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
15화
테오가 돌아간 후, 요이델은 지도를 살폈다. 율리시스의 독촉으로 지형을 수백 번 파악한 요이델은 그 차이를 알아챘다.
확신을 위해 요이델은 다른 얇은 종이를 펼쳤다.
그녀는 이미 기존 라크라스 산맥의 지도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본을 떠 놨었다. 손을 움직이면 암기가 잘됐으므로.
대조를 해 보니 역시 달랐다. 눈치채기 힘들 만큼 미세하게 바꿔 놓은 위험 지역 표시들. 테오는 또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요이델은 오늘 아침, 테오가 한눈을 판 틈을 타서 자신이 연습 삼아 그렸던 지도 중 가장 허술한 지도를 골라 그의 지도와 친히 바꿔치기해 주었다.
열심히 필기해 놓은 그의 진짜 지도는 요이델에게 있었다. 그의 목적이 보석 광산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그가 본인의 지도에도 혹시 모를 장치를 해 놨을까 살펴봤지만, 그렇진 않았다.
결국 테오는 자기가 한 나쁜 짓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된 셈이었다.
“그러니까 꼭 테오를 이기고 말 거예요.”
율리시스는 썩 마음에 든다는 듯 조용히 웃었다. 햇병아리인 줄 알았더니, 제법 기특한 생각도 할 줄 아는군.
그러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마지막 시험은 배점이 가장 큽니다, 요이델 님.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위험 지대 쪽에는 괴수가 있으므로―”
“아! 걱정 마세요. 가진 돈을 전부 써서 사 놓은 게 있어요.”
요이델은 옷 주머니에서 향이 새어 나오는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된 뒤 요이델은 정상적인 지도로 무사히 산맥을 올랐다.
“보물…… 역시 사프란이 좋겠지.”
‘괴수가 잠드는 곳 바로 위에는 보석이 있는 광산이 있어. 하지만 그건 위험해. 자신의 둥지 위로 넘어가면 괴수는 예민하게 반응하니까.’
라크라스 산맥을 개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저 괴수의 탓도 있었다.
영역을 침범하는 타국 침입자들을 철저히 멸살하는 만큼 성국인들도 공평하게 처단했으므로.
성국의 광산은 다른 곳에도 많았으므로 개발 가능성에 비해 지형이 험난해, 노력 대비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곳을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이번 시험에서 어떤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광산에 도전할 수도 있지만, 사프란은 충분히 보석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다행히 괴수는 야행성이라 시험이 치러지는 낮에는 잠을 잔다.
요이델은 둥지의 뒤편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쿠구구, 커억―
괴수의 코골이는 천둥 치는 소리와 비슷했다.
사프란 꽃밭은 괴수의 영역에 걸쳐져 있지만, 둥지와는 거리가 멀고 외진 데 있어서 직접적으로 괴수와 마주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요이델은 준비한 아공간 주머니 안에 사프란 꽃을 조심히 넣었다.
‘휴, 휴우우…… 성공했어.’
“아얏.”
크어어!
요이델이 잠깐 넘어져 소리를 낸 순간, 괴수의 코골이가 끊겼다. 깼나? 깼을까? 순간 굳어 움직이지 못하던 그때.
푸우우―
잠꼬대임을 깨달은 요이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잽싸게 달음박질쳐 내려왔다.
“도착, 도착했어…….”
요이델은 시험 대기장에 널브러지듯 누웠다.
“아니, 자네는 제 몸을 생각할 줄도 모르는가!”
그때 별안간 나타난 하일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치료 신관과 비교도 안 되는 회복 마법을 걸어 주었다.
“일어나게, 일어나. 쓰러져서는 안 되는 일일세.”
그리고 원래 그러려고 했다는 듯, 눈치를 보며 옆에 있던 모든 시험 참가자들에게 회복 마법을 조금씩 걸어 주었다.
“해가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안 온 사람이 있습니까?”
“이상하군요. 대부분 돌아왔는데 한 명이 오지 않았어요.”
그때 감독관들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라크라스 산맥은 해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무척 위험해진다.
괴수가 눈을 뜨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침입하지 않으면 건들지 않으나, 불청객은 가차 없이 불태우는 게 라크라스의 괴수였다.
‘그 한 명이 테오야. 그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
요이델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는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건 내게 주려고 했던 걸 다시 회수해 간 셈이니, 미안할 건 없지.’
