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5)
외전 2화
“그런 거 없어요.”
쭈욱―!
얼른 정신을 차린 요이델이 그를 양발로 밀어 버렸다.
그는 아닐지 몰라도, 요이델은 너무 피곤했다.
“하.”
“저도 하, 예요. 하! 흥이라고요!”
“…….”
“벌써 해가 정 가운데에 걸렸으니까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요!”
요이델이 마법으로 커튼을 열자 율리시스가 표정으로 무언의 항의를 했다.
촤르륵! 커튼이 열리기 무섭게 다시 닫혔다. 그는 오히려 이중 삼중으로 천을 쳐서 완벽한 어둠을 만들어 냈다.
“앗! 뭐예요!”
“정 가운데 있다니요. 정확히 아침 7시의 태양입니다.”
“그러니까― 정무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죠!”
“원로들에게 그대를 빼앗긴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이토록 일을 중히 여기시니.”
“그건 율리시스 님도 그렇잖아요?”
“가정보다 중히 여기진 않습니다.”
쉽게 물러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율리시스의 질투는 활화산처럼 표출되기 시작했다.
“제가 찾아가면 늘 남관의 원로와 함께 있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대원로, 그도 아니면 다른 원로.”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밀어내는 앙증맞은 발을 낚아챘다.
“꺅!”
풀썩 눕혀진 요이델이 잠시 고민했다. 웬만해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많이 못 만났나요? 하지만 성궁에 들어오면 항상 만나니까…….”
“정확하게는 성궁에서만 그대가 저를 만나 주십니다.”
요이델은 잘 생각해 봤다.
요이델도 그녀만의 집무실을 만든 지 오래였고, 둘이 일하는 범위가 크게 겹치지 않아서 굳이 찾아가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이 없었다.
“많이 섭섭했어요?”
“하, 겨우 섭섭이라.”
율리시스의 눈이 찡그려졌다.
“그들이 아니면 아기 신수와 함께 계시거나. 저를 위한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그건 맞아요. 미안해요.”
“이번에는 그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하고 낮았다.
“제게 그대의 모든 시간을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대의 남편에게 할애하는 애정이 점점 더 적어지지 않습니까.”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가 후드득 놓았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헝클어졌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혼인하신 듯한 이 마음은 기우일까요.”
무거워져 가는 그의 눈빛에 둘 사이의 거리도 숨 막힐 듯 좁혀졌다.
“저는 그대를 나눠 갖기 위해 혼인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 동안 율리시스의 분위기는 물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요이델에게 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추한 질투이건 사랑이건.
“연인의 애정을 독점하려는 마음이 그릇되었다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의 이 일, 그대에게 사과하지 않을 겁니다.”
“…….”
“그대를 독점할 사람은 저뿐입니다.”
“당연히 항상 율리시스 님밖에 없어요.”
요이델이 그의 날렵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길에 눈을 감았던 율리시스가 천천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렇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근래들어 유독 저를 피해 다니시는 연유가 무엇인지.”
“아, 알고 있었어요? 헙.”
“피하신 게 사실이었군요.”
요이델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요즘 몸이 안 좋았어요. 혹시라도 열을 옮기면 곤란하잖아요.”
“요즘이라니, 얼마나 지속되신 겁니까?”
“그게, 음, 한 달쯤 됐으려나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많이 아프신 겁니까. 이전처럼 잘못 섭취하신 음식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그냥 그쯤에 피곤하고 바빴어요.”
요이델은 곰곰이 과거를 되짚었다.
“그래서 혹시 과로해서 피로가 쌓였나, 싶었어요.”
“오래 떨어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감기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제게 가장 먼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율리시스가 그녀의 몸을 살피려 하자, 요이델이 그를 피했다.
“말하면 걱정할 거잖아요.”
“당연합니다.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그래서 안 말하려고 했어요. 이렇게 울상 짓게 하기 싫으니까요.”
요이델이 그의 눈매를 손가락으로 쭉 내렸다.
“엄청 아프면 말했겠지만 그 정도는 절대 아니라고요. 애매하게 신경 쓰이는 정도예요.”
