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7)
외전 4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진정된 요이델이 침착하게 말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수녀원은 정말 옛 기억 속 그곳이 맞았다.
“혹시 예전에 제가 율리시스 님의 기억 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저희 둘 다 제 기억 속에 들어온 걸까요?”
“가상의 공간은 아닙니다.”
율리시스는 주위를 파악했다.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는 상태이니 인위적인 환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그럼 정말 과거라는 뜻이겠네요?”
“염려되십니까.”
그의 물음에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엄청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까. 다시 돌아오고 싶은 시절은 아니었다.
“저 때문인가 봐요.”
“……무슨 말씀을.”
“제가 몸이 이상해서, 하일 님에게 진찰을 받았던 거 기억하신다고 했죠?”
“물론입니다.”
요이델이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그럼 제가 주신의 석상을 처음 발견했던 것도, 기억하시죠?”
“그로 인해 연회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대와 떨어져 있는 시간도 늘어났고.”
“그때 석상 주위에 떨어져 있던 비석이 있었어요.”
“비석이라면…….”
“허락받지 못한 자가 주신의 분신에 손을 대는 즉시 거대한 분노가 따를 거라고요.”
요이델이 살짝 떨자 율리시스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렇다면 더욱이 상관없습니다. 잊힐 뻔한 성물을 발견한 자에게는 큰 축복이 따르는 것 또한 정설이니. 그건 탐욕에 눈먼 자에게 고하는 흔한 경고문일 뿐입니다. 그대에게 저주의 영향 따위가 어찌 미치겠습니까.”
“그 이후부터 몸이 이상해진걸요? 아무리 생각해도 걸리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요이델은 진지하게 주먹을 쥐었다.
“몸이 춥고 감기 걸린 것처럼 뜨끈뜨끈하게 열이 느껴져요. 잠도 많아졌고 저를 조절하기 힘들다고요. 막, 불안하고 기분이 이상해요.”
이야기를 듣던 율리시스가 잠시 입을 막았다. 그는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증상은 혹, 당신과 저의…….”
“네?”
“우리 아기가 생긴 것은, 아닙니까.”
농담기 하나 없는 진지한 말에 요이델도 힘없이 웃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10년 뒤에 갖기로 약속했어도 예기치 못하게 기쁜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둘은 결혼 전 약속했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아이는 10년 이후부터 계획하자고.
합의하에 정한 기간이었다.
둘에게는 어차피 남은 시간이 많고, 그동안 온전히 둘만의 생활을 갖고 싶었으니까.
율리시스가 완만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한 터라 철저히 준비하여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공부하겠다고 말한 이유도 컸다.
요이델 역시 그를 기다려 주기로 했고.
“하일 님이 새로 개발하신 특수 마법 진단 도구로 세밀하게 진찰을 해 주셨어요. 그런데…….”
“…….”
“저주술에서 반응했어요.”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다.
“플로도 요즘 들어 저랑 거리를 뒀고요. 플로는 신수잖아요? 분명히 뭔가를 눈치챘던 거예요.”
“…….”
“주신의 분노가 어떤 저주인지,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 그래서 율리시스 님과 만날 수 없었어요. 저 때문에 같이 아프게 되면 어떡해요?”
요이델의 몸이 크게 떨렸다.
“제가 일찍 죽으면 안 되니까 페어링을 몰래 풀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려웠어요. 그래서 율리시스 님이 저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율리시스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뭐, 뭐 하는 거예요!”
그는 한숨을 아주 깊이 내쉬며 그녀에게 기댔다.
“보시다시피 아무 이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탓이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만일 저주술이 있어 큰일이 생길 운명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생과 사를 함께하는 반려가 아니었습니까.”
“안 돼요, 율리시스 님은 오래 살아야 해요.”
요이델은 결국 울먹였다.
“그대가 없으면 오래 살 이유가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그러다 같이 죽으면 어떡하고요?”
“함께이니 축복이군요.”
“…….”
“그리고 저는 당신보다 아주 오래 살아서. 생에 미련이 남으셔야 할 건 당신입니다.”
“……그건, 그렇네요?”
“왜 인정하시는 건지.”
다정하게 어르고 달래는 말에 요이델의 마음이 잔잔해졌다.
율리시스는 쭈뼛거리며 자신의 등을 끌어안는 요이델을 알고 안심했다.
“진짜 아프지 않죠?”
“안 아픕니다.”
“참는 거 아니죠?”
그녀답지 않게 재차 확인하는 말에 율리시스는 피식 미소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였습니까.”
“고작이 아니에요. 율리시스 님까지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요.”
“검사는 돌아가 다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자는 정확하지만, 때때로 아주 이상하니.”
끌어안은 사이 율리시스는 몰래 불온한 저주가 걸렸나 감지해 보았다. 그러나 어떤 사특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관의 원로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
하지만 별일 아니라고 하기엔, 이 옛 공간 안에 떨어진 것 자체가 조금은 기이했다.
‘분명 석상에서 빛이 났다.’
율리시스는 찰나의 순간을 목격했다.
주신 시엘로는 자애로우나 지겨울 정도로 오래 살았다. 그는 때때로 장난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었다.
이 질 나쁜 일들의 배후는 분명하다.
