자가 요이델에게 향했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싸고 비스듬히 시선을 맞추었다.
톡, 토독―
비가 흠뻑 내려서 고요한 공간에 단둘이 있으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 더워진 요이델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몸을 밀었다.
“아…… 그, 그러네요. 저,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우와.”
율리시스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요이델을 바라보다 병을 땄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성수였다.
“그건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물이잖아요?”
“어차피 모든 게 제 것입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성수에 마법을 걸자 물이 태양의 모양을 그리며 환하게 퍼지다 요이델의 이마로 스며들었다.
몸 안에 알 수 없는 시원하고 청량한 기분이 흘러넘쳤다. 연무장에서 쓰러진 이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게 바로 성하의 힘이구나…….
“태어나신 걸 축하드립니다, 요이델 님.”
그는 멍하게 입을 벌린 요이델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이. 이런 건 세례에 없잖아요?!”
“있습니다.”
“정말요?”
율리시스는 멀쩡한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제 개인적인 축복을 받은 분은 요이델 님뿐이니 알지 못하시는 겁니다.”
“……그래요?”
거짓말 같지만, 듣고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율리시스는 곰곰이 생각하는 요이델을 보며 시름을 앓았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르고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요이델이 브리칼트의 무뢰한을 만난 그날.
율리시스는 통증을 느끼고 한달음에 그녀를 찾아갔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만은 반드시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가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는 망설였다. 요이델에게 미움받을까 봐.
그러나 요이델은 그러지 않았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쓸데없이 기대하게 되지 않습니까.’
율리시스는 자신과 달리 평소랑 똑같은 요이델을 보며 한숨 쉬었다.
희망 고문이라는 게 고문 중 제일일 줄이야. 게다가 요즘은 업무로 바빠서 자주 만나 볼 새도 없었다.
‘시간이 나면 늦은 밤인데, 그때 가서 만나 달라고 하면 미친놈 아닌가.’
그럴 명분도 없다. 연인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다지 가망이 없다.
‘자업자득인가.’
예쁘고 소중하다고 백번 말해도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런 말을 했다간 기겁하며 도망쳐 버리겠지만.
우선 요이델이 자신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위해선, 브리칼트부터 쳐야 했다.
주변부터 정리하고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이쪽으로도 눈을 돌리겠지. 혹시 모르니 공작 부인의 정부도 죽여야 하나…….
후환은 없애야 하는 법이니 마탑의 관계자를 몰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차 생각할까. 요이델과 있는 지금, 딴생각이나 하기에는 한시가 아쉬웠다.
그는 미래를 계획하며 작은 상자를 꺼냈다.
“요이델 님, 손을.”
“아, 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에 은색 반지를 끼워 주었다.
“이게 뭐예요?”
“세례신관에게 수여하는 반지입니다.”
“우와, 엄청 예뻐요!”
요이델은 제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액세서리는 환각 마법 반지 말고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되게 화려하네요?”
“원래 그렇습니다.”
아니다. 요이델의 것은 조금 더 특별히 제작했다. 보통 은을 사용하지만 백금으로 바꾸고, 사파이어 대신 블루 다이아몬드를, 에메랄드 대신 그린 다이아몬드를 바꿔 넣었다.
이 정도면 티도 안 나겠지. 하지만 요이델은 잠시 살피다 율리시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신 거니까 감사하게 잘 받을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거짓말하시면 안 돼요.”
요이델은 엄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색이 있는 다이아몬드죠? 반지도 그냥 은이 아닐 것 같아요.”
“……알고 계셨습니까?”
“추측했을 뿐인데 진짜네요. 성하는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플로테스는 유독 보석을 사랑했다.
평소 진상받은 보석들로 플로테스와 놀아주던 요이델은 보석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익히게 됐다.
이건 딱 봐도 일반 보석이 아니다.
율리시스의 얼굴이 곤란으로 물들었다.
“그보다 성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세례식에서 사용하는 물을 바꾸면 어떨까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말에 의아한 듯 잠시 고민하다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이유도 안 들어 보세요?”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늘 요이델 님께서는 먼저 까닭을 말씀해 주셨으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요이델은 그의 말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어쩐지 일로 신뢰를 받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다.
하지만 성하가 너무 무른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었다. 저렇게 점점 진짜 주인공처럼 착해지셔서 어떡하지?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데.
“음, 성하. 미켈레 씨의 처분을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만, 얼마 남지는 않았습니다. 세례식과 연관이 있습니까?”
요이델은 준비해 온 메모를 그에게 내밀었다.
“오르비스 상단을 한 번 더 이용할 일이 생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