“…….”
“게다가 몸이 아프다고 말하면, 또 한숨도 자지 않고 간호할 거잖아요.”
“당연합니다.”
율리시스는 힘주어 말했다.
“제가 그대의 남편 아닙니까. 이전에도 그대는 제게 아프다는 언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율리시스는 떠올리기도 끔찍한 듯 고개를 저었다. 마찬가지로 요이델도 눈을 꾹 감았다.
“……장염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잖아요.”
요이델은 옛날 일을 떠올리며 파르르 떨었다.
“그때 율리시스 님이 서둘러 돌아와 버려서, 제가 장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온 대륙 사람들이 다 알아 버렸다고요!”
요이델이 파르르 떨었다.
“제가 배탈 나서 해쓱해졌다는 사실이 여기저기 다 퍼졌었는데, 어떻게 또 알려요!”
“그건…….”
“하루 만에 배탈에 좋은 약재가 주르륵 밀려 들어오는 기분을 아세요?! 제가 배탈을 앓았다는 걸 동네 강아지도 알고 있다고요!”
“…….”
“제가 얼마나 창피했는데요!”
요이델의 역정에 율리시스는 침묵했다. 그건 사실이었으니 그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하일 님에게 진찰을 요청해 놨으니까 걱정 말아요.”
“그렇다 해도…….”
“안 돼요.”
단호한 말에 율리시스도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늘 약조를 지켜 주셨으니.”
“그리고 요즘 특히 바빴던 건 얼마 전 발견한 주신의 석조물 때문이었어요.”
최근 성국에는 경사가 있었다. 주신의 강한 신성력이 담긴 고대 유물이 발견된 것.
요이델이 플로테스와 깊은 곳까지 산책을 갔다가 발견했다.
“아슈레오 씨와는 주신의 석조물 연구로 의견을 나눌 일이 많았어요. 그리고 마르셀리나 님과는 카렐로 씨를 라보르비치에 파견하는 일로 얘기를 했고요.”
“그대가 골치 아프셨겠군요.”
“네?”
“라보르비치의 그 정신 나간 자는 혼인 이후에도 그대에게 구애를 지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회담 때도 그리하였고.”
율리시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옛날에 죽였어야 했는데.”
“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행히 그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끌어안았다.
“아카코스랑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에요. 나라끼리 관계가 원활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말했다시피 카렐로 씨의 일로 만날 일이 있었던 것뿐이에요.”
“아카코스?”
그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앉아 요이델을 제 가까이로 휙 끌어당겼다.
“그 미천한 자를 이름으로 불러 주시는군요.”
“우와, 율리시스 님 목에 점이 있었어요? 와! 언제 생겼어요? 점이 두 개나 있어요! 놀라워요!”
“…….”
“……이 정도로는 환기가 안 되나요?”
“결코.”
그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혀지고 목소리가 질투로 억눌렸다.
“모, 목이 마르지 않아요? 물 좀 마시러 갈게요.”
그는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 주었다.
“그럼……. 몸이 아파서요. 여기저기 걸었더니 발이 아프고 그래요. 치료 신관에게 가 봐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에게 완벽한 치료 마법을 걸어 주었다.
여기 최고의 치유 능력자가 있었지, 참.
요이델은 곤란해졌다. 바로 이래서 문제였다.
“왜 치유 마법을 자꾸 이런 데에 쓰는 거예요? 재능 낭비예요.”
“저의 재능이니 낭비하는 것입니다.”
“앗, 그건 그렇……. 아니,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요. 곧 저희 둘 다 본관으로 나가 봐야 해요. 며칠 뒤 있을 연회 준비로도 바쁘고 시간이 벌써…….”
“공간 이동 마법이 있습니다.”
그가 속삭이자 요이델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바뀌었다.
“다음엔 어떤 변명을 할 예정이신지 맞춰 볼까요.”
속삭인 그가 가볍게 요이델을 무너뜨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날카롭고 뜨거웠다.
