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잘하고 계실까?”
같은 시각, 로사리움 내에서는 둘의 앞날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그럼, 당연하지. 성하의 근위기사님들도 열심히 힘을 쓰시겠다 했는데.”
“주신이시여, 제발 두 분께서 저희가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진도를 잘 나가게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런데 두 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는 건 확실해, 엘리?”
물을 떠 놓고 기도 중이던 시종이 불쑥 의문을 가졌다. 질문을 받은 다른 시종이 가만히 생각해 보던 그때.
“그건 제가 동태를 보고하겠습니다.”
율리시스의 보좌신관 중 한 명이 서류를 촤르륵 펼쳤다.
“우선 지난 달 23일. 과거 기록을 살피니 성하께서 유독 회의장에서 늦게 나오신 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반려님도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약 30분 경과했을 시점에 두 분이서 시간 차이를 두고 나오셨습니다.”
“보좌신관님, 그건 단순한 업무 보고잖아요?”
그때 보좌신관이 진지한 얼굴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관찰 결과, 성하의 입매와 눈매가 이루는 각이 평소와 달랐으며, 이후 나온 반려님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헉……! 일이 있었네요.”
“그렇다면 저희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사실 워낙 멋모르는 두 분이시니 뭐가 척척 이루어지긴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역시 알아서 잘하시는군요. 기특하셔라.”
촛불을 켜고 둘러앉은 그들이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킬킬 웃던 그 순간.
쾅!
“꺄아악!”
“하, 헉, 아니, 신관님? 서, 성하!”
별안간 로사리움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율리시스가 들어왔다.
그런데 무슨 상황이지? 성하의 품에 안겨서 들어온 신관님이라니. 게다가 이 밤에. 단둘이.
이건 즉…….
그들은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 쳤다. 오늘이 바로 경사로구나.
“아! 맞다! 급한! 일이! 있지! 참! 깜빡했네!”
“잠깐만요, 라나, 엘리! 아니, 다들, 상상하는 그런 게 아니라…….”
하지만 시종들은 음흉하게 웃으며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보좌신관은 이미 나간 뒤였다.
“괜찮아요, 신관님.”
“아뇨, 정말로…… 그냥 신발을 잃어버려서 성하께서 도와주신 거예요. 어디 가요? 가지 말아요! 밤인데 무슨 일정이 있어요!”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요이델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율리시스가 미소로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다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희는 조용히 숨어…… 아니, 외부 지원을 나갈 일이 생겨서 나가게 됐으니 무슨 일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로사리움의 시종들은 늦은 밤, 후다닥 나가 버렸다.
쿵.
문이 닫히자 이 넓은 공간 안에 단둘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어떻게 된 건지 라이랑 휘스도 없고. 다들 미리 가 버린 거야?
요이델은 어쩔 줄 모르고 덜커덕거리며 시선만 어색하게 움직였다.
“저, 성하…… 여긴 왜 오자고 하신 거예요?”
“생각해 보니 요이델 님이 아직 로사리움의 내부를 발견하시지 못하신 듯하여 왔습니다.”
요이델은 머쓱해져서 웃었다. 그렇구나, 역시 내가 변태였어. 왜 거기서 잠옷을 떠올린 거야?
부끄러움에 혀를 깨물고 싶었다.
“당신에게 드릴 선물을 숨겨 놨습니다. 모르셨겠지만.”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로사리움의 맨 위층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평범한 로비가 있었다. 그러나 벽의 틈새를 살짝 누르자 다락의 문이 열렸다.
다락이라고 치기에는 층고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게, 꼭 맨 처음 그와 만났던 비밀 도서관의 광경 같았다.
“아……!”
그는 요이델을 다락 안으로 이끌었다.
“이런 곳이 있었어요? 정말 몰랐어요.”
“제가 드린 선물이 썩 궁금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아니에요! 로사리움은 너무 예쁜데…… 평범한 옥상인 줄 알았어요.”
율리시스는 일일이 놀라는 요이델을 보고 즐거운 듯 웃었다.
“상심이 크지만 이해해 드리겠습니다.”
“저, 정말 실망하셨어요? 진짜 관심 없던 거 아니에요. 진심으로 아닌데…….”
“농담입니다. 그런 일로 실망할 리가.”
이어 특정 벽돌을 누르자 어두웠던 천장이 유리로 변하고 유리마저 열리며 바람이 들어왔다.
펼쳐진 밤하늘 위로 별이 곧 요이델을 향해 쏟아져 내릴 것처럼 가득 보였다.
“당신이 어둠을 무서워한다고 하여, 꼭 두렵고 아득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예뻐요…….”
요이델은 입을 벌리고 고개를 꺾으며 감탄했다.
어느새 완전히 저문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제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느꼈던 텁텁한 어둠과는 달랐다. 까맣고 보랏빛처럼 느껴지는 하늘을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요이델은 손을 뻗어서 잡히지 않는 별을 쥐락펴락하며 이 신기한 기분을 즐겼다.
