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율리시스의 깊은 입맞춤에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가 짓누르는 무게가 여실히 느껴졌다. 서로를 껴안은 품의 온도가 점차 습하게 달아올랐다.
“휴우…….”
“…….”
입술을 뗀 율리시스가 깊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숨김 한점 없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끼익.
그가 요이델의 머리 옆을 양팔로 받치자 무게가 쏠렸다.
그에게는 그녀의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모두 보였다.
흐트러진 분홍색 머리카락과 그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마저도.
“……율리시스 님?”
얼굴이 뜨거워진 요이델이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두근, 두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조심스레 손을 올린 그의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크게 뛰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율리시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의 뺨으로 손을 옮긴 요이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야윈 것 같아요……. 얼마나 무리하신 거예요? 몸은 괜찮아요?”
율리시스는 곤란한 질문을 무마하려 입을 맞췄다.
그러나 요이델은 그를 째릿 흘겨보고 곁에서 밀어냈다.
“이러지 말고요.”
“괜찮습니다.”
피식 웃은 그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답이 이상해요. 정말이에요?”
“당신에게 거짓을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그건 진짜 거짓말이잖아요.”
토라진 목소리에 율리시스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속아 주십시오.”
그의 은발이 달빛에 더 아름답게 빛났다.
어떻게 저럴까.
요이델은 일순간 그에게 홀린 듯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당신이 잠드신 이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을 뿐. 고될 것 없는 일이었으니 염려치 마십시오.”
조곤조곤하게 달래는 말에 요이델은 쏟아지는 잠기운을 느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붉은 입술을 조심조심 쓸었다. 어설프고 수줍은 유혹이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
“매일 찾아오셨다고 들었어요.”
말하는 얼굴이 터질 듯 빨갰다.
올망졸망한 시선이 경직된 율리시스의 눈과 마주쳤다.
“……오늘 밤도 떠나셔야 하나요?”
요이델이 그를 잡아당기곤 천천히 입술을 맞췄다 떼었다.
그러나 입맞춤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앗―”
그녀가 시작한 어색한 유혹이 치명적인 독처럼 퍼져 율리시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배려 따위를 생각할 틈도 없이 서로의 감정만 남은 본능적인 입맞춤이었다.
요이델은 그 순간 느꼈다. 지금까지는 그가 가진 속내의 절반조차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하아…….”
그녀를 정신없이 몰아붙이던 그의 겉옷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율리시스의 행동이 멎었다.
요이델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요이델 님?”
“…….”
“요이델 님!”
눈을 감은 요이델이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
요이델이 다시 쓰러진 지 사흘.
두 대륙이 시름에 잠겼다.
“몸에 무리가 가신 겝니다.”
모든 사태를 알게 된 하일이 침통한 표정으로 요이델의 상태를 진단했다.
“흑, 우리 성후님께서 보통 일을 겪으신 게 아니더군요. 어쩌면 이 몸에 무리가 간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대안은?”
“허윽, 으흐흑, 원래 몸으로 돌아가시는 게 가장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충격을 견디기 힘드시겠지요.”
휘르무트의 다그침에 하일이 괴로운 듯 말했다.
“그때 황제에게 입은 상흔이 너무 컸습니다. 게다가 추락 당시 성하께서 보호하셨다고 해도, 신체가 온전치 않은 상태로 황제와 가까이 붙었던 게 문제가 된 듯합니다. 흐어어엉.”
“젠장……. 그 새끼의 시체를 찾아 도륙을 냈어야 했는데.”
쾅!
휘르무트가 벽을 치자 자리가 움푹 파였다.
메디아의 수장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참았고, 율리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요이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라히에는 샨의 부축으로 비틀거리며 요이델에게 다가갔다.
“그래, 아가를 원래 몸으로 돌려놔야 해. 그게 맞겠어.”
“그 전에 페어링부터 풀어야 합니다. 지금은 영혼이 저 몸과 함께 속박되어 있어서 어려워요.”
휘르무트의 말에 율리시스가 그를 응시했다.
“제가 실행해야 안전하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셨습니까.”
율리시스가 고요하게 말했다.
