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3)
외전 10화
늦은 밤.
돌아오고 나니 연회는 끝난 지 오래였고 시간은 자정이 넘어갔다.
두 사람이 사라져 잠시 소란했던 대신전을 잠재우니 피곤함에 졸음이 쏟아졌다.
“정말로 돌아왔네요!”
푹신한 침대에 누운 요이델이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저희 정말 과거에 다녀온 거 맞죠?”
“믿기지 않으십니까,”
“꿈 같아요.”
요이델의 장신구를 끌러 주던 율리시스가 피식 웃었다.
“기뻐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요보힐데 공작 부부의 말대로 제가 조금은 바보 같은 아이인 줄 알았어요. 일부러 제 깊은 기억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늘 무서웠거든요.”
“…….”
“그런데 아니었던 거예요. 공작가의 말 때문에 저를 잘 모르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되어서 기뻐요.”
율리시스가 침대에 걸터앉아 요이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듯 조금 찡그린 눈으로 그녀의 손을 쓸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옛날 일인걸요.”
“이미 죽여서 더 죽이지도 못하는 게 아쉽군요.”
“사실은 조금 더 살려 뒀었잖아요?”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가 굳었다.
“얼마 전에 휘스랑 라이에게 들었어요. 엄마 아빠랑 협력했었다고요. 정말 그 회복 능력 반지가 메디아에 있던데요?”
“저는 설마 고문에 사용할 거라고는…….”
“알고 있었죠?”
당연하다. 그래서 만들었으니. 그러나 요이델에게는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잔학한 걸 싫어하니까.
“상관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고문받는 걸로 율리시스 님을 밉게 볼 리 없잖아요. 쌤통이라는 생각도 들면 너무 심한가요?”
요이델이 그를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마리를 만나고 오니까 더 알겠어요. 요보힐데 공작 부부가 얼마나 못된 사람들이었는지요.”
“……”
“하지만 제가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이델은 제 팔에 있는 작은 문양을 바라보았다. 돌아오고 난 후 율리시스가 알려 주었다.
“주신의 축복이 걸려 있었다니, 몰랐어요.”
후후 웃던 요이델이 협탁을 바라봤다. 거기엔 마리가 선물해 준 키 링들을 넣어 만든 스노우볼이 있었다.
반짝반짝 흩날리는 별 가루를 보니 마리의 말간 눈동자가 떠올랐다.
“있잖아요, 우리 아이가 생기면 어떨 것 같아요? 그래도 누구를 좀 더 닮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아이라…….”
율리시스는 은근히 이런 질문의 답을 피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주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뼈도 굵어야 해요. 마음껏 뛰어놀아도 뼈가 부러지지 않으려면요.”
“어린아이들은 잘 다치니, 그때가 되면 성궁의 바닥을 푹신하게 만들어야겠군요.”
“좋아요! 그리고 이왕이면 착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닮았다면 분명 선량할 겁니다.”
율리시스의 미소 띤 대답에 요이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율리시스 님을 닮은 아이라면, 선량하고 강하기까지 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가 잠시 놀란 듯하다가 짙게 미소 지었다.
“아이가 할 일이 많겠군요. 당신과 저의 바람을 모두 이루어 주려면 꽤 큰 짐을 지고 나와야 할 듯하니.”
율리시스가 피식 웃으며 요이델의 이마에 입 맞췄다.
“저희 아이는 많이 고달플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요이델이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오래 사니까요.”
“어쩌면 아이가 저희를 거부할 수도 있겠군요. 지겹다고.”
“그때가 오면 섭섭해지지 않도록 연습해 놔야겠어요.”
요이델은 장난스레 웃었다.
“너무 과보호해도 안 되고요. 그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서로 경각심을 갖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대와의 아이라면 필시 지나치게 사랑해 마지않을 테니.”
“으음…… 저도 조절하지 못할 것 같아요.”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별 얘기를 다 하네요. 기분이 왜 이러죠? 왠지 모르게…….”
활달하게 웃던 요이델이 몸을 일으키고 율리시스를 등져 앉았다.
“잠시만요.”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눈이 간지러워서…….”
얼굴을 가린 요이델의 몸이 떨렸다.
율리시스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안아 주었다.
“으, 기분이 왜 이러죠?”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뭔가 마음이 막 허전해요. 마리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힘들진 않을까요? 두고 와도 됐던 걸까요?”
“답은 그대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동그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 그가 뺨을 닦아 주었다.
“최선이었습니다.”
“즐거웠어요. 마음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느껴져요.”
“그거면 훌륭한 결과군요.”
그의 옷자락이 요이델의 눈물로 젖어 갔다.
“이곳에는 더 이상 그 악당들이 없고, 저는 그대와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어길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율리시스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요이델을 달랬다.
“좋은 것들을 떠올려 보자면, 어릴 적부터 무척 활달하셨던 당신과 놀아 본 경험이 있으니,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우리 아이도 잘 돌봐 줄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과거의 저는 손이 많이 안 가던 아이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이델 님은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분이셨으니……. 당신을 닮은 아이라면 살뜰히 보살펴 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뭐예요, 그게.”
그의 품에 고개를 묻고 울던 요이델이 훌쩍이며 감정을 추슬렀다. 느껴지는 따스함에 미소 지으면서.
━━━━⊱⋆⊰━━━━
이른 아침, 요이델은 율리시스보다도 먼저 눈을 떴다.
동도 채 트지 않아 깜깜하니 차라리 새벽에 가까울 시각이었다.
“역시 그랬어.”
요이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결연해 보였다.
눈을 뜨자마자 밤샘 연구 중이던 마르셀리나를 찾아간 게 1시간 전의 일.
