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요이델은 황당함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도 무력해질 수 있다니.
상대는 눈을 찌푸리고 요이델의 손을 탁, 치웠다.
“어차피 아가씨가 사기에는 값이 비쌌을 거요. 이런 건 내 아이에게 어울리는 옷이지.”
“무슨 뜻이죠?”
요이델은 살짝 얼얼한 손등을 문지르며 그를 쳐다봤다.
그는 황당해서 말을 못 하는 요이델의 태도를 반대로 받아들인 듯했다.
“뭐, 그래도 실망할 것 없네. 여기에는 꽤 괜찮은 옷들도 많이 팔고 있으니. 건국 기념일이나, 축제 같은 때에는 특히 저렴하게 팔고 있지. 그때를 노려 보게나.”
“제게 해 주시는 조언인가요?”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종업원도 어쩔 줄 모르며 옷을 받아 챙겼다.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오히려 감사할 일 아닌가? 계산할 때 값을 치를 대금이 없어서 망설이는 것보다야 낫지. 잘 생각하면 아가씨나 나나 모두 득을 본 셈이지. 나중에 더 망신을 당하면 어쩔 뻔했나?”
“모욕은 이미 겪은 듯한데.”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의 율리시스가 나타나 요이델을 보호했다. 그는 찌푸린 얼굴로 그녀의 손등을 들어 올려 제 눈앞에 갖다 댔다.
“많이 아프셨겠군요.”
다급하게 돌아온 듯 조금 거친 숨이 들렸다.
‘율리시스 님도 따가움을 느낀 거야.’
그의 손등 역시 빨개져 있었다.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저 사람이 손등을 꽤 세게 때린 듯했다. 어쩐지 아프더라.
근데 이렇게 화가 날 정도는 아닌데.
수습을 위해 손을 감추자 주변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자입니까.”
“안 돼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거잖아요?”
이자를 죽이면 됩니까, 로 들린 건 기분 탓이 아닐 테니까.
손등을 빠르게 치유해 준 율리시스는 얼음장 같은 눈으로 무례한 사람을 응시했다. 등골이 서늘할 만큼 표정 한 점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에 무례한 남자는 흠칫하며 모른 체했다.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참나. 하지만 정 원하면 양보해 줄 생각은 있었는데, 사람을 못된 놈 취급하려는 것 같군.”
남자는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웬만하면 크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요이델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런 예의 없는 사람은 보호해줄 생각 없었다.
“오늘만 손꼽아 기대했는데, 모은 돈이 많이 부족했나 봐요.”
요이델은 조금은 일부러 속상한 투로 말했다. 그런 목소리는 처음 들은 율리시스의 표정이 확 굳었다.
“하지만 돈은 부족할 수 있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등을 맞을 이유는 없어요. 그렇죠?”
“…….”
“저분보다 치를 값이 부족하고, 또 무려 오래전부터 속으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 놓은 걸 제가 채어 간 상황이 된 줄은 몰랐어요. 속마음은 누구도 읽을 수 없으니까요.”
“아니, 그건 말이네……!”
“언제 마음속으로 예약하셨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1년쯤 됐지!”
요이델은 혀를 찼다.
“그럼 이 의상실의 재단사도 몰랐겠네요. 왜냐하면 요즘 유행하는 패턴의 이 천은 얼마 전 라보르비치에서 출시한 제품이니까요. 꽃을 둥근 풀잎 모양이 감싼 이 패턴은 왕가의 문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흔한 모양새도 아니죠.”
요이델의 말에 남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건 과거 라보르비치에 갔을 당시, 아카코스의 여동생인 아키스가 몰래 선물로 건네준 것과 똑같았다.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오빠를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분께서 절차대로 드레스 구매 예약을 해 놓으셨나요?”
“아니요, 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종업원들은 남자에게 가서 회유와 설득을 시도했다.
“죄송하지만 손님, 저쪽 손님께서 먼저 보고 계셨으니, 괜찮으시다면 다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나보고 양보를 하란 말인가?”
그의 노기 띤 음성에 종업원들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마음에 드실 만한 비슷한 드레스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최근 나온 디자인이라 마음에 쏙 드실 거예요.”
“쏙은 무슨 놈의 쏙! 쏙이라고?!”
쩌렁쩌렁해서 귀가 터질 것 같다.
“내 딸이 꼭! 이걸 갖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적당히 아무거나 사서 타협하라는 건가? 애들에게 데뷔탕트 드레스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의상실의 사람들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저, 손님.”
