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6)
외전 3화
“재앙이 오려는가…….”
찬란한 대신전이 일주일 내리 알 수 없는 어둠에 잠겼다.
비도 안 오는데 웬 먹구름이지?!
신관들은 알 수 없는 질식감에 괴로워했다.
“이 목이 졸리는 듯한 살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하의 결계가 무너질 리가 없는데 사특한 기운이 가득 느껴지네.”
“저만 느낀 것이 아니군요. 침입자 탐지기도 이상을 알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주신의 은혜를 축복하는 연회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요?!”
“두 성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거대한 나팔 소리에 연회장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그들은 두 개의 태양 아래 깊숙이 허리 숙였다. 그러나 율리시스와 요이델이 지나가자 고개를 갸웃하며 허리를 폈다.
“……방금, 뭔가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저, 저도 느꼈습니다. 무시무시한 마수의 기운 아니었습니까? 희한하군요. 이곳에서 그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신관들의 감은 정확했다. 지금 율리시스의 심정은 멸망 직전의 세상과 똑같았으므로.
‘오늘도 만나 뵙지 못한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성하, 송구하지만 오늘도 성후 성하께서는 성황 성하와 마주하지 못하신다고…….’
‘오, 오늘도 역시나 같은 말씀을…….’
사랑하는 그의 아내는 계속 같은 이유로 그를 거부했다.
‘죄송하지만 성황이시여. 수발을 드는 시종조차도 가까운 접촉을 허락받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 하셨으니, 부군이라 하실지라도 출입은 불가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회 자리.
오늘은 요이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 그에게 손가락 하나조차 허락하지 못하겠다는 듯 온몸을 꽁꽁 가리고서.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한데, 왜 내 몸에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가.’
몸을 가린 걸 보니 혹 피부병이라도 나타난 건가. 그렇다면 페어링으로 인해 동일 증상이 그에게도 나타나야 맞다.
율리시스는 초조함에 모든 신경을 그녀에게 두었다.
그때 타국의 인사들이 다가와 율리시스에게 예를 올렸다.
“성국에 복된 일이 가득하니 모두 두 성하의 은덕인 듯합니다.”
오늘 연회는 주신 시엘로의 신성이 담긴 고대 석조물을 발견한 기념으로 개최되었다.
“성국에는 더한 영광의 길만 열려 있군요. 오래된 주신의 석상이 발견되다니요. 게다가 굉장한 신성력이 깃들어 있다지요?”
“아아, 성후께서 석상을 탐하는 마수들을 퇴치하고 그 고품을 발견하셨다는 무용담은 이 식견이 모자란 이의 심장마저 무겁게 울렸습니다.”
많은 이들의 칭송에 율리시스는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철저하게 대외적 태도를 유지했으나 오늘만은 이 연회장의 모든 이들을 물리고 싶었다.
요이델과 말이라도 할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를 사랑한다 속삭이던 연인이 왜 다른 사람처럼 구는지 그 이유라도 알아야 했다.
‘윽…….’
순간 가슴이 뻐근하게 아렸다.
요이델도 그의 이상 상태를 느낀 듯 그를 힐끔 바라보곤, 남을 대하듯 금방 시선을 돌렸다.
‘왜?’
그 차가운 태도에 율리시스의 심장이 나락까지 처박혔다.
공기를 보는 것만도 못한 눈길이다. 자신이 아픈 것을 알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가.
‘이제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성하.”
바로 그 순간,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겨우 숨이 트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듯 그녀에게로 시선을 틀었다.
“네, 요이델. 저 여기 있습니다.”
“그동안 직접 말도 못 하고 문 앞에서 돌아가게 해서 미안해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대의 몸은 괜찮은 겁니까? 듣자 하니 끼니도 거르시고 누구도 들이지 않는다던데, 무리를 하시는 게 아닌지 심히 염려됩니다.”
“전 괜찮아요.”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힐끔 보고 거리를 두듯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잘못 들었습니다만.”
떨어졌던 심장이 회생은커녕 소생조차 못 하게 터져 버렸다.
그는 일순간 가면용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할 일이 많아졌어요. 괜히 율리시스 님이 자고 계신 중간에 들어가기 미안한걸요. 저 때문에 잠을 설치면 안 되잖아요?”
“…….”
“저도 일정 관리를 못 했더니 꾸벅꾸벅 졸 때가 많아졌어요.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분간은 제 집무실에서 지낼게요.”