“성하, 저기 보세요! 별이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저건 뭘까요?”
들떠서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성하? 저쪽에 보시면…….”
그러나 뒤를 돌아본 요이델은 놀라고 멍해서 굳어 버렸다. 율리시스가 별이 아니라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 눈빛이 진심으로 다정하고 상냥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이 겉으로 모두 드러나서 자신에게까지 와닿았다.
쿵쿵.
‘또야, 또 이런 기분이 들어.’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왜 목이 바짝 타고 손까지 떨리는 건지.
요이델은 애써 웃으며 아무 말이나 했다.
“저, 성하…… 그런데 제가 드릴 게 너무 초라한 것 같은데 어떡하죠?”
마법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 요이델은 부스럭거리는 상자를 율리시스에게 건네주었다.
‘마음이 너무 작아서 잃어버리겠군요.’
그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편지는 없냐고 물으면서.
이번에 요이델이 준비한 건 세척 보존 마법이 걸린 특수한 손수건과 편지였다.
지난 사냥대회 이후, 손수건은 연인들 사이의 특별한 선물이 되어 평소에도 팔리게 되었다.
저번에 상점가에 다녀오니 역시 손수건을 팔고 있었다.
너무 평범한 선물이라 고민했지만, 카렐로의 도움을 얻어 유명 부티끄에 가서 의뢰하여 만족할 만한 물건이 나왔다.
‘옷에도 장식용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적당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한 선물이었다.
“이번엔 상자가 크니까, 마음이 너무 작아서 잃어버리지 않으실 거예요.”
“편지군요.”
“그때 성하께서 편지는 준비 안 했냐고 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또 카렐로 씨도 편지를 제일 좋아하실 것 같다고 했어요. 가장 아끼는 물건을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 줬고요. 그런데 편지를 처음 써 봐서…… 카렐로 씨가 문장을 많이 봐 줬어요. 어색한 티가 날까 봐요.”
요이델은 쑥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걸 예전부터 준비해 놓으셨을 줄은 몰랐어요.”
침묵이 계속되자 머쓱해진 요이델은 플라네타륨 공간에 놓인 천체 망원경에 괜히 눈을 대고 만지작거렸다.
“이거 안 보이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
“성하?”
뒤를 돌아보니 그는 이미 요이델의 편지를 읽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 돼요! 방에 가서 보세요!”
“제게 주셨으니 제 것 아닙니까.”
“그건…….”
“제 것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이전에 요이델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으려는 요이델의 손을 율리시스가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두근, 두근.
율리시스의 눈을 바라보던 시선이 스르르 아래로 흘러 포개진 손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의 요이델 님께서 모르셨던 게 있습니다.”
마주 닿기만 했던 손이 서로가 교차하는 틈을 찾아 엮었다. 율리시스의 거친 손이 요이델의 부드러운 손을 꽉 잡았다.
“그 당시 제가 제 것이 맞느냐, 물었던 건 선물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네? 그럼 뭐였나요?”
“당신.”
“…….”
“요이델 님의 신경과 마음, 관심, 상냥함, 그 모든 게 제 것이길 바랐습니다.”
요이델은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등을 덮는 걸 바라보았다.
“당신은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고 저도 그걸 알지만, 어쩐지 늘 당신은 제게서 한발 물러나 있는 듯하여.”
“…….”
“더 멀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렇군요. 돌이켜 보니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듯합니다.”
톡 튀어나온 뼈를 단단한 손가락이 감싸자 요이델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입술을 축였다.
별빛이 쏟아지는 로사리움의 꼭대기에도 별빛만큼이나 반짝이고 어지러운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요이델 님.”
“네?”
“좋아합니다.”
요이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직접적인 말로는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더군요.”
태어나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기도해 본 적 없던 율리시스가 누군가에게 소원을 빌었다.
‘이 사람을 영원히 볼 수 있기를.’
소유하게 해 달라고 빌지는 않겠다.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가까이 있는데도 불안함을 느꼈다. 보고 있는데, 또 보고 싶었다.
요이델과 있으면 계속해서 1분 뒤, 1시간 뒤, 하루 뒤, 일주일 뒤……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모든 것에 요이델이 있기를 바랐다.
이토록 원하던 게 세상에 있었나. 이만큼 사랑스러운 걸 또 본 적이 있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아, 이게…….’
율리시스는 더 큰 마음을 깨달았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느껴 본 적 없던 감정을 비로소 알았다.
요이델을 못 볼까 두렵고, 요이델에게 미움을 받을까 두렵고, 요이델이 떠나갈까 두려웠다.
그녀가 두려웠다.
가치와 관념과 지금껏 지켜 온 자신의 잣대를 흔드는 이 거대함이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