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어쩌지…….’
“무엇을 어쩌면 좋겠는지, 제게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꺅!”
“반갑지 않으십니까?”
그는 양팔을 벌리고 미소 지었다.
“율리시스 님! 언제 오셨어요?!”
요이델은 불쑥 나타난 그에게 반가운 얼굴로 달려가 폴짝 안겼다.
“표정에 근심이 적혀 있으십니다.”
고개 숙인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품에 안고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눈빛은 평소와 똑같이 다정했다.
요이델은 그를 바라본 뒤 너른 몸에 얼굴을 묻고 향을 킁킁 맡았다. 포근한 품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렇게 오래 못 보진 않은걸요?”
“……그렇군요.”
요이델의 명랑한 답에 율리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요이델을 가뿐히 안아 들고 유독 상냥하게 웃음 지었다.
“벌써 저 같은 놈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지셨나 봅니다.”
“네? 아아,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냥,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며칠 못 봐도 금방 본 것 같다? 그거죠!”
“처세술이 많이 느셨습니다.”
요이델은 웃는 얼굴로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정말로 너무 보고 싶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지금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데, 혹시 안 느껴져요?”
“그 말이면 다인 줄 아십니까.”
일부러 서운한 티를 내는 말에 요이델은 그의 목을 포옥 끌어안았다.
“다군요.”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에 오히려 율리시스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요이델의 목덜미에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신의 변덕을 인정한다. 불가항력이다.
“헤헷. 그리고 멀리서 틈틈이 지켜보셨잖아요. 창문으로나, 잠깐 이동할 때요. 저희 눈 마주친 거 아니었나요?”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죠! 저도 율리시스 님을 눈으로 찾은걸요.”
그는 신기함에 요이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날이 갈수록 눈치가 비상해지신다. 원래도 예리했지만, 이건 또 하나의 성장인가.
“여, 여기서 뽀뽀는 안 돼요!”
“……?”
그때 요이델이 황급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는 메디아 수도의 상업 지구 한복판이니까! 그런 건 절대 안 돼!
어디에 누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요이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율리시스 님, 저희 상업 지구 초입에서 만나요. 오늘 3시에요. 시간 되시죠?
거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밀회였다.
페어링 덕에 속마음을 전달할 수 없었다면 말을 할 기회조차도 없었겠지.
‘부모님이랑 오라버니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까. 왠지 제대로 만날 수가 없어.’
휘스가 귀띔해 준 식사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한 듯했다.
엄마와 아빠는 성하가 아니라 성국 얘기만 나와도 자신을 보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했으니까.
요이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다른 생각을 하자 율리시스가 가늘게 눈을 좁혔다.
“입맞춤은 불가하고, 한복판에서 이렇게―”
요이델을 확 당겨 안은 그는 비스듬히 고개를 젖히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약간의 변장 마법으로 금발이 된 그는 낮게 뜬 태양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서로 안는 건 될 것 같습니까?”
거리낄 게 없으니 성격도 유독 날것에 가까운 게 문제다. 빨개진 채 반쯤 녹아 버린 요이델은 그의 품에서 스르륵 내려왔다.
율리시스는 언뜻 새침해 보이는 말끔한 안색이었다.
“게다가 그런 생각은 안 했습니다. 눈을 보려던 것뿐입니다. 당신의 눈동자 색에도 변화가 있는가 하여 보았습니다.”
“아!”
시뻘게진 요이델이 뒤돌아 고개를 숙였다.
“창피하십니까?”
“자, 잠시만! 5분 동안만 말 걸지 말아 주세요. 되게 창피하니까요!”
율리시스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작은 새는 열심히 파닥파닥 팔을 휘저어 독수리처럼 몸집을 불렸다. 요이델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한편, 가족들에 대한 요이델의 예상은 정확했다.
“지, 진정! 진정하라고요, 휘르무트 님! 아, 좀! 그만하세요. 어디까지 추잡해지려고 그러시는데! 누가 다 큰 동생 데이트에 따라갑니까!”
