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8)
외전 5화
“앗, 눈이 와요. 많이 쌓이겠는데…… 괜찮아요? 안 추워요?”
요이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뺨을 감쌌다.
“음, 다행히 얼진 않았네요.”
“얼굴만 확인해서 되겠습니까?”
“으휴!”
능청스러운 웃음에 요이델이 당장 손을 뺐다. 날카롭게 째려보는데도 율리시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심하네요? 저희 꽤 심각한 상황인데요.”
“온전히 저희 둘만의 시간이니 달갑기도 한 것은 저만의 기대였습니까?”
“저도 좋, 좋지만……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누구로 보이십니까.”
“네? 율리시스 님이요.”
“그렇습니다.”
율리시스가 웃으며 그녀의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네요.”
둘이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여 보자면 저는 오랜만에 훼방꾼의 방해 없이 그대와 하루를 내리 보낼 수 있고, 요이델 님께서는 사절을 맞이하거나 신관들의 연구 질문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리에서 둘은 우산을 펴고 나란히 걸었다.
“그러나 이 정도 날씨라면 누가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는 않겠군요.”
“성국의 추위보다 많이 춥죠? 설원보다 더 추운 것 같아요.”
“그대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추운 날에 무엇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겁니까,”
“아, 저거요?”
길거리의 나무는 물론 상점가까지 전구를 주렁주렁 달고 거리를 밝혔다.
지나다닐 때마다 흘러나오는 종소리 가득한 노래와 왠지 모르게 들떠 보이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게 뭐더라…….
“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가 봐요!”
“크리스마스?”
“한 해가 끝날 때쯤 갖는 세계 최대의 축제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를 즐기거든요.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성국의 축제보다 주기는 잦지만 다들 들뜨는 기간인 건 똑같아요.”
요이델은 반짝이는 조명을 잔뜩 건 나무들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성국에서도 저런 장식을 하잖아요? 여기도 그래요. 밤에도 반짝반짝하고 예쁘죠?”
“요이델 님께서도 어렸을 적에 좋아하셨습니까?”
“저는 음, 어릴 때……. 잘 기억나진 않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오는 건 엄청 기대했던 것 같아요.”
“산타는 무엇입니까.”
요이델의 즐거운 재잘거림에 율리시스도 동화되어 물었다.
“산타라는 건 그러니까요, 선물을 나눠 주는 사람이에요. 어린아이들이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 두고 잠들면 선물을 몰래 넣어 두고 가는 요정이요.”
“이곳에도 실제로 그런 자들이 존재합니까?”
“물론 아니죠. 다 어른들이 산타인 척 선물을 놓고 가 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게요.”
“요이델 님도 선물을 받으셨겠군요.”
“네, 맞아요. 항상 크리스마스 날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와 주셨어요. 커다란 선물 주머니에서 아이들에게 모두 똑같은 선물을 나눠 줬었죠.”
둘은 다시 요이델이 살던 수녀원 앞으로 돌아왔다.
불이 켜진 건물 주변에는 예쁘게 장식된 트리가 빛나고 있었다. 요이델은 두 손을 모으고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봤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요.”
미묘한 말에 율리시스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율리시스 님도 제가 본 작은 율리시스 님을 직접 만났더라면,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저는 안 만나고 싶습니다.”
“만났더라면, 말이에요.”
“과거의 당신을 가까이서 보고 싶으십니까?”
조용한 물음에 요이델이 흠칫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안 돼요. 과거를 바꾸는 건 인과율을 건드리는 금기니까요.”
“이미 제 어린 시절을 바꾸시지 않았습니까. 훗날 그리 말씀해 주셨던 걸로 압니다만.”
“그래서 이상해요. 분명히 무의식이라고 했는데, 왜 마법이 뒤틀렸던 걸까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지금 율리시스에게도 영향이 있으니, 함부로 과거에 개입할 수는 없겠지.
“저희는 여기에 최대한 개입하지 말고 얼른 방법을 찾아서 조용히…… 어?”
“누구시죠?”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수, 수녀님!”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수녀님이 왜 여기에?
