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4)
외전 11화
“꺄악!”
말없이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요이델을 와락 끌어안았다.
“방금 아기라 하셨습니까, 저희의 아기. 요이델 님과 제 사이에…….”
숨 쉴 틈도 없이 말한 그가 가느다란 목덜미에 묻었던 머리를 들었다.
환희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희에게. 아, 꿈은 아니겠지요.”
“아니에요! 마르셀리나 님이 확실하게 얘기해 주셨어요.”
“왜 남관의 원로가 아니라 대원로입니까?”
“하일 님은 한번 오진을 하셨거든요.”
율리시스의 표정이 굳었다가 풀어졌다.
“화를 내야 마땅할 터인데 오늘은 그리되지가 않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도 그래요.”
요이델이 그를 꽈악 끌어안았다.
대롱대롱 서로에게 매달리다시피 한 둘 사이에 두근두근 기분 좋은 설렘이 퍼졌다.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되는 거예요. 믿겨져요?”
낯선 호칭에 율리시스의 시선이 떨렸다. 그는 요이델의 뺨을 쓸며 걱정 어린 얼굴을 했다.
“그대의 몸은 괜찮으십니까. 달리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신지.”
“전 멀쩡해요! 꺄악! 괜찮다니까요. 간지러워요, 정말!”
푸스스 웃는 둘의 웃음소리에 행복이 담뿍 묻어났다.
“몸이 이상했던 건 다 우리 아기가 생겨서였어요. 율리시스 님을 피할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까 바보 같아요.”
“남관의 원로가 큰일을 했습니다.”
그가 이를 으득 갈았다.
“괜찮아졌으니 상관없어요. 우리 아기 생각만 해요.”
“고생하셨습니다.”
그가 쪽쪽거리며 요이델의 볼과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
“간지러워요! 아기가 들어요!”
“저희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문득 율리시스가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저희는 늘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까. 탄생부터 범상치 않은 녀석이군요.”
“아마……. 아주 예전에 메디아에 있었던 날 있잖아요.”
요이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잔뜩 다투고 나서 제가 메디아에 가 버리고, 율리시스 님이 쫓아왔을 때요.”
단번에 깨달은 율리시스가 수긍했다. 둘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처음 계획보다 빠르지만, 너무 기뻐요.”
“배를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저도 쓰다듬어 봤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원래 그렇대요.”
그가 가만히 꿇어앉아 손끝으로 스치듯 배를 만졌다.
“조금 쓰다듬는다고 해서 아기한테 문제가 생기진 않아요.”
보다 못한 요이델이 그의 손을 배에 척 올려 주었다.
율리시스는 아무 동요도 없었다. 그의 머리를 내려다보던 요이델이 민망해져 웃었다.
“판판하죠? 조금 더 기다려야 느낄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편안하게 기다려 봐요. 그런데 배가 동그래지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서 기쁘고 떨리고 신기해요.”
“…….”
“율리시스 님?”
“…….”
“유, 율리시스 님?”
일어선 그의 눈에서 조용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말도 안 되게도 그는 울고 있었다.
“어떡해! 괜찮아요?”
“……이 자그마한 배에 그대와 저를 잇는 생명이 담긴 게 믿기지 않습니다.”
“아!”
“서 계심에 무리는 없으십니까?”
“당연하죠! 튼튼하게 잘 있고 지금 너무 행복해요. 율리시스 님은 왜 울보가 됐어요?”
요이델이 일부러 그를 놀렸지만 처연하게 떨어지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실은 저도 실감이 덜 나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정말 아이가 우리에게 와 준 걸까요?”
요이델이 발갛게 볼을 물들이며 웃었다. 율리시스를 바라보는 표정에 떨림이 묻어났다.
“현실이 맞습니다. 저희가 이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겁니다.”
율리시스가 일어나서 그녀를 안고 토닥토닥 달랬다.
“저도 더 강해져야겠어요. 우린 이제 부모니까요.”
“제발 건강에만 신경 쓰십시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이마에 입 맞췄다.
“그대를 위해 강해지는 건 제가 할 터이니.”