“휘르무트 님, 제발.”
“비켜라. 보이지 않는다.”
휘르무트는 상당한 간격을 두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눈빛과 시력만큼은 매보다도 날카로웠다.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딱 붙어서 애정 행각을 벌일 때, 두 쌍둥이 형제와 보좌관들이 없었으면 이미 뛰쳐나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새빨간 눈이 격노로 이글거렸다.
“모두 보았나? 저 무뢰한이 내 동생에게 더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다.”
“봤는데 서로 좋아 죽던데요.”
“휘스테론 네 눈은 장식이니 하나쯤 없어도 되겠군.”
싸늘해진 휘르무트가 설전을 벌이는 사이,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거리를 누비며 여러 상점에 들렀다가 나왔다.
상점을 나올 때마다 율리시스의 손에는 짐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그래! 짐꾼으로 써! 거기까지만 해! 이 오라버니는 그거 찬성이다.”
휘르무트는 주먹으로 울음을 막으며 졸졸 쫓아다녔다. 따르는 이들은 죽을 맛이었으나 동생을 향한 외사랑은 처절할 만큼 견고했다.
“그보다 휘르무트 님, 이벨 영애께서 편지에 대한 답장을 재촉하십니다. 그것부터 우선해 주십시오.”
“1년 전에 헤어졌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적당한 시인을 붙여서 답장해 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없으니.”
“그럼 카르안 영애께는…….”
“오래전 헤어져서 기억이 희미하군. 마찬가지로 적당한 문학가를 붙여서 답장해.”
“내 생각엔 차기 수장님보다 성하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그의 행태를 지켜본 휘스테론이 조용히 말했다. 휘르무트를 존경하는 라이오스도 그 말엔 전적으로 동의했다.
본인이 그렇게 사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어느 화려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휘르무트는 걸음을 멈췄다.
“젠장, 저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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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의상실 안으로 들어오자 좋은 향기가 훅 밀려들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팔을 잡고 속닥거렸다.
“여기가 아까 그 의상실인가 봐요.”
“보신 것과 똑같은 드레스를 갖고 싶으십니까?”
“앗, 아뇨. 그냥 구경하고 싶었어요. 저는 데뷔탕트를 챙길 일은 없으니까요.”
율리시스와 길을 걷던 때, 한 무리의 소녀들이 즐겁게 웃으며 지나갔다.
그들은 “데뷔탕트 때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설렘으로 왁자지껄했다.
‘데뷔탕트는 어떤 느낌일까?’
성국에서는 일어날 일이 없는 행사였다.
타국과의 교류가 많으니 연회는 개최해도, 갓 성년이 되는 귀족들의 소개 자리가 공식 석상에 마련될 일은 없었다.
율리시스도 이런 의상실 방문은 처음이었다. 그는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하고 싶으십니까?”
“아뇨, 그냥 재밌어 보여서 구경하는 것뿐이에요.”
말은 의젓했지만 눈으로는 화려함이 잔뜩 묻어 나오는 드레스들을 좇았다.
율리시스의 시선은 언제나 그녀에게 있었다. 그래서 뻔한 거짓말을 알아챘다.
‘라보르비치의 드레스도 놓치기 아쉬워하는 듯 보였지. 급하면 갈갈이 찢는 편이 손쉬웠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추측컨대 그녀는 드레스를 꽤 선호하는 듯했다.
‘요보힐데에서는 단 한 번도 좋은 옷을 주지 않았겠지.’
율리시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알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신관의 의복을 자율 복장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전통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뀌기 마련이다. 가만 생각하던 그는 요이델을 향해 미소 지었다.
“잘 어울리실 듯합니다.”
“정말요?”
“사 드려도 되겠습니까?”
“진짜로요?”
“네.”
“앗, 그럼 저는 이 드레스 말고 저쪽에 걸린…….”
“이 가게 말입니다.”