요이델이 그녀를 찾아간 이유는 어떤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요이델의 예상대로였다.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기다니요, 성하. 성국의 축복이고 경사입니다!’
기쁘게 외치던 마르셀리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확실한 진단을 내려 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성하. 회임하셨습니다! 아기님이 오셨어요!’
조금 전의 축하를 떠올린 요이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떡해.”
믿기지도 않고, 설레지만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파도 같은 기쁨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다.
‘내 배 속에 아기가 있어.’
벌써 두 달쯤 되었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아서 배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힘을 주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종잇장을 건드리는 것처럼 아주 살살.
“어떡해!”
요이델의 뺨이 설렘으로 붉게 달아올라 팡 터질 듯했다.
“아가야, 내 말이 들리니?”
당연하게도 들리는 답은 없었다.
“그렇구나, 대답을 할 리가 없는데. 어…… 엄마가 설레발을 쳤어.”
엄마라니.
아직 제 것 같지 않은 호칭에 발을 굴렀다. 요이델의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
“……하일 님!”
“으아앗! 아이고! 성후 성하, 왜 그러십니까!”
날이 밝자마자 하일의 연구실로 들이닥친 요이델이 무서운 기세로 그에게 다가갔다.
“앗차, 화를 내면 안 되지. 미안해.”
요이델은 중얼거리며 배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하일은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서, 성후 성하. 왜 그러십니까?”
“그렇죠, 참. 제가 하일 님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세요?!”
“예에?”
“알아보니까 저거! 하일 님이 갖다 놓으신 마수 표본의 조각이 섞여 들어가서 이상한 반응이 나온 거였어요!”
요이델은 폐기장에 있던 마법 진단 도구를 갖고 와 내밀었다.
“예에? 호, 혹시 그렇다면 성하, 몸에 이상이 없으시다는……!”
“없을 뿐만이 아니라……!”
요이델은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율리시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으니까. 마르셀리나에게도 철저한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
“흐어엉. 성후 성하!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하일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아이고오, 허엉, 우리 성후 성하께서 무사하시다!”
오열하는 그를 보니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요이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하일 님도 실수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소식은 열 번째로 알려 드릴 거예요.”
“예?”
분명 하일은 소식을 듣자마자 기뻐하겠지. 요이델은 그 기회를 뒤로 미루는 것으로 마음고생의 값을 대신했다.
하지만 하일에게 잠시 들르는 사이, 급한 일로 인해 그녀의 남편이 외부로 나가 버렸다.
요이델은 어긋난 타이밍을 아쉬워하며 하루 종일 그를 기다렸다.
어느새 저녁노을이 졌다.
“얼른 이 소식을 얘기하고 싶은데……!”
요이델이 배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율리시스 님도 분명 좋아하겠지? 어서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아가야, 너도 그렇니?”
심장이 두근거려서 입맛도 없고, 뭘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가 보고 싶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준 야외 정원에서 그네를 놀렸다.
“성하가 안 오시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넘어지십니다.”
율리시스가 웃으며 요이델의 그네를 잡아 멈췄다.
“왜 이제 왔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늦어 화가 많이 나셨군요.”
뾰족한 목소리에 율리시스가 크게 당황했다.
“오늘따라 그대의 감정이 시시각각 다르게 느껴지던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요이델이 대답하지 않자 율리시스가 말을 덧붙였다.
“사람을 보낼까 하였으나, 그대는 제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에 최대한 참으려…….”
“엄청 기다렸다고요.”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많이 기다려 주신 겁니까?”
“할 말이 있어요.”
“……하실 말씀이라면.”
율리시스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녀가 보통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메디아에 다녀올게요.”라든가, “오늘은 그냥 좀 자요. 피곤해요.” 같은 슬픈 말을 할 때였으니까.
잔뜩 긴장한 채 숨죽이자, 요이델이 묘한 얼굴로 웃으며 녹색 정원을 앞서 걸어갔다.
“무슨 말씀이시길래 이리 애를 태우십니까. 제가 이번엔 어떤 것을 잘못했습니까? 말해 주십시오.”
“없어요.”
“없을 때의 모습이 아닌데…….”
요이델이 콧노래를 부르며 잔디밭을 거닐었다.
그가 선물해 준 장미밭은 성궁으로 옮겨져 여전히 화려한 색을 자랑했다.
“다리 아파요, 안아 주세요.”
그녀의 모든 행동이 의문이었지만 뜻에 따랐다. 품에 안아 옮겨지는 동안에도 요이델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제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나 보군요.”
“앞으로 밖에 직접 나가는 일은 조금만 줄여 줬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셨군요. 누가 그대에게 해가 되는 말을 했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같이 시간을 더 보냈으면 좋겠단 거예요.”
“알겠습니다.”
율리시스는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만약 나간다면, 그곳에 있는 맛있는 것들을 사 와 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더 이상 사 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 알겠습니다.”
그녀의 눈빛에 율리시스가 입을 다물었다.
“2인분씩이에요.”
“저는 단것을 즐기지 않습니다만.”
“율리시스 님 말고요.”
“신수에게도 단것을 먹이면 안 됩니다.”
“둘 다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가 걸음을 멈췄다.
“양이 느셨습니까?”
“으음, 그것도 아닌데―”
방문 앞에 다다른 요이델이 그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를 돌아봤다.
“우리 아기가 먹고 싶대요.”
방긋 웃은 요이델이 안으로 들어가 문을 홀랑 닫아 버렸다.
“……아기?”
돌처럼 굳은 율리시스는 사고 회로가 정지되어 멍하게 생각했다.
아기?
아기란 무엇인가.
방금 아기라고…….
아기라, 아기…….
“우리의 아기.”
쾅!
그가 단숨에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