요이델은 명확히 사리 판단을 했다. 그러나 객관성과 인간성은 다른 것이다.
‘안 돼. 쓸데없는 오지랖 부리지 말자, 요이델. 테오가 잘못한 거잖아.’
요이델은 잠시 고민했다. 맞다, 이 고민은 정말 바보 같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지만!
‘테오가 죽으면 어떡해?’
요이델은 결국 시험 통과를 목전에 두고 걸음을 빠르게 돌렸다.
그 뒷모습을 율리시스가 눈으로 좇고 있다는 건 까맣게 모른 채.
━━━━⊱⋆⊰━━━━
다리는 산맥을 오르면서도, 백번도 더 다른 생각이 번쩍거렸다. 죽기 싫다, 꼭 살고 싶었다.
삶을 향한 열망으로 자신이 어떤 짓까지 했던가? 난생처음 탈옥도 해 봤고, 장정 두 명을 기절시키고, 마지막에는 치한처럼 남의 입술을 빼앗았다.
‘그런데 테오는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정말로 보석이 있는 곳까지 오른 건 아니겠지?’
테오는 그런 바보가…… 맞다. 분명하다.
불길함에 식은땀을 흘리던 그때.
꾹꾹.
한 다람쥐가 요이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미안하지만 다람쥐야, 나도 지금은 너무 바빠서 먹이를 못 줘.”
그런데 일반적인 다람쥐치고는 기운이 남달랐다. 게다가 자신을 이끄는 듯한 모습. 그때, 다람쥐가 작은 마법을 사용했다.
크아악!
그때, 까마귀 떼가 날아가고 지대가 흔들렸다.
“너 혹시 테오의 소환수니?”
다람쥐는 맞다는 듯 작은 앞발을 짝짝 치고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급히 다람쥐를 따라간 요이델은 경악했다.
라크라스 산맥의 문지기로 불리는 저 괴수는, 얼핏 보기에는 그저 날개 달린 거대한 강아지 같아 보였다. 목이 세 개 달린 건물만 한 강아지.
“저! 저리 가!”
저 멍청이 테오!
테오는 열심히 괴수를 자극시키고 있었다. 저 괴수는 소리에 반응한다.
당장 저곳에 뛰어드는 건 같이 죽자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요이델은 풀숲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저리 가라고! 꺼져, 괴물아! 말 못 알아들어!”
요이델은 그의 멍청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테오는 인생에 도움이 별로 안 되는 것 같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중에 있는 건 작은 사프란 향 주머니뿐이었다. 거금을 털어 산 그것.
‘마법을…… 사용해 볼까.’
율리시스로부터 힘차게 굴려질 때, 아주 기본적인 마법을 겨우겨우 익혔다. 그때의 혹독한 기분을 상기시키며, 바람을 불러들였다.
그녀의 손을 타고 순식간에 시원한 공기가 몰려들었다.
“이 향을 실어서 저 동굴을 맴돌아 줘. 그러다 저 멀리 있는 사프란 꽃밭으로 괴수를 이끌어 줘.”
사프란 꽃이 바람결을 타고 괴수의 코끝에 다다랐다. 그러자 괴수의 코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잔뜩 빳빳해졌던 귀를 축 늘어뜨린 괴수는 눈이 반쯤 풀려 바람을 따라갔다.
‘그래, 좀만 더…… 그렇게.’
괴수가 서서히 멀어지던 때, 의문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테오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역시 테오는 보석을 찾으려던 거구나. 그는 손에 가방끈을 쥐고 있었는데, 도구가 잔뜩 든 가방은 형편없이 풀어 헤쳐져 있었다.
요이델은 재빠르게 다가가 멍청하게 넋을 놓고 있는 테오의 멱살을 잡고 달렸다.
“윽! 야! 크흑, 수, 숨!”
“소리 내지 마! 충분히 괴수를 자극했으니까.”
날이 어두워서 흐르는 땀을 몇 번이고 닦아 내야만 했다.
“네가 내 지도 바꿔치기한 거 다 알아.”
요이델은 속삭이듯 조용히 얘기했다. 죄 많은 테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아까 네 지도랑 다시 바꿔치기했어. 네가 판 함정을 돌려줬어. 너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미안하진 않아.”
“…….”
