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끼이잉.
팔이 먹혔나?
하지만 아프지 않아. 따갑지도 않고 이상해. 오히려 간지러운데 이게…… 천국인가? 아니야.
팔이 뜯어 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팔 한쪽이면 괜찮을 거라고.
그런데 방금 그 낑 소리는 뭐지?
“꺄악!”
―끼잉. 낑. 낑!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괴수가 자신의 작은 손 앞에 머리를 숙이고 방싯댔다.
팔을 뜯기기는커녕, 괴수의 축축한 혀가 요이델의 몸을 씻어 주었다.
목을 세 개 가진, 날개 달린 거대한 강아지가 꼬리를 붕붕 돌리는 통에 숲에 바람이 몰아쳐 나무가 뜯겨 나갔다.
“어……?”
발라당!
요이델과 눈이 마주치자 괴수는 배까지 까뒤집고 헥헥거렸다.
이건 산맥의 침입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누가 보면 집 나갔다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개인 줄 알 정도로 친밀한 모습이었다.
“사프란 꽃잎은 다 써 버렸는데, 왜 이럴까?”
생각해 봐도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의문만큼이나 살았다는 안도감이 컸다.
―낑.
“엣취!”
마수도 야생 동물이라 요이델은 연신 재채기를 터뜨렸다.
괴수는 계속 강아지처럼 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대신전에 보고를 해야 알겠지만, 어쨌든 그녀에겐 좋은 상황이었다.
요이델의 손짓에 따라 괴수는 머리를 비비고 연신 헥헥거렸다. 말을 알아듣는 듯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 “사프란 밭을 써도 돼?”라는 말이나 “보석 광산 가도 돼?” 같은 말에도 헥헥거렸으니까.
요이델은 기절한 테오를 바라보고, 다시 괴수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아직 보물이 없어. 그렇다면…….’
요이델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마지막 관문, ‘보물’에 대하여.
━━━━⊱⋆⊰━━━━
해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이 되었다.
아직 두 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요이델과 테오.
율리시스는 아까 전, 요이델이 다시 라크라스 산맥에 오르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었다. 정말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는 붙잡았고, 요이델은 거절했다.
‘도대체 어떤 선량함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쨌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슬슬 시험 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시간을 넘기면 탈락이다.
시험장에 모여 있던 이들과 감독관들이 하나둘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요이델 신관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아까 분명히 계셨는데…….”
“아까 산맥으로 다시 가시는 모습을 봤어요!”
“네? 지금 시간에 말입니까? 이 위험해지는 때에?”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보면서, 율리시스는 몰래 구겨진 웃음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뻔히 보이는 승리를 내던지고 고작 자신을 해치려 한 놈이나 구하러 가셨군요.’
율리시스는 시간을 가늠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 누가 옵니다, 감독님들!”
저 멀리서 작은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뭔가가 보여요!”
“요이델 수련신관님이십니다. 옆에는 테오 수련신관님도 함께입니다!”
사람들의 소란을 따라가 보니 정말 둘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대기장 내, 사람들이 벌 떼처럼 입구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험장에 들어오자마자 요이델은 테오를 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숨을 몰아쉬었다. 요이델이 자신보다 훨씬 체구가 큰 테오를 끌고 온 거나 다름없었다.
이어 그녀도 지친 안색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사프란 꽃!”
테오의 손에는 아주 귀한 게 들려 있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비싼 향신료. 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비쌀 게 분명했다.
게다가 테오가 아공간 주머니를 뒤집자 수많은 사프란이 산처럼 쌓였다.
“테오 신관님이 가지고 온 것입니까?”
“그럼 요이델 님은 무엇을…….”
요이델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보물이 꼭 형체가 명확한 어떤 물건만 해당되진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호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공간이 필요할 거예요.”
휘익―
입에서 청명한 휘파람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뭘 한 거지? 다들 어리둥절한 눈으로 요이델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휘이이―
쿠웅.
“지진인가! 모두 피하시게!”
거센 돌풍이 몰아치고 땅이 울렸다.
몸이 바로 서지 못할 만큼 좌우로 흔들렸고 귓속의 전정 기관이 마비된 듯 세상이 핑핑 돌았다. 그 혼란함 속에서 요이델과 율리시스만이 평온을 유지한 채 한쪽을 바라보았다.
어딜 보는 거지? 그 시선을 쫓자 저 멀리, 어떤 자그마한 까만 점이 보였다.
거대한 날개를 접은 그건 가까이 올수록 거대해져서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먹이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리는 듯 급하게, 그리고 빠르게.
점의 정체는 바로 괴수였다.
“저, 저게 왜 갑자기 산맥 아래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율리시스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괴물이 다가온 순간.
“베리, 앉아.”
―낑!
요이델의 자그마한 손바닥에 이마를 비비고 얌전히 발을 모아 엎드렸다.
―헥헥.
