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꿈이 아니야.’
요이델은 느지막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제 침실로 돌아온 기억은 거의 없었다.
율리시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횡설수설하자, 그가 다음에 얘기하자며 돌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성하는 그런 말을 하고도 멀쩡한데 나는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에는 꼭 그처럼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여유롭게 굴겠다고.
‘다음?!’
요이델은 자신의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방방 뛰고 벽을 마구 때렸다.
물론 그 통증은 율리시스에게도 전이되었다.
그는 욱신거리는 손을 보며 요이델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게 있었다. 율리시스는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홀로 남은 율리시스는 자괴감을 느끼며 깍지 낀 손에 이마를 붙였다.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건 긴 생애 중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안절부절못하고 낑낑대는 자제력 없는 개가 된 것 같아서 이전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그 배의 배는 힘을 써야 했다.
그렇지 않은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굴기에는, 생각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율리시스는 집무실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왜 그런 말을 했나.’
그냥 얼굴을 보니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래도 성급했다. 손에 얼굴을 묻은 그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이 손안에도 온통 그녀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그는 괴로움에 눈을 감으며 잔향이 남은 손안에 조심스레 코를 댔다.
날아갈까 아쉬워 내뱉기조차 두려운 그녀의 흔적이 그의 안에서 다시 느껴졌다. 스스로 허탈했다. 언제 이토록 멍청해진 건지.
‘젠장.’
손을 거둔 얼굴은 오래전부터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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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 님, 입맛이 없으세요?! 오늘따라 많이 못 드시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나요…….”
팅그르르―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요이델은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고기에 투명 칼질을 했다.
그리고 포크 대신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맛은 있으신가요?”
“아주 뜨겁고 좋아요, 와아……. 고마워요. 역시 라나는 요리를 잘하네요…….”
“어흑, 신관님. 내부 요리사가 따로 있잖아요. 시종은 요리를 하지 않아요. 우리 신관님 어떡해, 정말 무슨 큰일이 있으셨나 봐!”
주위의 경악에도 여전히 멍하게 있는 요이델을 보며 시종들이 안타까움에 주위를 둘러쌌다.
선홍색에 가까운 빨간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요이델 신관님께선 대체 어디를 보시는 거지?”
심장이 마구 두근두근 뛰었다. 요이델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정처 없이 걷다가 툭 부딪쳤다.
털썩.
“꺄아악! 신관님! 정말 아프신가 봐, 의료신관! 당장 불러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의료신관이 뛰쳐나와 요이델의 맥을 짚었다.
“이상하군. 아픈 곳이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이실까.”
“성하와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닐까요?”
“아.”
모든 이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모였다.
“설마 어제가 연인의 날이었으니까…….”
“……세상에나.”
시종들은 생면부지의 신관과 손을 잡고 얼굴을 붉혔다.
그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성하?’
시종들의 말 중에서 요이델은 그 단어에만 반응했다. 왜냐하면 어제 그런 고백을 받았으니까.
주위 풍경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제 어디서 율리시스가 그런 말을 했더라?
‘좋아합니다.’
멍하게 있던 요이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시종들이 더욱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를 팍팍 때렸다.
물론 은밀하게 숨어서 요이델을 지켜보던 마르셀리나와 하일도.
“이제 곧 여름이니, 결혼식은 여름에 하는 게 좋겠네.”
“더울 때 하면 여러모로 손해야.”
“아, 역시 자네는 경험자라 그런지 잘 아는군. 예복이 거치적거리니 별로인가?”
“예에?”
어느덧 결혼 추진단에 끼게 된 아슈레오는 마르셀리나를 쳐다보았다.
“이미 끝낸 과거는 얘기하지 말지?”
“하긴 혼인 기간이 일주일이었으니 자네가 나를 갈구는 시간보다 적긴 하군.”
“어쨌든 식은 여름에는 안 돼. 가을이야, 가을.”
“성궁에서 해야 하나? 성하의 혼인은 처음이라서 어쩔 줄을 모르겠네.”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후손들에게 남겨도 좋지 않을까?”
“성하께서 사치라고 싫어하실 게 분명하네.”
하일의 말에 아슈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요이델 씨의 세례 반지를 못 보셨습니까, 원로님들. 은이 아니라 백금으로 만드셨어요. 에메랄드랑 사파이어 같은 건 전부 다이아몬드로 대체하셨습니다.”
그 말에 도둑고양이 삼인조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일은 당장 구 아기님 이름 후보 명단, 신 결혼식 길일 후보와 식 진행 방안이 적힌 다이어리를 꺼내어 메모했다.
“결혼식은…… 새 건물로…… 가장 호화롭고 황홀하고 성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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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는 손수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조금 웃곤, 다시 한숨 쉬었다. 미미한 변화였지만 신관들은 알아챘다.
“……성하께서 왜 저러시지?”
그는 아침 회의장에 있었다.
“모르겠네.”
“예끼, 이 사람들아. 어제가 바로 연인의 날이지 않았나. 순 고지식한 사람들이라 영 생각을 못 하는가 보구만.”
소싯적 가장 잘생겼을 듯한 신관의 말에 모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바라보던 사관들도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백지에 율리시스의 행동 양상이 모두 적혔다.
그 기록의 가제는 성하의 러브 스토리. 아슈레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일이 이상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
“우리도 적는 게 좋겠습니다.”
율리시스를 보좌하는 보좌신관들도 일정표를 꺼내어 기념일을 기록했다.
[성하께서 성후님과 첫 연인의 날을 보내신 날]보좌신관들은 조용하고 무표정하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후일에 성하께서 성후님과의 기념일을 잊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나저나, 성국 내 학술원 부원장 선출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 늙은이도 궁금하여, 허허.”
