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이로써 정해졌군요.”
율리시스의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신수께서 요이델 님을 자신의 관리자로 택하셨습니다.”
“세상에…….”
눈이 있다면 누구도 부정 못 할 사실이었다.
신수는 마치 한 명만의 애완동물이라도 된 듯 분홍 머리 소년의 품으로 날아가 꼬물꼬물 머리를 비볐다.
“꿍?”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야? 요이델도 놀라 말을 잊었다.
신수는 자신을 안아 주지 않는 요이델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아직 너무나 어린 아기 드래곤은 짧고 통통한 팔로 요이델을 툭, 건드렸다.
그리고 낑낑거리는 신음과 함께 앞발질을 겨우 하며 그녀의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꽉 쥔 옷자락을 아래로 쭈욱 쭉 잡아당기며 자기 마음대로 머리를 쓰다듬게 했다. 작은 신수는 반짝이는 금색 눈으로 요이델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예뻐해 달라는 듯이.
“뀨웅.”
“플로, 플로테스 맞지?”
“꾸! 끼잉. 낑!”
신수는 요이델의 손가락에서 나무에 긁힌 상처들을 발견하고 혀로 한 번 핥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다. 멍하게 있던 요이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름이 나오자마자 신수는 말 그대로 뿌앙, 하고 터지는 것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왜 이제야 알아보냐는 듯한 투정이었다.
“낑.”
“아직 말은 못 하는 거야? 앗, 아야.”
아직 아기인 플로는 그 말만으로도 속상했는지 요이델의 손가락을 앙, 하고 살짝 물었다.
“앗, 미안해. 하긴 아기가 어떻게 말을 하겠어.”
그러나 요이델과 다시 눈을 마주하자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요이델은 플로를 품에 꼭 안았다.
“귀여워, 플로!”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제된, 꼭 둘만의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성하!”
“성하.”
그때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율리시스가 직접 내려왔다. 시험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예의를 표했다.
율리시스는 둘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같은 수컷끼리 난리를 떠십니다.”
“꺄아악!”
그때 냉정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고개를 돌리니 싸늘하게 빛나는 푸른 눈이 요이델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저 알덩이는 그리 품에 끼고 계셔 놓고, 제 얼굴은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시다니. 제법 웃기십니다. 사내들끼리 뭘 하시는 겁니까?”
“그보다 플로가 남자였나요?”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율리시스는 혀를 찼다.
“알 상태였으니까요……!”
율리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몸을 숙인 모두를 일어나게 했다. 사람들의 눈은 신수에게 못 박혀 있었다.
“와…… 정말 신수님이셔.”
“수백 년 동안 태어나지 않았다더니, 어떻게 된 일일까? 요이델이 부화시킨 거야?”
“야, 이제 요이델 님이지. 단번에 고위신관이 되실 테니까. 아무튼 대단해.”
수련신관들이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저 멀리 숨죽이고 있는 테오조차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꾸웅. 꾸!”
하지만 플로는 그 시선이 꽤 싫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질수록 자신의 품을 파고들었다.
휙.
그때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품에서 플로를 빼앗았다. 떨어지기 싫다고 짧은 팔다리로 버둥거리는 것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미소로, 이 어두운 밤을 환히 밝히는 달처럼 은은히 웃었다. 그러나 그 얇게 접힌 눈 사이로 보이는 푸른 눈은 맹렬히 번뜩였다.
남의 품을 파고들다니. 이거 순 변태 같은 신수 아닌가.
율리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꾸우우웅!”
하지만 플로테스의 성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둘은 겨루기라도 하듯 서로의 눈을 째려보았다. 물론 겉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신수께서 성하를 알아보시는군요.”
“어떤 대화를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역시 성하세요!”
위와 같은 아름다운 광경으로 보일 뿐.
갓 태어나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은빛이 나는 예쁜 백색 몸통과 찬란하고 똘망똘망한 금색 눈을 오래도록 뜨고 있는 신수.
마찬가지로 더할 나위 없이 제일의 아름다움을 지닌 성황.
둘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알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성질머리가 한결같이 더럽군요. 신전의 신수 주제에 신전의 주인인 나를 거역하는 겁니까.”
“꿍! 꾸꾸꿍! 꾸웅!”
“사람 말로 하십시오. 억울하면 더 자라든가.”
그러나 그들은 남들에게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각자의 언어로 폭언을 퍼부었다.
요이델은 그게 들렸다. 그래서 어쩔 줄 모르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플로테스는 엉엉 울면서 요이델에게 돌아오기 위해 짧은 손을 뻗고 있었다.
“이리 와, 플로.”
“꿍!”
플로테스는 일부러 율리시스의 얼굴을 꼬리로 철썩 치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 꼭 안겨 짧은 울음을 토해 냈다.
율리시스는 그 기이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수컷이 붙어 있든 말든 상관이 없는데 왜 묘하게 기분이 나쁜 건지.
그로서도 신수의 탄생이 놀랍기야 했다. 세상만사에 관심 없이 무심한 그조차도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그 신수가 정말로 부화했으니까.
그것도 저 분홍 머리 소년을 직접 관리자로 삼으면서.