“좋아요, 율리시스 님은 꼭 약속을 지키시니까요.”
가볍게 끌어안은 요이델이 미소 지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에게 큰 힘이 생긴 거예요. 어서 만나고 싶어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저도 그걸 바라요.”
요이델이 그의 입술을 찾아 가볍게 숨을 섞었다.
그러다 문득 입술을 뗐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되면 모범을 보여야겠죠? 이런 것도 자제할까요?”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건 좋은 일입니다.”
율리시스의 정색에 요이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알 것 같아요. 거기로 간 건 이상한 일도 저주도 아니었네요. 축복이었던 거예요.”
“저도 겨우 알 것 같습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눈에 약간 고인 눈물을 바라봤다. 달빛에 비친 미소가 다정했다.
“앗.”
“어디 아프십니까?”
“……딸기.”
요이델이 조그맣게 말했다.
“딸기가 먹고 싶어요.”
━━━━⊱⋆⊰━━━━
1시간 후, 각 대륙의 딸기가 텔레포트로 밀려들었다.
모든 딸기를 사들이라는 성황의 명령 덕에 성국의 경사 소식이 대륙에 퍼져 버렸다.
“흐어어엉! 성하아아! 경축드립니다! 성하아아아아―! 이 하일은 바보였습니다! 나쁜 하일 같으니!”
“하, 시끄러워.”
마르셀리나는 픽 짜증을 냈다. 누가 오열하는 통에 대화가 안 됐으니까.
결국 하일은 알현실에서 질질 끌려 나갔다.
“또 준비해 올릴 것은 없으신지요, 성하.”
“성후께서 기함을 하셨습니다. 더는 준비하지 말라 이르더군요.”
“어머나, 다른 과일들도 잔뜩 준비했는데 어쩌지요?”
“정도가 과하니 조절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율리시스와 마르셀리나가 임부에게 좋은 먹거리를 두고 진지하게 토론했다.
딸기를 필두로 세상 온갖 과일을 뜯어 왔다고 한참 혼나고 쫓겨난 참이었다.
“대원로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상념에 잠긴 듯하던 율리시스가 마르셀리나에게 물었다.
“제가 좋은 아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십니까?”
“저는 비록 통치자이신 성하밖에 모르오나, 곁에서 모신 신하로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 대답은 예. 훌륭히 해내실 수 있다, 입니다.”
마르셀리나의 확신에 찬 대답에 율리시스가 미소 지었다.
“한때는 훗날 제가 아비로서 보일 최선이 과연 아이에게도 최선이 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피식 미소 지은 율리시스의 눈이 자신감으로 빛났다.
“이제는 그럴 자신이 생겼습니다.”
“어머나…….”
그 모습을 멍하게 보던 마르셀리나가 기쁘게 웃었다.
“성후 성하께서 한 사람을 아주 많이 변하게 하셨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신하로서는 너무나 마음이 놓입니다. 성하께서는 늘 모든 사람에게 자애로우시고, 동시에 곁을 주지 않으셨으니까 말이지요.”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지금은 성하께서…….”
마르셀리나는 단어를 골랐다.
“무척 인간적이시다, 감히 이런 건방진 말을 올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해 보였다.
“이전에는 한낱 감정으로 취급했던 것들이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켜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건 이 늙은이도 모를 감정이네요. 가끔은 성하가 참 부럽습니다.”
“그대도 한 번 더 하십시오.”
“예?”
마르셀리나가 휘둥그레 눈떴다.
“남관의 하일 원로. 그대의 시선 끝에 늘 닿아 있던 자 아니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성하! 절대 아닙니다!”
“성후께서 저를 부르시는군요. 오늘의 대화는 이만 파하겠습니다.”
통신 마도구를 확인한 율리시스가 가차 없이 알현실을 나섰다.
멍하게 연구실로 돌아가던 마르셀리나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일같이 멍청하고 해맑은 애를 내가 왜!”
왜, 어쩌다가.
……성하는 눈치가 너무 빠르시다.