지금 율리시스의 귀에는 몇 가지의 핵심 단어만 들어왔다.
‘바빠. 기다리지 마. 앞으로도 공간 분리. 떨어져. 꺼져 버려.’
그 뒤로는 연회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모르겠다.
율리시스는 늘 해 온 그대로 대외적인 가면을 성실히 유지했으나 내면이 크게 망가진 것 같았다.
“…….”
연회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하게 빛났다. 그의 처참한 심경과는 정반대로.
“서, 성하, 잠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실은 성―”
“원로.”
“에잉? 무슨 일 있으십니까, 성하?”
그때 그의 상태를 예리하게 알아챈 하일이 대뜸 물었다.
‘이자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무엇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로께서는 불온서적을 많이 보신 걸로 압니다.”
“공개적으로 하실 말씀은 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그냥 말씀해 주십시오, 성하!”
주위를 두리번거린 하일이 다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차갑고 멍한 상태로 차분히 말했다.
“관련하여 의견을 여쭐까 합니다만.”
“아. 그런 겁니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이 하일이 성심껏 돕겠습니다!”
“……최근 한 고위 신관의 이혼 요청서가 들어왔습니다. 본래 제 관할은 아니긴 하나, 사안이 진중하여 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오호라, 치정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부인께서 더 이상 그 신관과 같은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 한다더군요.”
하일은 턱을 쓸며 곰곰이 생각했다.
“다른 애인이 생긴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율리시스의 주위에 살기가 훅 피어올랐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느닷없이 별거를 선언한 것은…… 확실히.”
“별거는 아닙니다.”
“그거나 그거나지요. 으흠, 이 늙은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아무래도?”
“마음이 뜬 것 같습니다! 쯧쯧쯧…….”
하일이 대단한 문제를 푼 듯 뿌듯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잡아 봤자 비참해지겠지요. 서로를 위해서 그나마 지금 헤어지는 게 제일 이상적일 겁니다!”
“…….”
“성하? 왜 그러십니까? 정말 어디 아프십니까? 성하!”
“그대가 무엇을 압니까. 혼인을 한 적도 없지 않습니까.”
“예, 예?”
율리시스의 대답이 싸늘했다.
“됐습니다. 이만 가 보십시오.”
그리고 깨달았다.
요이델은 이제 자신을 ‘성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그를 성하라고 불렀다.
그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
근처를 둘러보니 이미 요이델은 연회장을 떠나고 없었다.
“성하! 어딜 가십니까! 그리 화를 내시는 걸 보니, 서, 설마 혹시 성하 얘기는 아니시겠지요! 만일 그러하다면 성후 성하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이 하일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성하아아―”
정신 차린 율리시스가 당장 그녀를 뒤쫓았다.
“율리시스 님? 여긴 어떻게…….”
“하아…….”
다행히 요이델은 멀리 가지 못했다.
연회장의 근처에 있는 정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최근 발견된 신비한 석조물을 옮겨 둔 자리였다.
율리시스는 곧장 요이델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제가 당신을 귀찮게 해서 그렇다면, 이제 하지 않겠습니다. 불쾌하셨던 걸 알려 주시면 다시는…….”
율리시스가 그녀를 잡으려는 순간 요이델이 손을 뺐다.
“엇……. 아. 미, 미안해요.”
“…….”
“손이 터서 따가워서 그래요. 잡는 건 자제해 주세요.”
“그게 전부입니까.”
율리시스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줄곧 이상했습니다. 일언반구 없이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피곤하다고 했잖아요. 혼자 있고 싶다니까요. 그것뿐이에요.”
“거짓말하시는 걸 압니다. 당신이 이유 없이 제게 냉정하실 리 없습니다.”
반사적으로 그를 쳐 낸 요이델도 무척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율리시스는 제 아내를 그렇게 모르진 않았다.
“그런 믿음을 준 게 요이델, 당신이니까.”
그의 목소리가 점차 괴롭게 잠겼다.
“말 못 할 병에 걸리셨다면 하루라도 빨리 알려 주셔야 합니다. 혹시 홀로 뭔가를 앓고 감내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
“당신이 나를 버릴 리 없어. 설령 언젠가는 그리된다 해도 이유를 말해 주지 않을 리가 없고. 당신은 그랬습니다. 항상 내게, 당신은…….”
그러나 율리시스가 말할수록 요이델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
“내게 왜 이러는 겁니까.”