“좋아. 잘했어, 베리. 간식이야.”
쿠키를 던져 준 요이델은 모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제가 제출할 마지막 시험의 과제물은 바로 라크라스 산맥의 문지기, 베리입니다.”
요이델이 직접 지어 준 이름은 베리였다. 눈동자가 붉으니까 스트로베리를 따서 베리.
“베리가 라크라스 산맥의 출입을 허가해 줬어요. 주의 사항만 잘 지키면 누구든 공격받지 않고 산맥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광산은 그것 외에도 존재하네. 그 산맥을 고른 이유가 있는가?”
하일이 묻자 요이델은 옷자락 안쪽에서 작은 돌덩이를 내밀었다. 그건 어두운 와중에도 밝은 빛을 내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물이었다.
“이건 크리온 광물이에요.”
“그 쓸모없는 것이라고? 아니, 그건 발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궁금증 가득한 모습의 하일이 요이델을 향해 질문했다. 그의 말대로 크리온 광물은 평소 딱히 쓸모가 없었다.
이게 원작에서 등장하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요이델은 기억이 나는 대로 원작의 지식을 적어 두어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크리온 광물은 태양 빛에 잘 노출시켜 제련하면 빛을 머금기 때문에 야광등으로 쓸 수 있어요.”
그건 라크라스 산맥에서 나는 흔한 광물로,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그저 그런 돌이었다.
“빛을 내는 마력석은 값이 비싸지만 크리온은 개수가 많고 만들기 쉽지. 밤에 빛을 쐬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싼값으로 공급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요이델은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말해야 될까?
“제가 어릴 적 어둠을 무서워할 때 유모가 이렇게 불을 밝혀 줬었어요.”
크리온은 어두운 동굴 안에서 자란다. 그리고 쉽게 부서져 검으로 활용할 수도, 다른 쓸 만한 걸 만들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크리온이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건, 제련하는 방법을 모를 때의 일이었다.
요이델은 산맥의 동굴에 있는 크리온 광물을 소개했다. 그것의 제련 방법과 가치도.
모두 생각지도 못한 그것의 가치에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산맥의 문지기를 길들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런데 새로운 쓰임새와 방법까지 알아내다니.
이 관문의 명백한 승리자는 요이델이었다.
“그곳엔 사프란 꽃밭도 있었습니다.”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테오는 하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사프란 꽃을 내밀었다.
“괴수가 있는 곳 근처의 비밀 숲 너머에 있습니다.”
“꽃밭이 그곳에 있다니…….”
“이건 모두 요이델 신관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테오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저는 시험 시작 전, 요이델 신관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지도까지 바꿨습니다.”
테오는 요이델에게 사프란 꽃을 돌려주고 고개를 숙였다.
자멸이라.
율리시스는 그 모습을 보며 단조롭게 평가했다. 어떻게 끝을 내 줄까 고민했건만…….
결국 저 정도였나.
감독관 중 한 명은 테오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테오 신관님께선 실격 처리되실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방당하실 텐데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테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명, 요이델에게.
“지도를 바꾸고 발도 걸고, 괴롭힌 거 모두 진심으로 미안했다.”
신전은 전 대륙을 아우르며 영향력을 행세한다. 이제 테오에게 그 어디를 가더라도 추방당한 자, 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하지만 테오는 겸허히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였다. 그는 숙인 고개를 들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오래 살길 잘했군.’
이 사태를 지켜보던 하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삶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사람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는 건 흔치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이미 내려왔던 산맥을 다시 한번 올라간 요이델 신관님 역시 원칙을 어긴 것이긴 합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감독관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원칙과 규율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이델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실망시키기는커녕, 놀라움 그 너머를 해냈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보물은 자신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 실로 신관다운 선택이었다.
‘난제로세.’
하일은 시름을 앓았다. 원칙을 철저히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선량한 마음과 용기, 즉 신관으로서의 미덕을 따를 것인가…….
빠악!
바로 그때, 느닷없이 날카롭고 뾰족한 어떤 조각이 하일의 이마를 때렸다. 자세히 보니 달걀 조각이었다.
감히 누가 이런 짓을!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앞을 본 그때, 하마터면 충격으로 쓰러질 뻔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 그의 목전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꾸!”
알을 갓 깨고 나온 듯 반쯤 삐져나온 몸. 은백색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하얀 몸체와 파닥거리는 작은 날개, 자그마한 손. 어린 드래곤의 형상.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대신전의 신수가 지금 세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려 300여 년을 애태운 그 신수였다.
신수는 아직 떠지지 않은 눈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침내 반짝 뜨인 눈은 태양처럼 찬란한 금색이었다.
“꾸웅! 꾸!”
그리고 신수는 곧장 어디론가 날아가 안겼다.
바로 요이델의 품으로.
신수는 요이델을 보호하듯 짧은 팔다리를 힘껏 뻗고 용맹하게 외쳤다.
“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