아, 수녀원이니까 그렇구나.
반가운 마음이 울컥 들었으나 그들은 자신을 모르는 듯했다.
‘하긴 당연해. 모습이 다르니까.’
요이델은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에서 무슨 일로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셨나요? 봉사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수녀님. 저희는 봉사자는 아니지만……. 수상한 사람도 아니지만…….”
말할수록 수상하잖아!
요이델은 진땀을 흘렸다. 여러 개의 눈동자가 아주 수상하고 파렴치한 사람을 보는 듯했다.
“마디가 알아요!”
그때 작은 아이가 뽀르르 달려와 두 사람 앞에 등지고 섰다.
“이짜나요, 예에에전에 놀이터에서 마디 무릎 아야, 했을 때 도와줘써요.”
“……정말이니?”
“네에! 진짜, 진짜예요! 마디 거짓말 몰라요.”
율리시스와 요이델을 보호해 주는 아이의 말에 한두 명씩 수상쩍은 눈초리를 거두었다.
“그래, 마리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마리, 그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없어. 이만 들어가자, 마리야.”
‘마리?’
요이델은 깜짝 놀라 앞모습을 슬쩍 쳐다봤다. 전에 봤던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맞았다.
“마디, 할 말 이써요. 마디가 와 달라고 해써요.”
“……정말 아는 사람들이 맞는 거니? 마리야,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되는 거야.”
“아라요.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뚜녀님 걱정하지 마세요. 마디 잘 알아요.”
“……딱 1분 만이란다, 마리야.”
수상한 눈초리를 떼지 못한 수녀님들이 안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창문으로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기…….”
“하양이.”
그때 휙 뒤를 돌아본 어린 요이델이 두 사람을 콕 집어 가리켰다.
하양이? 누가? 혹시 우리 말하는 건가?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디 소원을 들어주려고 온 요정님들이죠?”
얼굴도, 말투도, 스스로 기억하는 과거의 자신이 맞았다. 또래보다 어눌한 말투와 조금 느린 행동까지.
어린 요이델은 두 손을 꼬옥 모았다.
“마디가 매일매일 기도해써요. 소원을 이뤄 주는 요정님 만나게 해 달라고요! 혹시 그래서 나타나 주신 거 아, 아니에요……?”
어린 요이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머리가 하얀 사람은 요정님들바께 없다구, 책이 그랬는데……. 요정님은 소원을 이뤄준다고, 채, 책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어린아이가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요이델은 깜짝 놀라서 율리시스에게 페어링을 통해 말을 전달했다.
―저희 둘 다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지 않았어요?
―마법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율리시스조차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디가 떼써서, 이노옴― 하려구 오신 거예요?”
“응?”
“죄송해요, 하지만 소, 소원은 누구나 다 빌어도 된다구 그래서……. 흑, 흐잉, 요정님들 엄청, 엄청 바쁜데 일부러 오신 거예요? 잘못해써요…….”
둘의 당황을 오해한 어린 요이델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알아봐 줘서 깜짝 놀라서 그랬을 뿐이야! 너무 기뻐서!”
요이델은 얼른 소리쳤다.
“지, 진짜예요?”
“당연히 진짜지. 요정은 거짓말을 못 해. 있지 마리, 혹시 보이는 걸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어?”
어린 요이델에게 미소 지은 요이델이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하양이 요정님은 머리가 공, 훌쩍, 공주님처럼 길어요. 부농이 요정님도 머리가 길고, 솜사탕 같아요. 그리고 또…….”
어린 요이델이 눈에 보이는 걸 얘기하다가 훌쩍임을 멈추었다.
아이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우리 엄마예요?”
“응?”
“아, 아니에요.”
어린 요이델이 부끄러운 듯 손을 꼼지락거렸다.
“죄송해요. 그냥, 그냐앙, 부농이 요정님은 왠지 본 것 가타요. 혹시 꿈에 나와 주신 거예요? 왜케 본 것 같지이…….”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요이델에게 다가왔다가 한 걸음 물러섰다.
“이상한 말 해서 미아내요. 다른 애들이 그래써요. 마리는 이상한 말만 한다구.”