“걔한테도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
괜히 성황을 놀렸다가 초조함만 껴안게 된 마르셀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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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와의 아기 셋까지는 감당 가능할 듯한데.”
“아카코스 님, 제발.”
“넷부터는 무리려나.”
라보르비치의 궁전 안, 아카코스는 방금 막 들려온 소식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왕이면 성후님만 닮았으면 좋겠는데. 그 남자를 닮은 아이면 뭐…….”
아카코스는 잠시 생각했다.
“외모는 출중하나 성격은 장담 못 할 거야. 그렇지?”
“제발요, 다른 나라에서도 아카코스 님더러 파렴치하다고 흉을 봅니다.”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상관이람.”
그는 자신의 보좌관을 보며 턱을 괴었다.
“첫사랑은 아프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아카코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흰 종이에 어떤 그림을 슥슥 그렸다.
“선물은 요람이 좋겠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 중 가장 특상품으로. 최대한의 공을 들여 만들어라.”
화창한 파란 하늘을 바라본 아카코스가 씩 웃었다.
“내 첫사랑의 소중한 이가 누울 물건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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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 무무무무무, 뭐, 아, 아기?”
“……세상에.”
챙그랑.
소식이 알려진 메디아의 식사 홀 안.
덜덜 떨며 아기? 조카? 하던 휘르무트는 이미 졸도해 버렸다.
요이델의 부모님 역시 턱이 빠질 지경으로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여보, 침착해. 우리 잘 생각해 봐야 해. 손주에겐 뭐가 필요하지?”
“라히에, 점프를 하면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진정해야 할 건 여보야.”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어억!”
발끈 소리친 라히에가 심호흡을 했다.
왠지 울컥한 듯, 요이델과 똑닮은 빨간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할 거야. 그래, 품에 얼마 끼고 살지도 못했는데 우리 아가, 요이델, 어흑…….”
“여보가 더 울어서 안 될 거야. 가만히 있어. 우리 아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의젓한걸.”
“흑, 그래, 이럴 때가 아니야. 딸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고? 좋아.”
라히에는 메디아의 지도를 펼쳤다.
“여기, 여기, 여기. 당장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 제일 좋다는 식품들을 공수해서 성국으로 올려 보내게 해!”
부인의 호들갑을 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아내와 아들은 영 침착함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딸의 취향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다. 저 둘보다는 자신이 딸과 더 많이 닮았으니까.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무언가 발견한 듯 눈을 좁혔다.
“메디아가 너무 크군. 반은 잘라서 손주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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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후, 성궁.
“델……. 진심으로 만든 거 맞지?”
“…….”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요이델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가 만들어 놓은 아이 옷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실력은 여전하네.”
“성후님께서는 한결같으신 것뿐이다. 여전하시니 더 좋지 않나.”
“너 그 말이 더 비꼬는 것 같아.”
두 호위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요이델이 만든 엉망진창 아기 옷을 풀었다.
몰래 요이델을 돕는 건 그들의 몫이고 즐거움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 일은 침방 시종이랑 우리 일 같지 않냐? 새로 태어날 아기님을 위해서라도, 이 엉성한 모자는 씌울 수 없어.”
“나도 하지. 끼워 주게나.”
“예하 오셨습니까.”
하일마저 뜨개질 준비를 하고 오순도순 모여 차를 준비했다.
“델이랑 성하는 축제에 갔지?”
“그래.”
대신전에 즐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그건 뜨개질 중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난 가끔 신기하다니까, 델이랑 성하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그래서 인연이라고 하는 거다.”
“암, 암, 그렇지.”
“예하, 바늘을 그렇게 찌르시면 손이 다치십니다.”
“아이고, 알려 줘서 고맙네.”
뜨개질 연합이 마무리를 지을 때쯤.
쾅!
성궁 아래층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위험을 감지한 그들도 한달음에 밖으로 내려갔다.
“성하?”
“아, 아니, 성후 성하께서 왜 성하의 품에 안겨서 들어오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이고! 성후 성하!”
그곳에는 다급한 모습의 율리시스가 있었다. 그는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가 태어나려 하니 지금 당장 산실을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