“난 정말 안 미안해. 네가 네 함정에 어떻게 빠졌나 구경하러 온 것뿐이야. 오해하지 마.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은 못 되니까. 솔직히 네 눈물 자국 보고 쌤통이다 싶었어.”
요이델은 화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오는 아까보다 더 놀란 듯했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완전히 하산하면 더 싸울 거야.”
요이델은 씩씩거리며 더 쏘아붙이고 후련한 듯 웃었다.
“너, 너…….”
“가자. 괴수가 다시 깨어나면 위험해.”
게다가 마지막 시험의 마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그때 테오가 요이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요이델은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러자 곤란한 안색의 테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보물을 못 찾았다고! 이 상태로 돌아가 봤자 아무것도 안 돼.”
“지금 상황에 그런 얘기가 나와? 그럼 괴수한테 불타 죽을 셈이야?”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시험은 어떻게 하라고!”
테오가 풀린 다리로 다시 주저앉으면서 쿵, 소리가 났다. 설마 싶은 소름 끼치는 감각에 요이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괴수는 소리에 반응한다. 그리고 방금 큰 소리가 났다.
―크릉…….
하늘에서 불어오는 돌풍, 그리고 앞에 있는 테오의 표정. 위를 올려다보자 강렬한 날갯짓이 보였다. 요이델은 아까의 기분을 다시 상기했다.
테오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뛰어!”
“아, 으아, 저 개 같은 건 왜 다리도 달리고 날개도 달리고 머리도 많아!”
“시끄러워, 테오!”
쾅!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달려도 괴수의 한 걸음만 못했다. 요이델은 흡사 짐승처럼 산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건 짐짝 같은 테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강해! 까딱했다간 먹히고 말겠어!’
요이델의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사프란의 꽃밭으로 다시 유인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흥분 상태에 다다른 괴수는 무차별적으로 발톱을 찍기 시작했다.
쾅! 콰과광!
서걱.
날카로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투두둑 잘렸다.
이때 딱 기절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위로 올라가면 당연히 안 되지만, 이대로 가면 정말 절벽 끝으로 가고 만다.
달려가는 곳은 하산길이 아닌 막다른 쪽이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었다.
쿵!
괴수의 발톱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뒤를 돌면 화염에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으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테오는 버리는 건데. 요이델은 제 간사함을 느끼며 간절히 살아남길 바랐다.
헉, 헉. 숨이 차올라 폐까지 홀쭉해져 버린 느낌에 꺽꺽거리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시원하다 못해 쩍쩍 갈라진 목이 시린 느낌으로 말라 왔다.
풀숲을 닥치는 대로 젖히느라 손을 베였는데, 그 상처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가시에 찔리고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났다.
온몸이 아파서 욱신거리던 그때.
‘피부가 돌아왔어?’
요이델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율리시스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했다는 걸.
둘은 같은 상처와 통증을 공유하므로, 한쪽의 몸에서 상처가 없어지면 반대쪽도 마찬가지로 상처가 사라진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죄송해요, 성하.’
그의 도움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울 수는 없지. 요이델은 침착하게 파악하며 뒤를 바라보았다.
저긴 진짜 절벽인데. 테오는 기절한 지 오래라 도움이 안 되고.
요이델은 은신 마법을 떠올렸다. 일순간이라도 몸을 감출 수 있다면.
‘사프란 꽃잎은 다 썼지만 향 주머니는 남아 있어. 여기에도 향이 묻어 있을 거야. 최대한 멀리 던져 보자.’
그 틈에 도망가면 된다. 그럼 이제 주머니를…… 주머니가?
‘아까 뛰어올 때 잃어버렸나 봐!’
요이델은 괴수를 피해 주춤 물러나며 방어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괴수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그때.
미처 시동을 걸 새가 없었다.
―크아앙!
울부짖던 마수는 날개를 접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쾅, 쿠웅, 푹, 쿠우웅―
‘마법, 방어 마법의 시전이! 어서 빨리!’
그러나 마수가 시야에 보였을 땐 이미 늦었다. 작았던 점이 주먹만 하게 보였다. 그다음은 바로 코앞, 마침내 얼굴 앞에 다가와 쩍 벌려진 거대한 송곳니.
‘……끝이야!’
아프게 삼켜질 일만 남은 그때.
요이델은 방어 마법의 발동을 위해 한쪽 팔을 힘껏 앞으로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