율리시스는 진지하게 가게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를 묵묵히 따르던 종업원이 깜짝 놀라 침을 흘렸다.
“당신의 명의로 한다면 법에 저촉될 일도 없을 겁니다.”
“진심이에요?”
“농담일 이유가 있습니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어떡해, 진심인가 봐. 요이델은 식은땀을 흘렸다.
주의를 돌리자.
“그, 저기, 혹시 알고 계셨어요? 제가 저녁 식사 때 한 말이, 그,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말이래요.”
“네.”
“아셨어요? 그,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율리시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제가 거기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옳았습니까?”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그런 관계란 페어링을 뜻하며, 먼저 행하신 분은 요이델 님이고, 제가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아, 그건 사실이지만요…….”
“혹은 제가 요이델 님을 사형장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형수가 사형 시간이 지나서 돌아다니는 데다가 제 본 성격을 봤기에 죽이려고 했더니, 입술 박치기를 당해 페어링이 맺어지고 말았습니다.”
“절대 안 될 말이네요.”
요이델은 그의 예시에 수긍했다.
추측이지만, 부모님은 성하를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다. 첫 만남을 사실대로 다 얘기했다간 쓰러지실 게 분명했다.
게다가 부모님과 성하는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 듯하고.
‘잘 지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맞아, 예전에도 메디아랑 사적인 인연은 절대 안 맺고 싶다고 말했었어.’
그 일이 아니더라도 셋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화합이 아니라 영역 다툼을 하는 고양이들 같달까.
“그런데 저 모르게 저희 부모님을 만나셨죠?”
“글쎄요.”
“저도 다 알고 있다고요.”
요이델이 걱정스럽게 그를 쏘아보자 율리시스는 피식 웃었다. 어디 다 일러바쳐 볼까 싶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일정상 잠시 따로 볼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제 얘기도 하셨죠? 혹시 막 화를 내셨나요?”
“화는 내지 않으셨습니다. 요이델 님의 신변에 관한 담화를 나눈 것은 사실이나, 걱정하실 일은 없었습니다.”
율리시스는 그들이 헤어지라고 했다고까지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거절했으니까.
물론 그 뒤에 더 이야기가 오갔으나 당장 나눌 말은 아니었다.
모든 건 그녀가 지금보다 더욱 안정된 후에. 그래도 늦지 않다.
“제가 걱정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가족의 일?”
“아니에요, 그것도 있지만…… 율리시스 님이 상처받으실까 걱정돼요. 혼자 심한 말을 들으면 어떡해요? 편들어 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럼 슬프니까요.”
요이델은 조금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율리시스의 얼굴에 놀란 감정이 피어났다.
상처?
그런 걱정은 정말로 처음 듣는다.
발상이 놀랍고, 자신을 생각해 주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왜 그녀의 가족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율리시스는 다정한 시선으로 요이델을 내려다보다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제가 나쁜 놈이 확실하군요.”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때 돌연 표정을 굳힌 율리시스가 의상실 밖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무슨 일 있어요?”
“잠시 짐을 아티팩트에 넣어 두고 오겠습니다.”
“네? 밖에 나가서 정리해야 하는 거예요? 마법으로 하면 금방이잖아요.”
“짐의 양이 많아서 마법을 여러 차례 사용해야 할 듯합니다.”
“아, 그러네요! 다녀오세요. 전 여기 있을게요.”
홀로 남은 요이델은 눈에 띄는 드레스를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탁!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요이델을 가볍게 밀었다.
“미안하지만 영애. 그건 내 딸이 사려고 정해 놨던 드레스요.”
한 남자가 근엄한 얼굴로 요이델에게 경고했다.
“무례하시네요. 방금 전까지 저쪽에 계신 걸 봤어요. 종업원도 처음 듣는 눈치인데, 그 말에 어떻게 수긍하죠?”
“어허! 마음속으로 다 정해 놨었다네.”
“네?”
그는 당당하게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무려 한 달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