“페어링은 인연의 마법. 신에 준하는 고대 마법이라 당신의 혈통이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하, 안타깝게도 그건 둘 다 의식이 있을 때 얘기입니다. 지금은 상호 동의의 서약 파기를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상호 동의가 없는 상황이라 페어링 해제에 위험성이 있습니다.”
망설이던 휘르무트가 결국 입을 열었다.
“기억의 상실입니다.”
“기억?! 전부 다 말인지요?! 서, 성후님께서 모두를 잊으시는 겝니까?”
“후엥……. 니델, 뇨이델!”
하일은 물론이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플로테스까지 울먹거렸다. 아무리 신수의 신성력을 써 봐도 요이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모두를 잊는 건 아니지만.”
“아이고, 다행입니다!”
“페어링을 맺은 상대에 대한 기억을 잃을 수 있습니다. 페어링이 되었던 순간부터, 풀어지기까지.”
휘르무트의 말에 모두 경악했다. 그도 이런 사태가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델이 아예 성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요? 말도 안 돼!”
“추억을 잃는다는 말이니?”
“어디까지나 위험성이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쪽이 의식이 없는 지금 상태로는 그런 사태가 일어날 확률이 큽니다.”
휘르무트는 다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율리시스를 보며 말했다.
율리시스는 그저 요이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을 삭제한다면, 페어링이 풀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
율리시스의 말에 모두 그를 쳐다봤다.
“페어링을 해제할 때 저에 대한 기억이 삭제될 수 있다면, 반대로 저와의 추억을 지우면 자연히 해제된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휘르무트조차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도 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가능성 있다.
“확률은 절반뿐입니다, 성하.”
기억 삭제는 고난도 마법도 아니니 서로의 몸에 무리가 갈 일도 없다. 율리시스의 힘이라면 높은 확률로 성공 가능할 터.
이루어진다면 최적의 방법이었다.
단 한 명, 율리시스에게만은 아니겠지만.
“기억도 잃고 해제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잃는 것은 저에 대한 기억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생이 당신을 잊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휘르무트는 결국 인정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본 모두가 그들의 사이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시스는 여전히 요이델을 바라봤다. 시선이 따뜻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저는 요이델 님께서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율리시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기억하실 수 있을 터이니. 다시 외로워지시지는 않겠군요.”
“…….”
“그것만큼은 보장하신다는 말로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율리시스는 응접실에 가 있었다.
“하지만 성하, 괜찮겠어?”
뒤쫓아온 휘스테론은 자신이 더 초조한 듯 물었다.
“이렇게 보내면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잖아. 페어링까지 해제하면…… 거리가 멀어져도, 기억이 없어도 마음이 똑같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답답해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휘스테론은 이 관계에서 제3자였다.
요이델의 친구였지만 그렇다고 성하와 가족 사이에 낀 존재도 아니라서 유독 더 잘 보였다.
율리시스의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게. 그리고 이대로 끝일 수 있다는 게.
그건 막고 싶었다. 둘 사이가 얼마나 애틋한지는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와 라이오스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성하는 뭐 하자고 이렇게 태연한 건데.’
휘스테론의 초조함과 달리 율리시스는 태연하고 차분하기까지 했다.
그는 철저하게 마법진을 살피던 시선을 떼고 씩씩거리는 휘스테론을 바라보았다.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래, 그게 이상했어. 둘이 언제부터 연인이었는데? 진짜 사랑해서 페어링을 맺었던 건 맞아?”
율리시스는 답을 하지 않았다.
“델이, 이대로 가도 좋아? 우리 수장님들은 성격상! 젠장, 페어링이 끊기면 메디아에서 데리고 살걸!”
“휘스테론!”
라이오스가 휘스테론을 잡았지만 금세 뿌리쳤다.
“당분간 회복 때문에 만나지도 못할 거라고. 그 후에는 만나게 해 줄까? 아닐걸. 그렇다고 성하가 무리해서 기억해 내라고 호통이라도 칠 거야? 아니잖아. 성하는 그래도 상관없어? 그렇게 착해?!”
“성하에게 무례하게 굴지 마라. 자중해.”
라이오스가 뜯어말리는 것도 소용없었다.
흥분한 휘스테론과 다르게 율리시스는 침착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걷혔다.