“일생 한 번 있을 주목받는 자리라고! 아닌가? 내 생각이 틀렸다면 말을 해 보게.”
“혹시 따님과 동행하셨을까요?”
“꼭 그 애가 따라와야만 아나? 옛날부터 그랬다고! 내가 알아! 딱 이 모양이었어!”
종업원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의 막무가내인 모습에 요이델도 전의를 상실했다. 저런 사람이면 그냥 물러나 주는 게 나으니까.
“율리시스 님, 그만 돌아갈까요? 사야 할 것도 다 샀고요. 귀가 아파요.”
요이델은 종업원들을 응시했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어딘지 이상함을 느낀 듯 남자를 보며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제가 양보할게요. 괜찮아요.”
“……그, 그래? 하지만 정 원하면 양보해 줄 수도 있는데. 그냥 값이나 조금 쳐서…….”
“나도 그게 마음에 드는데.”
어디선가 웃음기 가득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등장하자 가게 안에 있던 몇몇의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요이델도 깜짝 놀랐다.
‘어쩐지 의상실에 남자가 더 많더니, 미행한 거였어? 그것도 사복 차림으로?’
여유로운 낯으로 등장한 사람은 바로 휘르무트였다.
그는 떽떽거리던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등에 제 손을 얹고 툭툭 건드렸다.
“안타깝지만 신사분, 그건 내가 예약해 놓은 거라 뺏기지 못하겠는데.”
“그게 무슨…….”
“마음속으로 내정했다고 말했지.”
남자의 얼굴이 분노로 빨개졌다.
“트집 잡을 셈인가?”
“이를 어쩌나. 나는 그 드레스를 짠 방직물 기술자가 누에 엉덩이에서 실 가닥을 뽑아낼 때부터 마음에 들어 했는데. 꼭 갖고 싶다고 생각했지. 이 불타는 마음속으로.”
남자는 황당하다는 듯 어벙한 표정을 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요?”
“돼. 그럼 다르게 말할까, 그 디자인이 탄생할 때부터 마음에 들어 했지.”
“두서도 없고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네.”
휘르무트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야. 잘 선택해. 하나는 드레스도 데뷔탕트도 목숨도 구할 수 있는 천국의 선택, 하나는 고작 고집 하나로 망한 전례가 되어 구전 설화로 남을 수도 있는 선택.”
“…….”
“어떻게 할래.”
그가 웃으며 다가와 남자의 몸이 벽 모서리로 쪼그라드는 순간.
“죄송합니다, 손님. 의상실의 책임자인 재단사 벨리나입니다.”
“하하.”
“윽.”
수습을 위해 나타난 재단사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휘르무트를 잘 아는 듯했다.
그녀는 곧 다른 손님에게로 시선을 틀었다.
“죄송하지만, 손님. 해당 드레스는 기존 드레스에 가봉을 더하여 오늘 완성된 옷으로, 오래전에 보신 옷은 다른 드레스일 게 분명합니다.”
“……그, 그럴 리가. 이게 맞을 텐데.”
“원하신다면 확인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따님께서 원하시던 옷과 다르면 곤란하실 테니까요. 말씀대로 한 번뿐인 중요한 날이니만큼 차질은 없어야겠지요.”
“허, 참나, 허, 참.”
남자는 슬슬 의상실 밖으로 나갔다.
“물어보고 다시 오겠네!”
“어딜 가.”
탁. 그 순간 휘르무트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남자의 턱끝을 잡아당긴 순간 변장 마법이 사라지고 본래 얼굴이 드러났다.
“사, 살려 주세요.”
그는 손바닥을 파리처럼 비볐다.
“전과 22범 테드. 전부 잡범. 사기꾼이자 도둑이 이제 당당하게 흥정까지 시도하는군.”
“아아악! 하,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안 될……!”
“내 사촌 동생은 너 같은 놈을 싫어하거든. 감히 손등을 때려? 눈에는 눈, 손등에는 손모가지로 보답해야지.”
속삭인 휘르무트는 그를 기사에게로 내동댕이치듯 넘겼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기꾼이 끌려갔다. 문이 닫히고 재단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 사람은 원래 대단한 고집을 부려서 양보하는 척 이윤을 챙기는 사기꾼입니다.”
“그랬군요. 어쩐지 이상했어요…….”