“그렇지 않아, 나는 다 알아듣겠는데. 그 친구들이 바보구나.”
요이델은 쭈그리고 앉아 어렸을 때의 자신을 바라봤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혹시 요정님이 안아 봐도 될까?”
“저, 저를요?”
아이가 화들짝 놀란 듯 쭈뼛거리다가 아주 조금씩 다가왔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저, 저 막 오래 끌어안을 수도 있는데. 괜차나요, 요정님?”
“응?”
“요정님도 오래 끌어안는 거 조, 좋아해요? 시간이 있어요?”
“……물론이지. 제일 좋아해.”
어린 요이델이 부끄러운 듯 쳐다보다가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어색한 듯 조심스럽게 팔을 대더니, 이내 안심한 듯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헤헤…….”
아이가 기뻐하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욱신욱신 아팠다.
―이분께서는 본질을 볼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를 정확히 알아봐요.
아이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때 작은 손가락이 요이델의 눈을 콕 찔렀다.
“아얏!”
“아, 아포요? 죄송해요!”
“아야는 감탄사였어. 요정계 감탄사…… 그런 거야.”
“정말요?”
아이가 요이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눈이 토끼처럼 빨개서, 아파 보여써요. 요정님 아프면 안 대여. 호오, 하려구 했는데 찔러 버려써요. 미아내요.”
아이가 조막만 한 손으로 꼼실꼼실 요이델의 눈꺼풀을 쓰다듬었다.
큰 눈망울에 걱정이 가득했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 어떻게 이런…….”
요이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요이델 님, 괜찮으십니까?”
“…….”
“요이델 님.”
요이델이 참지 못하고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어떡해요? 너무 귀여워요!”
“수, 쑤움!”
“앗! 미안해, 숨 막혔어?”
“푸후우―”
“그러니까, 어, 음…….”
요이델은 어린아이를 가리킬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다.
“아가야, 괜찮아?”
“갠차나요!”
마리는 의연하게 일어나 크게 숨 쉬었다.
“근데요, 아가 아니에요. 아가는 쪼끄마니까요. 저는 요정님들이 마리라고 불러 줬으면 조케써요. 혹시, 안 댈까요?”
“좋아, 마리.”
“꺄아!”
마리는 기쁜 듯 두 손을 꼭 모았다. 요이델은 그런 마리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요이델이 손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하면 안 되겠지.’
마음 같아서는 친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이 어린아이가 고생을 하지 않도록.
‘하지만 과거를 크게 바꾸면 안 돼.’
그래도 소원 하나쯤은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두 손 모아 바랄 정도로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요이델 님.”
그때 율리시스가 그녀를 불렀다.
“알아요, 원칙상 건드리면 안 되는 일이겠죠. 하지만 이 어린아이가 빌 소원이 거대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
“……이것도 제 욕심이겠죠?”
요이델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고민한 요이델이 마리를 품에서 놓아줬다.
“왜, 왜요, 요정님? 가능 거예요?”
“있잖아, 마리. 우리는…….”
마리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하게 변했다.
고개를 숙인 아이가 볼살을 터트릴 듯 울먹울먹하다가 입을 막았다.
“괜차나요, 요정님 바쁘면 가도 대요. 마디도 괜차느니까…….”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 울면 착한 아이니까 요정님이 소원 드러준다고, 그, 그랬는데에……. 아까 못 참고 울어 버려서 다른 차, 착한 아이한테 가, 가야대는 거죠?”
“미안해, 마리. 그게 아니라―”
아이가 울자 수녀원 안에서 지켜보던 눈빛이 흉흉해졌다.
탁.
바로 그때 마법이 펼쳐졌다.
주위가 깜깜하게 물들고 마치 방어벽을 친 듯 고요해졌다.
“율리시스 님?”
“원래 그런 건 요정이 먼저 말씀드려야 하는 법입니다. 요정계의 규칙입니다.”
율리시스는 아이를 훌쩍 들어 올렸다.
그는 두 발을 허공에서 대롱대롱하는 작은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소원이 고작 하나뿐이라니. 배포가 작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