요이델은 그에게 손을 데려다가 물러섰다.
“아무 이유도 없으니까 제발 따라오지 말아 주세요.”
“사유를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건들면 안 돼요!”
탁!
요이델이 율리시스의 팔을 쳐 내 버렸다. 그 순간 둘이 동시에 당황했다.
“……그, 그러니까.”
요이델은 미안한 얼굴로 찡그리며 사시나무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러니까 다가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
“모르겠어요? 성하가 미워졌어요.”
그러나 율리시스는 외려 냉정한 얼굴로 거침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보, 보고 있기 힘들어요. 이제 알았죠? 너무너무 미우니까, 그만 다가오라는 거예요. 저리 가 줘요!”
요이델이 뒤로 주춤 물러났으나 그가 다가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오지 말라고 했잖……!”
그 순간 거친 숨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요이델이 그를 밀고 접촉을 피하는데도 그는 더한 힘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열기가 떨어지고 색색거리는 호흡만 조용히 들렸다.
“울면서 꼴 보기 싫다 말씀하시면, 마치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흑…….”
끝내 울음이 터졌다.
요이델의 눈가가 빨갛게 젖어 들었다. 동시에 덜덜 떨며 입을 가렸다.
“어, 어디 아픈 데 없어요? 혹시 열이 나고 아프진 않아요?”
“무슨 질문이 그렇습니까.”
“정말 안 아파요? 정말이죠? 흑, 그러니까…… 왜 나쁜 소리를 잔뜩 했는데도 안 믿어요? 가라고 했는데 왜, 왜 안 가고 그래요…….”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가 의아한 얼굴로 요이델을 붙잡았다. 그의 손을 확인한 요이델이 시선을 떨궜다.
“……미안해요. 이래서는 안 됐는데.”
“한심한 건 접니다. 그대에게 제대로 된 믿음을 드렸다면 이리 홀로 뭔지 모를 것으로 마음 쓰시고 눈물지을 일은 없으셨을 텐데.”
요이델은 이제야 율리시스가 얼마나 괴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손짓이 유독 조심스럽고 떨렸다.
그의 마음이 무너진 게 요이델의 눈에도 보였지만 그는 겨우 되찾은 품을 말없이 다독였다.
“……미안해요.”
“제 부덕함이 그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율리시스 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그렇습니다.”
“네?”
“네.”
율리시스는 불만에 젖어 작은 손을 더 꽉 붙잡았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 했는지 아시면서, 잘못도 없다 하셔 놓고 이리 소박맞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몸살 기운도 없고 괜찮아요? 저를 잡았는데도요?”
“당연합니다. 왜 자꾸 제게서 물러나십니까. 마치 전염되는 병이라도 앓는 것처럼.”
율리시스는 순간 깨달은 듯 표정을 굳혔다.
“남관의 원로에게 진찰을 받으신다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자가 무엇이라 하던가요. 큰 이상이 생기신 겁니까?”
“저요, 꼭 할 말이 있어요. 사실은 저…….”
요이델이 결심한 듯 그를 바라보던 그때.
쾅―!
주신 시엘로 석상에서 빛이 터지고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야야…….”
요이델은 희뿌연 먼지 구덩이 속에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어?”
“괜찮으십니까.”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성국과 전혀 다른 배경. 아주 낯설고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 율리시스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된 듯합니다.”
“잠시만요, 율리시스 님.”
요이델은 그를 지나쳐서 건너편에 보이는 담장 앞까지 걸어갔다.
그곳에 우뚝 서 있는 소박한 건물. 그리고 명패.
‘수녀원……?’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이델은 담장 뒤에 얼른 몸을 숨기고 건물을 살폈다.
‘설마…….’
요이델은 왠지 모를 기시감에 고개를 더 뺐다. 그 순간, 문밖으로 나온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율리시스 님.”
요이델은 멍해져서 뒷걸음질 쳐 그를 꽉 붙잡았다. 몸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율리시스 님, 저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요.”
“많이 떨고 계십니다.”
“알아요. 그런데 여기, 여기 말이에요.”
그의 품에 안긴 요이델이 숨을 몰아쉬며 겨우 대답했다.
아까 본 어두운 머리카락, 어두운 눈. 아주 자그마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어딘가 자신과 닮은 아이.
“……저예요.”
떨림을 숨기지 못하던 요이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긴 제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