‘과연 이번에는 무슨 장난질인지.’
율리시스는 불쾌감을 숨기고 아내에게 미소 지었다.
어쩐지 요이델은 조심스러워 보였다. 옛터에 다가가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마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 더 다가가 보셔도 됩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긴장이 돼요.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에게도 오래전의 장소라서 이쪽 세상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상관없습니다. 이쪽은 저 역시 잘 알지 못하나, 저희의 마법이 묶인 것은 아니니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래요?”
요이델이 안심한 듯 조금 웃자 율리시스가 그녀의 뺨을 찰떡처럼 문질렀다.
“뭐 하는 거예요?”
“글쎄요. 단둘이 갇히게 되어 기껍기도 하고.”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볼이 뭉개지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는 아주 미약하게 기대마저 됩니다.”
“네? 기대요?”
“종종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 어린 시절이 굉장히 귀여웠다고.”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랬으니까.
“저만 부인의 과거를 모르는 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앗. 그건, 그치만 놀리려고 했던 말은 아닌걸요? 작은 율리시스 님은 정말 귀여웠어요!”
“저희가 다툴 때에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저는 귀여웠는데, 커다란 저는 귀엽지 않다고 구박하시면서.”
“앗…….”
말문이 턱 막혔다.
“귀엽진 않지만 멋있어요.”
“엄마, 나도 이 옷 사 죠! 나 이거 봐써. 만화에 나오는 옷이야! 우와아아―”
그때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온 한 아이가 둘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이런 건 유치원에 못 입고 다녀. 얘가, 떼를 쓸 걸 써야지! 얼른 가자.”
“사 죠! 사 달라니까아아! 우아아악! 유치원이 안 되면 친구네 집에 입고 갈 거야아아아!”
“어휴,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요. 너 얼른 이리 안 와? 집에 가서 혼날 줄 알아!”
“우애애애앵!”
그들은 아이와 엄마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제야 요이델은 자신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이 모습은 안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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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마법으로 외양을 바꿨다.
그러나 복식만큼은 일반적인 범주를 몰라 백화점을 쓸어 왔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와…….”
“이상합니까?”
율리시스가 어색한 듯 짧아진 검은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잘 다듬어진 몸 선을 타고 떨어지는 윤기 나는 코트와 검은 셔츠, 검은색 바지.
조금만 바뀌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색 하나 차이로 날렵하고 우아한 짐승 같은 분위기로 바뀌다니!
요이델은 멍하게 입을 벌렸다.
“으아아아…….”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아야 안심이 될 듯한데.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를 힐끔대고 있는데.
“이상하냐고 물었어요? 말이 돼요? 정말 너무 잘 어울려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인데 뭐랄까, 되게. 으! 아으! 진짜!”
말문이 막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안 어울린다고 착각할 수가 있어요! 율리시스 님은 본인이 잘생긴 거 알고 계시면서!”
“그렇게까지는…….”
격한 반응에 율리시스가 외려 겸연쩍은 듯 시선을 내렸다.
“너무, 정말! 세상에서 검은 머리랑 검은 눈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일 거예요!”
“풋.”
요이델의 반응에 결국 율리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도 검은 머리와 눈이 잘 어울리십니다. 색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오늘따라 더 부끄럽게 들리네요.”
“왜 그러십니까?”
“잘생겨서 못 쳐다보겠어요.”
가만히 요이델을 보던 그가 뭔가 깨달은 듯 화사하게 눈웃음쳤다.
“당신이 다시 한번 저를 속상하게 하신다면, 어떤 벌을 드리면 될지 찾았습니다.”
“네? 벌이요?”
“또 그 어떤 대화도 없이 제게서 무작정 벗어나려 하신다면…….”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턱을 들었다.
“제 얼굴을 안 보여 드릴 겁니다.”
“네?! 그, 그건…….”
“어차피 거의 안 보실 생각이셨던 듯한데 왜 새삼 놀라십니까? 그대가 바라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율리시스 님이 다칠까 봐…… 그건 정말…….”
요이델이 버벅거리자 율리시스가 그녀의 모자를 젖히고 쪽, 입 맞췄다.
“자, 잠시만요…….”
“이제 감기든 저주든 무엇이든 완전히 나누었으니 상관없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율리시스가 집착을 숨기는 눈빛으로 낮게 속삭였다.
“이러면 안 돼요, 잠깐, 좀……!”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요이델이 그를 확 밀쳐 냈다.
“이쪽 세상에서는 길거리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요!”
벌건 얼굴로 외친 말에 율리시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모두의 눈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아.”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데리고 후다닥 도망쳤다.
“풋.”
“웃, 웃음이 나와요, 지금? 여기서는 절대로 남들이 다 보는 데에서 뽀뽀하면 안 돼요! 꼭 지켜 주세요!”
“어차피 여기 사는 것도 아닌데, 어떻습니까.”
“그건―!”
율리시스는 귀가 새빨개져서 자신을 끌고 가는, 언젠가는 작은 햇병아리였던 그녀를 쳐다보았다. 씩씩함은 여전하다.
‘……이걸로 주의는 돌려졌을 터.’
율리시스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가느다란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거기엔 주신이 새긴 문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