“사과의 뜻으로 드레스를 선물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마침 준비하던 디자인이 있는데 손님과 무척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그녀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눈을 빛냈다. 뭐에 홀린 것 같았다.
“힘들까요? 정말 딱 어울리실 것 같은데 말이죠!”
“앗, 저는…….”
“이 진귀한 분홍 머리나 빨간 눈! 손님께 어울릴 디자인이 있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손님. 꼭 해 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종잇장을 촤르륵 펼치며 열변을 토했다.
“아까부터 지켜, 아, 죄송합니다. 바라보며 마구 디자인을 떠올렸어요. 데뷔탕트를 치르시느라 오신 것 맞으시죠? 그렇다면 반드시 제가…….”
“콜록, 그럼 천천히 구경하고 와. 저기서 기다릴게.”
벨리나는 번뜩이는 눈으로 웃으며 휘르무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절대 데뷔탕트에 바람둥이를 데려가면 안 돼요.”
“콜록.”
“그렇죠, 휘르무트 님.”
목소리가 이상한 휘르무트는 얼굴을 감추고 나가려다 딱 붙잡혔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종업원을 불러들였다.
“나름 아름답게 헤어진 줄 알았는데…… 하하. 사과의 의미로 내 사촌 동생을 위해 여기 드레스를 전부 사지. 구두, 모자, 걸칠 거 전부. 원한다면 샹들리에까지 다.”
“아뇨. 꺼져요. 저기 있는 멋진 분께서 이미 전부 계산하셨거든요.”
“……누구?”
멍해진 휘르무트는 가리킨 곳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안색 하나 변함 없이 미소 짓고 있는 율리시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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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녀는 휘르무트가 만났던 과거 연인 중 한 명이었다.
요이델은 저런 사람을 만나면 큰일 난다고 조언을 듣고, 사촌 동생이라고 해명한 뒤 풀려났다.
어쨌든 드레스는 받기로 했다.
“오라버니는 바람둥이였군요.”
“오해야! 그냥, 모두에게 다 진심이었어. 요이델,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야!”
율리시스를 힐끔 올려다본 요이델은 다시 휘르무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지내면 안 돼요.”
“안 한다니까……. 이제 그렇게 안 살아.”
어쩌다 마차 안에 동승하게 된 보좌관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 휘르무트 님이 쩔쩔매고 변명을 한다니.’
그는 뻔뻔했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처음 봤다. 동료에게 저런 모습을 봤다고 말하면 거의 귀신을 본 사람 취급당하겠지.
그럴 수가 있냐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덜컹.
어느덧 마차가 성안에 도착했다.
“조심해. 내 손 잡아.”
“어? 앗.”
먼저 내린 휘르무트가 에스코트하기도 전.
율리시스는 힘든 기색이 조금도 없이 요이델을 사뿐히 안아서 내려 주었다.
“하하…… 빠르십니다, 성하.”
휘르무트는 허공에 뜬 손을 이를 꽉 깨물고 거둬들였다. 그러나 요이델의 다음 말에는 흐뭇하게 웃었다.
“율리시스 님, 저 오늘은 오라버니와 할 얘기가 있어요.”
이번엔 율리시스의 얼굴이 굳었다.
“……알겠습니다.”
“잘 들어가십시오. 어서 가세요.”
휘르무트가 싱글벙글하며 인사했다. 율리시스는 할 말이 많은 눈이었지만 일단 물러나 주었다.
“좋은 꿈 꾸시길.”
부드럽게 말한 율리시스는 보란 듯이 요이델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 물러났다.
휘르무트는 요이델과 함께 늦은 밤 왕성을 산책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어딘지 복잡해 보였다.
“사실 오늘은, 가족들의 선물을 사러 간 거예요.”
곧 생일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줄 것들을 사고 싶었다.
휘르무트는 요이델이 사 온 목걸이를 뺏길세라 소중히 품었다.
“이건 이제부터 메디아의 가보다. 대대손손 물려 줘야 돼.”
호들갑에 요이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데요, 오라버니.”
“응. 요이델.”
“지난번에 해 준 얘기요.”
내내 생각했다. 오늘 꼭 성하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더 밝게 인사했던 것도.
사실은 계속 마음에 걸려서였다.
오라버니에게 페어링에 대해 들은 이후부터 쭉.
긴장이 탁 풀린 요이델은 손을 조금 덜덜 떨었다.
“이 페어링을 유지하면 성하가 잘못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