“제 반려께서 하실 말씀들로는 갑자기 없던 회의가 잡힌다든가, 느닷없이 잊고 있던 약속이 생각났다든가…….”
시선에 요이델의 숨이 턱 막혔다.
혼인 이후 율리시스에게서는 단정한 분위기가 아닌 묘하게 나른하고 흐트러진 분위기가 풍겼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요이델의 동그란 이마를 손으로 훑었다. 빨간 눈동자가 당혹스럽게 깜빡였다.
“예측하건대 그런 사유일 겁니다.”
“저, 정말로 잊고 있었어요.”
“그러셨습니까.”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어쩌면 페어링이 문제였다.
긴밀해질수록 힘이 넘치고 기운이 회복되니 율리시스의 체력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이델은 힘들었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피폐한 이 이상 현상은 뭘까?
‘어쩌면 페어링의 회복 능력이 한쪽에 몰린 걸지도 몰라.’
요이델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불공평한 상태에 답을 내릴 수 없으니까.
‘하는 수 없지. 그럼 이 방법밖에.’
“쿨럭!”
“괜찮으십니까?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율리시스가 놀라자 요이델이 속으로 미소 지었다.
‘됐어, 성공이야.’
키득키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속여서 미안하지만 역시 이 방법은 언제나 통한다니까?
요이델은 계속 기침하며 그를 피해 몸을 옆으로 빙글빙글 굴러 빠져나갔다.
“에, 에취, 콜록! 코호홀록! 제가, 으윽,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제 반려께서 그런 몹쓸 병에 걸리시다니.”
“그, 그흐쵸! 콜록, 옮길지도 모르니까 얼른 가 봐야겠어요!”
“가엾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군요. 그 정도로 단기간에 기침이 심해지신 상태라면, 필시 뼈에도 실금이 갔을 텐데.”
그의 상냥한 음성에 요이델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율리시스는 본인의 가슴 부근을 스스로 진찰했다.
“아쉽게도 제 늑골에는 아무 이상이 없군요.”
“……어, 응? 네?”
“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겠군요. 저희의 페어링이 끊겼거나, 아니면 제 반려께서 꾀병을 부리시거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소름이 쭉 돋았다.
“요이델 님께서는 어느 쪽의 경우를 생각하십니까?”
돌처럼 굳은 고개를 삐거덕거리며 뒤로 돌리자, 어느 때보다도 상냥하게 웃고 있는 율리시스가 보였다.
“저, 저는.”
“네, 요이델 님.”
“……후자요.”
“과연 정직한 답을 하십니다.”
그가 맞았다는 듯 대견하게 답했다.
요이델을 지그시 보는 율리시스의 얼굴이 경이로울 만큼 생글생글하고 자애로웠다.
‘최악이다. 율리시스 님의 분노 중에서 최악의 단계라는 뜻이야. 어떡해!’
상황을 파악한 요이델이 살포시 그에게 안겼다.
“사랑해요?”
“의문형이십니다.”
“사랑해요.”
“사랑은 위기를 모면하라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내 사랑.”
율리시스가 은근한 말투로 속삭였다.
“헤헤…….”
“하하.”
오래 지속된 둘의 웃음이 뚝 끊겼다.
“아십니까? 공교롭게도 금일 첫 일정은 오후부터 잡혀 있다는 것을.”
“아, 아닐걸요?”
“아닐 리가.”
“꺄아악!”
요이델이 간지럽힘에 잔뜩 몸부림치고 웃음을 터뜨렸던 날. 둘이 행복을 나눴던 그날까지만 해도 몰랐다.
“……방금 성후께서 어떤 전언을 남겼다 하였습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성하, 성후 성하께서는 당분간 침전에 들지 못하시니 기다리지 말아 달라, 라, 라는 전언을 저,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성후의 집무실에서 일하는 신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겨우 말했다.
하마터면 살 떨리는 중압감에 놀라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성황 성하께서 이 정도의 감정을 내비치시다니.
시종들은 성하의 그런 얼굴을 처음 보았다. 큰 충격을 받은 듯 비참하기까지 한 모습을.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율리시스는 이후로도 요이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