“그만큼 자신 없지 않습니다.”
그의 눈빛은 깊이 가라앉았다.
“회복을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고 요이델 님이 저를 완전히 잊으신다 하여도…….”
율리시스는 침체된 채 만약의 가능성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할 자신 있습니다.”
조용히 말하는 눈빛이 흉흉해졌다.
“다시 한번 저를 선택하게 할 겁니다.”
“……좋습니다, 성하. 그런 결심이라면 저와 라이오스는 메디아에 남아 요이델 님을 지키겠습니다.”
휘스테론이 말투를 바꿔 정중하게 얘기했다.
“저도 두 분이 다시 만날 거라고 믿으니까요.”
그의 허락을 받은 휘스테론이 나간 후, 율리시스는 창가를 바라봤다.
하늘이 짜증 날 만큼 맑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성하!”
그가 고민하고 있으면 밝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어야 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당연하게 느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 예기치 못한 모습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과연…….’
자신 있다고 한 건 반쯤은 자기 세뇌였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진심을 숨겨야 할 때였다.
“성하, 마법 시동을 위한 준비가 끝났습니다.”
문이 열리고 메디아 측 마법사가 그를 불렀다.
‘페어링 이전까지의 기억이라…… 최악이겠군.’
율리시스는 자조하며 웃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목에 검을 들이댄 그때까지라는 뜻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성하.”
메디아의 수장 일가는 최대한의 예우를 표했다. 저 얼굴이 과연 요이델이 슬퍼할 때와 똑같았다.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얼마나 딸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의 사랑이 어떤 건지, 얼마나 거대한지 그는 잘 모르겠으나…….
‘나도 그대를 사랑해.’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 주면 안 될까. 나와 함께해 줄 순 없을까.
혈연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랑도 있지 않나. 말하지 못한 진심이었다.
왜 깨어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깨어난 후에 사랑까지 바라는 건 욕심인가.’
율리시스는 창백한 요이델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역시 안 되겠다. 그건 과욕이었다.
‘저를 그대의 기억 속에서 남김없이 지우셔도 좋으니 부디 살아만 주시기를.’
그 순간 마법이 발동됐다.
━━━━⊱⋆⊰━━━━
“왕녀님! 오늘은 절대 다른 분들의 발을 밟으시면 안 돼요. 긴장하셔야 해요. 눈도 위엄 있게 날렵하게 뜨시고요.”
“응, 중요한 날이니까.”
분홍색 머리카락에 나비 모양 보석이 달린 우아한 서클렛을 쓴 여자가 거울을 노려봤다.
“하하하, 왕녀님도 차암. 거울과 눈싸움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또렷하되 자연스럽게. 오늘은 왕녀님이 주인공이시니까요, 그렇죠. 올가 님?”
“그럼요. 아가씨. 우리 아가씨만큼 빛나는 분은 세상에 또 없어요. 그런데 그 조그맣던 분이 언제 이렇게 크셔서…… 구두도 신으시고…… 데뷔탕트를 치르시다니요.”
울먹이던 올가가 코를 팽 풀었다.
촤르륵―!
춤 연습용 홀의 커튼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데뷔탕트의 주인공은 바로 요이델이었다. 그녀는 햇살처럼 밝게 웃었다. 설레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하아암…….”
“졸리세요? 또 머리가 아프셔서 제대로 못 주무셨어요?”
“아니야, 아무렇지 않아. 가끔 그런 것뿐인걸.”
주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요이델은 고개를 저었다.
똑똑.
그때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라이! 휘스!”
이제 메디아의 기사가 된 그들은 생화를 가득 안고 들어와 요이델에게 주었다. 요이델은 꽃향기를 듬뿍 맡았다.
“일부러 가져온 거야? 고마워.”
“연분홍색은 빼고 전부 가져왔어.”
“연분홍? 왜?”
“네가 싫어한다던데…….”
그들의 말에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 아닌데? 누가 그래?”
“성하가, 읍.”
휘스테론은 라이오스에게 입이 막혔다. 그 말을 들은 요이델은 가만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휘스! 그분께서 내 취향을 아실 리가 없잖아. 성국의 수장님 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