‘모르겠군.’
알면 알수록 모를 일이었다. 요이델이라는 저 작은 체구의 소년은 항상 제 예상을 비껴간다. 어쩐지 혼자 행복한 듯 웃고 있는 저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그렇지. 그때 율리시스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요이델을 축 처지게 할 묘안.
“기뻐 보이시는군요, 요이델 님.”
그가 다가가자 요이델은 플로를 보호하며 조금 물러섰다.
“저도 당신이 신수 관리자가 되셔서 무척 기쁩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든 진심이었다. 그런데 요이델은 얼떨떨한 표정만 할 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꼭 율리시스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머리를 굴려 보는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지 않는군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율리시스의 대외용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영혼을 빼앗기 직전의 악마처럼 웃었다.
“당신의 거처가 제 손아귀로 떨어졌으니까.”
“네?”
“신수 관리자 요이델 님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본관 소속이 됩니다.”
그의 말에 순간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신수는 어립니다. 당신을 좋아하니 가까이 두고 안정을 취하며 성장하는 일이 필요할 겁니다.”
“설마…… 아니죠, 성하?”
“그렇습니다. 당신이 짐작하시는 그것.”
율리시스는 싱그럽게 웃었다.
“최초가 되는 일인 만큼 본관 쪽에 비어 있는 관 하나를 전부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연구하고 노동하고 기거하십시오.”
은근슬쩍 끼어 있는 노동하라는 말이 엄청 무서웠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하루 종일 그의 감시하에 놓이게 된다.
요이델은 현실을 부정했다.
“너무 과분해요, 성하! 저는 그, 그냥 기숙사 구역에 살면 안 될까요?”
“불가합니다.”
“…….”
“즉, 당신은 어느 때에든 자유로울 수가 없군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율리시스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안타깝게 됐다는 어투로 말했다.
“퇴근이 없게 되셨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요이델은 돌처럼 굳어 버렸다. 울기라도 할 듯이.
그래, 바로 이 표정이다. 그는 이게 재미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율리시스는 아름답게 웃었다.
“애석하게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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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눈이 퀭하게 꺼지고 안색을 시꺼멓게 물들인 황제가 의자를 내리쳤다. 그는 떨리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의자의 팔걸이를 쳐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성국에서는 신수가 태어났다. 알고들 있는가!”
음성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원래도 성국은 많은 대륙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었다. 유일신인 주신 시엘로를 섬기는 거대 신전이었고, 전 대륙에 신앙심은 퍼져 있었다. 그러니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곳곳으로 퍼졌다.
성국은 다른 이들을 그리 의식하지 않았으나, 지상 대륙의 왕국들은 그 반대였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사이가 안 좋은 것이 바로 이 브리칼트 제국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신수에 견줄 수 있는 그럴듯한 소환수조차 없냔 말일세!”
지상 대륙에 위치한 나라 중 가장 거대한, 브리칼트 제국.
게르암 신관이 정보를 빼돌려서 넙죽 가져다주었던 곳도 바로 이 제국이다. 다시 말하자면 게르암과 요이델의 고향이었다.
“요보힐데 공작, 신수의 부화에 대해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게.”
지금 황제는 성국에 신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딱 미쳐 기절해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곳에 있는 게 이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된다.
아니, 그래. 백번을 다시 생각해서 신수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신수를 직접 부화시켜 준 게, 브리칼트 출신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의 제국 출신 인간이 제 손으로 남의 세력을 키워 준 꼴이 된다.
그것도 제가 일부러 보내 놓은 인간이라면 더욱더!
쾅.
황제는 한 번 더 발을 굴렀다. 이 새벽에 불러낼 정도면 그의 분노가 여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식은땀으로 온몸을 적신 공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것이…….”
“이게 자네가 말하던 계획인가? 하마터면 게르암이 우리 측 첩자였던 것까지 들킬 뻔했네!”
황제의 입에서 커다란 호통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성황을 짓밟지 못해 안달이 난 그였다. 그런데 저번 게르암 신관의 일로 하마터면 황가까지 얽혀 들어갈 뻔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젠장할 성황 놈. 무슨 꿍꿍이속인지.’
황제는 초조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치아를 딱딱 부딪쳤다. 이번 일이 성공했다면 성국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을 터였다.
전 대륙 사람들이 성국에 가지는 신뢰감은 실로 컸다. 아마 그들이 민간인들에게 치료용품을 나눠 주거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국경 없이 지원을 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황제는 성국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싶었다. 신전이나 운영하는 구멍가게 주제에 제국의 국력을 넘어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게르암이 걸린 사건으로 완전히 꼬투리가 잡혀 당분간 어떤 수도 쓸 수 없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 요보힐데 공작!”
그 말에 공작은 고개를 붉은 카펫에 처박고 몹시 조아렸다. 황제가 가리키는 배신자는 한 명이었다.
게르암의 부정을 얘기한 사람. 그리고 신수를 부화시키고 광활한 사프란 밭까지 찾아낸 이.
“자네의 자식, 요이델 요보힐데.”
그 말에 요보힐데 공작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 와야 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