신관들은 의견을 나누었다.
“메디아의 올가 드리아가 유력하나, 신중히 하는 게 좋을 듯하여 기한을 늘려 더 살피기로 하였습니다.”
“다 좋으나, 역시 옛 기억이 없다는 건 많이 걸리는 사항이지요.”
신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놓았다.
사실 율리시스가 고민하는 건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키베르크의 기억을 봐야 할 터.
“성하, 브리칼트 측에서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읽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율리시스의 눈짓에 한 신관이 종이 속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관계로, 키베르크 슈바르트 대공은 브리칼트와 연관이 없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생각하는 바.”
신관은 잠시 멈칫하다가 마저 읽었다.
“처분은 성국에 일임하고 과거 요보힐데의 자제에게 보냈던 송환 요청도 철회한다.”
“철회는 무슨! 더 이상 망신당하기 싫으니까 아량이 넓은 척하는 거겠지요!”
“누가 아니랍니까? 웃겨서 참!”
“정숙하십시오.”
의장이 봉을 탕, 탕, 탕, 두드렸다.
“그 대공의 처분이라…….”
“얼마 전 자결을 시도하였다 들었습니다. 다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고 볼모로서의 쓸모도 없는 듯하니 처형을 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성하.”
“성하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혀를 깨물 생각을 하다니…… 브리칼트답습니다만.”
율리시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미소 지은 뒤, 회의가 파하자 곧장 지하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질긴 목숨이다. 쉽게 끊어지길 원한 건 아니었지만.
철컹.
철창을 열고 들어간 율리시스는 키베르크의 머리에 손을 대어 기억을 읽었다.
‘별로 쓸 만한 것들은 아니군.’
기억과 함께 생각들도 흘러 들어왔다. 전부 욕심을 내는 것밖에 없는 탐욕 가득한 머릿속이었다.
그중에는 요이델을 향한 탐욕도 있어서 멈칫했다.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
‘더 과거를 봐야겠군.’
그때 들리는 어린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다. 율리시스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 지점을 살폈다.
‘내, 내가 안 괴롭혔어요. 키베르크, 아, 아니, 대, 대공자님이, 나를 때, 때렸…….’
어려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요이델이었다. 저 빨간 눈, 그리고…….
‘빨간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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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키베르크의 사망 소식이 들렸다.
처형을 인도하기도 전에 무슨 힘이 있었는지 스스로 숨을 끊은 것이다.
간수가 말하길,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라 아마도 마법을 사용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군요.”
소식을 들은 율리시스는 놀라는 기색 없이 평온했다. 그가 한 짓이니까.
“성하와 성하의 반려님을 해치려 한 자입니다. 그렇게 쉽게 가다니, 복잡한 마음입니다.”
“더 고통받지 않아 다행 아니겠습니까. 부디 주신의 품으로 가기를.”
“아아, 성하…… 그렇군요. 성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죄인이어도 그리 됐으니 더 미워하면 안 되겠지요.”
과거 요이델이 받았을 고통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을 텐데. 조금만 손을 대자 고꾸라져 버렸다.
살아 있으면 그녀가 불안해할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다. 율리시스는 다른 곳을 보며 서늘한 눈빛을 했다.
“아, 성하. 그나저나 세례신관님 말입니다만. 반려이신 요이델 신관님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분의 세례를 요청한 국가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요이델이 기뻐할 걸 생각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러나 국가 명을 들은 율리시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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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저 멀리서 붉은 머리 남자가 활짝 웃으며 요이델을 돌아보았다. 그는 기쁜 마음에 곧장 달려와 요이델의 앞에 섰다.
“하아, 오랜만이지, 영애. 후…….”
“폐하! 타국 사람들을 그렇게 맞이하면 외교적으로 겨…… 결례입니다악!”
“제발 체통을 지켜 주십시오!”
겨우 뒤쫓아 온 신하들은 그를 뜯어말리며 헉헉거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렇듯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요이델만을 바라봤다.
“못 본 사이에 더 귀여워졌군.”
“오랜만이에요, 폐하.”
“폐하라고? 영애와 나 사이에 너무 벽이 있지 않아?”
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적발의 남자는 바로 라보르비치의 국왕, 아카코스였다.
“그리고 폐하의 사람들은 그렇게 힘차게 움직이지 못한다고요. 뛰어다니지 말아요.”
“너보다 어리지만 애는 아니야. 내가 그때 말을 잘못했나 보네.”
이번 세례를 신청한 외부 수장급 인사가 바로 그였다. 라보르비치는 여전히 온난했고, 아카코스의 장난기는 그대로였다.
“오는데 수고 많았어. 힘들었지?”
“환대 감사합니다.”
그때 요이델 대신 불쑥 나타난 율리시스가 악수를 하며 미소 지었다. 순간 표정이 썩어 버린 아카코스도 금세 미소 지으며 예를 표했다.
“……성하의 직접적인 은광을 받게 되어 이보다 기쁠 수 없습니다. 직접 와 주시니 지상 대륙의 크나큰 영광입니다.”
“저희야말로 라보르비치에 초대되어 영광입니다. 머무르는 동한 전력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이 말들은 속뜻을 가졌다.
‘요이델만 초대했는데 너는 왜 왔냐.’
‘너 같은 게 있는 나라에 혼자만 보낼 생각 추호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마라.’
둘은 요이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악수하며 맞잡은 손에는 악력이 가득 들어가 서로의 손뼈를 부숴 버릴 듯했다.
‘수명도 긴데 죽을 때가 되지 않았나.’
‘짧은 삶을 사는 인간이니 더 짧게 살아도 될 텐데.’
그들은 똑같이 생각했다.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